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66
66화 네크로맨서(1)
‘뭔가 이상해.’
네크로맨서.
나단 오스틴이라는 데스 나이트의 눈과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존재. 그 흑마법사는 지금 처음 느끼는 당혹감에 휩싸여 있었다.
교황청에게 꼬리를 밟혔다.
하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단 오스틴은 지금까지 만든 데스 나이트 중에서도 가장 정교한 개체다.
생전의 의식을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거의 흡사하게 흉내 내는 것까지 가능하다.
그야말로 살아 있는 데스 나이트.
정교하기로는 네크로맨서라는 이명을 가진 그녀의 인생 최고 역작이라는 말이 절대로 아깝지 않았다.
‘네옴 쪽에서 냄새를 맡았나?’
아니, 그럴 가능성도 낮다.
네옴의 권력자들을 혼동시키기 위한 미끼까지 던져두었다.
설마 투기장에서 5회나 챔피언 타이틀을 방어한 나단 오스틴이 그녀의 손에 살해당하고. 심지어 데스 나이트로 가공되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할 거다.
그렇다면 그 정보가 교황청까지 들어갈 가능성은 더더욱 희박했다. 그렇다면 대체 어디서 꼬리를 밟힌 거란 말인가.
‘카일리 가문의 무명객···.’
녀석에 대한 정보는 최대한 조사했다.
교황청의 인물이라고 단언하긴 어려웠다.
애초에 정보가 거의 없는 녀석이었다.
김철수라는 이름과 사막 투기장이 개최되기 직전, 카일리 가문에 소속되어 참가 신청을 넣었다는 것 정도만 알려졌을 뿐이었다.
‘교황청에 저런 기술을 구사하는 심문관은 존재하지 않아. 최근에 발탁된 녀석 중에도 SSS급은 전혀 없었고.’
특히 그는 카일리 가문을 끼고 사막 투기장에 참가했다. 그 점이야말로 라이트닝 펀치가 교황청의 인물이 아니라는 가능성에 무게를 더해준다.
교황청은 절대 타 세력과 협조하지 않는다.
그건 균형을 중시하는 녀석들이 웬만해서는 깨려고 들지 않는 대규율이다. 만약 그게 인류 전체의 위협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겠지만···.
다니엘 블랙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그녀는 가문의 계획에서 한발 물러나 있다. 이번엔 어쩔 수 없이 서로의 목표가 잠깐 겹쳤을 뿐.
그리고 그 계획은 대외적으로 알려지지도 않았다.
멸문한 샤오 가문을 제외하고.
남은 6대 가문 중에서 다니엘 블랙의 계획을 대략적으로라도 아는 이는 로마노프 가문의 가주 알렉세이 뿐이었다.
‘교황청이 나를 추적하기 위해서 대규율을 깰 녀석들은 절대 아니야. 그럼 라이트닝 펀치의 정체가 교황청의 심문관은 아닐 테고···.’
오히려 생각이 더 복잡해졌다.
네크로맨서는 잠시 나단 오스틴과 의식을 분리했다.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진 데스나이트는 그녀가 직접 조작하지 않아도 알아서 적당히 행동할 것이다.
경기가 시작된다 해도 상관없다.
나단 오스틴이라면 최소한 그녀가 생각을 정리할 때까지 라이트닝 펀치를 상대로 버틸 수 있다.
“···죽여야 하나?”
까득, 네크로맨서는 손톱을 씹었다.
라이트닝 펀치를 여기서 죽이고 시체를 탈취해서 데스나이트로 만드는 선택지. 평소의 그녀라면 그쪽을 선호했을 것이다.
시체의 신선도에 따라 보존도가 달라지기야 하겠지만. 그렇게 한다면 녀석의 기억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을 테니까.
솔직히 그의 시체가 탐나기도 했다.
저 정도로 재능이 넘치는 몸은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만약 죽이는 쪽을 선택한다면 최대한 상처 없이···.
‘아니, 그건 안 돼.’
이내 네크로맨서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라이트닝 펀치를 죽일 수는 없다.
녀석의 몸은 너무나도 탐나긴 했지만. 그녀가 추구하는 목표를 포기할 정도는 아니었다.
우선은 바벨의 공략.
그걸 위해선 라이트닝 펀치가 필요하다.
시체라도 괜찮았다면 진작에 죽였겠지만. 반드시 숨이 붙어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다른 방법은 없겠네.”
대화로 풀어나갈 수밖에 없나.
깊은 한숨과 함께 결론을 내린 네크로맨서는 다시 나단 오스틴과 의식을 연결했다. 그리곤 상상도 하지 못한 광경과 마주했다.
“스, 승자! 카일리 가문의 라이트닝 펀치!”
시야가 지면과 가까웠다.
“어···?”
네크로맨서는 황급히 상황을 파악했다.
데스나이트로 제작하며 강화한 뼈와 근육이 모조리 박살 났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철저하게 파괴됐다.
이미 시체라 고통은 없었지만.
나단 오스틴이라는 데스나이트가 이제 두 번 다시 사용하지 못할 만큼 망가진 것은 확실했다.
