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en Psycho's British Empire RAW novel - Chapter (37)
37_백년대계(1)
“존 디! 돌아온 것을 환영하네!”
나는 반가운 낯으로 상대를 맞이했다.
이게 대체 몇 달 만인지도 모르겠다.
“그대가 처음 에스파냐에 갈 때까지만 해도, 일이 이리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군.”
처음에 그는 분명 안드레아스 교수의 가족들을 데리러 갔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째 그 뒤로 일이 자꾸만 이상하게 돌아갔다.
덕분에 존 디는 에스파냐에서 첩보 영화를 한 편 찍고서야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도 처음 맡았던 임무는 제대로 해냈습니다.”
존 디가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과연 그의 뒤에는 다소 긴장한 중년 부인과, 귀여운 주근깨 빨간 머리 소녀가 서 있었다.
안드레아스 교수의 가족들이었다.
“수고했네. 오면서 위험한 일은 없었나?”
“하하, 아닙니다. 점성술사로 명성을 쌓아둔 덕에 일이 한결 쉬웠습니다. 제가 영국에서 왔다는 것도 들키지 않았어요.”
존 디가 잠깐 머뭇거리더니 덧붙였다.
“그, 교수님의 사모님과 조금··· 불온한 소문은 난 것 같지만요. 크흠···.”
아하. 유부녀와 불륜 나서 함께 도망갔다는 소문이라도 난 건가.
하긴 저 느끼한 얼굴은 그런 인상을 주긴 하지.
“하하. 그대에겐 안타까운 일이나, 우리 영국에는 좋은 일이군. 언젠가 그대가 에스파냐에서 다시 활약할 날이 있지 않겠는가?”
“설마 그럴 일이 또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또 거절의 말은 하지 않는 게 그답다.
에스파냐 활동이 꽤 재밌었나 보지?
“아, 그나저나 그대가 이번에 세운 공이 크니 포상을 할까 하는데. 포상금과 왕실 과학 고문 자리를 그대에게 내리려 하네. 어떻게 생각하나?”
“그야 물론 영광입니다만··· 왕실 고문 자리를 맡으면 항상 왕성에서 근무해야 합니까?”
속내가 뻔히 보이는 질문에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럴 필요는 없네. 자유롭게 그대 하고 싶은 일을 하게나.”
존 디가 싱글벙글 웃으며 내게 절했다.
다음날, 위대한 마법사 헤르메스가 광장에서 신비한 불꽃 마법을 선보였다는 소식이 내게 들려왔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정말 천성적인 관심 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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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게도 존 디와 달리 와이어트와 호킨스는 바로 돌아오지 못했다.
전쟁 후의 뒤처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두 나라가 엮인 전쟁이니 논의해야 할 게 더 많았다.
쉽게 말해, 논공행상이다.
[영국이 에스파냐의 해적 소탕을 도왔다.]이 간단한 명제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날 그 바위 곶에서는 분명 영국의 국기가 휘날렸으니까.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도움이 어느 정도인가 아니겠는가.
에스파냐 쪽에서는 그 도움이 별 볼 일 없었다고 주장했다.
영국이 동원한 전력이 보잘것없었음을 강조해서 참전은 쓸데없는 참견이었다고 넘기려 한 것이다.
‘물론 그렇게 넘어가게 둘 생각은 없었지만···.’
내가 막 나서려고 하던 그때, 뜬금없는 제삼자가 끼어들었다.
바로 교황청이었다. 교황, 바오로 4세는 이런 발표를 했다.
“영국의 메리 여왕은 가톨릭의 참된 수호자이며, 십자군의 선봉이로다. 여왕은 신앙의 형제인 에스파냐를 위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다. 여왕의 용기로 에스파냐의 해안이 약탈당하는 것을 막았으며, 이교도들이 다시는 가톨릭교도를 착취하지 못하게 했으니 참으로 복되도다.”
그는 영국이 세운 공에 대해 어마어마한 극찬을 했다.
에스파냐를 피해자로, 영국은 그런 에스파냐를 위해 떨치고 일어난 용사로 묘사한 것이다.
영국의 공을 이토록 강조했으니, 에스파냐로서도 마냥 무시하긴 어렵다.
물론, 교황이 영국을 예뻐해서 이런 말을 해줬을 리는 없다.
‘속내가 빤히 보여서 우스울 정도네.’
내가 보기에 이 발표의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 영국을 가톨릭의 품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
영국에서 신교도 군주가 연속해서 나오던 상황 아닌가.
가톨릭으로 알려진 내게 힘을 실어주고 싶겠지.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카를 5세는 사방에 원한을 사고 돌아다녔으니까.’
전혀 놀랍지 않게도, 바오로 4세는 카를 5세를 증오했다.
카를 5세는 한때 로마를 불태우고 교황을 인질로 잡았으니까.
게다가 그는 바오로 4세가 교황이 되는 것을 격렬히 방해하고 훼방 놓으려 하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교황은, 에스파냐를 엿 먹이려고 영국을 밀어준 것이다.
