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ion Day 1 Mana Burst RAW novel - Chapter 77
77화 아르카임, 그리고 베헤모스(4)
한편···.
바깥은 사투가 한창이었다.
베헤모스의 진격을 저지하며. 놈의 내부에서 튀어나온 기생 마족들을 상대하고 있는 헌터들의 상황은 그리 좋게만 흘러가고 있지 않았다.
“노, 놈이 다시 일어선다!”
“미친! 대체 몇 번째야!”
로마노프 가문 측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처음 신기전의 위력을 보았을 때. 그들은 절망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목도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에 다들 지쳐가고 있었다. 정신력은 물론, 기생 마족을 돌아가며 상대한 탓에 부상자도 어느새 꽤 발생한 상황.
징그럽게도 상처를 회복하며 다시 일어나는 베헤모스의 모습은, 그들에게 절망을 안겨주기 충분한 광경이었다.
‘···신기전의 준비가 점점 늦어지고 있어’
류한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신기전을 담당한 박광철의 탓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맞겠지. 베헤모스의 상처 회복이 빨라지고 있었다.
“쉬이익!”
거대화한 이무기.
덕춘이가 일어서는 베헤모스에게 빠르게 달려들었다. 녀석의 몸을 휘감으며 입에서 극독을 뿜어내준 덕분에 베헤모스의 움직임이 주춤 멈추었다.
“박광철 아저씨!”
주건우가 황급히 외쳤다.
덕춘이가 나서서 몸으로 막고 있지만. 애초에 크기 차이가 나는 만큼. 오래 붙잡고 있을 수는 없을 게 분명했다.
“지금 막 발사 준비 끝냈수다!”
지체 없이 버튼을 누르는 박광철.
콰과광! 고막을 때리는 폭음과 함께 여덟 개의 신기전의 포신이 불꽃을 뿜었다. 이번엔 단발로 끝나지 않았다.
“제발 그만 일어나라!”
박광철의 외침과 함께.
연이어 발사된 두 번째 포격.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베헤모스의 뒷다리에서 격렬한 섬광이 일었다.
[그─고─오─옷─!]괴성을 지르며 다시 쓰러지는 거체.
순간 공포를 느꼈던 헌터들의 얼굴에 다시 안도감이 스쳤다. 그러나 완벽하게 안심한 표정들은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벌써 여섯 번째.
다리의 재생을 마치고 일어나려는 베헤모스에게 신기전의 화력을 쏟아 부어 쓰러트렸으나.
녀석은 상처를 회복하고 일어났다.
그리고 이번에도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다시 일어나 진격을 반복하려 들 것이다. 이 자리의 모두가 그 사실을 확신했다.
그래도 아직까진···.
녀석의 진격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몇 번이나 더 가능할런지.’
박광철은 꿀꺽 침을 삼켰다.
그가 개조한 신기전은 일반 마도공학 화포 따위와 비교도 되지 않는 위력을 자랑한다. 저 거대한 마족에게 확실한 유효타를 먹이는 것이 그 증거였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화포인 이상 포탄은 무한하지 않다.
앞으로 몇 번만 같은 과정을 반복하면.
잔뜩 준비해온 포탄이 모두 떨어지게 생겼다. 더구나 이젠 한 번의 포격으로는 녀석을 저지하기 어려워졌다.
같은 공격에 저항을 얻었는지.
재생을 반복할 때마다 녀석의 피부는 더욱 두꺼워져. 적어도 두 번씩은 포격을 퍼부어야 상처를 입힐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박광철 씨.”
“아, 예.”
류한나의 부름에 그는 퍼뜩 돌아봤다.
끝을 모르고 쏟아져 나오는 기생 마족을 상대하느라. 한바탕 시퍼런 피를 뒤집어쓴 그녀의 모습에 박광철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앞으로 몇 번이나 버틸 수 있겠습니까.”
“그게···.”
박광철은 슬쩍 입맛을 다셨다.
최대한 희망적으로 보고 싶었지만. 이 경우엔 가장 보수적인 예상을 이야기하는 편이 안전하겠지.
“이대로면 앞으로 다섯 번. 녀석의 피부가 더 단단해진다는 가정 하엔 세 번 정도 포격으로 막을 수 있을 거요.”
“세 번···.”
류한나가 인상을 썼다.
베헤모스의 회복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만약 녀석이 예상 이상으로 포격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앞으로 세 번도 어려울 지도 모른다.
“상황이 여유롭진 않겠군요.”
“음, 도련님이 잘해주시길 바랄 수밖에.”
“···도련님은 잘 해내실 겁니다.”
류한나는 굳은 신뢰가 묻어나오는 눈빛으로 말했다. 박광철도 이번엔 사족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러길 바라···.”
쿠구구궁!
그러나 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
베헤모스의 전신이 요동쳤다.
“···!!”
두 사람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방금 신기전을 명중시켜 쓰러트렸는데.
설마 벌써 회복을 마치고 다시 일어서려는 거라면 곤란하다. 아니, 곤란한 정도가 아니라 더 이상은 방법이 없다.
