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2
12화 데뷔전(2)
‘딱 데뷔전 하라고 맞춰놓은 것 같네.’
해안동굴에 생성된 던전.
입장하자마자 인상을 찌푸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진동하는 고약한 비린내가 코끝을 사정없이 찔렀다.
‘세이렌의 둥지’의 진입로는 총 세 갈래.
오늘 데뷔전에 참가하는 인원도 현우를 포함해서 총 세 명이니. 마치 누가 맞춰놓기라도 한 것처럼 딱 맞는 숫자였다.
“오고로로롥─!”
목구멍에서 물방울이 끓는 소리를 내며.
물고기의 머리통을 가진 흉측한 반인 반어 무리가 기괴한 걸음으로 돌격했다.
D급 마족 머맨(Merman).
한 마리 한 마리의 위험도는 그리 높지 않은, D급 중에서도 하위로 취급받는 잔챙이 마족이었다.
그러나 그 숫자가 문제였다.
해안동굴을 기반으로 생성된 좁은 던전의 통로를 머릿수로 빽빽하게 채운 수십 마리의 머맨의 일제 돌격.
그 광경에는 웬만한 C급 베테랑 헌터 조차도 퇴각을 신중하게 고려할 만큼 압도적인 박력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은 훈련되지 않은 마족.’
녀석들의 돌진엔 전술이 없다.
그저 본능적으로 눈앞의 생물을 찢어발기겠다는 어설픈 욕구만이 존재할 뿐.
사실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당장 기억나는 것 중에서 가장 비슷하고 선명한 기억을 하나 꼽자면, 강남역과 삼성역 사이 길게 이어진 지하철 구간에서 벌어졌던 방어전.
‘그때 끝없이 몰려오던 마족들은 최소 A급 이상이었고. 다니엘 녀석의 체계적인 지휘 아래 전략까지 사용하고 있었지.’
그만큼 이쪽의 손실도 굉장히 컸다.
결국 류한나가 목숨을 버리고 희생한 덕분에 현우를 포함, 서울 방어전에 참여한 수많은 헌터들이 안전하게 퇴각할 수 있었으니.
그래서 현우는 머맨 무리의 돌격을 정면에서 바라보며, 공포가 아닌 약간의 그리움을 느꼈다.
이걸 향수라고 불러야 할까.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눈앞의 머맨 무리를 처리하는 방법 자체는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싸그리 태워버린다.’
어차피 한 번에 덤벼들 수 있는 머릿수는 한정되어 있기 마련. 이 지형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 있는 것은 현우 쪽이었다.
아니, 설령 개활지라고 해도.
지금의 현우는 D급 마족 따위. 수백이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능히 상대할 수 있었다.
촤라락─!
현우의 두 주먹이 어두운 동굴 속에서도 은은한 묵빛을 흩뿌리는 흑린갑의 비늘로 뒤덮였다.
창천십팔무(蒼天十八武)
제1초식 재천(在天)
“······!”
녀석들이 비명을 지를 틈은 없었다.
청명한 푸른빛의 불꽃이 솟아오른다.
가공할 만한 열기가 주위로 퍼져 나갔다.
***
‘믿을 수가 없어.’
화면 너머로 현우를 지켜보던 오수진은 속으로 감탄을 삼켰다.
D급 마족 따위를 상대하는 과정을 보며.
이렇게 감탄이 샘솟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하지?”
그만큼 놀라웠다.
제1초식 재천은 본래 기수식.
창염을 응축하고 제어하는 기본형으로. 응축된 창염을 주먹을 통해 전방으로 내뻗는 단순한 구조를 가진 스킬이다.
범위는 그리 넓지 않지만.
응축된 창염으로 웬만한 오러 정도는 가볍게 뚫어버리는, 일점 집중에 특화된 스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우가 사용한 재천은······.
방금까지 통로를 가득 메우고 있던. 수십 마리에 달하는 머멘을 모조리 태워버리기에 충분한 위력이었다.
아니, 태웠다고 하기보단 증발.
주먹에서 일직선으로 뻗어 나간 한 줄기의 거대한 창염이 통로를 관통했고. 그 경로에 서 있던 머맨들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단숨에 잿더미로 화했다.
‘선천적으로 엄청난 마나를 타고났나?’
주양태 회장과 오랜 세월을 보냈기에.
그녀는 창천무를 비롯한 천무가의 스킬들이 마나를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요구하는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주양태 회장 정도면 몰라도.
창천신공으로 형성한 코어의 보조 없이는 창염의 유지조차 쉽지 않다. 성급이 올라갈수록 마나의 통제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었다.