‘과연 카를이 어떤 반응을 하려나?’
나는 설레는 마음을 누르며 에스파냐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나온 카를 5세의 대답은, 어찌 보면 예상외였고 또 어찌 보면 정말 이 시대의 군주다운 대답이었다.
“나는 내 사촌 여동생이자 잉글랜드의 군주, 메리의 도움에 감사한다. 그녀와 내 사이를 이간질하는 삿된 이들의 음해에도, 그녀는 누구보다 앞서 병력을 동원했다. 영국은 에스파냐의 해적 소탕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양국의 우애는 이처럼 두텁다.”
말은 긴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우리 친해요’다.
이전의 갈등은 다 사소한 해프닝이고 삿된 이들의 음해.
나는 혈육의 정에 따라 카를을 도왔다는 것이다.
“머리 잘 썼는데?”
영국이 에스파냐를 도운 건 다 카를 때문이라는 것 아닌가.
따라서 영국의 공 또한 카를의 외교적 성과가 되는 것이다.
게다가 펠리페가 망신당한 일도 없던 걸로 해서 후계자의 명예를 지켰다.
“뭐, 우리로서도 나쁠 것 없지.”
이 발표로 인해, 겉보기라도 친한 척을 해야 했으니까.
에스파냐는 우리에게 감사의 표시로 많은 선물을 보냈다.
그 선물보다 중요한 건, 펠리페 사건 이전처럼 무역을 정상화했다는 것이다.
에스파냐는 거의 모든 물자를 외부 수입에 의존하는 시장이다.
게다가 그 규모 또한 크니, 영국 처지에서는 나쁠 것 하나 없었다.
아, 생각해보니까 하나 걸리는 것이 있긴 있다.
“발표를 들은 호른 백작이 많이 걱정하겠는데?”
그렇다, 네덜란드.
그들이 에스파냐에 맞서 영국에 막대한 돈 투자하지 않았나.
세간의 소문을 듣고 지금쯤 무척 불안해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무래도 그에게 서신을 보내야겠군.”
하지만 다행히도, 그에게 할 변명을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그가 먼저 내게 서신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폐하의 지략은 정말 끝이 없군요. 저희가 보내드린 에스파냐의 은 수송 항로에 해적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솔직히 조금 걱정을 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범인이 명확했으니까요.]음? 생각해보니까 얘네가 나한테 항로 보내줬지?
그 직후에 해적 사건이 터졌으니까, 그리 생각할만하군.
아, 하지만 우리가 해적질했던 건 아닌데.
설마 오해한 건 아니겠지?
나는 일단 편지 계속 읽어보았다.
[그런데 설마하니 바르바리 해적들에게 이 모든 걸 뒤집어씌우고 살인 멸구까지 하실 줄이야! 폐하의 뛰어난 두뇌에는 정말 감탄만 나올 뿐입니다. 멍청한 에스파냐와 해적 놈들을 현명히 이용해 훌륭한 결과를 내셨군요!]머릿속에서 신나게 웃는 호른 백작의 얼굴이 그려졌다.
음, 누가 봐도 악당 같군.
그런데 악당은 혼자만 해줬으면 좋겠는데.
백작의 편지만 보면 꼭 영국이 진짜 흑막 같이 느껴지잖아.
우리가 무슨 나쁜 짓을 했다는 건가?
그냥 혼자 침몰하는 에스파냐 함선에서 은을 좀 건진 것뿐이다.
때마침 그 죄를 덮어 쓰고 등장한 해적은 위협이 되니까 치웠을 뿐이고.
···아니, 이렇게 말하니까 진짜 나쁜 사람 같은데.
나는 살짝 혼란을 느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 아무튼 호른 백작이 에스파냐와 우리의 관계를 오해하지 않는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다른 오해가 생긴 것 같긴 하지만, 그게 뭐가 중요해!
중요한 건, 마침내 전후처리가 끝났다는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와이어트 일행이 런던으로 돌아올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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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템스 강 일대를 가득 메웠다.
전쟁영웅을 향해 보내는 시민들의 환호성이었다.
“돌아온 것을 환영하네.”
내가 시민의 앞에서 환히 웃으며 배를 맞이했다.
배 위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는 와이어트와 일행들이 보였다.
“아무래도 전에 돌아왔을 때와는 기분이 다르겠지.”
내가 장난스레 말하며 웃었다.
저번의 습격 사태와 같은 전함, 같은 인원구성 아닌가.
그때는 새벽의 어둠을 틈타, 수문으로 몰래 숨어들어왔던 이들이 이번에는 당당히 항구에 입성하고 있었다.
배가 정박하자, 나는 그들을 가장 먼저 마중하기 위해 배에 올랐다. 그런데···.
“분명 전과는 다른 상황이건만, 어째서 데자뷰가 느껴지는지 모르겠군.”