‘이, 이게 무슨···.’
그녀가 잠시 의식을 분리한 사이.
경기의 승패는 물론이고.
불과 3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만에 나단 오스틴이라는 최고의 데스나이트가 철저하게 망가져 있었다.
***
“역시 라이트닝 펀치네요!”
휙휙─
주먹을 휘두르며 신이 난 마야 카일리.
현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이런 인상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어째 갈수록 사람이 이상해진다.
“부탁했던 건 어떻게 됐습니까?”
“아, 나단 오스틴의 시체를 확보해달란 이야기였죠. 사막 투기장 관계자들과 이야기는 이미 끝났어요. 어차피 소속된 길드나 가문도 없는 헌터라 복잡할 것도 없더라고요.”
“잘됐군요.”
이제 오수진만 이곳으로 부르면 된다.
그녀라면 나단 오스틴에게 남아 있는 흑마법의 흔적을 통해. 네크로맨서의 행적을 추적할 수 있겠지.
‘녀석의 소재가 파악되면 천무그룹의 힘을 동원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시베리아에서 겪은 일도 있으니.
주양태 회장을 설득해서 녀석의 추적은 무영대나 주영미 쪽에 맡기고. 현우는 공략팀을 이끌고 바로 바벨로 향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렇게 되니 아쉽네요.”
“···뭐가 말입니까.”
“이제 천생의 바주라도 손에 넣으셨으니. 사막 투기장을 뜨겁게 달군 카일리 가문의 혜성. 라이트닝 펀치의 전설이 여기서 끝나는 거잖아요.”
“저는 좋습니다만.”
이제 그 빌어먹을 별호와도 안녕이다.
현우는 진심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대로 카일리 가문 소속으로 활동해주신다면 정말 좋을 텐데. 한 번 고민해보시는 건 어때요?”
“미안하지만 그럴 생각은 절대 없습니다.”
“쳇···.”
입을 비죽 내미는 마야 카일리.
설마 진심으로 한 제안은 아니겠지.
“그런데 오늘따라 거리에 사람이 적네요. 사막 투기장 챔피언이 바뀌었으니. 네옴 전체가 소란스러울 법도 한데···.”
“귀찮은 일도 안 생기고 오히려 좋죠.”
“···.”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현우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반 보정도 떨어져서 따라오고 있던 마야 카일리가 어느새 사라졌다.
“마야 님?”
주위를 둘러봤다.
방금까지 거리를 걷고 있었는데. 위화감을 느낀 순간엔 이미 주변이 바뀌어 있었다. 현우를 제외한 인기척이 단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법이군.’
평범한 상황은 아니다.
현우의 품속에서 덕춘이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녀석이 골목을 주시하며 경계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숵···!”
“저쪽에 뭐가 있다고?”
“쉬익!”
피해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현우는 굳이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안 그래도 오수진을 통해 추적해보려 했는데. 이렇게 직접 찾아와주었으니. 그 수고를 한참 덜어준 셈이었다.
“그렇게 신출귀몰한 녀석이 직접 여기까지 납셨는데. 어떻게 생긴 놈인지 얼굴은 한 번 봐야지.”
어두운 골목 너머.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불길한 사기로 가득한 공간에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존재가 있었다.
‘네크로맨서···.’
현우는 어렵지 않게 녀석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었다.
“놀란 것 같진 않네.”
네크로맨서가 고개를 들었다.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있던 로브가 스르륵 흘러내렸다. 현우가 궁금해했던 녀석의 얼굴이 드러났다.
붉은 눈동자를 가진 소녀.
기대했던 것과 다른 모습에 현우는 살짝 당황했다. 네크로맨서의 정체가 이렇게 자그마한 소녀였다니.
‘아니, 본체가 아닐 수도 있지.’
류한나에게 들었던 정보에 따르면.
녀석은 항상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체형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럼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 역시.
네크로맨서가 부리는 여러 시체 중에 하나일 가능성이 높았다. 현우는 천천히 마나를 끌어 올렸다.
“당신을 적대할 생각은 없어.”
“그것참 신뢰가 가는 이야기군.”
“물론, 솔직히 말하면 여기서 당신을 죽이고. 그 탐나는 재능을 지닌 신체를 손에 넣고 싶긴 하지만···.”
핥짝.
네크로맨서는 창백한 피부와 대조되는 붉은 입술을 핥았다. 현우는 그녀에게서 오수진과는 또 다른 종류의 소름을 느꼈다.
“나는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는 큰 그림을 그려나가는 쪽을 선호하는 편이야. 당신을 적대하지 않는 편이 내게는 훨씬 이득이 될 거라고 이미 계산을 마쳤거든.”
“···이득이라고?”
“응.”
네크로맨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나단 오스틴의 입을 통해 말했잖아. 당신에게 거래를 제안하고 싶다고. 그리고 당신의 요구대로 지금 뒤에 숨기고 있는 정체를 까서 보여주고 있는 거야.”
“···허.”
직설적이었다.
하지만 굉장히 수상했다.
현우는 일단 대답을 아꼈다.