간단히 비유하자면 속도는 빠르지만.
그만큼 연료를 바닥에 줄줄 흘리며 내달리는 스포츠카나 다름없다고 해야 할까.
‘이건 마치······.’
오수진은 입맛을 다셨다.
마법사인 그녀의 눈에 방금 현우의 일격은. 그야말로 메테오 급의 파이어볼을 휘갈긴 것이나 다름없게 보였다.
“음.”
그녀의 옆에서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던 구동철이 드디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회장님, 아무래도 이건······.”
그러나 명확한 한마디는 할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혼란스러웠다.
방금 목격한 광경에 대체 어떤 감상을 덧붙여야 적절한 걸까.
구동철은 입맛을 다셨다.
“더 지켜볼 필요도 없이. 벌써 오늘 데뷔전에서 최고의 옥석이 나온 것 같군요.”
“호들갑이 심하군.”
하지만 주양태 회장은 심드렁했다.
“방금 녀석이 상대한 거라고 해봤자. D급 떨거지 마족이다. 천무가의 피를 이었다면, 그 정도는 눈을 감고도 도륙을 내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지당하신 말씀이긴 합니다만. 제1초식 재천을 저런 위력으로 사용하는 건. 주영미 이사님 정도는 되어야 가능할 법한 기예가 아닙니까.”
“재능만 있다면 가능하지.”
까딱 고개를 기울이는 주양태 회장.
“어쩌면 제 아비를 닮은 걸지도 모르겠군. 일석이 녀석도 데뷔전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훌륭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
“······주일석 님 말씀이군요.”
구동철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주양태 회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회장님께서 그 이름을 꺼내시는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여전히 아쉬운 마음이 남아 있으신 겁니까?”
“흥, 아쉽기는.”
주양태 회장은 짐짓 인상을 썼다.
“천무그룹을 배신하고 도주한 녀석에게 미련 따위는 없다. 다만, 그 녀석이 유일하게 남긴 혈육에게까지 그 죄를 지우고 싶진 않을 뿐이지.”
그러나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면.
방금 현우의 일격을 목격한 이후로.
주양태 회장의 시선은 더는 주건우나 주영우 쪽으로 향하지 않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
몇 분을 더 걸었을까.
이제는 던전의 꽤 깊은 곳까지 진입한 것 같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려던 찰나.
“사, 사람이다! 도와주세요!”
한 여성이 다급하게 뛰어왔다.
‘세이렌의 둥지’의 공략권은 이미 천무그룹에서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이나 다른 헌터가 있을 수는 없다.
어이가 없는 상황.
현우를 향해 달려온 여성의 행색은 이미 한바탕 격렬한 전투라도 겪은 것처럼 엉망진창이었다.
“당신 뭡니까?”
현우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아, 네?”
“여긴 천무그룹에서 공략권을 독점한 던전입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 같은 관계자 외의 인원이 내부에 있어선 안 된다는 거죠.”
“그, 그게······.”
우물쭈물하던 여성은 눈을 질끈 감았다.
“사실 저희는 미승인 헌터에요. 새, 새로운 던전은 돈이 되잖아요. 그래서 뭐라도 조금 주워갈 수 있을까 해서······.”
“저희라고요?”
한 명이 아니란 이야기였다.
현우는 캐묻는 대신 여성을 노려봤다.
“네, 안쪽에 세 명이 더 고립되어 있어요. 두 명은 마족들의 공격 때문에 다리를 다쳐서 이동도 못 하는 상태고요.”
“그렇군요.”
“부탁할게요. 제발 도와주세요!”
팔을 붙잡고 늘어지는 여성.
현우는 인상을 쓰며 그녀를 떼어놓았다.
“어느 쪽입니까?”
“저기, 저쪽 통로를 따라서 쭉 가면 나올 거에요. 목숨만 구해주시면, 진짜로 두 번 다시는 이런 일은 하지 않을게요!”
여전히 공포를 떨쳐버리지 못한 걸까.
그녀는 약간 떨리는 손으로 던전 깊은 곳으로 향하는 통로 중의 하나를 가리켰다.
“앞장서시죠.”
“가, 감사합니다!”
여성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런데 조금 실망이네요.”
“네?”
그녀가 등을 돌리자마자.
현우는 두 다리를 어깨너비로 벌리며 코어의 마나를 끌어 올렸다.
창천십팔무(蒼天十八武)
제3초식 창룡퇴(蒼龍槌)
순식간에 선명한 창염으로 휘감긴 현우의 다리가 빠른 속도로 휘둘러지며 여성의 머리통을 향해 그대로 매다 꽂혔다.