내가 망연히 중얼거렸다.
와이어트와 호킨스가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그 뒤에는 막대한 금화가 쌓여있는 상태였다.
“저번엔 은이더니, 이번엔 금인가? 다음에 나가면 뭘 가져올지 두려울 지경이군.”
아니, 물론 좋긴 좋지만 왜 나가기만 하면 뭘 주워오는 거지?
진짜 해적질이 천성인가?
“그나마 저번처럼 사람은 데려오지 않아서 다행이군.”
내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런데 호킨스가 희한하게 말을 더듬었다.
“어··· 그게, 폐하. 사실은···.”
호킨스가 내게 손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그의 손짓에 따라 눈을 돌리자, 금화들 사이에 쭈그려 앉은 낯선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니, 뭔데.
이 사람 대체 누구야.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데, 이번에도 납치한 건 아니지?”
“절대 아닙니다! 이 사람은 해적들 사이에 잡혀있던 노예인데-.”
“됐으니 그만하게.”
나는 슬슬 아파져 오는 머리를 잡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 일단 납치가 아니면 됐다.
“대체 이 남자는 누구이고, 왜 데려오게 되었는지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지만···. 자세한 보고는 나중에 듣는 것으로 하지. 지금은 그대들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니까.”
나는 이들을 데리고 배 밖으로 끌고 내려왔다.
“와아아아아!”
지켜보던 사람들의 환호성이 더 거세졌다.
나는 미리 준비한 단상에 올라, 사람들 앞에서 연설했다.
“먼바다에 나가 정의를 위해 싸운 우리 용사들이 돌아왔도다! 여왕은 오늘, 그들에게 공로에 걸맞은 보상을 내리고자 한다!”
어쨌건 나와 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한 이들 아닌가.
당연히 마땅한 보상을 해줘야만 했다.
나는 먼저 기술자들에게 큰 포상금을 내렸다.
또한, 그들을 왕실 장인으로 높이 대우할 것을 약속했다.
사실 이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컸다.
기껏 데려와 놓고는 각종 어이없는 임무에 투입하곤 했으니까.
“앞으로는 그대들의 직위에 걸맞은 일만을 시키겠다고 약조하마.”
내 진지한 약조에, 기술자들을 어설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으론, 존 호킨스의 차례였다.
“호킨스. 그대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대단한 공을 세웠지.”
“최선을 다했습니다.”
호킨스가 당당히 자부했다.
그 모습이 그리 밉지는 않아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그를 신뢰하지는 않았다.
여차하면 죽어도 된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솔직히 지금도 그를 아주 신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그 능력만큼은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당분간 날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그대에게는 조만간 해군에 적절한 자리를 마련해주도록 하지.”
호킨스는 약간 실망한 것 같았지만,
이내 정중히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미안하지만 당장 자리를 줄 수는 없었다.
해군을 대거 개혁할 생각이니까.
“또한, 그대에게도 장인들과 같은 포상금을 내리겠노라.”
그 말에 호킨스가 반색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래, 역시 돈이 최고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토마스 와이어트.”
그에게는 미안한 점이 많았다.
항상 힘든 임무에 보내고, 제대로 보상해준 적은 없으니까.
그래서 이번에는 통 크게 손을 썼다.
“그대에게는 데본 백작 직위를 내리겠네.”
나는 그에게 영지와 직위를 내렸다.
현재는 주인이 없지만, 그래도 명망 있는 귀족가였다.
“정식 즉위식은 그대가 준비된 뒤에 제대로 하도록 하지. 그래도 괜찮겠지?”
“···.”
와이어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작게 어깨를 떨었다.
감격이 큰 모양이었다.
나는 피식 웃고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영웅을 축하하는 축제를 열겠다!”
“와아아아!”
“여왕 폐하 만세!”
그렇게 런던에서는, 밤늦도록 축제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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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공훈자에 대한 처우는 끝이 났고.”
내가 빙긋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대는 대체 누구인가?”
먼바다에서 온 남자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본래 포르투갈의 해군 장교였던 사람입니다.”
남자의 한쪽 다리에는 조악한 나무 의족이 달려있었다.
-사코 디 로마-
이 역사적인 사건은 마침내 교황권이 바닥까지 추락하여, 중세 가톨릭 시대의 막을 내리는 하나의 신호였습니다. 1527년, 당시 교황이던 클레멘스 7세는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 사이를 줄타기하며 카를 5세의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분노한 황제는 용병들을 시켜 교황청 침공을 명했고, 설마하니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하던 카를 5세가 로마를 공격할 줄 몰랐던 교황은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습니다. 로마는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가장 처절하게 약탈되었으며, 그 참상은 네로의 로마 대화재보다도 심각했습니다. 이 약탈은 마침내 로마의 모든 것이 산산조각나고 잿더미가 된 뒤에야 끝나게 되었고, 이후 재임한 교황 중 상당수는 이 사건으로 에스파냐에 원한이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