Queen Psycho's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199)
199_인간의 뜻(4)
거대한 축제가 시작되었다.
여왕의 10주년을 기념하는 호화로운 축제가.
“신이시여, 여왕을 보우하소서!”
“Long Live The Queen!”
함성이 여기저기 울려 퍼지고, 사람들은 여왕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것은 한때 부랑자였던 자들의 노래.
여왕이 세운 공장으로 실업자에서 벗어난 자들은 이 추운 겨울에도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여왕의 자비로 그들의 집 굴뚝은 검은 그을음을 내뿜었고, 여왕이 허리춤에 찬 반짝이는 광석은 그들의 몸을 따뜻하게 덥혀주었으니까.
퀼트 치마를 입은 스코틀랜드인과 아일랜드인들도 뿔 나팔을 불며 여왕을 축복하는 곡을 연주했다.
잉글랜드에선 이색적인 풍경이었으나, 그들을 탓하거나 눈살을 찌푸리는 시민들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축제였고, 그들은 하나 된 브리타니아 인이며, 같은 여왕을 섬기는 자들이기 때문이었다.
무어인과 유대인들, 각종 유색인종들.
자신들을 받아준 여왕에게 감사하는 자들은 끝이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예법으로 여왕을 축복했다.
이런 날은 어떤 장사꾼도 놓칠 수 없는 대목.
런던의 상공업 길드는 너도나도 문을 활짝 열고, 이날을 기념하는 장식품을 판매하였다.
축제로 마음이 여유로워진 시민들은 장식품을 사고, 또 축제에 맞게 자신을 분장하며 이날을 기념했다.
“그러니까, 이게 날 기념하는 거라고?”
궁전의 발코니에서 아래를 내다보던 여왕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런던에 울려 퍼지는 즐거운 노래는 좋았다.
가장행렬과 떠들썩한 활기도, 시민들의 웃음소리도 좋다.
그런데 저 분장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스티븐 주교, 그대의 짓인가?”
여왕의 물음에, 주교는 모른 채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나 여왕이 그를 모를까.
무언의 압박이 이어지자, 주교는 이내 실토하듯 변명을 꺼내 들었다.
“축제의 분위기에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흥겹기도 하고요.”
“흥겹지 않냐면야,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저건 좀 아니지 않나.
흥겨운 노래 부르는 사람들이 저마다 들고 있는 것.
아비에게 선물을 조르는 아이의 손에 들린 것.
깔깔대는 소년들이 저마다 들고 뛰는 것.
그것은 바로, 망치였다.
큰 망치, 작은 망치, 길쭉한 망치.
전투용 망치, 공업용 망치, 단지 모양만 잡은 것.
각종 망치란 망치가 저 거리를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모두들, 여왕을 기념해 망치를 든 것이다.
“분명 나의 10주년을 기념하는 날인데, 모두들 망치를 손에 들다니. 내게 기억나는 점이 망치밖에 없다는 말인가?”
여왕이 투덜거려봐야, 들릴 리 없다.
유일하게 투덜거림을 들을 수 있는 주교는, 뻔뻔하게 변명을 늘어놓기 바빴다.
“아니, 설마 저들이 불경하게 폐하로 분장했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지요.”
“그러면?”
“저건 안티오키아의 거룩한 성녀, 마르가리타로 분장한 것이랍니다.”
망치로 악마의 머리통을 깨부순 성녀.
그 이름을 언급하며, 주교가 씨익 웃었다.
그건 언젠가 여왕이 써먹었던 변명이기도 했다.
“어휴, 알겠네. 알았어.”
결국, 여왕도 못 당하겠다는 듯 마주 웃어 보였다.
애당초, 그녀는 이런 걸로 진지하게 화를 낼 만큼 유머 감각 없고 권위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래, 이런 날엔 이런 것도 괜찮겠지.”
오늘은 축제의 날이지 않나.
괴로운 고민 따윈 전부 잊어버리고,
불길한 상상 따윈 멀리 날려버리고,
즐기고 또 즐기는 축제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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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거리가 떠들썩한 만큼,
여왕이 머무는 궁전 역시 그만큼 떠들썩했다.
궁인들도 활발히 움직이고, 의원들도 오늘은 분장에 힘을 썼다.