“무, 무슨···.”
그 위압적인 광경에 헌터들은 일순 그 자리에서 혼이 나간 듯한 시선으로 베헤모스를 바라봤다.
베헤모스가···.
무너지듯 쓰러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확실히 달랐다. 녀석이 입에서 푸른 혈액을 토해냈다. 거대한 입에서 쏟아진 푸른 혈액이 소나기처럼 일대를 적셨다.
“허어.”
박광철이 헛숨을 내쉬었다.
마치 자연재해처럼 막연하게 느껴지던 베헤모스가 정말로 쓰러졌다. 잠시 무력화 된 것이 아니라 진짜 치명상을 입은 것이 확실했다.
“도련님이 성공하신 거군요···!”
“음,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요. 이제 진짜 어떻게 되나 했는데. 하하! 역시 우리 도련님이로구만!”
“그럼 해··· 해치운 건가?”
멍하니 중얼거리는 주건우.
헌터 사회에선 징크스를 일으키는 금기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사실을 지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해냈다···!”
“저 빌어먹을 괴물을 죽였어!”
“우아아!”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몇 번이고 몸을 일으키는 베헤모스의 모습에 공포를 느끼고 있던 헌터들 사이에서 진정한 희망의 분위기가 퍼져나갔다.
재앙은 순식간에 찾아왔던 것처럼.
주현우라는 인물의 손에···.
다시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
“···됐다.”
파괴된 베헤모스의 심장 앞.
현우는 조용히 마나를 거두어들였다.
베헤모스 공략은 성공이다.
방법이야 예상했던 것과 조금 달라졌지만.
허공에서 빛나는 한 줌의 빛.
세계 7대 미공략 던전이자. 전례 없는 초거대 마족 베헤모스의 토벌 보상. 현우는 한 걸음 빛을 향해 다가갔다.
신물···.
경우가 조금 다르긴 하나.
베헤모스 역시 세계 7대 미공략 던전 중에 하나였으므로. 그 보상은 의심할 여지없이 블랙 가문이 손에 넣을 신물 중에 하나겠지.
‘이렇게 또 하나가 손에 들어오는군.’
과거로 돌아온 후.
정말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샤오 가문을 멸문시켰다.
샤오 가문의 흉계로 목숨을 잃었어야 했을 주양태 회장이 생존했다.
카일리 가문의 가주 역시 목숨을 건졌고.
로마노프는 아예 가주 자리를 얼어붙은 요툰헤임 던전에서 죽을 예정이었던 소피아가 차지했다.
‘큰 변화만 꼽아도 이 정도 인가.’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마음에 드는 변화를 꼽자면 단연 한 가지.
비루한 마나 연공법에 의존해야 했던 전생과는 달리. 인피니티 코어라는 새롭고 무한한 코어가 심장에 자리 잡았다는 거였다.
현우가 불러온 모든 변화.
그건 기실 인피니티 코어를 통해 만들어낸 성과라고 봐도 무방했다. 제아무리 미래의 지식이 있다고 한들. 힘이 없었다면 이루지 못했을 성과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룬 것만으론 부족하다.
여전히 블랙 가문과 다니엘 블랙의 계략을 압도적으로 찍어 누를 수 있다는 확신은 부족했다.
확신을 가지기 위해서.
녀석을 더욱 압박하고 백 퍼센트의 승리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 현우는 모든 방면에서 녀석을 앞서야했다.
‘그리고 녀석이 이빨을 드러내는 순간.’
녀석이 모르고 있던 사이.
목덜미까지 들이댄 날카로운 칼날을 지체 없이 박아 넣으리라.
이건···.
그 칼날을 벼리는 과정이다.
현우는 손을 뻗어 빛을 쥐었다.
손아귀 안에서 빛이 형상을 취하는 감각이 느껴졌다.
혹시라도 이전처럼 폭주하는 상황이 나올까 긴장했지만. 다행히 같은 일이 반복되진 않았다.
그리고 잠시 뒤.
현우는 손에 쥐어진 물건을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열쇠···.’
몽환의 열쇠.
그건 열쇠의 형태를 띈 황금빛 모래였다.
가볍게 쥔 손에 힘을 주자
부드러운 모래가 손에서 흐트러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마치 알갱이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생명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
‘설마 이게 손에 들어올 줄이야.’
현우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혼돈의 성배와 마찬가지로.
이 열쇠 역시도 현우가 기억하고 있는 아티팩트 중에 하나였다.
다만 서울 방어전에서 다니엘 블랙 개인이 아닌, 블랙 가문 전체가 사용하고 있었다는 것 정도가 차이점일까.
“이게··· 최초 공략보상인 겁니까?”
“그런 모양이네요.”
이반 블론스키가 물었다.
현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단순한 열쇠는 아닐 텐데.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아티팩트와 이어지는 물건일지도 모르겠군요. 일단은 축하드립니다.”
그의 말대로였다.
몽환의 열쇠···.
이건 상자나 문을 여는 용도가 아니다.
