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 RAW novel - Chapter 28
28
제28화
파비앙이 내민 조건은 측정불가의 재능이 독의 마탑으로 올 경우였다. 만약 카코가 도왔음에도 독의 마탑으로 가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주지 않지는 않겠지만 블랙 드래곤의 정수를 주지는 않을 것이었다. 도운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다.
즉, 파비앙이 내민 조건은 독의 마탑에만 유리한 조건이라고 할 수 있었다. 카코는 그런 조건을 그대로 받을 생각이 없었다.
“……어떻게?”
이미 조건이 바뀔 것을 생각하고 있던 파비앙이었다. 카코가 바보도 아니고 이런 조건을 받아들일 리 없지 않은가?
“저희가 밀어 드리는 것. 그걸 조건으로 삼았으면 해요.”
“후.”
카코의 말에 파비앙은 한숨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그래, 어차피 예상했잖아?’
조건이 어떻게 바뀔까 생각을 했던 파비앙이었다. 그리고 카코가 말한 조건은 예상했던 조건들 중 하나였다.
스윽
파비앙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오늘 가서 보내줄게.”
손을 내민 파비앙은 다시 활짝 미소를 지었다.
30.
* * *
‘아니,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모니터를 지켜보던 장율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아니잖아.’
처음에는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니터를 지켜보던 장율은 양주혁을 보았다. 한참 업무를 보다가 휴식을 위해 의자에 기댄 양주혁.
“팀장님.”
장율은 양주혁을 불렀다.
“응.”
양주혁은 장율의 부름에도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의자에 기댄 채 눈만 끔뻑이며 답했다.
“수혁 이 유저, 계속해서 책만 읽는데요.”
벌써 대마도사로 전직한 지 7일, 문을 개방한 지는 6일이 지났다. 그런데 그 긴 시간 동안 놀랍게도 책만 읽었다.
진짜 책만 읽었다. 그 외에 한 행동은 빵집에 들러 빵을 산 것뿐이었다. 수많은 퀘스트가 있음에도 퀘스트를 깨지 않았다.
유산 퀘스트, 스텟 퀘스트는 현재 상황에서 완료하는 게 불가능하니 제외하더라도 스킬 퀘스트는 왜 안 깬단 말인가?
스킬을 쓰고 싶지 않은 것일까? 장율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책만 읽는 수혁이 이해 가지 않았다.
대마도사의 후예가 아닌가? 이렇게 신경을 쓸 정도로, 전직한 것만으로도 특등급에 오를 정도로 좋은 직업이다. 이 좋은 직업으로 왜 자꾸 책만 읽는단 말인가?
“굳이 특등급으로 유지할 필요가 있을까요?”
스킬 한 번 쓰지 않은 수혁이었다. 아무리 대마도사의 후예가 엄청난 직업이라고 하지만 정작 그 직업을 가지고 있는 수혁이 책만 읽고 있다.
“그냥 책 읽으려고 게임하는 유저 같은데 제 생각에는 특등급으로 유지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특등급으로 주시하는 이유는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만 읽는데 굳이 특등급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날뛰는 특등급 유저들이 많아서 관리하기도 힘든데. 그냥 1등급으로 내리면 안 될까요?”
솔직히 말해 특등급에서 1등급으로 내리려는 것은 수혁 때문만이 아니었다. 다른 특등급 유저들 때문이었다.
수혁과 달리 다른 특등급 유저들은 특등급답게 행동하고 있었다. 하루하루 그들로 인해 게시판은 관련 글로 폭발하고 있었고 수많은 기사들이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음…….”
양주혁은 장율의 말에 침음을 내뱉으며 생각했다.
‘틀린 말은 아니지.’
장율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지금 나와서는 안 될, 만들긴 했지만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대마도사의 후예’. 그래서 특등급으로 관리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수혁은 아무런 일도 벌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책만 읽을 뿐이다.
‘하지만.’
물론 틀린 말이 아니라고 해서 그 말을 들어주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양주혁은 장율의 말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그건 말이야.”
생각을 마친 양주혁은 장율에게 말했다.
“비유를 하자면 수혁은 핵무기라고 할 수 있어.”
“……?”
장율은 양주혁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쓸 일이 없다고 해서 핵무기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있어?”
대마도사의 후예가 갖는 파급력은 무기로 비유하자면 핵이었다. 지금이야 책을 읽고 있지만 과연 영원히 책만 읽을까?
‘절대 아니지.’
양주혁은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마탑에 책이 무한하면 모를까.’
여태까지 책만 읽었다. 마탑 도서관에 책이 무한하다면 영원히 책만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마탑 도서관에는 책이 무한하지 않다.
“아…….”
양주혁의 말뜻을 이해한 장율은 탄성을 내뱉었다.
* * *
중앙 마탑 7층.
다른 마탑과 달리 중앙 마탑은 마탑장이 없다. 마탑장이란 자리가 없는 건 아니었다. 마탑을 세웠던 대마도사 라피드.
라피드가 바로 중앙 마탑의 마탑장이었다. 하지만 라피드 이후 마탑장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중앙 마탑의 마탑장이 되기 위해서는 10대 마탑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데 그 누가 10대 마탑의 인정을 받을 수 있겠는가? 대마도사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로 인해 라피드 이후 중앙 마탑의 마탑장 자리는 공석이 되었다. 하지만 마탑장이 없다고 부마탑장이 없는 건 아니었다.
부마탑장은 마탑장과 달리 다른 10대 마탑의 인정을 받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중앙 마탑에는 부마탑장이 있었다. 바로 마도사 코알이었다.
“…….”
중앙 부마탑장 코알은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수정구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스아악…….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수정구. 수정구는 보통 수정구가 아니었다. 전대 부마탑장에게 물려받은 수정구였다.
