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Instruction Manual RAW novel - Chapter (1674)
회귀자 사용설명서 1674화
중원무림빙의(79)
고라버니가 당도한 것이다.
‘그래. 다른 놈들은 몰라도, 네가 여기에 안 오면 안 되지.’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분명히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모용화연을 지켜주겠다 말하지 않았던가.
한 번 내뱉은 말은 절대로 굽히지 않았던 성정을 가지고 있는 만큼 아마 사건이 터진 직후 곧바로 이곳으로 뛰어오기 시작했을 것이다. 녀석이 이곳에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와 꽂힌다.
‘그래. 시바 한 입 가지고 두말할 위인이 아니자너.’
슬그머니 우리 사랑스럽지 않은 고라버니를 올려다본다. 여기까지 오는 길이 결코 순탄치 않았는지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모습, 화경에 이른 고수이기는 했지만 눈먼 검이나 화살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인 것 같았다.
몸 전체에 피딱지가 달라붙어 있었고, 그렇지 않아도 고릴라를 닮은 얼굴에도 검에 당한 상처가 눈에 보이고 있다. 꼬물이가 그런 고라버니의 모습을 보고 충격을 먹었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결정적으로 이쪽이 이미 죽었을 가능성도 이미 상정하고 있었던 것인지, 얼굴이 많이 일그러져 있는 모양새.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피딱지로 반쯤 덥혀있는 고라버니의 모습은… 거짓말로라도 잘생겼다 말하기 힘든 모습이었지만 조금 감동적이었다.
“살아 있었구나! 흐윽… 네가! 살아 있었구나! 연아!”
“오라버니… 흐윽….”
“백숙부….”
“그래, 천아. 무사해서 다행이로구나… 그간 고생 많았다. 참으로 고생 많았어.”
“백숙부님 흐윽… 저, 저 나쁜 악적들이 어머니를… 어머니를!”
“그래, 내 전부 알고 있으니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좋다. 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네 어머니와 너를 지킬 터이니 이제 걱정하지 말거라.”
‘말도 잘하자너.’
“백숙부님….”
그간 불안해 보였던 꼬물이도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은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우리 꼬물이가 모용화연 이외에 믿고 의지하던 어른 중 하나였던 만큼 조금은 안심되는 것일까.
아니,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고라버니의 품은 믿음직스럽다.
고작 화경에 불과했지만 고릴라를 닮은 외형과 듬직한 가슴팍. 굵은 동굴 저음은 왠지 모를 신뢰를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실제로도….
‘강해.’
강했다.
“전부 다 도륙 내주마!!! 이 개 잡것들!!!!”
이쪽과 꼬물이를 잠시 내려놓은 이후에는 가슴팍을 두드리고 검을 휘두르는 녀석의 모습은 마치 범과도 같다. 자연스럽게 여기저기에서 중원식 리액션이 튀어나온다.
“심양대협(沈陽大俠)이다! 심양대협이 왔다!”
“심양대협!!!”
“심양대협이 모용화연을 데리고 있다!!!! 심양대협니다!!”
거친 검강이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 그 맹렬한 기세에 모두가 쉬이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고, 욕심에 눈먼 놈들의 목과 사지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저 쭉정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거리를 벌리고 고라버니를 회유하는 것밖에는 없다. 자신들도 그걸 깨달을 것인지 갑작스레 말을 걸어오기까지 하고 있으시다.
“심양대협!!! 모용화연을 이리 넘기시오! 그리하면 목숨만은 보존시켜줄 것이니!! 당신뿐만이 아니오! 모용화연과 그 아들의 목숨도 보존해 드리겠다 약조를 드리겠소! 아니, 아예 우리 가문에서 심양대협을 위한 자리를 준비해 주겠소! 애초 모용세가는 당신을 품기에는 그릇이 적었소이다!!!”
“그 입 닥치거라! 내 이미 모용세가에 충을 다하기로 맹세한바! 내 목이 잘리더라도 내 충은 모용세가에 있을 것이다!!”
