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3
13화 데뷔전(3)
“으으······.”
난생 처음 들어와 보는 던전에서.
주건우는 흡사 미어캣처럼. 몇 걸음마다 주위를 확인하기를 반복하며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이쪽 길이 맞긴 한 거야?’
확신은 없었다.
던전 내부에 보스룸 안내 표지판이 있을 리도 만무하고. 그저 길게 이어진 종유석과 습기로 가득한 동굴 통로를 따라 쭉 걷기만 할 뿐.
이따금 튀어나오는 D급 마물 머맨이나.
천장에서 떨어지는 슬라임 따위에 놀라는 상황을 제외한다면, 주건우는 스스로가 아주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아직까진 무서워도 어렵진 않았으니까.
“꽤 깊게 들어온 것 같은데······.”
10분 정도 지났을 무렵부터.
코끝을 마구 찌르던 비린내가 조금씩 무뎌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아예 하나도 느껴지질 않는다.
드디어 후각이 거의 마비된 모양이었다.
고약한 냄새에 더는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만했지만, 오감을 날카롭게 세워야 하는 던전 내부에서는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아까부터 묘하게 튀어나오는 마족의 숫자도 줄어든 것 같고.’
D급으로조차 분류되지 않는 슬라임이나.
간신히 D급 마족에 턱걸이하는 열등한 머맨 따위의 마족들조차 이제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던전에서 마족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곧, 예상 밖의 상황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으니까.
“괜히 사서 걱정하지 말자!”
그래봤자 D급 던전이다.
주건우는 그렇게 스스로 되뇌며 앞으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었다.
지레 걱정했던 예상 밖의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기 바로 직전까지는 말이다.
불과 10분 정도 후······.
“으아악─!”
비명을 지르며 주건우는 뒤로 물러났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 본인을 미승인 헌터라고 이야기했던 여성이 푸른 안광을 흩뿌리며 그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고 있었다.
“뭐, 뭐야 이거!”
다시 보니 사람이 아니었다.
머맨과 비슷한 기괴한 생김세.
하지만 치렁치렁 늘어뜨린 머리칼과 조금 더 큰 몸집 때문에. 같은 종족의 마족이 아니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주건우는 다급히 마나를 끌어 올렸다.
‘환각!’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상하긴 했다.
천무그룹은 독점 공략권을 매수한 던전에 미숙한 미승인 헌터를 들일 정도로 허술하지 않으니까.
만약 본능에 따라 살기를 느끼고 몸을 틀지 않았다면, 지금쯤 저 날카로운 손톱이 등에 제대로 박혀 있었을 것이다.
“끼익!”
“으, 오지마!”
또 다시 달려드는 마족.
주건우는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며 주먹을 내뻗었다.
터엉─!
둔탁한 소리와 함께 가슴팍에 주건우의 주먹을 얻어맞은 마족이 몇 걸음 뒤로 밀려났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가죽이 굉장히 두꺼워.’
머맨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주건우는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저 마족은 방금 상대했던 머맨처럼 D급으로 분류될 수준의 마족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으······.”
그의 주먹이 살짝 떨렸다.
지금이라도 아티팩트를 사용할까.
하지만 그랬다간 조부님은 물론, 어머니도 주건우에게 깊이 실망하고 말 것이다.
짧은 시간 고민이 주건우의 머리를 채웠고.
“끼이이─.”
어느새 마족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귀를 윙윙 울리는 기이한 소음을 한발 늦게 눈치채게 만들었다.
‘뭐야, 이거?’
정신이 아득해진다.
미처 손을 쓸 틈도 없이 시야가 점멸하며, 다시금 눈앞의 마족이 인간의 형상으로 변해가기 시작한다.
마침내 주건우가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 순간.
퍼억─!
묵빛의 비늘로 뒤덮인 주먹이 마족의 머리통을 꿰뚫으며 튀어나왔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절명한 마족.
곧이어 녀석의 육신이 강렬한 푸른 불꽃에 휩싸여 잿가루로 화했다.
휘날리는 불꽃과 잿가루 너머로.
주건우에게 익숙한 실루엣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혀, 현우 형?”
놀라움과 반가움 반으로.
주건우는 현우의 이름을 불렀다.
***
“어떻게 안 거야?”
얼굴에 튄 피를 문질러 닦으며.
주건우는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알긴.”
현우는 쯧, 하고 혀를 찼다.
“던전이 떠나가라 시끄럽게 비명을 질렀는데. 안 들리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니겠냐. 뭔가 싶어서 와 봤지.”
“아······.”
주건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너무 놀라서 소리를 지르긴 했지만.
