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405
상남자 405화
최근 IT 초고해상도 태블릿 패널을 담당했던 IT그룹 영업마케팅 담당 인원들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사업부장의 전면 지원을 받고 있는 초고해상도TF 실장이 직접 유현을 거론해서였다.
웅성대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유현이 끊고 들어갔다.
“강 팀장님, 그럼 SLC는 전 제품에 전면 적용하는 걸로 추진하겠습니다.”
-괜찮지.기획 쪽에서 그렇게 밀어붙여 주면 우리도 좋아.TV 쪽도 한 번에 밀어붙여서 성공했거든.안 그래요, 이 팀장?
갑작스럽게 치고 들어오는 SLC 패널 연구팀장의 물음에, 이본석 팀장이 굳은 인상을 펴고 답했다.
“하하.네, 맞죠.”
-그땐 이 팀장 참 추진력 좋았는데.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하긴, 나온 기획안들 보니까 파격적이야.이 팀장이 고생 좀 하겠어.허허.
“네.그렇죠.하하.”
이본석 팀장이 애써 웃으며 답했고, SLC 패널 연구팀장이 적당한 타이밍에 빠져 줬다.
-기다리는 사람도 많은데 너무 내 말만 했군.한 대리, 진행해.
“네.알겠습니다.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유현이 다음 안건으로 화제를 돌렸다.
유현의 사인을 받은 장준식이 노트북 버튼을 눌렀고, 그에 맞는 자료가 화면에 띄워졌다.
“그럼 다음으로 내로우 베젤 관련하여 TV 회로4팀 의견 듣겠습니다.”
유현의 말이 끝나자, 3번 채널이 활성화되었다.
TV 회로4팀은 원래 실무자가 참석했었지만 팀장으로 급하게 교체된 상태였다.
실무자가 4K에 대해 잘못된 발언을 하는 바람에, 다른 개발팀 팀장으로부터 면박을 받았기 때문이다.
더는 밀릴 수 없단 생각에 TV 회로4팀장이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현재 저희 일정에서 4K에 내로우 베젤까지 하는 건 무리입니다.IC부터 손댈 게 너무 많아요.제안하신 로고 아이디어는 좋으나, 대형 TV의 개발 상황상 이치에 맞지 않단 점 고려해 주시길 바랍니다.
다만, 다른 팀장들 앞이라 최소한의 예는 갖췄다.
이본석 팀장이 기다렸단 듯 목소리를 높였다.
“맞습니다.애초에 성향이 다른 패널들을 하나의 범주로 묶는단 건 무리입니다.차라리 기존 걸 그대로 가고, 각자 역량에 맞춰 최선을 다하는 게 좋습니다.”
한마디로 혁신제품TF의 역할은 필요 없단 말이었다.
개발팀 입장에서는 추가되는 일이 없으니 환영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이본석 팀장은 이 부분을 꼬집으며 하나씩 설득해 나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왜 저놈은 웃고 있을까.
유현을 보던 이본석 팀장의 본능이 뭔가 잘못됐다고 말하던 순간이었다.
초고해상도TF와 연결된 1번 채널이 활성화되며 김호걸 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팀장님, TV 선행패널팀에서 이번에 초고해상도용으로 인셀 게이트 완성시키지 않았나요? 저희 쪽에서 그 아이디어 적용해서 검증도 했는데요.
4번 채널이 활성화되며 TV 선행패널팀장이 그 말을 거들었다.
-적용됐죠.지난번 김포 공장에서 프로토 타입 제작한 거 같이 확인하셨잖아요.패널 쪽은 됩니다.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갔다.
왠지 TV 회로4팀장을 제외하고 나머지가 공세를 펼치는 모양새였다.
-안 팀장님, 그 말씀은 맞는데, 패널이 있더라도 거기에 연결되는 신호를 따기 위해 IC와 COF를 새로 만들어야 해요.그건 다른 이야기입니다.
TV 회로4팀장이 반박하자, 이번엔 초고해상도TF 정인욱 팀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황 팀장님, 게이트 신호만 따면 돼서 드라이버 IC는 따로 만들 필요 없을 거 같은데요?
어느 순간부터는 회의 주관자인 혁신제품TF를 사이에 두고 개발팀끼리 논쟁이 붙었다.
TV 회로4팀장은 이번에도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정 팀장, 드라이버 IC에 붙는 필름은 바꿔야지, 그 신호는 또 그냥 만들어지나?
-COF 만드는 거야 일정 내 충분할 거 같고요.게이트 신호 출력이 필요하다면, 그건 저희 쪽에서 개발한 IC 제공하겠습니다.
-우리가 그걸 못한단 게 아니잖아.당연히 할 수 있지만, 일정상 정신없이 바쁘단 거지.