“모용세가가 도대체 심양대협에게 해준 것이 무어가 있다고!!!”
“무엇이!?”
“내가 못 할 말을 했다 생각하지 않소이다! 어디 생각해 보시오! 모용세가에 충성을 다한다 한 심양대협에게 도대체 무엇이 남았다는 것이오!”
“그 혓바닥을 어디 더 놀려 보거라!!”
“지금의 모용가주는 자신의 처를 버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제는 딸까지 버리려고 하고 있소! 가문의 안정과 명예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위인이외다! 어찌 당신 같은 협객이 모용세가에 있을 수 있단 말이오! 그 가문 전체가 한통속이 되어 심양대협을 속이고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정녕 모르고 있는 것이오?! 심양대협이 금괴를 얻기라도 했소?! 아니면 품에 안겨 있는 모용화연을 얻기라도 했소!?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심양에서 썩어가는 불쌍한 처지가 아니요!? 허! 심양대협 당신 역시 언젠가 그 쓰임새를 다하는 날이 온다면 분명 토사구팽당하게 될 것이라 장담할 수 있소! 이 전모의 목을 걸겠소이다!”
“…….”
“아니, 그 꼴을 보니 이미 버림받은 것 같구려! 어디 그 잘난 입으로 대답해 보시구려! 심양대협! 당신이 그리 충성해 마지않는 모용세가는!! 지금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오!! 가문의 제일가는 충신이 딸과 함께 죽어가고 있는 동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고 물었소! 어디 할 말이 있다면 대답해 보시오!”
‘와. 모용세가 이 새끼들… 결국에는 지들 딸까지 손절한 거야?’
설마 설마 했지만, 정말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고라버니가 눈에 비쳐온다. 진짜로 모용세가에서 모용화연을 완전히 저버린 것일까. 막장스러운 상황에 고라버니 홀로 참지 못하고 이쪽으로 뛰어온 것일까.
어느 정도 예상하기는 했지만, 또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배신감이 물밀 듯이 밀려들어 온다. 괜스레 쓰레기 같은 놈들이라는 생각을 했을 때였다.
주변에서 커다란 목소리들이 들려온 것이다.
“모용화연이다!!!”
“?”
“저기 모용화연이 있다!!!!”
“?”
“모용화연이다!! 저기다!! 저기에 모용화연이 있다!!”
“?”
“저기 모용화연이 도망친다! 모용화연이 강으로 도망치고 있다!!”
“?”
“모용화연이 저기에 있다!!! 청해로 도망치고 있다!!!”
처음에는 다른 집단이 이쪽을 발견한 것이라도 생각했지만 금방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여기저기에서 비슷한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눈앞에서 심양 대협과 대화를 하고 있는 녀석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든다. 녀석이 데리고 온 졸개들 역시 크게 혼란스러워하는 모양새에 호통을 치기 시작한다.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것이냐!! 모용화연은 이곳에 있다!!!! 도대체 무슨 개 같은 짓거리를!!”
“모용화연이다! 모용화연이 저쪽으로 도망친다!!”
“모용화연의 아들도 함께 있다!!!”
자연스럽게… 또 고라버니의 표정을 본 이후에….
‘이거 전부… 모용세가 놈들 작품이구나?’
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가문 전체가 이 전장 위에 혼란을 심어 놓은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모용화연이라 외치는 소리가 튀어나올 때마다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오는 중, 이미 피에 절여져 칼질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놈들은 구라핑에 속아 서로를 향해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저기다! 잡아라!!”
“모용화연은 내 것이다! 이 빌어먹을 놈들!!!”
“아니, 저기도 모용화연이다!!!”
“전부 죽여라! 전부 잡아 죽여!!!! 내가 모용화연을 얻고 생사경에 닿을 것이다!!!!!”
심지어는 미끼가 된 이들도 존재한다. 아까부터 들려왔던 목소리의 정체가 바로 이거였던 것일까.
방계 중에서도 특히나 이쪽과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스스로 미끼가 되기를 자처하며 사방으로 도망치고 있는 것이 눈에 비쳐온다.
