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140
140화 충격(3)
‘후계인가···.’
주양태 회장의 충격적인 선언 이후.
본가의 자기 방에 돌아온 현우는, 한동안 창밖을 내다보며 깊은 상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건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후계는 그렇다 쳐도.
아직 정정하게 살아 있는 양반이. 갑자기 후계를 발표하고 유언이 될 지도 모르겠다는 이야기는 대체 뭐란 말인가.
그의 충격적인 선언 후에 구동철을 제외한 이들이 한 마디씩 물었지만, 주양태 회장은 내일이면 알게 될 거라 일축하고 자리를 떴을 뿐이었다.
‘내가 모르는 뭔가 있던 걸까.’
현우는 미간을 좁혔다.
그러나 아쉽게도 여기서 고민해봐야. 달리 알아낼 수 있는 사실은 없다.
본래 주양태 회장은 이미 이 시점에서는 살아있지 않았을 인물. 그가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해도 그건, 현우는 물론이고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비밀일 것이다.
“하, 참···.”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현재 본가에 남아 있는 혈족이라고 해봐야. 주양태 회장을 제외하면 현우를 포함 세 명 밖에 없다. 그 중에서도 배분이 가장 높은 것은 당연히 주영미 이사.
당연하게도 후계는···.
천무그룹 본가의 혈족 중에 한 사람일 테니. 결국 후보라고 해봐야 현우, 아니면 주영미가 다였다.
‘후계 문제도 이야기가 나오겠군.’
주양태 회장.
그는 분명 일전, 현우를 후계로 점찍어 두었다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그건, 공식적 발언도 아니었을 뿐더러. 이제는 주양태 회장 본인과 현우밖에 모르는 일이다.
물론, 유력한 후보인 주진석 부회장이 실종된 이 상황에서. 현우 역시도 후계자 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릴 만 했다.
그러나 이 경우···.
그룹 내에서 주영미에 비해 젊고 영향력이 떨어지는 현우가. 천무그룹을 승계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시선이 있을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는 내분이다.’
조금 아쉬운 일이긴 하나.
그런 기색이 보이면 현우는 한 발 물러날 생각이었다.
권력을 두고 싸우기 좋은 시기가 아니었다.
애초에 현우가 원하는 것은, 천무그룹 회장이라는 자리보다는 그룹 자체를 움직일 힘이었고. 지금이라면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당장 천무그룹을 손에 넣지 못한다 해도. 그로 인해 크게 손해 보거나 입지가 흔들릴 일은 없다.
이미 블랙 가문과의 전쟁은 시작되었고, 적어도 이 문제에 있어 주영미는 현우의 편이라는 것이 확실하니까.
‘···하지만, 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 하나.
그건, 주양태 회장이 다른 어느 때도 아닌 지금. 그 충격적인 선언을 입에 담았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적절한 시기가 아니다.
블랙 가문과의 전쟁을 시작했고.
서울에 차원 쐐기가 나타났다. 어찌 보면 이건, 지금껏 천무그룹이 경험해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뒤로 물러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는 주양태 회장의 성격과 절대 맞지 않는 선택이다. 그렇기에 현우는 더더욱 이 상황에 두통을 느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해.”
“쉭.”
현우의 혼잣말에 덕춘이가 대답했다.
녀석은 천천히 허공을 유영해 어깨 위에 내려앉더니. 이내 목도리라도 된 것처럼 목을 휘감으며 똬리를 틀었다.
“그래, 이번엔 너도 고생했지.”
“쉬이익···.”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덕춘는 마치 햇볕에 늘어진 고양이와 같은 가르릉 소리를 내며 현우의 목덜미에 머리를 파고들었다.
그런데 그때.
똑똑─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열려 있습니다.”
방문 너머로도 느껴지는 강대한 기척.
날이 갈수록 더욱 강해지는 것만 같은, 저 힘의 주인은 천무그룹···. 아니,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 밖에 없었다.
끼익, 문이 열리고.
그 너머로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역시.
“주현우.”
예상대로 주양태 회장이었다.
“늦은 시간에 웬일이십니까.”
“손주를 보는데 이유가 있어야 하더냐.”
“제가 그동안 그렇게 살가운 성격을 가진 할아버지를 둔 기억이 없어서 말입니다. 아마, 뭔가 중요한 이야기가 있으신 거겠죠.”
“농담도 못하겠군.”
짓궂은 농담.
주양태 회장은 쓴웃음을 지었다.
“네게 따로 해야 할 말이 있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까딱여 현우에게 따라 나오라는 몸짓을 취했다. 충격적인 소식을 전한 다음인 만큼, 부연설명이라도 해주려는 걸까.
현우는 대답 대신.
기다리지 않고 돌아서서 걸음을 옮기는 그의 뒤를 따랐다. 묘한 예감이 현우의 등골을 훑고 지나갔다.