전대 부마탑장이 만든 수정구라는 뜻은 아니었다. 이 수정구는 1대 부마탑장 케디악부터 대대로 부마탑장들에게 내려오는 수정구였다.
‘드디어…….’
수정구를 바라보던 코알은 생각했다.
‘후예가 나타나셨다.’
중앙 마탑장이었던 대마도사 라피드. 수정구에는 대마도사 라피드의 후예. 그러니까 마탑장의 후예가 나타나면 지금처럼 빛이 나도록 마법이 각인되어 있었다.
‘어디에 계신지는 알 수 없지만.’
물론 어디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알 수 있는 것은 등장뿐이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마탑이 처음 세워졌을 때. 그러니까 라피드가 마탑장이었을 당시에는 중앙 마탑이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시간이 흘러 마탑장의 자리가 공석이 되었고 차츰차츰 권력이 약해졌다. 그 결과 현재 10대 마탑을 휘하에 둔 게 아닌 휘하에 들어간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마탑장이 돌아온다면? 다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빠르게 성장하시길.’
* * *
“그럼 이번 측정불가의 재능은 독의 마탑에서 관리하는 걸로 하지.”
기나긴 회의가 끝났다.
‘좋았어!’
파비앙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근데…….’
그리고 이어 든 생각에 고개를 돌려 조금 떨어져 있는 불의 마탑장 브리니스를 보았다.
‘왜 도운 거지?’
포섭한 건 대지의 마탑뿐이었다. 그런데 도움을 준 건 대지의 마탑뿐만이 아니었다. 불의 마탑장 브리니스 역시 도움을 주었다.
처음부터 도움을 준 건 아니었다. 카코로 인해 균형이 깨진 순간부터 브리니스가 돕기 시작했다.
덕분에 별다른 변수 없이 측정불가의 재능을 손에 넣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브리니스가 도움을 준 것일까?
‘설마…….’
짐작 가는 이유가 없는 건 아니었다. 짐작 가는 이유가 하나 있었다.
‘관심을 갖고 있는 건가?’
파비앙은 브리니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파비앙뿐만이 아니다. 브리니스의 사랑을 모르는 마탑장은 없다.
‘하긴 20살의 남자라고 했으니.’
측정불가의 재능을 받은 사내, 그 사내에 대한 관심 때문이 분명했다. 어차피 카코로 인해 기울어진 균형.
브리니스가 돕지 않았더라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독의 마탑으로 결정됐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을 한 브리니스는 도움을 주고 만남을 원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물론 확실한 건 아니었다.
‘물어보지 뭐.’
파비앙은 나중에 브리니스에게 묻기로 결정했다.
‘만약 그 이유라면…….’
이유가 만약 관심이라면?
‘돕는다.’
상처를 받으면 상처를 주고 도움을 받으면 도움을 준다. 파비앙의 오랜 신념이었다. 도움을 받았으니 도움을 줄 것이다.
“근데…….”
바로 그때였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다.”
회의 내내 조용하던 빛의 마탑장 코단이 입을 열었다.
‘……무슨 이야길 하려고?’
브리니스가 도움을 준 이유에 대해 생각하던 파비앙은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 코단을 보았다.
“독 마법은 특별하다. 누구나 쓸 수 있는 마법이 아니지. 아무리 뛰어난 재능의 마법사라도 독에 대한 면역이 약하다면 자신의 마법에 자신이 중독될 수 있다.”
코단이 계속해서 이어 말했다.
“만약 측정불가의 재능이 독에 대한 면역력이 약할 경우 어떻게 할 생각이지?”
독 마법은 다른 마법들과 달리 한 가지 재능이 더 필요하다. 그 재능은 바로 독에 대한 면역력이었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독에 대한 면역력이 부족하다면 독 마법을 사용할 수 없다. 사용하면 자신의 마법에 자신이 중독되기 때문이었다. 만약 측정불가의 재능이 독에 대한 면역력이 약하다면?
“만약 그럴 경우.”
파비앙은 입을 열었다.
“의견을 존중해 줄 생각이다.”
“그 말은 다른 마탑으로 넘긴다고 해석해도 되는 건가?”
“그래.”
파비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면역력이야 강화시키면 그만이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파비앙 역시 처음부터 독에 대한 면역력이 강했던 게 아니다.
약했다. 도저히 독 마법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면역력이 약했다. 그런데 전대 마탑장에 의해 강제로 면역력이 강해졌다.
측정불가의 재능을 가진 사내가 독에 대한 면역력이 약하다? 그러면 면역력을 강화시키면 된다.
“그럼 이만.”
파비앙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미소를 지은 채 마탑장들에게 인사하며 워프 마법진으로 향했다.
* * *
[지혜가 1 상승합니다.]책을 덮자 반짝임이 사라지고 메시지가 나타났다. 수혁은 메시지를 보며 책을 반납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반납함에 책을 전부 반납한 수혁은 퀘스트 창을 열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마법사로서의 재능은 측정이 불가능할 정도로 뛰어나다. 측정불가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당신! 재능이 너무 뛰어나기에 누굴 소개시켜 줄지 케르자는 지금 당장 당신에게 답을 줄 수 없다. 케르자는 2주 뒤 다시 만나기를 원하고 있다.
[남은 시간 : 0일]퀘스트 보상 : ???
퀘스트 거절 시 케르자와의 친밀도가 대폭 하락합니다.
‘이제 가 볼까.’
벌써 2주가 지났다. 약속의 시간이 다가왔다.
“여기 있습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수혁은 입구에서 사서에게 증표를 돌려받고 인사를 한 뒤 도서관에서 나왔다. 그리고는 곧장 중앙 마탑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