혹시라도 잡혔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함인지, 품에는 벽력탄이 들려 있다.
모용화연이 도대체 얘네들한테 무슨 의미였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이쪽을 지켜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와중에 완전히 혼란으로 가득 찬 장내에 계속해서 어디선가 한 번 봤었던 얼굴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있는 모용가주.
“…….”
고라버니와 마찬가지로 눈물부터 쏟고 있는 모용 오라버니.
“무사했구나… 흐윽… 무사했구나!”
모용세가의 식솔들이 저마다 검을 뽑고 있었다.
‘이거 할 만해.’
긴 수염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던 모용가주가 별안간 벼락같이 큰 소리를 내뱉는다.
“저 후안무치한 것들에게! 모용세가의 힘을 단단히 각인시켜 주어라!!!”
“충!!!”
“충!!!!”
“미… 미친 연놈들! 모용가주!! 기어코 온 무림을 적으로 만들 셈이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꾸나! 온 무림이 적이어도 상관없다!!!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들을 적으로 돌린다고 한들, 나는 내 딸을 지킬 것이니라!”
“기어코 멸가의 길을 걷는구려! 정신을 차리시오!”
“문답 무용!”
“허!!!”
“모용세가의 무사들은 들라! 저 악적들을 지금 당장 모용의 이름으로 처단하라!!!”
“이야아아아아아아아!!!”
사방으로 쏟아져 나가기 시작하는 모용세가의 무사들, 모용가주 역시 이쪽을 꽉 껴안아 준 이후에 중얼거린다.
“늦어서 미안하구나.”
“아… 아버님….”
“그래. 이제야 아비라고 불러주는구나….”
‘괜히 감동적이자너.’
결국 마지막에 와서는 세가를 버리고 딸을 선택하려고 하는 것일까. 나야 좋기는 했지만 솔직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기는 했다.
내가 모용가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것도 아니었지만, 얘는 고라버니 같은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쪽의 품 안에 안겨 있는 꼬물이를 보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모용 가주를 이해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녀석도 부모였으니 모용화연이 비참하게 죽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내 요녕에서 혈교의 준동이 있었을 때, 네가 심 씨 자매들로 펼친 진법을 눈여겨보았음이다.”
‘아. 그것도 봤어?’
“할 수 있겠느냐.”
‘그러면 이야기가 쉽자너.’
곧바로 고개를 끄덕인다. 통신 채널도 없는 마당에 고작 3명이 아니라 꽤 대인원인 터라 움직이게 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이 머리 좋은 새끼들은 어느 정도 이쪽이 무얼 하려고 하는 것인지 눈치채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번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방계놈들이 무사들에게 신호를 보낸다. 무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하달된 명령을 수행한다.
저리고 손가락을 옮기자, 또다시 수십 명이 이동하면서 검을 휘두른다. 말 한마디 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손발이 하나가 된 것처럼 느껴진다.
거대한 전장 위의 12차원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진법이 펼쳐진다.
“어… 어머니!”
꼬물이가 보기에도 무척 멋진 장면처럼 비치는 것일까.
‘엄마 멋있지?’
연신 감탄사가 들려온다.
‘그래. 이게 엄마야. 멋있지? 엄마 폼 미쳤지?’
당연히 입꼬리가 슬슬 올라가고 있었지만….
“…….”
“…….”
조심스레 망원경을 펼친 이후에는 꼬물이를 바라보며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
“…….”
“익힐 수 있겠느냐.”
“네?”
“이걸 익힐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노, 노력해 보겠사옵니다.”
“잘 지켜보거라.”
“…….”
“이 어미가 하는 것을 전부 지켜보아야 한다. 하나도 빠짐없이 말이다.”
어느새인가부터, 저 멀리서부터 들려오던 굉음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그래,
진 군사가 보이지 않는다.
“시간이 없으니 전부 눈에, 네 머리에 담아야 한다.”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잃어버린 괴선이 이곳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눈을 떼지 말거라.”
“…….”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