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 Instruction Manual RAW novel - Chapter (1707)
회귀자 사용설명서 1707화
중원무림빙의(112)
[27회차를 시작하는 빙의자.]틀림없이 시야에 비치고 있었다.
“…….”
잠깐 동안 침을 삼켜 넘기게 된다. 희라 누나의 말이 워낙 설득력 있게 들려왔던 터라 내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회귀를 했을 가설에 무게를 두고 있는 상태였지만… 시바 27번이나 이 짓거리를 반복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27번?’
자그마치 스물일곱 번이다. 세네 번도 아니고 스물일곱 번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한 거지? 이 정도 신성을 충당하는 게 가능한가?’
해답은 비용 절감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여기저기 세이브 포인트를 놨을 수도 있다. 계속해서 모용화연이 꼬물이를 낳았던 시점으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라, 3년, 혹은 2년, 1년 주기로 시간을 되돌린 것이다. 하지만….
‘이것 가지고도 안 될 텐데.’
당연히 27번이나 진행되고 있는 이 비용을 모두 감당하는 것은 역부족일 것이다.
‘개판 날 만하겠는데?’
자연스럽게 이지혜가 이곳에 와 있을 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당장에라도 무너지려 하는 대륙을 필사적으로 부여잡고 있을 테니 이곳에 올 틈도 없을 것이다.
12차원에 있는 신선들을 재료로 갈아서 사용하든, 위쪽에 어마어마한 비용을 빌렸든, 로헨을 갈고 있었든 간에 필연적으로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해보면 아직까지 대륙이 무너지지 않은 것이 기적이다. 모르긴 몰라도 위쪽의 상황이 상상이 간다.
이 사태의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벨리알은 식은땀을 흘리며 타 차원 넘나들며 출장을 뛰고 있을 것이고, 베니고어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어떻게든 대륙을 유지하려는 신성을 빌리려고 애쓰고 있을 게 분명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지게를 지기로 예정되어 있는 지혜 누나는 말할 것도 없다.
‘이 누나… 잠은 자는 거겠지.’
더하기로 이기영의 몸을 걱정하고 있는 것도 의식할 수밖에 없는 부분.
이 회귀라는 것이 정확히 육체와 영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었으나 그 횟수가 27번 정도라면 아무래도 뭔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예상했던 대로 기억을 지운 이유도 이것 때문일 것이다.
‘추가로 비용 절감하려는 부분도 분명히 있었을 거고… 아니, 그래도 기억은 남겨놔야 하는 거 아닌가? 시바. 정확하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면 회귀하는 게 전부 다 무슨 소용이라고….’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운 감정이 온몸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딱히 당황할 이유는 없어.’
그래 이 모든 게 딱히 당황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호들갑 떨 필요도 없고, 충격받을 필요도 없다.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과 목적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득이 되면 득이 됐지 실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물론 문제는 의식하고 있다.
더 이상 회귀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
대륙도, 나도, 이 이상 과부하가 걸리면 정말로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기도 했고, 그 이후가 어떻게 될지는 미지의 영역이기는 했지만 이건 너무나도 리스크가 큰 도박이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적절한 타이밍에 희라 누나와 마주한 것일 수도 있다.
차희라가 했던 말처럼, 그녀가 선을 그어준 것이다.
딱. 여기까지라고.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
“…….”
빤히 희라 누나를 바라보자, 다시 한번 재미있다는 듯이 그녀가 입을 열어왔다.
“왜. 무슨 할 말 있어?”
“이전 회차에 누나도 나한테 이렇게 말해줬을까?”
“글쎄. 그건 모르지. 그랬을 수도 있고, 그러지 않았을 수도 있고… 내가 자기의 선이 되어주려고 말했던 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인지했기 때문이야. 말했잖아. 지금은 차마 눈 뜨고 못 봐줄 정도라고.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또 모르지.”
“그렇겠지.”
“그런데, 왜 갑자기 그런 걸 물어봐. 혹시 자기가 몇 번이나 회귀했는지… 알아봤어?”
“응.”
“얼마나?”
“27번.”
“내 생각보다는 적은데?”
“그래?”
“…….”
“…….”
“어떤 회차에서는 내가 자기한테 협력했을 수도 있었겠지?”
“응.”
“그래. 아마 그랬을 수도 있었을 거야. 첫 번째는 날 마주쳤을 때는 준비가 미흡했을 테니까. 나도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대해서 훨씬 더 가볍게 생각했을 거고… 자기가 도와달라고 눈물로 호소하면 내가 뭐 다른 방법이 있었겠어?”
“지, 지금도 눈물로 호소할 수 있는데….”
“귀엽네.”
‘그 와중에 칭찬받으니까 기분은 또 좋자너.’
“뭐 근데 전부 다 가정이니까.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지. 자기가 그 오랫동안 무슨 일을 했었는지도 당연히 모르는 상황이고 말이야. 난들 알겠어? 어쩌면 몇 회차 중에 한 번은 진 군사랑 살림 차렸을지도 모르지.”
“그건 조… 좀….”
“하하하! 아무튼 간에 자기가 지금 이 시기에 여기 도착한 건 이유가 있을 거라는 거야. 27번 중 몇 번이나 이곳에 왔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여기를 뚫고 지나가야 한다는 게 자기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올바른 루트라는 거 아니겠어.”
“그래, 그건 인지하고 있어.”
“나와 어떤 방식으로든 맞부딪치고 여기를 지나가는 건 필연이라는 거지.”