궁중 사람들의 분장은 궁전 밖 사람들의 허술한 분장과 달리, 훨씬 더 다양하고 완벽했다.
귀족이라고 고리타분하단 편견을 버려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심심하고, 또 노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이었으니 말이다.
그 수많은 의원 가운데서도 독보적인 존재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월싱엄이었다.
“아니, 자네는 또 꼴이 그게 뭔가?”
여왕이 기막힌 탄성을 지르자, 월싱엄이 어깨를 으쓱하며 뻔뻔히 말했다.
“제가 워낙 평범함을 싫어하지 않습니까.”
그리하여 월싱엄이 선택한 분장은 각종 과일과 광석으로 여왕의 얼굴을 형상화한 분장.
언젠가, 여왕의 초상화에 담겨 있었던 형이상학적인 분장이었다.
“나는 때때로 그대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문이 든다네.”
여왕의 떨떠름한 말에도, 월싱엄은 당당했다.
“그야, 당연히 폐하의 기발함과 파격을 찬양하는 쪽이지요.”
아무래도 어설프게 붙였는지, 말할 때마다 분장이 흔들거렸다.
월싱엄의 입술을 상징했을 과일이 떨어져 나가자, 여왕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웃음을 참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니, 웃음을 참을 이유는 또 뭐가 있겠나.
어쨌든 오늘은 축제, 즐거운 날이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폐하!”
궁을 채운 것은 궁인과 의원들뿐이 아니었다.
시골의 귀족들도 이날을 맞추어 런던으로 상경했고,
각국 역시 대사를 보내 여왕을 축하했다.
“축하드립니다, 폐하. 폐하의 즉위식 때 처음 본 것이 아직도 생생한데, 벌써 10주년이라니. 이거 실감이 나지 않는군요.”
“로베르, 오랜만에 보는군! 올해엔 체중 변화가 없어 보이는 것이, 고생이 심하진 않았나 보지?”
프랑스에선 오랜만에 로베르가 찾아왔다.
“저희 섭정께서 폐하의 안녕을 기원하십니다.”
프랑스에선 이질적인 외양의 조안 드 사나스코가 방문했고.
“축하드립니다. 저, 그런데 정녕 폐하가 맞으십니까?”
바티칸에선 레지널드 폴이 방문했는데, 변화한 여왕의 얼굴을 무척이나 낯설어하는 것 같았다.
“흐음, 제국에선 사절이 오지 않았나?”
여왕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에스파냐에서 오지 않은 거야, 당연한 일.
그러나 설마 제국에서 형식상의 사절도 보내지 않다니, 아무래도 결혼식의 분노가 가시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도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제국의 2 왕자가 폐하의 곁에 있는 것을.”
그런 여왕에게 페르디난트가 다정히 다가갔다.
“이번 축제는 무척 즐겁군요. 다음에는 결혼식 기념행사를 이리 열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게,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
미래를 속삭이는 그에게, 여왕은 웃어 보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해리는 그저 사람이 좋은지 방긋거릴 뿐이었다.
“폐하, 재스퍼가 축하를 위해 찾아왔다는데, 어찌할까요?”
“재스퍼라고?”
여왕은 잠깐 옛 기억을 상기하다가, 상대의 정체를 알아채고 환하게 웃었다.
“어서 들이게!”
수년간 편지만을 주고받던 네덜란드의 동맹이 영국을 찾아왔다.
“폐하께서 잘 지내는 것 같으니, 참으로 좋군요.”
여왕이 그와 살갑게 이야기를 주고받던 그때.
어디선가 이를 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야 알겠군요.”
“응?”
여왕은 잠깐 귀를 의심했다.
즐거워야 마땅한 축제 아니던가.
각국의 사절을 맞이하는 이 자리에서, 저토록 악의에 찬 목소리가 들린다고?
당황하며 돌아보니, 바티칸에서 찾아온 레지널드 폴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폐하의 변화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외양도, 누구보다 가톨릭에 열정적이던 폐하께서 신교를 용인하셨던 것도. 그런데 이제야 알겠군요. 저 사악한 것들이 폐하께 마법을 부린 겁니다.”
그의 눈은 몽모렌시 백작에게 집중되었다.
세간에 신교도란 의혹을 사고 있는 네덜란드의 유력 귀족에게로.
‘들을 필요가 없는 헛소리로군.’