결국 잘 버티던 TV 회로4팀장은 자존심에 생채기가 났는지 발끈했다.
이본석 팀장의 표정이 일그러지던 순간, 유현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끼어들었다.
“황 팀장님, 그럼 TV 쪽도 대응은 가능하단 거죠? 그걸 하려면 추가 지원이 있어야 된단 거고요.”
-그렇지.하면 다 하지, 세상에 못하는 게 어디 있겠나.
“네.알겠습니다.그럼 내로우 베젤 기술은 조건부로 가능한 걸로 표시하겠습니다.추가 지원 부분은 검토하는 대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유현이 바로 답을 내려 버렸다.
말문이 막힌 TV 회로4팀장이 책임을 이본석 팀장에게 넘겼다.
-이 팀장, 이거 초반에 우리가 짰던 거랑 너무 다르게 흘러가는데? TF로 가더니, 너무 공격적으로 나서는 거 아냐?
“네? 아뇨, 그게 아니라.”
이미 이 부분은 말을 맞췄지만 그건 실무자였지, 팀장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이 자리에서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건 진즉에 말해 줬어야 하는 거야.할 거면 말이야.
“일정상 무리가 있지 않습니까? 안 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려 합니다.”
이본석 팀장은 따지고 드는 TV 회로4팀장을 달랬다.
어째 자신이 나서서 TF 일을 추진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그룹장님이 추가 지원 한다고 하면 어쩔 건데?
“가전사업부에서도 거절하는 아이템이라 그럴 리가 없습니다.”
-왜 계속 말이 바뀌어.하면 어쩔 거냐고.확인했어?
결국 코너에 몰렸던 TV 회로4팀장이 버럭 했다.
“아니, 그게…….”
그가 머뭇거릴 때 1번 채널이 켜지며 김호걸 실장이 상황을 정리했다.
-여기서는 개발 관련 이야기만 합시다.그런 부분은 직접 그룹장님께 결재 받으면 되는 일이잖아요.
다른 팀장들이 다 보는 앞에서 이본석 팀장이 할 수 있는 답은 없었다.
예상치 못한 모든 상황이 그를 옥죄어 가고 있었다.
“네.그러시죠.”
결국 그는 고개를 숙였다.
다른 회의 내용도 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초고해상도TF가 먼저 나서서 IT, TV팀에 기술 대안을 제시했다.
자존심이 있는 엔지니어들이 우리 팀은 기술력이 없어서 못한다고 할 리가 없었다.
다들 조건부로 된다고 했고, 덕분에 개발팀이 참석한 회의는 아주 긍정적으로 진행되었다.
“말도 안 돼.”
순간 회의실 구석 끝에 앉은 한 남자가 허탈한 목소리를 냈다.
IT상품기획팀 출신인 그는 영업마케팅 담당이 요청해도 칼 같이 자르는 팀장들을 많이 봐 왔다.
그만큼 개발 쪽에선 기획이 추진하는 일을 뜬구름 잡는 소리라며 반박해 왔다.
그룹장이 나서야 어느 정도 조율이 될 정도로 그들을 움직이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분명 그랬는데, 지금은 다들 된단다.
두께 0.1밀리미터 바꾸는 것도 어렵다고 한 이들이, 1년 프로젝트가 걸릴 법한 큰 아이템들을 바꾸는 건 가능하단 게 이치에 맞긴 한가?
그가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
모두가 할 말을 잃은 사이, 유현은 빠르게 개발팀과의 회의를 정리했다.
“바쁘신 와중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결과는 정리되는 대로 알려 드리고, 회의 중 나왔던 지원 부분은 협의 후에 바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짝짝짝짝짝짝.
회의실 내에서도, TV 스피커에서도 잠시 동안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화상회의가 끊어짐과 동시에 회의실엔 잠시 침묵이 흘렀다.
IT 장준홍 팀장은 아까부터 분위기를 보고 한발 빠져 있었다.
눈치가 재빠른 건 확실했다.
유현이 주목한 건 그 옆에 앉은 TV 이본석 팀장이었다.
시뻘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걸 보아하니, 지금도 끓어오르는 화를 겨우 참아 내는 모습이다.
개발팀장들 앞에 두고 속앓이를 했으니 답답할 만도 했다.
이러나저러나.
이본석 팀장 덕분에 개발 부서와의 일을 한 번에 정리할 수 있었다.
그와 잠시 눈이 마주친 유현이 고마움을 미소로 표현했다.
씨익.
그 순간 이본석 팀장의 분노를 막고 있던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그의 송충이 눈썹 양 끝이 치솟음과 동시에 참았던 화가 분출됐다.
“네가 감히 개발팀장들까지 동원해서 엿을 먹여?”
으득.
이를 가는 소리가 멀리까지 들려왔다.
