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Instruction Manual RAW novel - chapter (1597)
회귀자 사용설명서 1597화
중원무림빙의(2)
‘그게… 그게 무슨 개소리야….’
“…….”
“…….”
‘그게 도대체 무슨 개소리냐구….’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영혼이 몸에 완전히 내려앉지 않아 뇌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는 것인지, 갑작스러운 통증과 이해할 수 없는 탈력감 때문에 그냥 정신이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물론 눈이 보이고 귀가 들려오는 터라, 여러 가지 정보들이 속속들이 눈에 꽂히고 있었지만 그 정보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
사실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쉬이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내가 시바… 방금… 애를 낳은 거야?’
슬쩍 손가락을 꼼지락거려 본 것은 당연지사. 정말로 지금 여기에 누워 있는 게 내 육체가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진… 진짜 낳은 거야?’
고개를 돌리자 내 손을 꽉 잡고 있는 시비들이 눈에 비쳐온다. 아무래도 이쪽의 개인 심복인 모양,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고 계속해서 이쪽의 얼굴에 묻어 있는 땀과 눈물을 닦아주기에 여념이 없었다.
심지어 다시 한번 고개를 돌리자 산파가 시야에 비쳐온다. 진짜로 산파였다. 누가 봐도 아이를 낳는 것을 돕기 위해 이 방을 찾아온 산파 말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뭔가 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아이를 보자기 같은 것에 감싸고 있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산파는 조금은 기쁘지만 불안한 기색으로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바깥에서 들려오는 자색의 눈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드님… 아드님이십니다.”
그 말을 들은 시비들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내 손을 꽉 잡는다.
“아씨… 흐윽… 고생하셨습니다. 참으로 고생하셨습니다….”
“아씨… 들으셨습니까? 정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흐윽… 흐으으윽….”
“아씨 괜찮으십니까?”
‘얘네 왜 이렇게 다들 힘이 세?’
시비들이 무공을 갖추고 있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악력이 장난이 아니다. 슬그머니 시비들의 얼굴을 하나둘 살펴보자 그녀들의 표정이 다시금 눈에 비친다.
‘얘네들도… 비슷하네.’
아이를 낳았다는 기쁨보다는 자신들의 아씨가 살았다는 것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심지어 자색의 눈을 본 이후의 놀란 기색을 애써 감추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이크 테스트를 하는 느낌으로 슬쩍 목소리를 내보려고 입을 뻐끔거려보자 다시 한번 시선이 집중된다.
“아… 아씨?”
“무… 물….”
“물을 가지고 와라! 아씨께서….”
“…….”
이윽고 벌컥벌컥 미지근한 물을 들이켤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문밖에서는 아직까지도 커다란 고함 소리가 들려오는 중.
“그래. 진가의 망나니 대공자 놈은 지금 무얼 하고 있다더냐.”
“그, 그것이….”
“…….”
“들려오는 말로는… 폐… 폐관수련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쾅!!!!!!
“상종하지 못할 후안무치한 놈들이….”
“정확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아씨께서 임신하셨다는 소식조차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아씨께서 계속 방 안에서만 지내지 않으셨습니까. 만약 진가의 핏줄을 출산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한 총관. 자네는 지금 내 핏줄을 그 저주받을 진가 놈과 혼인이라고 시키겠다는 말인가! 하늘이 두 쪽 나도 진가 놈들과는 연을 맺을 수 없음이야!”
“그렇다면 어,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만일 아씨께서 혼외자식을 낳았다는 소문이라도 퍼진다면 가문의 평판이 땅바닥에 떨어질 것입니다. 차라리 억지로라도 진가의 망나니 놈과 혼인을 시키는 것이… 아씨와 가문의 명예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것 외에는….”
“…….”
“…….”
이 이상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아마 화를 참지 못하고 자리를 떠났거나, 새로운 대책을 논의하러 떠났을 것이다. 명문가의 여식이 혼외자식을 낳았다는 건, 귀족 사회에서 대입해 봐도 꽤 논란거리가 될 만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덕분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어떤 상황인지를 인지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벨리알에 대한 작은 분노도 치솟는다.
