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1
11화 데뷔전(1)
사실 준비랄 것도 없긴 했다.
‘세이렌의 둥지’에 대한 공략은, 주아라에게 뜯어낸 아티팩트가 없다고 해도. 불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세이렌은 특성을 모른다면 상당히 고전할 수밖에 없지만. 반대로 공략법만 알고 있다면 대처가 너무나도 간단한 마족.
‘가장 무식한 방법은 현혹이고 나발이고. 세이렌 녀석들이 입을 벌리기 전에 머리통을 으깨버리면 그만이지.’
간단하다 못해 단순한 해결책.
그러나 때론 누구나 생각해낼 수 있는 단순한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 때도 있는 법이었다.
물론, 방법은 하나가 아니다.
현혹은 비유하자면 일종의 음공(音功). 결국 녀석들의 목소리에 담긴 마나를 통해 이루어진다.
창천신공을 조금만 응용한다면.
그에 대처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었다.
“이제 다들 모였군.”
D급 던전 ‘세이렌의 둥지’······.
아니, 아직은 이름 없는 던전으로 향하는 진입로에서 주양태 회장은 두 명의 심복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구동철과 오수진, 천무그룹의 전력 중에서도 최고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을 직접 데리고 오셨군.’
두 사람 모두 천무그룹에 소속된 지 20년 이상이 지난 베테랑 중의 베테랑.
대한민국 내에서도 천무그룹 일가를 제외하면, 이견의 여지 없이 강함으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이들이었다.
“자.”
주양태 회장은 세 명을 향해 손에 들고 있던 무언가를 가볍게 던져주었다.
“이건······.”
“내가 제작한 아티팩트란다!”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요염한 여성.
챙이 넓은 모자를 포함해 붉은 계열의 옷으로 전신을 휘감고 있는 그녀가 바로 천무그룹의 ‘적마녀’로 불리는 오수진이었다.
“일석이를 닮아서 인물 하나는 끝내주네. 우리 주 회장님도 30년 전만 해도 너처럼 잘 빠진 미남이셨는데······.”
뺨을 쓰다듬듯이 스치는 손길.
겉보기론 20대의 미녀인 오수진이었지만.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는 현우는 오소소 돋아나는 소름을 느끼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어머, 이렇게 잘생기고 앞길이 창창한 남자를 두고 가슴이 안 뛸 여자가 어디 있다고 그러세요. 남녀가 눈이 맞는 건 만큼 자연스러운 일도 없잖아요?”
수진은 능청맞게 주양태 회장을 대했다.
“네 나이를 생각하란 소리다.”
“흥, 내 나이가 어때서요?”
입을 뾰루퉁 하게 내미는 수진.
그녀를 향해 주양태 회장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올해로 쉰 둘······.”
“꺄아아악!”
비명을 질러 가려보려 했지만.
이미 말을 안 해도 현우는 그녀의 나이를 알고 있던 터라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무튼, 내 손주를 탐내기엔 연배 차이가 무시할 정도는 아닐 텐데. 나이에 걸맞게 채신 있는 행동을 해주면 좋겠군.”
“몸이랑 마음이 젊으면 그깟 나이는 숫자에 불과해요!”
빽 소리를 지르는 수진.
주양태 회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까딱 옆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구동철 쪽으로 고갯짓했다.
“······버틸 수 없을 것 같을 때에 그 아티팩트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물론, 천무가의 일원이라면 사용할 일이 없도록 처신하는 편이 가장 좋을 겁니다.”
“안전장치라는 건가요?”
“데뷔전에서 천무가의 일원이 목숨을 잃는 상황은 회장님께서도 원치 않으십니다.”
제 피붙이에 대한 정 때문일까.
아니면 단지 천무그룹의 미래 전력이 손실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내겐 상관없지.’
현우라면 애초에 저 아티팩트를 사용해서 도움을 요청할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을 테니까.
“참, 그 아티팩트를 통해 던전 밖에서도 너희들을 관찰할 수 있어. 만약 정말 위험한 상황이라면 이쪽에서도 개입할 수 있단 이야기지.”
뾰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던 오수진이 한마디를 거들었다.
그 말은 곧, 외부에서 데뷔전을 생중계로 보겠다는 이야기.
이번 데뷔전에서 보이는 활약에 따라.
이후 천무그룹 내에서 자신의 팀원으로 포섭할 수 있는 인재풀이 천차만별로 달라질 것이다.
‘내겐 아주 좋은 기회지.’
천무그룹에서 입지도 뒷배도 없는 현우가 많은 이들에게 확실히 눈도장을 찍어줄 최고의 기회.
