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er RAW novel - Chapter 29
29
제29화
‘이미 특수 직업이라 필요 없긴 한데…….’
걸음을 옮기며 수혁은 생각했다. 2주 뒤에 오라고 한 것은 NPC의 소개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NPC의 소개가 필요 없었다.
전직하기 전이라면 어떤 NPC를 소개시켜 줄지 기대했을 것이다. NPC와의 만남은 특수 직업으로 이어질 확률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수혁은 대마도사의 후예라는 어마어마한 직업으로 전직을 한 상황이었다. 직업은 필요 없었다.
‘스킬북도 필요 없고.’
NPC는 꼭 특수 직업을 주는 게 아니다. 스킬북을 주는 경우도 있다. 아니, 거의 특수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스킬북을 준다. 그러나 수혁의 직업인 대마도사의 후예는 스킬북을 사용할 수 없는 직업이었다. 즉, 스킬북도 필요 없었다.
‘증표만 안 사라져도 그냥 취소했을 텐데.’
특수 직업도 스킬북도 필요 없는 수혁이 NPC의 소개를 받으러 가는 이유. 그 이유는 바로 퀘스트 취소를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정확히 말해 퀘스트를 취소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취소할 수는 있다. 그러나 취소하면 안 된다. 취소할 경우 마법사의 증표가 사라진다.
증표가 사라지면? 도서관 이용이 불가능하다. 책을 전부 읽었으면 모를까 아직 읽어야 할 책이 많이 남아 있는 수혁이었다.
‘에휴.’
수혁은 한숨을 내뱉으며 퀘스트 창을 닫았다.
31.
“87렙 더블 퀘 도와주실 분 구합니다! 사례 드립니다! 치료, 환상 더블입니다!”
“39렙 트리플 퀘 도와주실 분 구해요! 불, 물까지 왔구요. 대지 트리플입니다.”
“불의 돌 삽니다!”
“바람의 흔적 팔아요! 진짜 힘겹게 구했습니다! 2개만 팝니다!”
계속해서 걸음을 옮긴 수혁은 중앙 마탑 북쪽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남쪽 입구와 마찬가지로 북쪽 입구 역시 수많은 이들이 있었다.
수혁은 그대로 유저들을 지나쳐 중앙 마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계단을 통해 4층으로 올라갔다.
‘바로 가면 되겠지?’
4층에 도착한 수혁은 퀘스트를 주었던 케르자를 보았다. 케르자는 업무를 보고 있었고 그 앞에는 누구도 줄을 서 있지 않았다.
하기야 일반 유저들이 용무를 보는 곳이 아니었으니 당연했다. 수혁은 걸음을 옮겨 케르자의 자리로 향했다.
“저기요.”
바로 그때였다.
스윽
옆쪽에 줄을 서 있던 사내가 팔을 들어 수혁의 앞을 막아섰다.
“……?”
수혁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의아한 눈빛으로 팔을 들어 앞을 막은 사내를 보았다.
“용무를 보시려면 줄을 서야 돼요.”
사내는 수혁과 눈이 마주치자 입을 열었다. 그리고 사내의 말을 들은 수혁은 어째서 사내가 팔을 들어 막은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새치기하는 줄 알았나?’
새치기, 아무래도 사내가 수혁을 막은 것은 새치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수혁은 새치기가 목적이 아니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수혁은 사내의 말에 답하며 사내의 팔을 내렸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옮겨 케르자의 자리로 다가갔다.
방금 전의 대화 때문일까? 아니면 때마침 업무가 끝난 것일까? 업무에 집중하고 있던 케르자가 고개를 들었다.
“오셨군요!”
수혁을 발견한 케르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수혁을 반겼다. 그리고 그 순간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 ‘측정불가의 재능’을 완료하셨습니다.]퀘스트 완료 메시지였다.
“안녕하세요.”
수혁은 케르자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자리를 권하는 케르자의 손짓에 자리에 앉으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 오라고 하셔서 왔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수혁은 이곳에서의 볼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어서 NPC를 소개 받고 도서관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여기 있습니다.”