‘이… 이 새끼… 왠지 모르게 알고 있었던 것 같자너.’
출산 중인 산모에게 빙의하게 된 것이라는 걸 말이다. 아무래도 시치미를 뗀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와 꽂힌다. 그래, 벨리알이 말했던 대로 내 숙주는 명문가의 자식이기는 했지만….
‘시바. 진짜.’
산모에게 빙의할 줄 알았더라면 절대로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것도 시바 일반적인 상황도 아니다. 뭔 진가의 망나니라는 놈과 로미오와 줄리엣을 찍고 있는 건지, 아니면 또 다른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원수 집안의 첫째 아들놈과 사고를 쳐버린 모양이다.
심지어 그 진가 놈의 핏줄에 자색의 눈이 유전되었던 터라 아이가 진가의 핏줄이라는 걸 숨기기도 힘든 상황처럼 보인다.
귀족 사회에서도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킨 영애에게 꽤 잔인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쪽 역시 가문의 지원을 받기는커녕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은 한 생명을 살렸다는 것 정도밖에는 없다. 아마 이 몸이 정말로 큰일을 당했다면 아이도 꽤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지도 몰랐을 테니 말이다.
앗 하는 사이에 이미 내 품에는 아이가 안겨져 있다.
확실하게 시야에 비쳐오는 선명한 자색의 눈.
그나마 한쪽 눈은 검은색이었는데, 딱히 그게 의미가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저주받은 진 씨 혈족의 유전특성이 자안이라면 누가 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테니까.
계속계속 꼬물꼬물거리는 것이 꽤 귀엽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감상은 딱 거기까지였다.
내가 배 속에 품고 있었던 아이였다면 뭐 혹시 모를 감동이 밀려왔을지도 모르겠지만, 애초에 나는 이 꼬맹이와 교감한 적이 없었다. 그냥 작고 귀여운 생명체가 품에 안겨져 있다 정도.
사실 다른 걸 생각할 여유가 없다는 게 가장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진 군사… 아니지?’
“…….”
‘이… 꼬물이가… 우리 꼬물이가… 진 군사는 아니겠지?’
누군가를 빼다 닮은 것 같은 얼굴과 자색의 눈동자. 정말로 파장이 맞는다고 한다면 그 진 씨 가문이라는 곳에 일원 중 하나로 진 군사가 들어갔을 것 같기는 하지만… 이 꼬물이가 진 군사가 아니라는 보장도 없다.
실제로 이 꼬물이도 죽음의 위기를 지나오지 않았던가. 진 군사와 내가 들어간 시간이 엇비슷하다고 가정하면 정말로 이 꼬물이 안에 진 군사가 들어가 있을 수도 있다.
시바 아무리 나라도 뭔가 진 군사를 낳았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꺼림칙해진다. 물론 진 군사를 놀리는 맛은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당황스러운 감정이 더 크다. 즉시 전력으로 써먹어야 할 인재가 아이가 되어버렸다는 것도 문제였고 말이다.
곧바로 눈을 마주친 것은 당연지사. 눈을 수없이 깜빡이며 모스부호를 계속해서 내보낸다.
[진… 군사… 님… 아니시죠?]“…….”
[진군사님… 아니죠?]“…….”
다행히 반응이 없다. 일단 큰 고비는 넘긴 것 같은 느낌에 곧바로 아이를 옆에 있는 시비에게 떠넘긴다.
별로 관심이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저도 모르게 저지른 실수.
‘아… 이거 아닌가?’
순간적으로 당황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눈을 잠깐 마주친 이후에 곧바로 아이를 떠넘겨 버리는 어머니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단 말인가.
어머니 입장에서 소중하지 않은 아이가 세상에 없겠지만, 가문의 반대를 무릅쓰고 얻은 사랑의 결실이라면 더욱더 소중할 것이다.
진가의 그 망나니 대공자라는 놈이 아직 어떤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절대로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품에 안는 것도 모자라다. 혹시나 가문에서 이 아이를 해할 수도 있는 환경이 아니었던가.