그만큼 이본석 팀장의 표정은 살벌했다.
쥐죽은 듯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유현이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
“개발팀을 참석시키자고 했던 건 팀장님이셨습니다.전 그 제안에 따랐을 뿐이고요.”
“실무자를 불러야지, 왜 팀장을 불러.”
사람이 코너에 몰리면 바닥을 드러낸단 말이 딱 맞았다.
말도 안 되는 궤변임에도 유현은 여유 있게 맞서 줬다.
“팀장님들이 들어올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이런.”
눈에 보이는 뻔한 거짓말에 이본석 팀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그가 화를 터뜨리려던 찰나, 침묵을 지키고 있던 김현민 실장이 입을 열었다.
“이 팀장님, 그만하시고 정리하시죠.”
“…….”
“회의를 소집하신 건 이 팀장님 아니셨습니까.”
주변의 시선이 모여 있단 걸 확인한 이본석 팀장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하.알아서 잘하시는 거 같은데, 그냥 다 알아서 하시죠?”
예전 같았으면 이쯤에서 김현민 실장이 꼬리를 내렸을 터다.
TV팀이 태업해 버리면 이 조직이 공중분해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오늘 유현의 회의 진행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있었다.
그 생각을 가감 없이 전했다.
“그럼 일단 통합안으로 진행하는 걸로 하겠습니다.개발 일정은 초기에 잡았던 대로 가고요.각 팀에서 개발팀에 통보해 주세요.”
“뭐라고요? 당장 가전사업부는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안 되는 걸 왜 합니까? 다른 고객사 쪽에 먹히기나 할까요?”
“그건 팀에서 확인해 주셔야죠.”
김현민 실장이 여유 있게 손짓하자, 이본석 팀장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가면, 그룹장님들이 허락할 거 같습니까?”
-결국 그룹장 보고를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제가 말씀드린 날짜 이후로 일정을 픽스해 주세요.
찡긋거리는 유현을 본 김현민 실장이 실소했다.
저 녀석은 언제나 저런 식이었다.
결심을 굳힌 김현민 실장이 강한 어조로 말했다.
“그럼 그룹장 보고를 잡으시죠.”
“네?”
“일정은 제가 잡겠습니다.그 일정까지 맞춰서 그룹장 보고 준비해 주세요.”
“…….”
할 말을 잃은 이본석 팀장을 뒤로하고 김현민 실장이 여유 있게 미소 지었다.
지난번 회의실에서 막무가내로 대치했을 때보다 한층 성숙한 모습이다.
“자, 정리하시죠.오늘 회의 수고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목소리와 함께 회의가 끝났다.
웅성웅성.
자리에서 일어난 유현과 막 일어나려던 김현민 실장의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이 약속이나 한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회의가 끝난 후.
사무실 안에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다른 조직이었으면 그냥 각자 자리로 돌아가면 됐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파티션 바로 건너편에서 살벌한 기운이 감도니 도저히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20층 야외 테라스.
김현민 실장이 강남 전경을 내려다보며 솔직한 지금의 감정을 털어놨다.
“망할 놈의 개발기획팀.실장 자리에 파티션 좀 둘러 주면 어디가 덧나냐? 아님 따로 방을 만들어 주든지.”
“예전엔 그런 거 다 부질없다면서요?”
유현의 물음에 김현민 실장이 고개를 저었다.
“그때랑 상황이 다르지.전 팀엔 나한테 저렇게 눈 부릅뜨는 사람들은 없었어.”
“그땐 워낙 막나가셨죠.”
“너만큼 막나갈까?”
“제가 뭘요.전 그냥 회의 진행한 거밖에 없습니다.”
“야, 누굴 속여.내가 김호걸 실장을 몰라?”
김현민 실장이 유현에게 헤드락을 걸기 위해 손을 뻗었다.
물론 곱게 당할 유현이 아니었다.
휙.
유현은 몸을 약간 물려 피해 내면서 여유 있게 커피를 마셨다.
“그때 실장님이 아니십니다.보셨잖아요, 조리 있게 말 잘하는 거.”
“네가 폭탄 짓을 몇 개월 했는데 그 정도는 성장해야지.”
“덕분에 실장님도 도움 받으시잖아요.”
유현의 말에 김현민 실장이 뻗은 손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그러곤 한쪽 손을 허리에 올린 채 강남 전경을 바라보며 종이컵을 입에 댔다.
“하긴.뭐, 나도 오늘 너 보면서 느낀 바가 있어.”
“한량 스승님의 말씀, 듣고 싶네요.”
뭔 얘기를 하려고 이렇게 분위기를 잡으실까.
유현이 넉살 좋게 받아치자 김현민 실장이 헛웃음을 지었다.
# 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