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63
63화 사막 투기장(1)
사막 투기장.
매번 참가자의 수는 바뀌지만. 이번엔 총 64명의 쟁쟁한 헌터가 챔피언의 자리에 도전하는 상황.
그러나 화제는 참가자의 수가 아니었다.
그 64명 중에 그 유명한 록펠러 가문의 금지옥엽. 안젤라 록펠러의 이름이 당당히 자리하고 있다는 점.
덕분에 이번 사막 투기장의 관중은 급등.
배팅 규모도 첫 날부터 역대 최고였던 지난 시즌의 세 배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최고로 뜨거운 시즌의 첫 장을 장식할 첫 번째 경기는···.
“자, 그럼 오늘의 첫 대결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홍코너부터 소개해 드리죠! 지난번 투기장 4강의 자리에 올랐던. 울프팽 길드의 길드장 낭아(狼牙) 로건 록하트!”
쐐에엑─!
마치 포탄처럼 공중에서 케이지로 떨어진 한 사람의 인영. 멋들어진 자세로 착지한 사내가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관객들의 반응을 유도했다.
“로건 록하트!”
“낭아! 이겨라!”
관객석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지난 시즌 4강에 올랐던 강자인 만큼. 객석에선 벌써 그의 이름을 연신 외치는 이들도 있었다.
아마 이번 경기에서 거금을 그에게 배팅한 도박꾼들이겠지.
“그리고 낭아 로건 록하트의 상대는···!”
현우는 천천히 객석에서 몸을 일으켰다.
로건 록하트처럼 쇼맨십은 없었지만. 최소한 관객들의 반응을 위해 케이지 안으로 뛰어들어 와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마음엔 들지 않지만.
그래도 첫 경기이고 카일리 가문의 이름을 대신 걸고 나온 만큼. 마야 카일리의 간곡한 부탁에 한 걸음 물러나기로 했다.
“···카일리 가문의 무명객(無名客)!”
“무명객?”
현우는 고개를 홱 돌렸다.
마야 카일리가 멋쩍은 표정으로 현우의 시선을 피했다. 역시 그녀가 나서서 만든 작품인 게 확실했다.
“저를 무명객이라고 등록한 겁니까?”
“···가명으로 등록하긴 했어요. 하지만 굳이 가명이 노출되는 것보다. 기왕 가면까지 쓴 김에 저렇게 숨겨버리는 편이 더 낫지 않겠어요?”
완전히 신비주의로 밀고 나가자.
뭐, 대충 그런 이야기인 모양이었다. 또 듣고 보니 괜찮은 것 같기도 해서. 현우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썩 마음에 드는 편은 아니었지만.
캐릭터를 만들어두어 나쁠 건 없겠지. 혹시 나중에도 신분을 숨기고 활동해야 할 때가 있을지도 모르고···.
“···하아.”
작게 한숨을 내쉬고.
현우는 그 자리에서 풀쩍 뛰어올랐다.
로건 록하트처럼 화려한 착지는 없었다.
그냥 평소 하던 대로 사뿐히 지면을 디뎠을 뿐. 관객들에겐 영 별로인 등장이었는지. 몇몇 녀석들이 야유를 보냈다.
“과연 어떤 대결을 보여줄 것인가! 카일리 가문의 무명객과 울프팽의 길드장 낭아 로건 록하트! 첫 번째 경기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사막 투기장에 특별한 룰은 없다.
케이지 안에서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어느 한 쪽이 죽거나 패배를 인정하면 그걸로 경기는 종료. 아주 심플하고 마음에 드는 조건이었다.
“로건 록하트다.”
“아까 들었어.”
“···통성명하자는 이야기였는데.”
“너도 방금 들었잖아.”
현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별호라도 밝힐 생각은 없나?”
“없어.”
로건 록하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인으로써 모욕감이 느껴지는군.”
“내가 정체를 안 밝히겠다는데. 왜 네가 모욕감을 느끼는지 모르겠네. 혹시 통성명하면 그쪽 주먹이 물러지기라도 하는 거냐?”
현우의 비아냥에 로건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욱하는 성격이었다면 당장에라도 현우에게 주먹을 휘둘렀을 법한 분위기였다.