***
천무그룹 본가.
구석에 존재하는 작은 인공 연못 앞에서. 주양태 회장은 천천히 현우를 돌아봤다. 달빛이 그의 등 뒤에서 은은하게 빛을 발했다.
“···현우야.”
조금 의외의 목소리.
현우는 처음으로 그가 자신의 이름을 이리 살갑게 부를 수 있음을 깨달았다.
“예, 조부님.”
“처음 네가 본가에 왔을 때를 기억하느냐.”
“···.”
그건, 현우에겐 까마득한 과거였다.
특히 두 번째의 삶에서는 아예 천무그룹에 입성한지 3년이 되었을 무렵의 자신으로 회귀했으니.
“···가물가물 합니다.”
당시의 기억은 그리 선명하지 않았다.
다만, 시간에 의해 기억은 흐려졌으나. 딱 한 가지 여전히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있다면, 본가로 입성하던 당시의 감정 정도일까.
“그러냐.”
“예.”
주양태 회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다시 연못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고요한 수면 위에 떠오른 달. 물에 반사된 달빛이 물결의 흐름에 따라 아른거리며 감성적인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가물가물 하다는 네 말이 사실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날을 분명히 기억한다.”
“그렇습니까.”
비슷한 뉘앙스의 대꾸.
현우는 지금 주양태 회장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들어 앉아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그가 풍기는 감성적인 분위기에 함께 동화되기 어려웠다.
“세상 모든 것을 불신하는 눈빛이었지. 그리고 천무그룹이라는 이름에 설렘도 어렴풋하게 품고 있었고 말이다.”
“···.”
그랬던가.
확실히 당시에는 불신과 기대를 동시에 품고 있긴 했다.
그리고 불과 일 년이 지났을 무렵.
그 두 가지 감정 중에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고. 창천신공조차 사용할 수 없다는 무력과 좌절만이 남아 있었다.
‘별로, 떠올리고 싶진 않은 과거군.’
현우는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그러나 마냥 과거에서 눈을 돌릴 생각은 없었다. 그런 무력하기만 했던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으로 완성된 것일 테니까.
“그랬던 네가 이렇게 클 줄이야.”
그 답지 않게.
감상에 젖은 눈으로 주양태 회장은 현우를 바라봤다.
비록, 두 번째의 삶을 살고 있지만. 그런 눈빛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추호도 해본 적이 없기에 현우는 약간 머쓱한 기분으로 그의 시선을 피했다.
이건, 상당히···.
낯간지러운 감각이었다.
“원래, 키는 그때도 컸습니다.”
“···설마 농담이냐?”
주양태 회장이 눈썹을 추켜올렸다.
현우는 멋쩍은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손발이 오그라들 것만 같은 느낌에 괜한 소리를 했다 싶었다.
“한 가지.”
무안함을 빠르게 감추며.
현우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그래.”
어차피 그 질문은 굳이 꺼내지 않아도. 주양태 회장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이야기 해줄 것만 같았지만. 무안해진 분위기를 감추기 위한 선택이었다.
“왜, 돌연 후계와 유언을 발표하겠다고 말씀하신 겁니까. 아직 조부님께선 굉장히 정정하시지 않습니까.”
“겉보기엔 그렇지.”
주양태 회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이윽고 소매를 걷어 자신의 팔뚝을 현우에게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놀라운 광경이 감추어져 있었다.
“보거라.”
평범하지만 다부진 팔뚝.
그러나 기괴하게도 그 팔뚝은 반쯤 투명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현우는 놀란 눈으로 주양태 회장과 그의 팔을 번갈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건···.”
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로서도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에, 선뜻 말문을 열기가 어려웠다.
다만, 대체 주양태 회장의 팔에 무슨 현상이 일어난 건지. 그 사실 만큼은 제대로 판단하는 것이 가능했다.
‘신체가 마나와 동화되어 가고 있다.’
그건, 흡사 마나의 응집체 같았다.
두 번째 삶을 살면서도 한 번을 본적이 없는 모습. 현우는 주양태 회장이 그간 숨기고 있던 것을 직접 보았지만. 두 눈으로 보고도 이 현상에 대해 쉽사리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대체 어떻게···.’
인간의 신체가 마나와 동화되어.
일종의 마나 응집체로 변해간단 말인가. 스킬이나 마법 같은 이야기를 떠나서 전례가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도 모른다.”
그리고.
주양태 회장 역시, 고개를 저어보였다.
“천무그룹의 모든 치유사를 동원해서 원인을 찾아보려 했지만. 그 어떤 치유사도 이 증상의 치료법을 찾아내지 못했다.”
“···.”
“하지만.”
그는 다시 소매를 당겨 팔뚝을 가렸다.
“적어도 그 원인 하나는 찾아낼 수 있었다. 바로 내가 다루는 막대한 양의 마나가. 어느 순간부터 육체와 존재를 침식하고 있었던 거라고 하더군.”