현우의 눈이 반짝 빛났다.
***
“주영우다.”
불쑥 손을 내미는 청년.
첫 대면에 말이 짧은 이 녀석이. 바로 주아라의 한 살 어린 동생이자. 천무그룹의 둘째 주형석 이사의 막내아들이었다.
‘그 누나에 그 동생이라고 해야 하나. 첫 대면부터 반말부터 튀어나오는 건 남매가 똑같네.’
현우의 볼이 씰룩거렸다.
반말 자체를 신경을 쓰는 건 아니었다.
자신보다 한 살이 어린 주영우 마저도 이렇게 가볍게 대할 정도로, 천무그룹 내에서 주현우라는 사람이 얼마나 입지가 없던 인물인지 새삼 돌아보게 되었을 뿐.
“모르진 않겠지만, 난 주현우야.”
“당연히 알고 있다. 고작 입문 일주일 만에 창천신공 2성의 경지에 도달하고. 주건우를 대련에서 쓰러트렸다면서.”
“뭐, 그렇지.”
“미리 말해두겠는데.”
손을 놓으며 다시 입을 여는 주영우.
그는 오만한 표정으로 주건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고작 주건우 저 덜떨어진 녀석을 이겼다고 기고만장하진 말았으면 한다. 나는 이미 창천신공을 3성까지 단련했으니까.”
“더, 덜떨어졌다니······.”
주건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너, 고모님의 지도를 받으면서도 아직 창천신공 2성 경지에 머문다면서? 그러면 이유는 결국 둘 중에 하나겠지.”
고개를 까딱 기울이는 주영우.
“네가 심각하게 모자란 놈이거나. 아니면 고모님의 가르침이 한참 잘못되어 있던가.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되잖아?”
“뭐라고?”
상당히 도발적인 말.
주건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왠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성격이지만.
대놓고 면전에서 저런 소리를 내뱉는 주영우에게 화를 안 내는 편이 이상했다.
“분하면 실력으로 증명해라.”
비릿한 웃음을 머금는 주영우.
“어차피 이번 데뷔전의 주역은 내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너희 두 녀석이 너무 꼴사나운 모습만 보이면 천무가의 위신이 떨어질 테니까.”
한대 쥐어박고 싶은 말투.
그러나 주건우와 다르게 현우는 녀석의 도발에도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이것 참······.’
현우는 쩝, 입맛을 다셨다.
현우가 기억하기로도 주영우는 원래 상당히 재수 없는 성격을 가진 녀석이었기에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하나만 물어보자.”
그래서 대수롭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신 연령까지 생각해보면 한참이나 어린 녀석에게 무시를 당하는 건 열받는 일이긴 하지만, 여기서 그 도발에 말려들어 화를 내는 건 하수다.
“뭐를?”
“너, 누나한테 따로 들은 말은 없지?”
“아라 누나?”
주영우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현우가 알기로 이맘때의 주영우는 일 년 빠르게 데뷔전을 마친 주아라에게 꽤 열등감을 품고 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럼 됐어.”
휘휘 손을 저은 현우.
주아라가 일부러 함구한 걸까.
제 누나가 대련에서 세 합 만에 패배했다는 사실을 아직 듣진 못한 모양이었다.
‘하긴 그걸 알았으면 저렇게 배짱 있는 태도로 나오진 않았겠지.’
상대가 자신을 아래로 보는 것.
다른 때라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경쟁을 해야 할 때엔 그것만으로도 현우에겐 나름의 이점이 생기는 셈이다.
“신경 쓰지 마.”
주영우를 노려보는 주건우에게.
현우는 슬며시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형······.”
주건우는 으득 이를 갈았다.
본인만 무시당했다면 웃어넘기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를 모욕한 것은 도저히 참기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지금이야 너보다 뛰어날지도 모르지만. 사실 별것도 아닌 놈이야. 내가 볼 땐 주영우 저 녀석보단 네가 훨씬 잠재력이 있거든.”
“내가?”
현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훨씬 강한 내가 보증한다. 단련만 게을리하지 않으면. 조만간 네가 주영우 저놈보다 훨씬 강해질 거야.”
“······응.”
주건우는 ‘훨씬 강하다’는 현우의 오만한 말에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의 힘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뭐, 나보단 아니겠지만.”
그의 오만엔 근거가 있었다.
“아무튼 잘 해봐라.”
“응, 힘내볼게!”
눈을 반짝이며 대답하는 주건우.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조금 떨어져서 관찰하는 시선이 있었다.