“···그래도 실력이 형편없진 않겠군. 내 기세를 버텼으니. 첫 번째 경기치고는 서로 주먹을 섞는 맛이 있겠어.”
기세를 쏘아내고 있었던 건가.
로건 록하트는 SS급 헌터.
어디서 굴러먹은 마나연공법을 익혔는진 모르겠지만. 녀석이 쏘아낸 기세는 간지러운 느낌조차 들지 않았다.
“계속 정체를 숨기겠다면 상관없다. 여기서 카일리 가문의 무명객을 꺾고. 더 유명한 상대랑 자웅을 겨뤄 이름을 널리 알리면 그만이니.”
“꿈도 야무지네.”
이미 카일리 가문의 도움을 받아.
이번 회차 사막 투기장에 참가한 도전자들에 대한 정보는 모두 파악했다.
대부분이 SS급 언저리에서 노는 실력. SS급 헌터가 몇 명이 있어도 SSS급을 넘보진 못한다.
울프팽 길드의 로건 록하트.
녀석도 나름 북미에선 실력을 인정받는 헌터라곤 하지만. SS급 중에서도 중간쯤 가는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지난 4강도 운이 좋았던 거지.’
이번 경기엔 안젤라 록펠러를 비롯.
현우를 제외해도 SSS급 헌터가 두 명은 포진해 있다. SS급 중에서도 로건 록하트 보다 강한 이가 있을 테니.
현우를 만나지 않았더라도.
그가 지난번처럼 4강 이상으로 올라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섬검(閃劍) 나단 오스틴과 합을 나누기엔 한참 부족한 수준이다.’
사막 투기장의 현재 챔피언.
전생에선 안젤라 록펠러가 이번 회차에서 그를 꺾고 우승자가 되기 전까지. 총 다섯 시즌에 거쳐 챔피언 타이틀을 방어하는 데 성공한 검술의 달인이자 SSS급 헌터.
그에 비교한다면 로건 록하트는 그야말로 신생아 수준. 물론, 그건 현우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손속에 사정을 두진 않겠다!”
로건 록하트.
그가 마나를 끌어 올리며 선공을 취했다.
그 짧은 찰나.
현우의 시간은 가속했다.
몇 배로 늘어진 시간과 감각 속에서.
눈앞으로 다가오는 로건 록하트를 어떻게 공략할지. 수많은 공략법이 현우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창천신공과 창천무는 사용할 수 없다.’
창염을 사용하는 순간.
자신이 누군지 떠벌리는 꼴이 될 테니까.
다행히 방법은 이미 생각해두었다.
페르쿠나스의 천둥석과 뇌신의 흔적.
두 가지 아티팩트를 흡수하여 생겨난 뇌전의 기운. 이걸 사용한다면 정체가 드러날 일은 없을 것이다.
‘기술 이름은···.’
벽력폭뢰각(霹靂暴雷脚).
푸른 강기가 현우의 몸을 뒤덮었다. 작은 파열음과 함께. 강기 위로 맹렬한 뇌전의 기운···. 창뢰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흠!”
로건 록하트의 뺨이 떨렸다.
그 역시 잔뼈가 굵은 SS급 헌터. 창뢰의 기운이 범상치 않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물론─
알아보는 것과 대처하는 것.
그건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이야기다.
“···!”
로건 록하트가 흠칫하며 돌진을 멈춘 순간.
현우의 오른발이 지면을 박찼다.
꽈광! 거센 각력에 지면이 움푹 꺼지고. 푸른 뇌전의 기운이 지면과 현우 사이에 발광하는 궤적을 남겼다.
‘빠르···.’
신속(迅速).
로건 록하트가 평생 처음 겪어보는 속도로 현우의 신형이 움직였다. 아니, 그의 눈엔 움직인 것이 아니라 짧은 순간 그 자리에서 사라진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커헉!”
다시 현우의 신형이 보였을 때.
이미 로건 록하트의 몸은 허공을 날고 있었다. 하복부를 가로지르는 고통 속에서. 로건 록하트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이게 대체···?’
마치 번개처럼 빠른 일격.