“침식···.”
그렇다면···.
실제로 주양태 회장이 나이를 먹어감에도. 점점 더 막대한 양의 마나를 다룰 수 있었던 것과, 노화가 멈춘 듯 했던 것또한 전부 저런 이유 때문이었던 걸까.
“글쎄.”
주양태 회장은 모호한 대답을 했다.
그러나 싫어도 눈치 챌 수 밖에 없었다.
만일, 이번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적어도 그에게 주어진 여유가 조금 더 있었으리란 것을 말이다.
“늦든 빠르든, 결국은 이리 되었을 게다. 이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만약 미리 알았다면 막을 수 있었을 거라. 그리 오만하게 생각하지는 말거라.”
과연 막을 수 있었을까.
아무리 현우가 미래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알지 못하는 것까지 대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처음부터 이건.
현우의 손을 떠나 있었던 것이다.
“현우야.”
주양태 회장의 부름에 현우는 사고를 멈추었다. 그래, 이미 손을 떠난 일에 대해 고민해보았자 시간만 낭비될 뿐이다.
“천무그룹을 네게 맡기고자 한다.”
“···제게 말입니까?”
“그래.”
주양태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천무그룹을 손에 넣는 것은 원하던 일이긴 했다.
그러나 현우가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라진 지금. 이 상황에서 천무그룹을 물려받아도 될지. 선뜻, 확신이 서지 않았다.
“고모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영미도 괜찮은 재목이긴 하지.”
하지만···.
주양태 회장은 조용히 덧붙였다.
“나이와 배분을 차치하고 생각한다면, 영미보단 네가 천무그룹을 이끌어갈 자리에 어울릴 게다.”
자신을 직시하는 눈동자.
현우는 그가 방금 자신의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을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배분을 무시하고 승계를 발표하면. 그룹 내부가 시끄러워질 수도 있습니다. 만에 하나 고모님이 반발하실 경우 내분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을 테고요.”
“걱정마라.”
현우의 걱정을 주양태 회장은 한 마디로 일축했다.
“그 정도의 불만이라면, 아직 내가 충분히 잠재울 만한 힘이 있다. 그리고 이번 승계는 영미도 이미 동의한 사안이니. 네가 걱정할 만한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게다.”
“···고모님이 말입니까?”
현우는 놀란 눈을 깜빡였다.
최근 주영미가 자신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긴 했으나. 설마, 그룹의 후계를 양보할 정도라곤 생각지도 않았다.
“그리고.”
주양태 회장은 대답 대신.
“지금 내게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 지는 모르겠으나. 그 사이 그룹 내에서 누구도 승계에 반발하지 못하도록 확고한 기반을 만들어주마.”
“그게 무슨···.”
“창천신공.”
질문에 앞서 그가 입을 뗐다.
“오직 창시자인 나만이 알고 있던. 신공의 비밀과 핵심, 다시 말해 나의 모든 비전을 후계인 네게 남김없이 전수해줄 것이다.”
***
한편···.
서울 구로구의 한 골목.
골목의 어스름 속에서 한 인영이 꿈틀대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온통 어두운 탓에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으나. 그 어스름 속에서도 스산하고 끈적한 한 쌍의 붉은 안광만은 명확하게 보였다.
“빌, 어먹을.”
털퍽, 자리에 주저앉는 인영.
추레한 몰골인 탓에 알아보긴 어렵겠지만. 그녀가 바로 블랙 가문의 사흉, 그 중에서도 블러드 서커였다.
“잠룡, 주현우···.”
그녀의 안광이 흉흉히 타올랐다.
이번 사태를 활용해 천무그룹과 서울을 완전히 전복시킬 생각이었는데. 괜한 허세를 부리다가 계획이 제대로 틀어진 셈이었다.
‘그리고 그 결계···.’
블러드 서커의 눈이 가늘어졌다.
분명, 차원 쐐기를 휘감은 불온한 기운으로 이루어진 결계는 그녀의 안배가 아니었다. 뭔가 예상외의 존재가 이번 일에 개입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당장 그녀에게 시급한 일은 최대한 내상을 회복하고. 이곳에서 조용히 벗어나 그녀의 주군, 다니엘 블랙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다시 몸을 일으키려던 그때.
“패배한 개가 여기 있었네.”
익숙한 목소리.
블러드 서커는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곧, 그녀는 골목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 속에서 한 인영이 솟아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게 누구인지.
그녀는 분명하게 알아차렸다.
“흐흐흐흐···.”
그녀의 입에서 스산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 웃음은, 유쾌함과는 거리가 먼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이렇게 다시 만날 줄은 몰랐는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는 블러드 서커.
“···네크로맨서.”
그와 동시에.
짙고 불기한 죽음의 기운이 물안개처럼 골목 전체에 엄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