달리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주양태 회장의 묘한 시선. 현우는 그 시선을 분명히 기억해두었다.
“자, 대략 준비도 끝났으니. 바로 입장하도록 해라. 천무가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활약을 보여주길 기대하마.”
마침내 주양태 회장의 명령이 떨어졌고.
현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가장 먼저 세 갈래로 나 있는 ‘세이렌의 둥지’ 입구 중 하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그렇게······.
주현우를 비롯한 세 명이 던전에 입장하고 벌써 30분이란 시간이 지났다.
“너무 어설프군.”
주양태 회장은 싸늘한 시선으로 오수진이 아티팩트를 통해 송출하는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직 던전 공략을 포기한 이는 없었다.
“건우 저 녀석은 숫기가 너무 없어.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족이 튀어나올 때마다 지레 겁을 먹는 꼴이라니.”
푸욱 한숨을 내쉬는 주양태 회장.
“저래서야 천무그룹 내에 녀석을 따르려는 인원들이 있을지 걱정부터 되는군. 영미가 너무 애를 품에 안고 키웠어.”
“어설프긴 하지만 그래도 실력은 확실하지 않습니까. 담력만 키우면 천무가에 부끄럽지 않은 인재가 될 겁니다.”
“어미를 반이라도 닮았으면 좋았을 텐데. 저런 모습을 보면 내 혈통을 이은 것이 맞나 싶군.”
주양태 회장은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반면 영우 녀석은······.”
그야말로 정석적이다.
창천신공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용하며 조금씩 천천히 던전의 심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주양태 회장의 눈엔 그마저도 어설프지만.
그래도 이게 주영우의 첫 실전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런대로 봐줄 만한 실력이라고 평가할 수 있으리라.
“적당히 신중하고 적당히 유연하군요.”
“치기를 부리는 법도 없고. 튀어나오는 마족에 건우 녀석처럼 지레 겁을 먹지도 않아. 어찌 보면 제 누이보다 나을지도 모르겠군.”
약 1년 전의 주아라보다 침착하다.
아직 창천무를 익히진 못했지만.
만약 익히기만 한다면, 빠르게 성장하리라.
“단련만 꾸준히 한다면. 앞으로 둘째 아드님보다 훨씬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래······.”
주양태 회장은 제 턱을 쓰다듬었다.
그의 둘째 아들 주형석은 제 형보다는 못해도 천무 그룹 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실력을 자랑한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주형석은 호쾌한 성격 때문인지.
지금 주영우가 보이는 신중한 모습은 좀처럼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점, 그리고 너무 정에 많이 휘둘린다는 점이었다.
‘그런 면에서 영우는 제 아비 보다 나아.’
단점은 덜하고 장점은 확실하다.
주아라도 천무가 3세 중에선 두각을 드러내고 있지만, 앞으로 몇 년 이내에 주영우가 그녀를 따라잡긴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벌써 판단을 내리긴 이르다. 본래 실력은 위기에 봉착했을 때에 제대로 드러나기 마련이니까.”
“영우 도련님이라면 침착하게 대처하실 겁니다. 건우 도련님도 불안하긴 하지만, 나름 잘 헤쳐나가는 것을 보면 오늘 아티팩트를 사용할 일은 없겠군요.”
“내 핏줄들 아니냐. 응당 그래야지.”
콧방귀를 끼는 주양태 회장.
이윽고 그와 두 사람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현우의 영상으로 향했다.
“현우 도련님은······.”
구동철은 답지 않게 말끝을 흐렸다.
이걸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좀처럼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대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머, 동철 씨랑 내가 같은 생각을 할 때가 다 있네요. 나도 지금 딱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고개를 끄덕이는 오수진.
그녀 역시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영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흠.”
오직 주양태 회장만이 입을 다물고.
현우의 화면에 시선을 고정할 뿐이었다.
기대야 당연히 있었다.
오늘 데뷔전에 임하는 세 명 중에서 창천무를 익힌 것은 주현우가 유일했으니까.
오히려 다른 두 명에 비해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게 이상한 일이다.
“미쳤군.”
구동철이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어디서 저런 괴물이 튀어나온 걸까.
그런 생각이 떠오를 정도로 압도적인 광경이 오수진이 투영하는 화면을 통해 그들 앞에 펼쳐지는 중이었다.
“······저게 정말 첫 실전이라고?”
화면에 비치고 있는 현우는······.
이게 데뷔전이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앞길을 가로막는 던전 내의 모든 마족을 말 그대로 전부 학살하며 전진하고 있었다.
‘기대 이상이군.’
주양태 회장의 입꼬리가 씰룩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