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737
상남자 737화
전문가들 중 일부는 유니크의 판매량이 곧 꺾일 거라 예측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유니크는 세계 최초로 안드로이드 최신 OS 버전을 업데이트한 데 이어, 안정된 사후 지원을 통해 기존 고객에게도 지속적으로 신경 썼다.
그 결과가 뉴스로 보도됐다.
덕분에 휴대폰전략팀은 마음 편히 야유회를 갈 수 있었다.
목적지는 예정대로 해남 연태리였고, 이동은 미니버스로 했다.
신나게 달리고 있는 버스 안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짝짝.
주목을 끈 정현우 대리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자자, 이번에 정차할 곳은 서해의 풍경이 사방으로 훤히 보이는 행담도 휴게소입니다. 여기서 커피 한잔하시고, 단체 사진 한 번 박고 가시죠.”
“또 쉬어? 아직 갈 길이 멀잖아.”
신낙균 과장이 어이없어 했지만, 정현우 대리는 꿋꿋했다.
“신 과장님, 또 쉬다니요. 기왕 멀리 가는 거, 이곳저곳 많이 들르면서 추억 쌓아야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신 과장, 정 대리가 총무 맡기로 했잖아. 그럼 따라.”
나도연 팀장이 단칼에 자르자, 신낙균 과장이 걱정스러운 말을 뱉었다.
“팀장님, 오늘 부사장님도 오신다면서요. 이러다 저희보다 먼저 도착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한 과장을 위한 여행이야. 우리만 생각해.”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책임은 내가 질 거야. 정 대리, 계속해.”
“넵. 알겠습니다. 그럼 행담도에서 어떤 이벤트를 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정현우 대리가 계획을 줄줄 읊는 와중에도 나도연 팀장은 유현을 힐끔 살폈다.
어떻게든 유현에게 맞춰 주려는 모습이다.
‘이것 참.’
부담스러웠지만 뭐라 하기가 애매했다.
그런 유현에게 옆에 앉은 권세중 대리가 속삭였다.
“유현아, 근데 괜찮을까?”
“뭐가?”
“괜히 마을 사람들 기다리게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말이야.”
정현우 대리의 예약 작업을 도왔던 권세중 대리도 마을 분위기를 어렴풋이 알았다.
-한 주임, 우리 공장 앞 공터에서 기다릴게. 관련된 사람들 다 불러 모을 테니까, 도착할 때쯤 연락만 해 줘.
낚시터를 운영하는 배용석의 말처럼, 마을 사람들은 유현을 몹시 기다리는 눈치였다.
이대로 가다간 환영회라도 준비할 것 같은 느낌에, 유현은 절대 일을 벌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었다.
배용석과의 대화를 떠올린 유현이 고개를 저었다.
“기다리지 말라고 말해 뒀어. 별일 아닌데 괜히 사람들 신경 쓰게 하는 거 같아서.”
“그렇긴 하지. 근데 준식이 놈이 자랑하는 것처럼 그렇게 좋으려나?”
“너무 기대 마. 실망할라.”
“블로그 사진 보니까 너무 멋지던데, 뭐. 엄청 궁금하네.”
아닌 척했지만, 유현도 무척 기대가 됐다.
유현 일행의 도착 시간이 자꾸 밀려서일까?
연태리 복덕방 사장 배용환의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
“이장님, 한 주임이 자꾸 늦는 걸 보면, 일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쯧쯧. 자넨 아직도 한 주임을 모르나? 젊은 나이에 과장까지 단 사람이야. 그런 사람이 대단한 부서 사람들을 다 끌고 온다는데, 뭐가 걱정이야.”
마을 이장 이영남이 혀를 차자, 배용환이 조심스레 말했다.
“그럼 공장장에게 먼저 경고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사람 참, 한 주임이 일 벌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 거 듣지 않았나. 그게 다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의미 아니고 뭐겠어.”
“그럼 지금 늦는 게…….”
“철저히 준비하기 위해서야. 멀리서 지켜보고 있다가, 일촉즉발의 상황인 걸 알고 내려와 주는 사람이 허투루 나설 리가 없어.”
마을과 공장의 갈등이 격해져, 수습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도움을 청할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유현은 그걸 또 어떻게 알고 먼저 손을 내밀어 줬다.
허공에 시선을 둔 이영남이 중얼거림을 이어 갔다.
“무너져 가던 우리 마을을 구했을 때처럼 말이야.”
