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 Man RAW novel - Chapter 745
상남자 745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신경욱 대표가 입을 열었다.
“그래.지분은 이제 어떻게 할 건가?”
“비쌀 때 팔아야죠.”
“전보다 많이 올랐을 텐데? 필요하다면 매도 손실을 보지 않게 지분을 시가로 사들이겠네.”
현재 한성전자의 시가총액은 30조 원 대를 회복한 상태였다.
어림잡아 거둔 수익이 벌써 2배였다.
신경욱 대표가 좋은 제안을 했지만.유현이 손을 내저었다.
“아직 부족합니다.그 돈으로 투자해서 한성전자를 더 성장시키세요.”
“흠.자넨 어느 정도 수준을 원하나?”
“최소 3배 더.기왕이면 시총 100조 원을 찍는 걸 보고 싶네요.”
“이것 참…….”
“노력 많이 하셔야 할 겁니다.”
농담 섞인 말이었지만.이건 시총 100조 원이 될 때까지 지분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이대로라면 회사는 전보다 훨씬 안정될 수 있을 터다.
잠시 고민하던 신경욱 대표가 불쑥 물었다.
“그럼 한성을 직접 키워 보는 게 어떻겠나?”
“무슨 의미이십니까?”
“어떤 자리든 자네가 원하는 걸 주겠다는 뜻일세.”
“아뇨.괜찮습니다.”
“이유를 물어봐도 될까?”
“전 일만 한다고 놓쳤던 부분들을 바로 잡고 싶습니다.더는 회사에 얽매이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중한 순간들을 누리며 살고 싶어요.”
이미 유현이 수차례 했던 말이었다.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인 신경욱 대표가 다른 제안을 했다.
“그럼 등기 임원 자리는 어떤가?”
“그것도 사양하겠습니다.”
“필요할 때만 출근하면 될 텐데? 정 안 되면 이사회 의결에만 참석하면 되지 않나.”
“등기 임원은 권한과 책임이 막강한 자리예요.설렁설렁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나면 미련이 남지 않겠나?”
미련이라.
-과장님께서 잘못된 부분을 싹 바꿔 주셨다는 거 알아요.정말 감사합니다.덕분에 회사 다닐 맛 나요.
차미경 과장의 환한 미소를 떠올린 유현이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한성에서 하고자 하는 건 모두 이뤘어요.나머진 대표님께서 해 주시리라 믿고요.”
“흠…….”
“함께하진 않더라도.멀리서 지켜보겠습니다.”
어떤 일을 하든 한성을 잊을 생각은 없었다.
그건 신현호 회장과의 약속이기도 했다.
“고맙군.알았네.내가 더 생각해 보지.”
유현과 눈빛을 마주한 신경욱 대표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한편.한성의 급변하는 상황은 일성에도 전해졌다.
비서실장의 보고를 듣던 최민용 일성전자 사장이 혀를 찼다.
황태자인 그는 5년 전 상무에서 사장으로 초고속 진급을 했다.
“쯧쯧.잘난 맛에 살던 경수 녀석 꼴이 말이 아니게 됐군.”
“네.엘리엇에서 클레임을 강하게 걸었습니다.미국에서 풀 게 많아 보입니다.”
“당분간 한국에 오기 힘들겠어.와도 이제 끈 떨어졌지만 말이야.”
“맞습니다.더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한때 친구이자 라이벌의 이름은 이제 기억 속에서 지워도 될 것 같다.
고개를 끄덕인 최민용 사장이 다른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한유현이라…….”
“로라파커.폴 그레이엄과도 인연이 두터워 보입니다.이력을 살펴보니 역랑도 무척 뛰어나고요.”
“그래 봤자 고작 샐러리맨이지.그런 놈을 아버지께서 왜 신경 쓰시는지 모르겠군.”
“혹시 이번에 퇴사하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요?”
비서실장의 조심스러운 물음에.최민용 사장이 단정 짓듯 말했다.
“안 봐도 뻔해.속 좁은 한성에서 인재 대우를 섭섭하게 했겠지.”
“필요하면 제가 더 조사해 보겠습니다.”
“됐고.그 녀석 번호 줘 봐.그래도 아버지가 지시한 일인데 데리고 오려는 시늉은 해야지.”
“여기 있습니다.”
스윽.
번호를 건네받은 최민용 사장이 휴대폰을 들었다.