정신을 차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부끄럽기 그지없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저거.”
현우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조금씩 빛으로 변하는 세이렌의 시체를 가리켰다.
“새로운 종의 마족이다.”
“방금 그게 새로운 종이라고?”
“어, 확실해.”
고개를 끄덕이는 현우.
주건우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그, 그럼 어떡하지?”
“어떡하긴 공략해야지.”
“하지만 방금 형도 봤잖아. 저 녀석이 이상한 목소리를 내니까 환각이 보였어. 우리 생각보다 훨씬 위험할 수도 있다고.”
“안 위험한 던전도 있냐?”
현우의 말에 주건우는 입을 다물었다.
듣고보니 정확히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저 녀석들이 사용하는 환각.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처하기 어려운 건 아니야.”
“어렵지 않다고?”
“응.”
다만 약간의 용기가 필요할 뿐.
현우는 천천히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주건우의 귓가를 가리켰다.
“······귀?”
“내가 방금 상대하면서 알아낸 사실인데. 저 마족들이 우리를 현혹하기 위해선 일단 목소리를 들려줄 필요가 있는 것 같거든.”
“아!”
주건우는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행히 소리를 차단하는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지만. 이건 안타깝게도 내 주변 한정으로 적용되는 효과라서 말이야.”
어느 정도 주위는 커버 되겠지만.
현우는 ‘쿠르스의 고리’의 효과범위를 신경 쓰며, 전투 중에 주건우를 감싸고 돌 생각까지는 딱히 없었다.
“너는 너대로 방비를 해야지.”
“어떻게?”
“방금 말했잖아.”
현우는 비죽 웃었다.
“그렇게 어려운 방법은 아니라고.”
“······으음?”
“반드시 목소리를 들어야만 통하는 현혹이라면. 대처법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떠오르잖아. 소리를 못 듣게 되면 그만이지.”
귓가를 가리키던 현우의 손가락.
그제야 주건우는 확실하게 현우의 이야기를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깨달은 표정이네.”
“다른 방법도 있을 것 같은데······.”
“무서우면 내가 해줄까?”
“아, 아니!”
주건우는 손사래를 치며 뒤로 물러났다.
“짜식, 농담 가지고 쫄기는.”
현우는 큭큭 웃음을 흘렸다.
주건우가 지레 겁을 집어먹었지만.
사실 굳이 고막을 파열시키는 것만이 세이렌의 현혹을 방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었다.
“굳이 귀를 멀게 할 필요까진 없고. 그냥 네가 잘 쓰는 창염갑을 응용하면 충분해. 복잡한 기술도 아니니까. 한 번 보면 바로 사용할 수 있을 거야.”
“창염갑?”
“응, 범위를 확장시켜서 사용하는 거지.”
창염갑의 근원은 창염.
주양태 회장의 피를 직접 이은 천무가 혈통에서만 발현되는 권능, 창염은 사용자에 따라 오러 이상의 위력과 활용도를 자랑한다.
이 경우 또한 마찬가지였다.
“잘 봐.”
현우는 보란 듯이 눈을 감았다.
그리곤 코어에 의식을 집중했다.
온후한 기운을 띈 창염이 옅게 일어나며.
현우의 주위에서 마치 꽃잎처럼 흩날렸다.
“와······.”
주건우는 입을 반쯤 벌리고 감탄했다.
창염갑의 응용이라니.
그나마 자신이 있는 분야였지만.
방금 현우가 보여준 기예는 지금까지 주건우가 상상할 수 있던 영역을 한 단계 뛰어넘은 것이었다.
따라하지 못할 기교는 아니다.
다만 사고가 도달하지 못했을 뿐.
“방호력이나 지속력은 크게 기대할 수 없겠지만. 녀석들의 목소리에 담긴 마나를 태워버리기엔 딱 적당한 기술이지.”
“그런데 이걸 왜 나한테 알려주는 거야?”
조심스럽게 묻는 주건우.
“누가 봐도 단점이 분명하고. 활용처가 한정된 기술이니까. 네가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는 것보단 낫잖아?”
이 기술은 창염갑처럼 전신을 감싸는 것보다 마나를 훨씬 많이 소모한다. 거기에 더해 방호력도 창염갑보다 훨씬 떨어지게 되니.
‘사실상 이 던전이 아니면 쓸 일이 없다.’
재현이 쉬운 기술도 아니다.
하지만 주건우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고작 창천신공 2성의 경지로.
지난번 현우와의 대련에서 전신을 휘감는 창염갑을 선보였던 주건우니까.
재능이야 당연히 있다.
조금만 등을 밀어주면.
그 재능을 꽃피우는 건 어렵지 않다.