빠악─!
묵직한 소리와 함께.
대비할 틈도 없이 창룡퇴에 직격한 여성의 머리통은, 찰나에 육편으로 화해 던전 벽면에 흩뿌려졌다.
다만 이상한 점이 있다면.
그 피나 살점이 분명히 인간의 것이 아니라 마족과 같이 푸르스름한 색채를 띠고 있다는 부분일까.
“너무 뻔하잖아.”
한숨을 내쉬는 현우.
그와 동시에 머리를 잃은 여성의 육신이 지면을 향해 천천히, 실이 끊긴 인형처럼 철퍼덕 쓰러졌다.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던.
앞으로 ‘세이렌의 둥지’라고 명명될 이번 던전의 주인 격 마족인 세이렌이었다.
녀석들은 C급 이상으로 분류되는 마족.
현혹도 성가신 능력이지만.
인간에 준하는 지능과 위장 능력으로 교활한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에 C급 중에서도 공략이 상당히 골치 아픈 축에 속했다.
하지만······.
이제 막 발견된 던전이기 때문일까.
현우가 지레 걱정했던 것보단 어설펐다.
“이런 방식에 속는 멍청이도 있나?”
아무리 그래도 없겠지.
세이렌이란 마족에 대해 모른다면 잠깐은 당황하겠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수상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으아악─!”
멀찍이서 들려오는 비명.
정확히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발원지는 추측할 필요도 없이 주건우, 아니면 주영우 두 사람 중에 한 명일 게 분명했다.
“······통하기는 하나 보네.”
현우는 다시 한 번 한숨을 쉬고.
아까보단 조금은 빨라진 걸음으로 비명이 들려온 뱡향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안 돼!”
한편 주영미는 분노하고 있었다.
빤히 보이는 마족의 얄팍한 술수.
주건우가 거기에 속아 넘어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멍청한 것!”
꽈앙─!
분에 못 이긴 그녀가 발을 구르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바닥이 움푹 꺼졌다.
“일단 진정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식은 땀을 흘리며 만류하는 김태훈 실장.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요? 천무그룹 모두가 보는 앞에서 건우가 병신 취급을 받게 생겼는데!”
“그래도 기습엔 잘 대처하지 않았습니까. 이사님께서 걱정하시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 겁니다.”
“후우······.”
한숨을 내쉬는 주영미.
“그런데 김 실장.”
이윽고 다시 주건우의 화면으로 향한 그녀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지금 건우가 대치하고 있는 마족 말이에요. 지금까지 우리가 저런 마족을 본 적이 있던가요?”
주건우의 모습을 비추는 화면.
그 너머엔 주영미의 등골을 서서히 서늘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선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저건······.”
곁에 서 있던 김태훈 실장 또한.
쉽게 말을 잇지 못하고 살짝 인상을 썼다.
‘뭐지?’
처음 보는 마족이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아무리 D급 수준의 던전이라지만.
기록이나 공략법이 없는 신규 마족의 출몰은, 그 위험성을 적어도 두 배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마련이다.
“지금까지 기록에 없던 새로운 마족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던전 등급 판정에 오류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던전이나 게이트에서 마지막으로 새로운 종족의 마족이 발견된 것은 벌써 20년 전의 이야기.
“이렇게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요.”
까득, 이를 깨문 그녀는 김태훈 실장이 미처 말릴 틈도 없이 앉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안됩니다!”
그대로 튀어 나가려고 하는 그녀를 가까스로 붙잡은 김태훈 실장. 그는 거의 매달리다시피 주영미의 팔을 잡고 늘어졌다
“······이거 놔요.”
“이성을 되찾으셔야 합니다. 혹여 정말로 건우 도련님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라 판단되면, 현장에 계신 두 분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을 겁니다!”
지금 강릉 현장엔 구동철과 오수진.
두 사람뿐만 아니라 주양태 회장 본인도 데뷔전을 직접 보고 판단하기 위해서 나가 있는 상황이다.
“넋 놓고 있다가 건우가 잘못되면?”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이사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지금 주 회장님과 함께 데뷔전을 감독하고 계신 두 분이라면, 이쪽에서 나서는 것보다 훨씬 빠고 안전할 겁니다.”
그렇다고 안심이 되는 건 아니지만.
이쪽에서 직접 데뷔전에 개입했다간, 주양태 회장의 분노를 고스란히 받아야 할지도 모르는 일.
결국, 주영미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다시 자리에 앉아 주건우의 화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작 주건우의 화면엔······.
주영미와 김태훈 실장.
조금 전까지 두 사람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현우?”
주영미의 입이 반쯤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