“녀석.내 전화를 받는 영광을 누리다니.엄청 놀라겠군.후후.”
그의 한쪽 입꼬리가 길쭉하게 올라갔다.
그 시각.
유현은 정다혜와 함께 남산타워와 연결된 야외 테라스에 올라와 있었다.
지이잉.지이잉.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계속 오자.유현은 휴대폰을 아예 꺼 버렸다.
지금은 전화 받을 상황이 아니었다.
“여기 있네요.”
유현이 가리킨 곳엔 팻말 하나가 걸려 있었다.
-이곳에 자물쇠를 걸면 사랑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그 위로 걸린 커다란 하트 자물쇠가 보였다.
스윽.
정다혜가 큰 자물쇠를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2년하고도 반이 지났네요.”
“시간 참 빨리 흐르죠?”
“그러게요.그땐 G20 정상회담 성공밖에 안 보였는데…….”
“잘 마무리되었잖아요.”
“그랬죠.기적적으로 잘 마무리됐었죠.”
정다혜는 G20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공로로 매니저 진급을 했었다.
그리고 더 큰 꿈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려 했다.
그 직전에 이곳에서 유현과 함께 남긴 게 바로 이 자물쇠였다.
잠시 상념에 빠진 정다혜에게 유현이 차고 있던 목걸이를 내밀었다.
스윽.
목걸이엔 큐피트 열쇠가 펜던트로 걸려 있었다.
“그럼 한번 열어 볼까요?”
“정말 열게요?”
“네.목걸이 풀어 봐요.”
자물쇠는 2개의 열쇠가 같이 꽂혀야 열 수 있는 구조로.안에는 서로의 바람이 적힌 종이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바람이 이뤄졌을 때.같이 자물쇠를 열자고 했었다.
그게 바로 오늘이다.
정다혜는 뭘 적어 놓았을까?
짐작한 바는 있지만.그래도 궁금했다.
유현이 기다리고 있는 사이.정다혜는 목걸이에 달린 펜던트를 만지작거렸다.
결국 그녀는 목걸이를 풀지 않고 말했다.
“유현 씨.미안한데 그냥 다음에 열어요.”
“왜요? 같이 열어 보자고 했잖아요.”
“그랬는데…… 원하는 걸 아직 못 이룬 거 같아서요.”
“스프릿 컴퍼니 일은 잘 마무리 지었잖아요.”
유현이 짐작했던 바를 말하자.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안에 적힌 건 스프릿 컴퍼니와 관계없어요.”
“그럼요?”
“그전에 한 가지 물어봐도 돼요?”
“그럼요.얼마든지요.”
허리를 편 유현이 가볍게 미소 지었다.
휘우웅.
바람이 마주한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지른 후였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유현 씨는 정말 한성 그만둘 거죠?”
“그만둘 게 아니라 그만뒀죠.미련도 없고요.”
한성에서의 생활은 완전히 정리했다.
함께했던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도 나눴고.해 줄 수 있는 조언도 다 건넸다.
장준식 대리의 일일 보고가 더는 없을 만큼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다.
정다혜가 물었다.
“더블와이는요?”
“간간이 들를 생각이에요.”
“지금처럼 적당히 조언하면서요?”
“잘하고 있는데 굳이 숟가락 올릴 생각은 없어요.필요할 때만 나설 생각이에요.”
“아마 미리내 증권에서도 그렇게 일하겠죠?”
“네.그러려고요.”
정다혜는 유현이 더블와이에 많은 돈을 투자했다는 건 알았지만.그게 전부 유현의 돈이라는 건 몰랐다.
폴 그레이엄을 통해 투자금을 확보한 걸로만 알았다.
한성전자의 지분을 인수한 자금도 유현의 소유였다는 걸 상상하지 못했다.
전문가인 그녀도 눈치채기 어려울 만큼.유현의 재력이 상식을 훌쩍 벗어나 있었다.
유현을 빤히 보던 정다혜가 솔직한 마음을 꺼냈다.
“G20에서 제가 어려움을 겪었을 때.셰일오일 문제로 난관에 부딪쳤을 때.그때마다 유현 씨가 있었어요.”
“다혜 씨가 다 한 걸 살짝 도운 거죠.”
“아뇨.유현 씨가 한 거예요.전 그렇게 치열하게 부딪쳐서.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것들을 성취해 내는 유현 씨가 너무 대단해 보였어요.질투를 느낄 만큼.”
“…….”