부유감이 사라지고 지면을 몇 차례 뒹굴고서야. 로건 록하트는 자신이 인식하지 못한 순간에 두 번이나 걷어차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버, 번개 같은 일격이군.”
꾸욱 어금니를 깨물며.
로건 록하트는 몸을 추슬렀다. 불시에 허용한 일격이었지만. 그 격통은 뼛속까지 짜릿하게 스며들고 있었다.
하지만 버텨냈다.
고통으로 흔들리는 정신을 다잡고.
로건 록하트는 자신 있게 가슴을 폈다.
그는 권법을 주로 사용하는 헌터.
다른 것은 몰라도 맷집이라면 SSS급 헌터 못지않다고 자부할 정도로 튼튼했다.
“방금 일격으로 끝내지 못한 게 네 실수다. 그런 큰 기술을 부담 없이 두 번 연속 사용하긴 어려울 테니···.”
“아닌데?”
현우의 신형이 재차 사라졌다.
로건 록하트의 안색이 잿빛으로 물들었다.
***
“···본적 없는 기술이네요.”
VIP석에 앉아 있던 안젤라 록펠러.
그녀는 현우의 움직임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면 볼수록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순식간에 가해진 두 번의 발차기.
SS급인 로건 록하트는 물론이고. 안젤라 록펠러 역시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면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저 푸른 번개···.
언뜻 보아 천무그룹의 창염과 비슷하지만. 근본은 다르되 위력은 흡사했다. 걸출한 마나 연공법에서 비롯된 권능인 것이 분명했다.
“저 정도의 기운이면 천무그룹 혈족의 창천신공에 필적하는 수준인 것 같은데. 어디 다른 가문 출신은 아닌 것 같고. 마야 언니, 대체 저런 헌터는 어디서 영입하신 거에요?”
“그냥··· 운이 좋았다고 해야지.”
마야 카일리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무리 운이 좋았다고 해도 대단한 영입력이네요. 저런 실력이면 협회에서 SSS급 판정은 어렵지 않게 받았을 텐데.”
“세상에 모든 귀한 것들은 카일리의 손을 거쳐 가. 그리고 그건 사람이라고 해도 예외가 아니지.”
물론, 현우는 카일리 가문 소속의 헌터는 아니었지만. 록펠러 가문의 직계 혈족이 이렇게 영입력을 추켜세워주니. 콧대가 올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방금 사용했던 기술. 이름이 뭔지 궁금한데. 혹시 언니는 알고 계세요?”
“다, 당연히 알지.”
마야 카일리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주현우는 카일리 가문에 소속된 전도유망한 헌터. 그의 기술을 모른다면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녀는 슬쩍 케이지 안의 현우에게 도움을 구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여기서 기술 이름을 외치는 것도 이상하다.
대충 알아서 둘러대길 바라면서.
현우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로건 록하트에게 시선을 돌렸다.
“써··· 썬더···.”
“썬더?”
“썬더 크로스 스플릿 어택이야!”
“와! 멋진 이름이네요!”
뭐라고.
현우는 경악한 표정으로 마야 카일리 쪽을 돌아봤다. 그녀는 명백히 당황한 눈빛으로 슬쩍 현우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저 아가씨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보다 독특한 구석이 있었다.
현우는 쓰읍 침을 삼켰다.
어차피 가면까지 쓰고 신분을 숨긴 마당에 얼굴이 팔리는 것도 아닌데. 기술에 무슨 이상한 이름을 붙이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썬더 크로스 스플릿 어택이라.”
로건 록하트가 퉤, 피가래를 뱉었다.
어느새 그의 동공은 마치 늑대처럼 세로로 쭈욱 찢어져 있었다. 녀석에게 느껴지던 기세가 예사롭지 않게 변했다.
“정말로 강력한 기술이군!”
“어, 강력하긴 하지···.”
“이 낭아 로건 록하트가 인정하지! 정말 탐나는 스킬이다! 썬더 크로스 스플릿 어택···! 그것이 네 필살 절기인가?”
턱을 박살 내면 주절대지 못하려나.
