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368
상남자 368화
헛웃음을 지은 유현이 툭 하고 말했다.
“야, 사나이 문정구, 대체 내 눈치를 왜 봐?”
“쪽팔려서 그렇습니다.”
“됐고.이리 와 봐.”
“넵.”
빠르게 튀어온 문정구가 유현 앞에 섰다.
유현이 까딱 손짓하자, 그가 들고 있는 책을 내밀었다.
골프 관련 잡지로, 그 안에는 파크골프채 만드는 방법이 나와 있었다.
채가 나무로 되어 있다 보니, 실제로 수작업으로 만드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전일호가 처음 구해 왔던 것도 목포의 한 업체가 수작업으로 만든 채였다.
그래서 그땐 저렴하게 구했지만, 이제는 수량이 없어 살 수도 없었다.
골프채 만드는 페이지에 제법 손때가 묻은 터라 유현이 물어봤다.
“채 만들게?”
“네.파크골프채 구하는 게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현지가 그래?”
“그렇습니다.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유현이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그래서 이걸 직접 만들겠다?”
“저, 나무 깎는 거 잘합니다.정말 잘할 수 있습니다.”
참 재미난 녀석이었다.
탁.
유현이 평상을 치자, 그가 각 잡힌 자세로 앉았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우스웠다.
“나쁘지 않네.한번 해 봐.”
“네.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그래.건투를 빈다.”
딱딱한 문정구의 말투 때문인지 유현도 덩달아 군대 말투를 썼다.
그러자 문정구가 크게 소리쳤다.
“넵.사나이 문정구, 꼭 고백에 성공…… 헙.”
순간 귀를 의심한 유현이 재빨리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야, 그렇다고 다 떠벌리는 건 아니지.아, 진짜 이거 꼴통이네.”
“그 소리 많이 들었습니다.”
“푸하하하하.솔직해서 좋다.”
결국 유현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터뜨렸다.
그날 저녁.
중국집 뒤 골프 연습장 평상 주변에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딱히 잔치를 하려고 한 건 아니었다.
그냥 정육점 사장이 고기를 쏜다고 해서 판을 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분위기가 꼭 마을 잔치 같았다.
지글지글.
커다란 스탠드형 고기 불판 두 곳에서 노릇노릇 잘 익은 돼지고기 냄새가 올라왔다.
평상엔 마을 사람들이 싸 들고 온 음식과 술이 가득 놓여 있었다.
두 불판 사이에 선 정육점 사장이 크게 소리쳤다.
“고기는 마음껏 드십시오.제가 쏩니다.”
사람들이 환호하던 찰나, 이영남 이장이 잘못된 부분을 콕 집었다.
“정 씨, 말은 정확히 해야지.골프 내기에서 져서 쏜 거라며.”
“에이, 이장님, 그걸 꼭 집어야겠습니까? 기분이 다르지 않습니까, 기분이.”
정육점 사장이 오버하며 팔을 휘휘 젓자, 모여 있는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푸하하하하.”
그때, 소시지를 오물거리던 심현지가 언제나처럼 카메라를 들었다.
“자, 정다운 분위기에서 사진 한 방 박을게요.”
“어이구.또 시작이네, 시작이야.”
사람들이 웃고 떠들 때였다.
유현이 고기 굽기 삼매경에 빠진 문정구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속삭였다.
“정구야, 이럴 때 더 자신감 있게 사진 찍어야지.현지가 나중에 사진 확인할 거 아냐.”
“헛.그러네요.”
문정구는 집게를 내려놓은 후 눈을 부라렸다.
그때 심현지가 문정구 쪽으로 다가왔다.
“우와.정구 너, 고기 엄청 잘 굽는다.”
심현지가 감탄하며 나무젓가락으로 고기를 하나 집어먹었다.
유현이 보기엔 그냥 고기가 먹고 싶어서 하는 소리였다.
그런데 문정구의 반응은 달랐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문정구가 소리쳤다.
“사, 사나이 문정구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더 맛있게 구워 줄게.”
그는 불판에 고기를 더 올린 후, 번개 같은 손놀림으로 고기를 정렬했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도 하나둘 문정구 쪽으로 돌아갔다.