케르자 역시 수혁의 마음을 눈치 챈 것일까? 서랍을 열더니 이내 서류 봉투를 하나 꺼내 수혁에게 내밀었다.
“……?”
수혁은 서류 봉투를 보고 케르자를 보았다. 케르자는 설명을 요구하는 수혁의 눈빛에 입을 열었다.
“이걸 가지고 독의 마탑으로 가시면 됩니다.”
그리고 케르자의 말이 끝난 순간 퀘스트가 나타났다.
당신에게 소개시켜 줄 NPC는 독의 마탑에 있다. 케르자가 준 서류 봉투를 가지고 독의 마탑으로 가라!
퀘스트 보상 : ???
퀘스트 취소 불가
퀘스트 거절 불가
퀘스트를 본 수혁은 생각했다.
‘……시간제한이 없네?’
앞서 완료한 ‘측정불가의 재능’과 달리 이번 퀘스트 ‘독의 마탑으로’는 시간제한이 없었다.
‘굳이 갈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
퀘스트 ‘독의 마탑으로’는 취소도 불가능하고 거절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취소와 거절이 불가능한 것이다. 받을 수 있는 퀘스트 개수가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도 제한이 없으니 수락 후 그냥 내버려 두면 그만이었다.
‘다행이야.’
“예, 알겠습니다.”
수혁은 미소를 지으며 케르자가 내민 서류 봉투를 집었다. 그러자 또다시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 ‘독의 마탑으로’를 수락하셨습니다.] [케르자의 추천서를 획득하셨습니다.]메시지를 본 수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리고 인벤토리를 열어 추천서를 넣은 뒤 케르자에게 말했다.
“예, 다음에 뵙겠습니다.”
수혁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케르자의 배웅을 받으며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왔다. 1층에 내려온 수혁은 바로 북쪽 입구로 나왔다. 그리고 도서관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잠깐만요!”
턱!
뒤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와 어깨에서 느껴지는 감촉.
“……?”
수혁은 뒤로 돌아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아까 그 사람?’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한 수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 보는 이가 아니었다. 물론 아는 이도 아니었다.
방금 전 중앙 마탑 4층에서 수혁이 새치기를 하는 줄 알고 앞을 막았던 사내,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그 사내였다.
“무슨 일이시죠?”
수혁은 사내에게 물었다.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사내의 말에 수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 * *
‘아오, 시팔.’
아딜로는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이게 뭐하는 짓인지.’
도대체 왜 줄을 서 있어야 되는 것일까? 아딜로는 줄을 서 있어야 하는 자신의 상황이 너무나도 짜증났다. 물론 짜증이 난다고 해서 줄을 서지 않을 수는 없었다.
아딜로가 줄을 서 있는 이유, 그것은 아딜로 본인의 용무 때문이 아니었다. 본인의 용무 때문이었다면 짜증을 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짜증을 내는 이유는 대신 줄을 서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괜히 자랑해서는.’
회사 점심시간에 이야기를 하다가 판게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현재 아딜로의 레벨은 200이 넘었다. 판게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당연히 자랑을 했고 같이 점심을 먹던 사장 아들이 관심을 가졌다.
문제는 관심에서 끝난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판게아를 막 시작하려 했던 사장 아들은 아딜로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장 아들의 부탁을 거절한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아딜로는 사장 아들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결국 퇴근 후 게임에서까지 사장 아들 뒷바라지라는 업무를 보게 된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대마법사 : 어디세요?
사장 아들에게 귓속말이 왔다.
-아딜로 : 4층 가운데에 줄 서 있습니다.
-대마법사 : 지금 3층입니다.
-아딜로 : 옙!
아딜로는 귓속말에 답하고 입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사장 아들이 올라오기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응?’
그때 한 사내가 줄을 무시하고 앞으로 다가왔다.
‘새치기?’
새치기를 하려는 것일까?
“저기요.”
아딜로는 팔을 들어 사내의 앞을 막았다.