애초에 그런 단순한 용도였다면. 신물이라는 범주에 속하지도 않았을 테고. 현우의 기억 속에 남지도 않았을 테니까.
‘전생에 이 몽환의 열쇠는 블랙 가문의 상징과도 같던 거대 비공정. 페일 라이더(Pale Rider)를 소환하는 매개체였지.’
거대한 비공정 형태의 아티팩트.
페일 라이더는 서울 방어전 당시.
상공에서 서울의 공중을 빈틈없이 완벽하게 봉쇄했다.
일종의 공중 요새가 되어 다가오는 모든 것을 요격하고. 창백한 푸른 불꽃으로 지상을 휩쓸던 끔찍한 악몽 그 자체···.
‘하지만 완벽하진 않았다.’
운용을 위해 엄청난 분량의 마나가 상시로 공급되어야 한다는 단점. 전생에도 그 부분을 노려 끔찍한 소모전을 통해 겨우 페일 라이더를 격추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페일 라이더를 소환하는 매개체가 현우의 손에 먼저 들어왔다.
또한 유일한 단점이라고 할 수 있는 요소조차. 인피니티 코어를 가지고 있는 현우의 존재 하나로 완벽하게 보완이 가능하다.
‘그야말로 대박이지.’
이 신물은···.
현재와 미래를 통틀어 현우와 천무그룹에게 있어 상당히 유용한 전략적 자산이 되어줄 것이 확실했다.
다니엘 블랙으로 향하던 미래의 흐름.
그 중에서도 아주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물줄기 하나를 이쪽으로 꺾어 가져온 셈이었다.
***
“그래서···.”
어두운 방 안.
알렉세이 로마노프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미약하게 떨리는 손에 힘을 주어 간신히 공포감을 억누르는 중인 그의 귓가에 조용하고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론은 베헤모스를 포기했다. 그걸로 이해하면 되겠지.”
“노, 놈은 이미 베헤모스의 정체를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신기전과 같은 공성병기를 준비해온 것을 보면. 어디선가 정보가 세어나갔을 가능성도···.”
“그럼 누구의 잘못인가.”
질문은 아니었다.
다만 이미 벌어진 일의 책임이 알렉세이에게 있음을 확실하게 못 박는 한 마디였을 뿐.
알렉세이는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서 혓바닥을 잘못 놀렸다간 본전도 못 찾는다. 아니, 목숨이라도 잃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죄송합니다.”
“아무튼 곤란하게 되었군.”
“예, 천무그룹의 독주를 이대로 놔둔다면 더욱 곤란해질 겁니다. 지금이라도 제게 다시 기회를 주신다면. 이번 실수를 반드시 만회해 보이겠습니다.”
“아니.”
다니엘 블랙.
그는 짧은 한마디와 함께.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단지 그것뿐인데. 방안의 공기가 몇 배는 무거워진 것 같았다.
“내가 곤란하다 한건 자네일세.”
“···예?”
“차라리 그곳에서 죽었어야 했어.”
가볍게 손을 들어 올리는 다니엘 블랙.
그 움직임을 따라 알렉세이의 몸이 허공으로 번쩍 들렸다.
허공섭물(虛空攝物).
어검술과 비슷한 기술이나. 보편적으로 인간에겐 사용할 수 없는 기술이다.
상대방의 호신기는 물론이고.
체내에 흐르는 마나의 흐름까지 완벽하게 제압해야 가능한 기예. 설령 SSS급 헌터와 S급의 차이라고 해도. 그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조건이었다.
“자넨 내게 빚이 있네.”
그런데···.
한때 로마노프의 가주에 올랐던 강자.
알렉세이 로마노프가 이렇다 할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무력하게 그에게 제압당한 것이었다.
“난 자네가 지닌 보잘것없는 권능을 강화시켜주었고. 전대 가주의 목숨을 거두어 로마노프의 가주라는 거대한 권력까지 손에 넣을 수 있게 해주었지.”
다니엘 블랙의 눈이 붉게 빛났다.
그 섬뜩함을 느낄 여유도 없이.
알렉세이는 허공에서 두 다리를 휘적거리며 제 목을 움켜잡아야 했다.
“그런데 네놈은 로마노프 가문도 잃었고. 천천히 손에 넣을 예정이었던 베헤모스까지 잃었지. 이제 내가 자네를 살려두어야 할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군.”
“커, 커흐윽···.”
“마음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자네의 목숨을 거두어가고 싶지만. 지금껏 투자한 것이 아깝기도 하니. 이번 한 번은 넓은 아량으로 자비를 베풀어야겠지.”
다니엘 블랙이 손을 거두었다.
알렉세이를 붙잡고 있던 무형의 힘이 거짓말처럼 흩어졌다.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진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마지막 기회를 주겠네.”
다니엘 블랙.
그가 점잖은 목소리로 명령했다.
“천무그룹의 손에 들어간 신물을 회수해 오게. 그마저 못하겠다면 적어도 천무그룹의 그 애송이 녀석의 목 정도는 가지고 돌아오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