여왕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오늘 같은 날, 헛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지 않았다.
함께 온 바티칸 사람들도 당황하는 걸 보면 개인의 폭주 같은데, 잘 타일러 돌려보내야겠노라 여왕이 생각하던 그때.
레지널드가 피를 토하는 목소리로 외쳤다.
“신의 법칙은 결코 거스를 수 없고, 시간은 앞으로만 갈 뿐, 결코 뒤로 갈 수 없습니다. 저항할 수 없는 흐름에 저항하지 마십시오. 저자가 설령 폐하를 젊어지게 했더라도-.”
뒷말은 들리지도 않았다.
여왕은 분노로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저 자를 내쫓아, 바티칸으로 돌려보내게.”
왕실의 충직한 경비는 두 번 묻지 않고 행동했다.
“폐하! 폐하!”
애끓는 목소리에도, 여왕은 돌아보지 않았다.
“지금의 소란은 미안하군.”
찾아온 사절들에게 양해를 구하자, 다들 난처한 얼굴로 여왕을 위로했다.
“아니, 잘못한 것은 저 자입니다.”
지켜보던 와이어트는 사절을 물릴 때쯤, 여왕에게 속삭이듯이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바티칸에서 항의하진 않을까요?”
여왕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어차피 나와의 친분이 아니면 이런 곳에 올 수도 없던 늙은이야. 바티칸이 고작 이런 일로 나와의 손을 놓기라도 할까? 그리고-.”
여왕은 어딘가 익숙한 기분을 느끼며, 유쾌한 목소리로 와이어트에게 대답했다.
“본래부터, 나는 사이코 여왕 아니었나.”
규칙이고 순리고, 그런 것은 모른다.
그런 걸 파괴하는 미치광이니까, 사이코 여왕.
‘그래, 그러니까 나는 굽히지 않아.’
말하지 못할 다짐을 속삭이며,
여왕은 다시 축제의 열기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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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절들을 만난 뒤엔, 연회의 시간이었다.
영국의 만찬은 무척이나 호화로웠다.
“허, 폐하께서 처음 즉위하셨을 때와 비교하면, 비교도 되지 않는군요. 이 정도면 프랑스보다도 나은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로베르가 이런 말을 할 정도였다.
기름진 치킨과 치킨 무, 아니 현자의 과실.
각종 감자와 토마토, 옥수수를 이용한 요리들.
매콤한 고추 등 향신료를 팍팍 넣은 호화식들.
거기에 초콜릿까지.
그야말로 산해진미가 따로 없었다.
“오이 샌드위치는 없어서 다행이군.”
여왕이 우스갯소리처럼 말하자, 곁에 앉은 와이어트가 가볍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연회에는 무척 잘 어울리는 음식입니다만, 폐하께서 싫어하지 않으십니까.”
“물론. 아마 다음 생에도 싫어할 것이라네.”
세상에, 오이 샌드위치라니.
그런 괴식이 어디 있단 말인가.
괜히 영국의 악명이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리 생각하며, 여왕은 홍차에 우유와 설탕을 부었다.
식사 연회 이후엔, 연극이 준비되어 있었다.
오직 여왕을 위해 준비된 연극이었다.
“그간 폐하께서 후원하신 극단에서 준비한 연극입니다.”
여왕의 명령으로 선전부대 역할을 하던 극단.
그들이 준비한 연극이 상연을 시작했다.
“총 3부로 이루어진, 폐하를 기념하는 연극입니다.”
존 디의 과장된 인사와 함께, 극이 시작되었다.
첫 1부는 바르바리 해적과의 혈투를 다룬 것.
에스파냐가 해적들에게 은을 빼앗기고, 영국에 구원을 요청하면서 시작하는 극이었다.
‘아니, 저건 영국이 빼앗은 은이잖아.’
흘끔 옆을 보니, 호킨스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해맑게 연극을 즐기고 있었다.
하여간 해적들은 막강했고, 이길 수 없었다.
에스파냐는 해전을 시도했으나, 결과는 참패.
바로 그때 기적처럼 등장하는 영국의 선원들!
여왕의 명령으로 전선에 선 호킨스는, 그 명령에 따라 해적들을 재우고 노예를 해방한다.