“……?”
사내는 앞을 막은 아딜로를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아딜로는 사내의 의아한 표정에 이어 말했다.
“용무를 보시려면 줄 서야 돼요.”
“예, 알고 있습니다.”
사내는 아딜로의 말에 답하며 아딜로의 팔을 내렸다. 그리고 그대로 걸음을 옮겨 앞으로 갔다.
‘알고 있는데 왜…… 응?’
알면서 새치기를 왜 한단 말인가? 라고 생각하던 아딜로는 사내가 책상을 지나쳐 안쪽으로 들어가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기를 어떻게…….’
사내가 도착한 곳은 이곳 4층 전체를 관리하는 마법사 케르자의 책상이었다. 일반 유저들의 용무를 담당하는 10개의 책상. 그리고 특별한 이들을 위한 5개의 책상. 그 5개의 책상 중 가장 특별한 케르자의 책상에 방금 전 지나쳐 간 사내가 앉았다.
‘뭐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저기에 앉은 것일까?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까?
“박 대리?”
“……!”
생각에 잠겨 있던 아딜로는 귓가에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뒤로 돌아섰다.
“오셨습니까.”
아딜로는 재빨리 맡아두었던 자리를 사장 아들에게 내주었다. 그리고 힐끔힐끔 사내가 있는 곳을 보았다.
‘서류?’
케르자는 사내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저 서류는 무엇일까?
“저기는 뭡니까?”
힐끔힐끔 사내를 보던 아딜로의 눈짓을 눈치 챈 사장 아들 김혁이 물었다.
“아, 특별한 용무가 있는 이들이 이용하는 곳입니다.”
“특별한 용무요?”
“네, 특수 직업이나 특별한 퀘스트로 이어지는…….”
‘……망할.’
김혁의 반문에 답을 해 주던 아딜로는 도중에 말을 멈추고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김혁의 눈빛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괜히 말했나?’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김혁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특수 직업 노래를 부르는 김혁인데 관심을 보이지 않을 리 없다.
왠지 귀찮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과 괜히 말해 주었다는 생각이 동시에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럼 저 사내는 특별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건가요?”
“예.”
“그게 특수 직업에 대한 것일 수도 있구요?”
김혁이 말했다.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인지 궁금하네요.”
“……네?”
아딜로는 김혁의 말에 반문했다. 어떤 뜻인지 이해를 하지 못해 나온 반문이 아니다. 그저 당황스러움에 나온 반문이었다.
“궁금하다구요. 특수 직업에 대한 정보인지 아닌지.”
김혁은 아딜로의 반문에 아딜로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아…….”
아딜로는 김혁의 말에 탄성을 내뱉었다. 궁금하다는 말을 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말은 단순히 궁금하다는 의미로 말을 한 게 아니었다.
“……알아 오겠습니다.”
김혁의 눈빛에 담긴 의미를 파악한 아딜로가 말했다. 아딜로의 답을 들은 김혁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려 줄을 따라 앞으로 갈 뿐이었다.
‘이런 것까지 해야 되나. 시발.’
아딜로는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사내를 보았다.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아니야, 어차피 나도 궁금하긴 했잖아?’
김혁이 아니더라도 궁금해서 물어볼까 생각을 했던 아딜로였다.
‘어떻게 물어봐야 되나?’
용무를 마치고 다가오는 사내를 보며 아딜로는 생각했다.
‘다짜고짜 물어본다고 알려주진 않을 테고…….’
물어본다고 용무를 말해줄까? 일반적인 용무라도 알려주기 꺼려질 텐데 특별한 용무를? 당연히 알려 주지 않을 것이다.
‘폭력을 사용해?’
그냥 알려 주지 않는다면? 폭력의 힘이 있다. PK로 위협을 한다면 알려 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다.
레벨 1 하락, 스텟 1~3 랜덤 하락, 보유 아이템 랜덤 드랍, 24시간 접속 불가. 4개나 되는 사망 페널티는 그 누구나 두려워하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