“오, 정구 잘하는데?”
“그러게요.엄청 손이 빠르네.”
그러자 옆에서 다른 불판에 고기를 굽던 배용석도 이에 질세라 고기를 올렸다.
화르르.
각 불판의 숯에서 올라오는 강한 불길 속에서 두 남자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모양새다.
이게 뭐라고, 참.
유현은 피식 웃으며 재미난 풍경을 감상했다.
먹을 게 넘쳐나고 술이 있는데 분위기가 안 좋을 수가 없었다.
다들 재미나게 떠들었다.
유현 역시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분위기를 즐겼다.
그렇게 1병, 2병, 빈 병들이 나올 때였다.
재잘재잘 잘도 떠들던 심현지가 손을 번쩍 들었다.
“이장님, 건의드릴 게 있어요.”
“우리 예쁜 현지 말은 들어줘야지.뭔데?”
이영남 이장이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자리에서 일어난 심현지가 거침없이 말했다.
“저희 마을 운영비로 파크골프채 구할 수 없어요? 수가 모자라서 너무 불편해요.”
그러자 기다렸단 듯 한마디씩 나왔다.
술자리 분위기가 마을 회의 분위기로 단숨에 바뀌었다.
“맞아요.이제 목포 시내에서도 구하기 힘들어요.”
“가격도 너무 올랐어요.”
파크골프가 아직 대중화되지 않아서 채를 구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부르는 게 값이었다.
이미 수차례 제보가 됐던 문제라, 이영남 이장도 제법 깊게 고민했었다.
하지만 마을 예산으로 처리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잠시 머리를 굴리던 이영남 이장이 유현에게 물었다.
“한 주임, 혹시 방안이 없을까?”
동시에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유현에게로 향했다.
유현도 쉽게 답을 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비싼 채를 그냥 사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불편하단데 참으라고 할 수도 없었다.
해남군에서 예산 지원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는 것 또한 무리였다.
하지만 그건 오늘 유현이 문정구를 만나기 전의 이야기였다.
문정구의 이글거리는 눈빛을 받은 유현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방법은 있습니다.”
“있어?”
“있는데, 쉬운 방법은 아니에요.누군가의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유현의 과장된 말에 모두의 눈이 둥그레졌을 때였다.
유현이 턱짓하자, 문정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목이 쏠린 상태에서 그가 기합 든 자세로 소리쳤다.
“파크골프채, 제가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러곤 옆에 서 있는 심현지를 바라봤다.
다리는 달달 떨고 있으면서도, 눈빛만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유현이 피식 웃었다.
“하여간 사랑의 힘은 정말 대단해.”
* * *
문정구가 강한 포부를 보이고 난 뒤로 시간이 조금 흘렀다.
그사이 유현의 일과는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공장 일도, 취미도,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혼자 쉬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한마디로 모든 게 여유로웠다.
이렇게 쭉 사는 생활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점심, 연승리 마을 최정복의 집 안이었다.
식사초대를 받아 온 길이었다.
식사를 하던 유현이 그런 자신의 생각을 전하자, 듣고 있던 최정복의 아내가 놀라 물었다.
“아니, 유현씨는 그 나이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요? 젊은 사람들, 보통 시골에 오면 답답해하는데.”
“이렇게 형수님께서 맛있는 밥도 챙겨 주시잖아요.좋을 수밖에요.”
유현의 넉살 좋은 답에 최정복의 아내가 쉴 새 없이 박수를 쳐 대며 좋아했다.
“어머, 어머.호호호호.유현씨는 말도 참 예쁘게 한다니까.”
“이 사람 참, 철딱서니 없게.”
최정복이 민망한 표정으로 말렸지만, 돌아오는 건 핀잔뿐이었다.
“당신은 좀 끼어들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
“동생이 보고 있는데 좀.”
“유현씨는 신세대라 이렇게 허물없는 거 좋아해요.그렇죠?”
눈을 찡긋하는 최정복의 아내에게 유현이 유쾌하게 답했다.
“그럼요.형수님 지금 모습이 제 이상형에 가깝습니다.”
“호호호.역시.유현씨는 생각이 참 깔끔해.잠시만 기다려 봐요.고기 좀 더 줄게요.”