옛 기억을 떠올린 이영남의 눈빛이 무척 애틋해 보였다.
부우웅.
연태리가 가까워질수록 유현의 옛 기억은 선명해졌다.
그럴수록 달라진 부분도 많이 보였다.
해남에서 연태리까지 이어지는 좁은 길은 크게 트였고, 전엔 없었던 연태리 안내판이 곳곳에 생겼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연태리 마을 아래 저수지 풍경이었다.
탁 트인 저수지를 보며 팀원들이 감탄했다.
“이야. 저수지 되게 크네.”
“조경을 엄청 깔끔하게 정리해 놨다. 산이랑 너무 잘 어울려.”
“겨울인데 낚시하는 사람도 많아요.”
“유명할 만하네. 한 과장, 마을에 있는 숲도 괜찮아? 거기도 평 좋던데.”
“그럼요. 저수지 못지않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유현은 배용석에게 문자로 도착 예상 시간을 보낸 후, 산 위를 바라봤다.
산 중턱에 위치한 연태리는, 더 이상 내비게이션이 위치도 제대로 못 찾는 작은 마을이 아니었다.
-낚시의 즐거움과 파크골프의 재미가 있는 연태리.
커다란 돌에 운치 있게 새겨진 이정표가 보여 주듯, 이곳은 해남에서 이름난 장소가 됐다.
마을이 관광으로 발전한 만큼, 공장의 쓰임새도 달라졌다.
단순 재조립만 하는 게 아니라 견학 공장의 모습도 갖췄다.
한성전자 신규 공장 인원이면 한 번쯤 들러야 하는 교육의 장소가 된 셈이다.
덕분에 달랑 4명이서 관리하던 작은 공장은 이제 직원 60명, 2개 반을 운영하는 작업소로 변신했다.
이런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
마을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메인 공장과 동떨어진 공장이 이렇게 커질 수가 없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차는 좁은 오르막길로 진입했다.
그 옆으로 1평 남짓한 작은 콘크리트 건물이 보였다.
순간 유현의 뇌리에 재미난 기억이 스쳤다.
‘저기에 센서와 CCTV를 설치했었는데.’
유현이 아이디어를 냈고, 조기정이 설치하느라 고생을 했다.
덕분에 유현을 비롯한 반원들은 올라오는 차들을 감시하며, 아주 편하게 공장 생활을 했었다.
이 시점에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아직도 공장에 보안 시스템이 남아 있을까?
좁은 길 외에 큰 도로가 뚫린 걸 보니 더 궁금했다.
그 시각.
견학 반장의 보고를 받은 공장장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성 로고가 달린 미니버스?”
“네. 목포 공장에서 온 건 아닌 거 같습니다. 본사에서 온 거 아닐까요?”
“본사에서 올 일이 뭐 있어?”
“실은…… 저도 우연히 들은 얘긴데, 본사에서 마을 사람을 도와주러 온다고 했답니다.”
견학 반장의 말을 들은 공장장이 어이없어 했다.
“그게 저 미니버스다?”
“혹시나 해서요. 만약 긴급 감사라도 뜨면…….”
“어이구, 등신. 긴급 감사는 혁신전략실에서나 가능해. 설마 그 높은 사람들이 이 먼 곳에 오기라도 하겠어?”
“하긴, 와도 미니버스를 타고 오진 않겠죠.”
고개를 끄덕이는 견학 반장을 보며 소장이 이죽거렸다.
“설령 온다 해도 이미 기울어진 판이야. 황태자라도 대동하면 모를까, 난 절대 양보 없어.”
이번엔 양보할 수 없는 절호의 기회였다.
마을에서 거저 얻은 거나 다름없는 땅에 창고를 세우면, 공사비 명목으로 나오는 추가 비용은 고스란히 자신의 주머니로 들어올 수 있다.
소장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벌컥 문이 열렸다.
머리를 들이민 재조립 반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소장님, 마을 이장이 사람들을 끌고 왔습니다.”
유현을 태운 미니버스는 굽이굽이 좁은 길을 올라갔다.
돌아가는 면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공장 앞 숙소로 가는 건 이 길이 빨랐다.
그렇게 10분쯤 지났을까.
전보다 확장된 공장과, 깔끔하게 리모델링된 숙소의 풍경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앞에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참, 기다리지 말라니까 그러시네.’
환영회를 준비한 듯한 모습에, 유현이 내심 한숨을 쉬었다.