‘너무… 무미건조했나? 완전 무표정이었지? 나 방금. 진짜 어떤 감정도 실리지 않은 얼굴이었지?’
꼭 눈물을 흘릴 필요는 없었지만 적어도 감정적으로 동요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었을 것이다.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시비들의 눈치를 본 것은 당연지사. 내가 평소와 다른 행동을 했을까 무서워 그들의 반응을 살피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이런 내 행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뭐야. 왜 저래?’
손에서 손으로 옮겨진 꼬물이가 작은 요람에 옮겨지는 와중에도 내 행동에 이상하거나 의문을 표시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꼬물이보다 이쪽을 더 신경 쓰고 있는 것만 같다.
바깥에서부터 다시 소란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소가주님!! 아씨는 아직 안정을 취하셔야….”
“…….”
“아무리 소가주님이라고는 해도 어찌 이곳에 발을 들일 수 있….”
“비키거라. 오라비가 동생을 보러가는 것에 언제부터 너희들의 허락이 필요했더냐.”
“아씨께서는 이제 막!”
“내 분명히 비키라고 일렀다. 이 이상 앞길을 막아선다면 화를 면치 못할 것이다.”
“하… 하지만….”
“두 번은 말하지 않겠다.”
우당탕거리는 소리와 저벅저벅 소리가 들려온다.
함께 있는 시비들도 크게 당황한 듯한 모양새. 갑자기 전투 준비를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무척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정보로는 지금 이 방 안으로 향하고 있는 녀석이 이 가문의 소가주이자 이쪽의 오라비인 모양.
방계가 아니라 직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이후에는 입가에 살짝 미소가 걸리기는 했지만 티를 낼 수 있을 리 만무. 일단은 계속해서 무표정을 유지하며 다가올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열리는 문.
드륵. 소리와 함께 키가 꽤 커 보이는 남자 하나가 시야에 들어온다. 하얀 피부에 날카로운 인상, 잘 벼린 한 자루의 검 같은 인상의 사내, 하지만 묘하게 기생오라비의 기운을 숨길 수 없는 녀석이 내 눈에 비친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짝 나와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비율로 따지면 한 3퍼센트 정도의 함량이 들어가 있다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영혼의 파장이 일치한다는 것이 생김새도 닮았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는 영향이 있는 것이 확실해 보였다.
‘코가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구….’
아무튼 간에 갑작스레 등장한 놈은 조용히 이쪽을 내려다보는 중, 이렇게 막무가내로 이곳에 찾아온 게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 이상으로 나를 마주하고 싶었던 것처럼 보인다.
대충 보면 차가워 보이는 눈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은 분노와 애정….
그리고 연민.
많은 감정들이 뒤섞인 녀석이 꼬물이를 내려다본 이후에 관심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이제는….”
“…….”
“이제는 이 오라비를 쳐다보지도 않는 게냐.”
“…….”
“후우….”
“…….”
“진가의 대공자 말이다.”
“…….”
“세간에는 폐관수련에 들어갔다고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더구나. 네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스스로 목을 매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모양이다.”
“…….”
“…….”
“…….”
“그래서, 이제 좀 속이 시원하더냐. 가주님… 아니, 아버지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기어코 진가 놈과 몸을 섞는 것으로 모자라, 가문에 수치를 안기니… 이제야 그 불같은 분노가 좀 잔잔해지더냐. 이 오라비가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더냐. 어머니의 일은… 아버지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이다. 물론 네가 느끼는 분노와 실망감은 이해하지만… 이제는… 이제는… 놓아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
“이 모든 게 스스로를 망치는 일이라는 것을 어찌 이해하지 못하느냐.”
“…….”
“무슨 말이라도 해보거라.”
“…….”
“모용화연.”
‘모…용?’
“…….”
‘화연?’
“…….”
“…….”
“…….”
‘나… 모용세가… 온 거야?’
새삼스레 방 안에 있는 고급스러운 가구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