‘지금이야 고작 세이렌 따위지만.’
앞으로는 더 고위의 마족은 물론이고.
현시점에서도 천무그룹에 못지않은 세력을 자랑하는 세 배신자 가문도 상대해야 한다.
결국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선.
주변에 확실한 아군을 만들어 두어야 한다.
그 아군이 강할수록 좋은 건.
두말할 것도 없이 당연한 이야기고.
“그리고······.”
히죽 웃는 현우.
“이렇게 되면 고모님께서 뭐라도 보답을 해주지 않겠어?”
이게 가장 큰 이유였다.
지금 이 모습을 주영미가 실시간으로 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그녀가 대체 어떤 표정일지 상상하는 게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빚으로 달아두자고.”
“응!”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주건우.
지금이야 고마워하겠지만, 녀석이 현우에게 진 빚은 그냥 식사 한 끼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주 골수까지 뽑아먹어야지.’
두 사람은 함께 던전 심부로 향했다.
하지만 열 걸음을 떼기도 전.
둘의 앞에 예기치 않은······.
아니, 설마 벌써 다시 덤벼들 거라곤 생각지 않은 적들이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엔 전과는 달랐다.
슬라임이나 머맨 따위가 아닌.
지금까지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이 ‘세이렌의 둥지’ 던전의 진짜 주인 격 마족인 세이렌의 무리.
“방금 동족의 머리통이 한 방에 날아간 걸 봤을 텐데. 그래도 안 도망가고 덤벼들려는 건가?”
지능적인 부분은 애매하지만.
짐작했던 것보단 호전적인 마족인 모양.
“아무튼, 너희가 잔뜩 나왔다는 건. 이쪽이 던전 심부로 향하는 길이 확실하다는 이야기겠네.”
그게 편한 길은 아니겠지만.
현우에게 있어선 크게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냐.”
현우의 오른손에 끼워져 있던 내기의 전리품, ‘쿠르스의 고리’가 서서히 빛을 발하며 주위의 소리를 지워가기 시작했다.
“나한테는 노래가 전혀 안 통할 텐데.”
‘쿠르스의 고리’는 피아 구분이 없다.
그러니 현우의 목소리 역시.
살기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세이렌들에게 전달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상관없는 일이다.
현우는 이미 목소리 따위보다 훨씬 간편하고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 ──!”
녀석들의 입이 열리고.
주건우가 마나를 끌어 올리려는 찰나.
현우는 그보다 한 발 먼저. 두 다리로 지면을 강하게 박차며, 몰려든 세이렌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
“후우우······.”
주영우는 차오르는 숨을 내뱉었다.
벌써 머맨을 스무 마리는 상대한 것 같다.
분명히 이번 데뷔전의 무대가 되는 던전의 사전평가 등급은 D에 불과하다고 들었는데.
뭔가 조금 이상했다.
우선은 출몰하는 D급 마족 머맨의 숫자가 단순한 D급 던전이라곤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았다.
‘단순히 기분 탓일 지도 모르겠지만.’
마치 무언가에 쫓겨서 온 것처럼.
마족들이 이쪽으로 몰려드는 것 같은 기분.
“내 쪽이 이 정도라면, 다른 두 녀석은 이미 포기했을지도 모르겠군. 조부님께서 많이 실망하시겠어.”
그러나 오히려 바라는 바였다.
다른 두 사람이 포기한 던전 공략을 홀로 성공한다면, 그만큼 돋보이는 일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주영우의 예상은 금방 깨졌다.
불과 10여 분 정도를 더 전진했을 때.
한발 먼저 보스룸 앞에서 주영우를 기다리고 있던 두 인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오냐?”
“넌······.”
주영우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주현우.”
“야, 연장자 이름엔 뒤에 형을 붙여야지. 나보다 나이도 한 살 어린 녀석이 버릇을 아주 밥 말아 먹었나.”
주영우의 입가가 일그러졌다.
안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인데.
대놓고 성질을 긁어대는 현우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영우가 가진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었다.
“여기서 뭘 하고 있지?”
“계속 반말이네.”
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 지금 중요한 게 그건 아니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싫어도 저 입에서 공손한 존댓말이 튀어나오게 될 테니까.
“내 질문에 대답이나 해라.”
“보면 몰라서 물어?”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현우.
“그냥 잠깐 쉬면서 기다리고 있었지.”
“무엇을?”
“너.”
짧게 대답하며.
그는 주영우를 턱 끝으로 가리켰다.
“나는 정정당당한 게 좋거든.”
현우는 누가 봐도 정정당당하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주영우의 콧대를 완전히 으스러뜨려 놓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