현우는 그런 생각을 품으며 보폭을 넓혔다. 녀석과 몇 마디 어울렸다간. 현기증이 일어날 것 같았다.
“그래! 와라!”
로건 록하트 역시 자세를 취했다.
그의 팔뚝 부근에서 자색 강기가 일렁이며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냈다.
“카일리 가문 무명객! 네 녀석의 썬더 크로스 스플릿 어택! 이번엔 나의 낭아풍운권(狼牙風雲拳)으로 제대로 받아주도록 하겠다!”
“···그만해라.”
벌써 관객석에서 썬더 크로스 스플릿 어택을 연호하는 놈들이 있다. 이대로 기술 이름이 굳어지는 건 원치 않았다.
‘한 방으로 끝낸다.’
마나와 창뢰를 끌어 올린다.
인피니티 코어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현우의 전신에 푸른 번개가 내달렸다. 창천신공의 구결을 응용해 만들어낸 오직 주현우만의 기술.
“오오오!”
로건 록하트가 탄성을 흘렸다.
질풍축뢰(疾風軸雷).
꾸르릉! 터져나온 우레가 고막을 뒤흔든다.
전신을 창뢰로 휘감은 현우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야말로 역천(逆天)의 번개를 보는 것 같은 광경에 관중석에서도 감탄이 터져 나왔다.
‘제1초식 재천과 8초식 기염포의 응용.’
그러나 원본과는 한없이 다르다.
가볍게 주먹을 들어 뻗는다.
그 궤적엔 로건 록하트가 있었다.
피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신속.
번쩍, 눈앞이 환해짐과 동시에 맹렬하게 회전하는 창뢰가 마치 벼락처럼. 로건 록하트를 향해 격렬하게 내리꽂혔다.
고막을 멀게 만드는 폭음.
내리친 창뢰가 지면을 파괴하며 허공으로 흙먼지를 흩뿌렸다. 그러나 찰나의 현상이었을 뿐.
주변의 공기가 일순 달아오르고.
창뢰의 폭압으로 크게 밀려난 열풍이. 로건 록하트와 현우를 중심으로 관객석을 후끈하게 훑고 지나갔다.
츠으으─
피부와 털이 타들어 가는 매캐한 냄새가 사방에 진동했다. 열풍에 밀려난 흙먼지 너머에 서 있던 인영은 두 개.
멀쩡한 현우와···.
“끄르륵···.”
온몸이 그슬린 로건 록하트.
그가 게거품을 물며 눈을 까뒤집었다. 이윽고 스르륵 지면으로 무너지는 그의 신형. 이번 대결의 승자가 누구인지는 명백했다.
“······.”
일순 고요함이 감도는 가운데.
마야 카일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허리케인 롤링썬더!”
현우의 얼굴이 괴물처럼 일그러졌다.
***
투기장엔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이번 시즌의 유력한 강자 중의 한 명.
낭아 로건 록하트가 누군지도 모를 무명객에게 패배했다. 그것도 압도적인 격차를 보이며 한 번의 합도 이루지 못하고 순식간에 말이다.
“스, 승자! 카일리 가문의 무명객!”
잠깐의 텀을 두고.
관객석에서 환호와 야유가 동시에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돼! 이건 승부 조작이야!”
“무명객!”
“저게 뭐야! 비겁하다!”
“썬더 크로스 스플릿 어택!”
“우우!”
아마 야유 쪽이 많은 것으로 봐선.
로건 록하트에게 거금을 베팅한 이들이 다수였던 모양이었다.
“흐응···.”
소란스러워진 관객들 너머.
VIP석에 앉은 안젤라 록펠러는 현우에게 시선을 완전히 고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 속에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SSS급은 충분히 될 것 같고.’
록펠러 가문의 금지옥엽.
어려서부터 그녀는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으며 자라왔다. 그게 물건이 되었든 사람이 되었든. 한 번 점찍어둔 것은 절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탐욕이···.
지금은 카일리 가문의 무명객.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사내에게 제대로 꽂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지고 싶어지네.’
카일리 가문에 있을 인재는 아니다.
현우의 뒤통수를 바라보는 안젤라 록펠러의 눈빛이. 조용히 번들거리는 탐욕의 빛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