환하게 웃은 그녀가 벌떡 일어나더니, 빈 접시를 들고 주방으로 갔다.
어깨를 덩실덩실하며 걷는 걸음 뒤로 기분 좋은 휘파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최정복은 한숨을 쉬었고, 유현은 미소를 지었다.
식사를 마치고, 과일까지 깔끔하게 비운 후에야 유현은 밖으로 나섰다.
최정복의 집이 있는 연승리 마을은 연태리보다 도로 정비가 잘된 편이었다.
상가의 간판도 통일되어 있어 정갈한 느낌이 들었다.
높은 산과 붙어 있어서 그런지 길에 굴곡이 많았지만, 그 또한 마을의 특색이었다.
덕분에 이래저래 구경하며 걷는 맛이 있었다.
같이 걷던 최정복이 툭 하고 아내 이야기를 꺼냈다.
“집사람이 원래 저렇게 왈가닥은 아니었어.”
“너무 보기 좋던데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사실 처음에 왔을 땐…….”
최정복은 예전에도 살짝 했던 과거 이야기를 조금 더 상세하게 풀어놓았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결혼 후 여유를 찾기 위해 귀농한 케이스였다.
부푼 꿈을 안고 마을에 왔지만, 실망도 많이 했다고 한다.
“아내가 특히 돌아가고 싶어 하더라고.산사태가 나면서 돈 벌이도 안 좋아지고, 마을 사람들과의 사이도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고 말이야.”
“연고도 없는 마을에 정착하는 게 정말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맞아.그래서 아내가 동생을 신기하게 생각하는 거야.우리는 5년 넘게 좌충우돌하고 나서야 좀 살 만해졌는데, 동생은 정말 편해 보이니까.”
“마을 사람들이 다 편하게 대해 주시니까요.”
“동생 마음이 열려 있으니까 사람들이 다가가는 거야.”
유현 가슴이 순간 찔끔했다.
처음 유현이 이 마을에 왔을 땐 일부러 사람들과 거리를 뒀다.
간섭을 받고 싶지 않았고, 그래야 더 편할 거 같았다.
하지만 겪어 보니 아니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얻는 즐거움이 그저 멍하니 있는 모습보다 훨씬 컸다.
정말 좋은 사람들과 함께 했기에 얻을 수 있는 기쁨이었다.
“다들 마음씨가 좋아서 그런 거죠.”
“아냐.동생만 좋아한다니까.”
“에이.또 그러신다.아, 애플폰 들어오나 보네요?”
간지러운 말에 손을 휘휘 저은 유현이 그의 휴대폰 가게를 가리키며 물었다.
거기엔 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래.동생이 말했다고 하니까 아내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지르라고 하더라고.”
“하하.못 팔면 저 형수님께 혼나겠는데요?”
“설마.때려도 날 때리겠지.동생에겐 오히려 미안하다고 할 거야.”
“그 모습을 한번 보고 싶기도 하고요.”
“뭐라고? 푸하하하.”
유현은 최정복과 함께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그와 나누는 이런 살가운 대화가 무척이나 즐거웠다.
유현은 커다란 언덕을 돌아 연태리 마을로 넘어갔다.
둘레길을 따라 쭉 걷다가 도착한 곳은 중국집 뒤 골프 연습장이었다.
유현과 최정복의 아지트이기도 한 이곳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평상 위에 빽빽이 자리 깔고 앉은 사람들은, 멀찍이 보이는 한 남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유현은 그 모습을 보며 실소했다.
“정구 녀석, 또 저 짓 하고 있네.”
“또 채를 만들었나 봐?”
옆에 있던 최정복이 평상에 앉아 채를 돌려가며 만지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이미 지난번에도 한 번 봤던 장면인지라 유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때, 문정구가 평상에 기대어 놓은 채를 들어 올리며 소리 높였다.
“여러분.이번 채는 더 업그레이드됐습니다.먼저 여길 보시면 그립을 실리콘 재질로 바꿨고, 클럽 헤드는 친환경 페인트로 도색했으며…….”
일장연설 속에, 평상 위에 앉은 사람들이 수군대는 소리가 퍼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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