네크로맨서가 이쪽을 향해 한 걸음 다가왔다. 일단 별다른 적의는 없어 보였지만. 상황이 별난 만큼 현우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내가 누군지는 알고 있지?”
“블랙 가문의 네크로맨서.”
“맞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웃는 네크로맨서.
“나단 오스틴은 내가 만든 데스나이트 중에서도 굉장히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어. 내가 잠깐 고민하는 사이 당신이 그걸 완전히 박살 냈지.”
“뭐, 배상이라도 하라는 건가?”
“···그냥 아쉽다는 이야기지. 조금만 기다렸다면 서로 원만하게 대화로 끝낼 수 있었을 텐데.”
네크로맨서가 푸욱 한숨을 내쉬었다.
현우는 살짝 눈썹을 찡그렸다.
녀석과 한가롭게 농담 따먹기나 하고 싶진 않았다.
“본론만 말해라.”
애초에 블랙 가문 출신인 네크로맨서에게 좋은 감정도 없었으니. 이렇게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이유가 궁금할 뿐이었다.
“좋아.”
녀석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나도 여기서 시간을 질질 끌면서 흔적을 남기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최대한 간단하게 본론만 이야기할게.”
블랙 가문 특유의 붉은 눈동자.
녀석의 두 눈이 골목의 어둠 속에서 묘한 빛을 흘렸다. 블랙 가문의 권능을 사용한 건 아니었다.
“네가 오늘 손에 넣은 천생의 바주라. 그건 세계 7대 미공략 던전 중에 하나인 바벨을 공략하기 위한 키 아이템이야.”
“흠.”
이미 아는 이야기였다.
그다지 영양가 없는 정보에 현우는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기대했던 것보다 건조한 반응에 네크로맨서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가 원하는 건 간단해. 당신이 바벨 공략에 협조해주었으면 좋겠어.”
“거절한다면?”
“여기서 당신을 죽이고 천생의 바주라와 함께 시체를 가져가야겠지. 더 나은 조력자가 나타나길 기다릴 만한 시간은 충분히 있으니까.”
“이상하네.”
현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녀석은 분명 다니엘 블랙이 명령한 대로 바벨을 공략할 예정이었을 텐데. 그 역할을 이쪽으로 떠넘기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
“뭐가?”
“애초에 블랙 가문 내에서 조력자를 찾는 편이 낫지 않나?”
“일반적으론 그게 맞겠지.”
네크로맨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일이 기왕 이렇게 되었으니. 당신에겐 마음을 터놓고 말해줄게. 나는 사실 블랙 가문의 목적이나 계획이 마음에 안 들어.”
“그럼?”
“내겐 나만의 다른 목표가 있어. 혼자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가문의 녀석들에게 알려지면 곤란해지지 않겠어?”
“네 목표가 뭔데.”
“나는···.”
히죽 웃으며 말하는 네크로맨서.
“신이 되고 싶거든.”
정신나간 소리.
현우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네크로맨서를 바라봤다. 그러나 네크로맨서는 오히려 당당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딱일 뿐이었다.
“지금 나보고 그딴 소리를 믿으라는 거냐?”
“믿지 못해도 어쩔 수 없지.”
어이가 없는 주장이었으나.
마법사라는 족속들은 으레 이상하기 마련이다. 네크로맨서의 목표야 어쨌든 정보는 쓸만했다.
‘블랙 가문에서 아시아 쪽의 계획을 담당하고 있는 네크로맨서. 녀석이 다니엘 블랙과는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다.’
만약 저게 사실이라면···.
단순히 네크로맨서를 제거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한 타격을 블랙 가문에 입힐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내가 거절한다면?”
“어차피 당신에겐 선택지가 없어.”
“협조 아니면 죽음인가.”
“그래.”
네크로맨서의 대답과 동시에.
골목의 어둠 속에서 불쑥 다섯 개의 인영이 솟아올랐다. 모두 SSS급 이상의 기세가 느껴지는 데스나이트였다.
“혹시, 모르고 덤벼들까 봐 말해두는 건데. 나한테는 아직 나단 오스틴보다 강한 데스나이트가 산더미처럼 남아 있어.”
“그런 협박은 별로 안 좋아하는데.”
하지만···.
네크로맨서가 간과한 게 몇 가지 있었다.
이 세계에 있어서 가장 큰 변수.
그게 바로 주현우라는 존재라는 점. 그리고 지금 그 거대한 변수가 네크로맨서라는 하나의 변인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까지.
“하나만 더 물어보자.”
현우의 신체 주위로 불꽃이 치솟았다.
맑고 푸른 빛을 띠는 격렬하고 뜨거운 화염. 천무그룹과 창천신공의 상징과도 같은 창염으로 이루어진 축염강기. 그걸 알아보지 못할 네크로맨서가 아니었다.
“자, 잠깐 너 설마 천무그룹···!?”
네크로맨서가 경악했다.
“지금 꺼낸 데스나이트 중에서. 몇 개를 부숴버리면 조건이 나한테 유리하게 바뀔까?”
다니엘 블랙이 계획한 미래가···.
예정되어 있던 경로에서 크게 벗어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