“여왕 폐하의 뜻으로, 그대들을 본래 있었던 자리로 데려오겠노라!”
호킨스 역을 맡은 잘생긴 배우가 무대에서 외쳤다.
‘그러고 보니, 호킨스가 극단과 친분이 있던가?’
여왕은 문득, 호킨스가 배를 타고 극단원과 스코틀랜드를 일주하던 것을 떠올렸다.
신나서 환호하는 호킨스를 보며 심증이 확신이 되던 그때, 2부의 막이 올랐다.
“2부는, 북부의 암살자들입니다!”
1부가 호킨스의 활약이었다면, 2부는 더 직접적인 여왕의 활약을 담은 극이었다.
덕분에 여왕은 낯간지러워 눈을 뜰 수도 없었다.
‘저게 뭐야, 선동과 날조가 따로 없네.’
북부의 사악한 자들이 폭탄을 터뜨려 궁전을 혼란에 빠트리고 이간질을 시도할 때, 여왕은 현명하게도 자비를 베풀었고, 덕분에 별의 방에 숨겨져 있던 놈들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화가 난 북부의 암살자들이 다발적으로 암살을 시도할 때, 여왕은 겁먹지 않고 당당히 적에게 맞서, 암살자들을 붙잡을 수 있었다.
망치를 든 여왕이 단도를 든 암살자를 뛰어난 무예로 제압하는 장면이 나올 때, 여왕은 어색하고 부끄러워서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결코 놈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의 신민이 나와 함께이니, 나는 영원히 이 영국의 여왕이리라!”
여왕의 감동적인 연설로 2부의 막이 내려갔다.
마지막 3부는, 메리의 별 이야기였다.
상대는 강력한 에스파냐의 군대.
여왕은 그들과 맞서 싸우길 두려워한다.
그때, 존 디는 마치 아서왕의 마법사, 멀린처럼 나타나 여왕에게 별을 바치고 여왕은 끝내 감당할 수 없는 적을 상대로 승리한다.
그리고 메리의 별은, 끝내 공의회까지 이어져 여왕의 이름으로 기존의 진리를 뒤집는다.
“폐하께서 세상의 법칙을 바꾸셨으니, 별은 두 번 다시 시시한 규칙에 구속받지 않으리라!”
그 말은 여왕이 존 디에게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이었다.
메리의 별에 극장 하늘을 날아다니는 연출을 보며, 여왕은 문득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 극단의 무대 연출은 존 디였던가.’
여왕의 등장 이전, 연극은 PPL을 위해 존재했다.
어쩐지, 초심을 잃지 않은 듯한 연극 공연을 보며,
여왕은 웃고 즐기고 손뼉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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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해가 뉘엿해질 무렵.
가장행렬을 벌이던 사람들은 내일을 기대하며 집으로 돌아가고, 연회도 슬슬 끝이 났다.
마침내 세 개의 연극이 끝나고, 축제의 첫날이 지나갈 무렵.
존 디가 여왕의 곁에 다가와 물었다.
“오늘, 어떠셨습니까?”
여왕은 대답하기 전, 존 디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 연극은 그대가 기획한 건가?”
“아, 하하. 많이 티가 났습니까?”
알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3부에서 존 디를 띄워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연극의 성격 탓이었다.
“전부, 강대한 적을 상대로 맞서는 이야기더군.”
첫 번째는 숫자가 압도적인 해적단.
두 번째는 목숨을 직접 위협하는 암살자들.
마지막은 국가 체급부터 강력한 에스파냐.
한때,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모르던 강대한 적들을 상대로 내가 어떻게 맞서 왔는지.
어떻게 번번히 기지를 발휘하고, 승리해왔는지.
그걸 담은 것이 바로 존 디가 준비한 연극이었다.
“하여간, 그대는 못 당하겠군.”
여왕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최근 불안하던 내 심기를 눈치채고, 날 위로하려 한 것인가?”
“저만 눈치챈 것은 아닙니다. 페르디난트 공께서 연출에 직접 참여하셨습니다.”
“페르디난트가?”
여왕은 눈을 크게 떴다.
그런 기색은,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그리고, 위로하려고 감히 거짓말을 지껄이진 않았습니다. 극의 모든 내용은 실제 폐하께서 겪으신 이야기 아닙니까?”
존 디가 단단히 말했다.