반겨 주는 게 민망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다 내렸다간?
마을 사람들의 인심상 팀원들에게 무리한 선심을 쓰려 할지도 모른다.
유현은 마을에 신세를 많이 졌던 만큼, 이번엔 보탬이 되어 주고 싶었다.
그 마음을 담아 나도연 팀장에게 말했다.
“팀장님, 숙소는 저기 보이는 빨간 벽돌 건물입니다. 뒤쪽에 주차장 있으니, 거기에 주차하고 짐 푸시면 돼요.”
“한 과장은?”
“전 잠깐 내려서 마을 사람들에게 인사하고 오겠습니다.”
“같이 해.”
“아니에요. 따로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지금은 그럴 분위기가 아닌 거 같아서요.”
“그러게. 공장 사람들도 다 나와 있는 걸 보니 뭔가 있는 모양이네.”
나도연 팀장의 말대로였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니, 마을 사람들 외에 한성 점퍼를 입은 사람들도 꽤나 보였다.
한 번 물갈이가 됐는지, 다들 유현이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끼이익.
유현은 의아한 마음을 감춘 채, 일단 버스에서 내렸다.
미니버스를 보낸 유현이 몸을 돌리자, 배용석이 손을 번쩍 들었다.
“한 주임.”
그 뒤로 마을 이장 이영남과 복덕방 사장 배용환, 식당 아주머니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주르르 서 있었다.
모두 너무나 반가운 사람들이다.
그런데 왜 다들 표정이 그리 밝지 않은 걸까?
마치 전쟁터라도 나온 것처럼 비장한 느낌이다.
“주임이라고? 푸하하하.”
그에 반해 마주하고 있는 공장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두 그룹의 분위기가 무척 상반됐다.
유현은 일단 이영남에게 다가가 인사했다.
“이장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어, 한 주임. 그런데 다른 팀원들은?”
“짐 풀러 갔어요. 나중에 소개시켜 드릴게요.”
“나, 나중에?”
“네. 지금은 저 혼자 뵙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유현이 사실대로 말하자, 이영남의 얼굴에 걱정이 어렸다.
공장 사람들을 힐끔 본 그가 조심스레 물었다.
“혼자서 감당이 되겠어?”
“감당이 되다니요?”
고개를 갸우뚱하는 유현에게, 한성 관리자 점퍼를 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깡마른 얼굴에 날카로운 눈을 가진 남자는 직급이 꽤 있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반갑군. 난 여기 소장 진문수라고 하네.”
“아, 네. 안녕하십니까. 한유현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연태리에서 일했었습니다.”
“하하. 그렇군. 그럼 한 주임은 지금 어느 공장에 있나?”
어깨를 들썩인 진문수를 이영남이 쏘아봤다.
“진 소장, 한 주임은 본사에서 왔어. 그리고 직급도 과장이라고, 과장.”
“과장? 안 반장, 그럴 수가 있나?”
진문수가 턱짓하자, 옆에 있는 뚱뚱한 반장이 답했다.
“소장님, 예전에는 심각한 징계를 받으면 연태리로 왔었습니다.”
“아하, 그렇지. 징계 끝나고 무사 복귀한 모양이네.”
“본사라는 걸 보면 서울에서 근무하는 것 같습니다.”
“하하. 그래. 과장도 높은 직급이 맞긴 해.”
뭐야, 이 녀석들은?
유현은 그들의 비웃음을 무시한 채, 이장에게 물었다.
“이장님, 무슨 일이에요?”
“아니, 저 놈이…….”
“어허, 저 놈이라니요? 막말하시면 안 되죠. 네?”
옆에 있던 뚱뚱한 반장이 이영남을 밀치려는 순간, 유현이 그의 손목을 콱 잡았다.
무슨 상황인진 몰라도, 이영남이 이런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아악. 그게…….”
“한 과장, 지금 뭐 하는 건가? 본사에서 왔으면 반장한테 함부로 해도 돼?”
팍.
잡고 있던 손목을 뿌리친 유현이 목소리를 잔뜩 높인 진문수를 노려봤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직접 설명해 주시죠.”
“과장이 나설 일이 아니니까 신경 꺼.”
“이해 못 하셨나 본데, 저 지금 농담 따먹기 하는 거 아닙니다.”
“나 원 참, 기가 차서.”
코웃음을 친 소장이 유현을 몰아붙이려 할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