“제 욕심이라는 거 알아요.유현 씨 인생이라는 것도 알고요.그래도 전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는 유현 씨의 모습을 보고 싶어요.”
오랜 고민 끝에 나온 말이라는 걸 알지만.그 말을 따를 수는 없었다.
유현이 정중하게 거절했다.
“다혜 씨가 저 생각해서 말해 준 건 고맙지만.전 일에 빠져 살기보단 소중한 사람과 여유를 즐기며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그게 정말 유현 씨가 원하는 삶이에요?”
“그럼요.오랜 기간 바라 왔던 삶이에요.”
유현은 확신에 찬 모습이었지만.정다혜는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았다.
아무리 그가 이룬 게 많더라도.이대로 만족할 리가 없다.
그런데 왜 자꾸 뒤로 물러서려는 걸까?
뭔가를 잃을 까 손에 쥔 걸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말이다.
‘나 때문에 더 주춤하는 거라면?’
정다혜는 그럴 필요 없다고.용기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게 고마운 유현을 위한 길이라 믿었다.
정다혜의 진심이 담긴 눈빛이 유현을 향했다.
“유현 씨.자신을 속이지 마요.”
“속이다니요.”
“유현 씨 가슴 한쪽에 누구보다 잘해 내고 싶은 욕망이 있잖아요.또 그럴 수 있는 능력도 있고요.그런데 정말 한 발 빠져서 조언하는 삶으로 만족해요?”
-자네가 내게 말했던 대로 인류의 발전에 기여하고 싶지 않나?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흐름에 뭔가를 추구하고 싶지 않느냐는 말일세.
그녀의 물음은 스티브 잡스의 질문과도 맞닿아 있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유현의 가슴속엔 여전히 불씨가 남아 있었다.
유현은 이 불씨를 살리기 위해.그리고 바라던 삶을 살기 위해 선택했다.
사업가가 아닌 투자가의 길을 걷기로.
그걸로 충분하냐고 묻는 정다혜에게 유현이 결심했던 바를 전했다.
“전 한 발 빠져서 구경만 하려는 게 아니에요.직원들이 더 잘해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려는 거죠.그들이 누구보다 잘해 낼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요.”
“하지만 주인공이 유현 씨는 아니죠.”
“전 제가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함께 만들어 가는 거죠.”
“정말 그걸로 충분해요?”
“…….”
“피하지 말고 직접 나서요.유현 씨라면 바라는 삶을 살면서 주인공도 될 수 있어요.”
과연 할 수 있을까?
투명한 그녀의 눈망울이 유현의 속내를 이끌었다.
“그럴 자신이 없어요.솔직히 두렵기도 하고요.”
지난 5년 동안 유현은 한성에서 많은 걸 바꿨고.원하던 결과를 얻었다.
하지만 어느새 일에 빠져 주변을 못 봤던 것도 사실이다.
유현은 그게 두려웠다.
가슴 깊은 곳에 잠재된 사업가의 기질이 또 미친 듯이 일에 빠져들게 할까 봐 겁났다.
어쩌면 그래서 투자가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꼬옥.
정다혜가 유현의 두 손을 잡았다.
이어진 그녀의 한마디가 유현의 감춰진 본능을 툭 하고 건드렸다.
“제가 도울게요.우리 함께해요.”
“무슨 말이에요?”
“더도 덜도 말고 딱 3년만 같이 일해 봐요.”
“3년이요?”
“네.그래야 저 자물쇠를 열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녀의 시선이 닿은 곳에 큰 하트 자물쇠가 있었다.
그 안에 어떤 글귀가 담겨 있기에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의아함을 감춘 유현이 물었다.
“더블와이는 어떻게 하고요?”
“이제 거긴 제가 없어도 잘 돌아가잖아요.”
“그래도 방향을 잡아 줄 사람이 필요할 텐데요.”
“가끔 조언해 주는 걸로 충분해요.영훈 씨한테도 말했어요.”
“벌써요?”
놀란 유현을 보며 정다혜가 미소 지었다.
“더블와이도 좋지만.언젠가 유현 씨와 같이 바닥부터 일해 보고 싶었거든요.”
“대체 어떤 일을 하려고요?”
“이제부터 정해야죠.”
“아무것도 안 정했어요?”
“네.같이 정해요.우리.기왕이면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어요.세상을 바꾸는 아주 멋진 일이요.”
일에 관해선 완벽주의적인 그녀가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