“폐하께선 항상 승리해오셨습니다. 무엇을 불안해하십니까?”
그 단단한 믿음이 여왕의 말문을 막았다.
존 디 뿐만 아니라, 여왕을 지켜본 이들의 생각이었다.
그들의 여왕은 어떤 위기에도 굽히지 않는 자였고, 어떤 절망적 상황에서도 해결책을 찾아내는 자였다.
그리고 여왕은 그들의 여왕이길 택했으니, 그들이 생각하는 여왕이 바로 그녀일 것이다.
“···그래, 그대의 말이 맞군.”
여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왕이 사랑하는 자들이 눈앞에 보였다.
그토록 여왕을 신뢰하며, 여왕을 위로하려던 이들이.
“그래.”
여왕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늘 하루 중 가장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즐거웠냐고 말했던가? 분명히 말하지, 오늘은 내 생에 가장 즐거운 축제였다네.”
그제야 다른 이들도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었다.
스티븐 주교가 의욕에 가득 차 이야기했다.
“기대하십시오, 폐하. 오늘로 끝이 아닙니다. 앞으로 일주일간 이어질 축제이니, 오늘보다 내일이. 내일 보다 모래가 더욱 즐거울 것입니다.”
“그거참 즐겁겠군.”
그저 이 순간이 영원하기만을 기원하며,
여왕이 말했다.
“기대하지.”
바로 그 순간, 마치 누군가의 악질적인 장난처럼.
여왕의 시야가 흔들렸다.
어지러운 기분, 눈앞이 캄캄해지는 느낌.
눈앞에, 바둑판무늬 테이블이 보였다.
술집에 놓여있던 그 테이블이.
“폐하?”
갑자기 여왕이 휘청거리자,
신하들이 당황하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여왕은 필사적으로 손에 잡히는 의자를 붙잡고 생각했다.
아니, 지금은 안 돼.
지금만은 안 돼, 이대로 갈 수는 없어.
여왕은 이를 악물었다.
받아들일 생각은 집어치웠다.
필사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버텨낼 방법을.
기억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
마지막 순간, 여왕이 입을 열었다.
무언가를 말했으나, 그 말이 전달되었는지 알기도 전에 시야가 완전히 변해버렸다.
과연, 그 말이 전달되었을까?
알 수 없었다.
다음 순간, 여왕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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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깜빡.
하얀 천장이 보였다.
“여긴···.”
목소리를 내다 말고 멈췄다.
나라곤 믿을 수 없는 쇳소리가 났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여기는··· 어디지?’
그 순간.
“현영아!”
곰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했다.
“삼촌···?”
수염이 덥수룩한 상대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현영아. 괜찮니?”
머리가 다시 아팠다.
현영이라고?
내가 그런 이름이었던가?
어쩐지, 낯설게 느껴지는 이름이었다.
‘나는 분명히, 붉은 드레스를 입고···.’
문득, 머릿속에서 환영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를 여왕이라고 부르는 사람들, 노랫소리.
그러나 기억은 빠르게 휘발되었다.
“현영아?”
“아···.”
나는, 입을 열다가 말았다.
이런저런 기억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분명, 나는 영국의 여왕이지 않았나?
10여 년간 나라를 통치하고, 아이를 낳고.
한데 그 모든 기억이 너무나 흐릿하게 느껴졌다.
마치, 아무리 생동감 넘치던 꿈이라도 꿈에서 깨면 순식간에 잊어버리는 것처럼.
그처럼 순식간에 많은 기억이 떠내려갔다.
‘안 돼!’
안타까움에 기억을 붙잡으려던 그때.
삼촌의 목소리가 집중을 방해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나니? 술을 마시다가 쓰러져서 이틀간 눈을 뜨지 못했어. 아이고, 그깟 회사 잘린 것이 뭐 그리 대수라고 그렇게 술을 마셔. 마시긴.”
언제나처럼 아줌마 같은 삼촌의 수다.
그 정겨운 목소리에 빠지다 보니, 기억이 점차 흐릿해져 갔다.
‘그래, 꿈이야.’
아무래도 긴 꿈을 꾸었었나 보다.
유난히도 춥던 어느 21세기의 연말.
이현영은 차가운 병실에서 깨어났다.
모든 것이 안개처럼 불투명한 상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