“…….”
“…….”
‘도대체 몇 회차나 여기에 닿았을까?’
“…….”
‘도대체 얼마나 많이 여기서 희라 누나랑 이런 대화를 나누었던 거지?’
얼마나 여기에 왔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누나의 말대로, 누나와 이런 방식으로 마주하는 것은 아마 필연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었을 터였다. 그간 차희라가 계속해서 지금의 회차와 같은 행동을 반복한 것이 맞다면, 12차원에서 차희라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쪽에게는 큰 위협이다. 말인즉슨….
차희라는 무조건 넘어야 하는 능선이라는 거다. 그녀는 분기점이었고, 이 서사가 끝까지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었다.
뭐, 편의상 중간 보스 같은 것으로 분류할 수 있는 것 같았지만, 간혹 망겜에서 튀어나오는 최종 보스보다 클리어하기 어려운 중간 보스 같은 느낌이라 해야 할까.
내 속은 계속해서 꼬여가고 있었지만, 이 중간 보스는 사뭇 여유롭다. 큰 싸움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하기 힘든 분위기다. 심지어 감정이 상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괜스레 이쪽만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내가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이게 무슨 뒤끝 없이 그냥 맞짱 뜨는 감성이냐고. 누나는 모르겠지만 나는 속이 좁아서 그게 안 된다고… 서로가 지향하는 걸 관철시키기 위해서 모든 걸 걸고 맞부딪치는 게 대체 뭔 감성이냐고.’
여전히 이쪽을 사랑스럽다는 듯이 바라보는 것은 조금 기분이 좋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거 너무 불편한데… 시바.’
같이 산책을 하는 와중에도 차희라는 계속해서 말을 걸면서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솔직히 잘 들리지도 않는다. 도대체 내가 준비한 것이 뭔지, 지금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외에는 다른 생각이 없다.
소림의 전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은 당연지사. 지금 당장 색욕과 영면을 불러올까 싶기도 했지만 아마 변신하기도 전에 머리가 뻥 하고 터져나가 죽어버릴 것이다. 현시점에서 색욕과 영면을 불러올 신성이 내게 남아 있는지도 의문이었고 말이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용화연의 기억이 대체 몇 회차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모련의 몸은 딱히 인간 영약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이미 영혼이 부패하고 있는 거 아니야?’
하지만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러고 보니까 로헨에 떨어진 악마 대군주 말이야. 들어보니까 벨레드라는 악마더라고….”
“아. 진짜? 들어본 것 같아. 뭐 사랑의 악마 어쩌구 했었던 것 같던데?”
“무려 13위라는 것 같더라.”
“아아아. 그래? 그럼 누나가 로헨에 갔었어도 됐었던 거 아니야?”
“뭐, 그것도 그렇기는 해.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 악마가 다른 악마들이랑 성향이 조금 달랐던지라, 로헨 자체가 무너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네. 오히려 그 악마가 로헨이 무너지지 않도록 도와주고 있다는데?”
“참 특이하네….”
결국 할 수 있는 것은 누나의 말에 적당히 호응해 주며 오매불망 진가가와 진상공을 기다리는 것이 전부였다. 당연하지만 망원경은 쉬지 않는다. 계속해서 지금 이곳으로 향하고 있을 두 사람을 바라본다.
‘그 와중에 둘이 따로 오는 것 봐.’
진가의 차남은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오고 있다. 진가가의 사람이기는 했지만 이 싸움에 끼어들기에는 한 참이나 부족한 놈들, 그나마 추적술에 능한 자들인지 진가주를 보필하면서 경공술을 쓰며 달려들고 있었는데, 차희라가 남긴 흔적이 아니라 진가가의 흔적을 밟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중간중간 보이는 흔적으로 진 군사가 얼마나 급했는지를 알 수 있다. 평소였다면 발자국 하나도 남기지 않았을 양반이 이곳저곳에 흔적을 남기고 달려온 것이다.
당연하지만 진가 차남의 얼굴은 당혹스러움과 절망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참 웃기지. 시바. 사람 일 한 치 앞도 볼 수 없다더니.’
처음에는 이 정체불명의 회(會)를 없애기 위해서 기획한 일이었는데, 지금은 녀석이 희라 누나를 잡아주기를 바라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동귀어진(同歸於盡)하는 것이 가장 베스트 시나리오였지만….
‘그게 쉽게 되겠냐고.’
물론 첫 목표를 완전히 배제한 것은 아니다. 일단 감아놓았다는 것만 해도 커다란 성과였으니까. 만사 제쳐두고 이리 달려오고 있는 것을 보면 안다.
‘진가 쪽 핏줄이 확실히 한 번 내뱉은 말은 확실히 지키니까.’
아마도 모용화연이 아니라, 함께 십만대산의 전경이 눈에 들어오는 하늘을 보고 싶은 모련을 위해 달려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진상공.’
그리고….
어여쁜 신부를 위해 달려오고 있는 충성스러운 진가 놈이 또 하나.
“…….”
“…….”
‘진가가… 믿고 있었다고요….’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아예 자신의 존재감을 대놓고 드러내며 달려오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얼굴은 울상, 그 얼굴에는 꼬마 신랑과 어울리지 않은 분노가 깃들어 있다.
어떻게 차희라와 모련이 소림에 있는지 눈치챈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정확히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오… 오늘따라 더 귀엽게 보이자너….’
어떻게 귀엽게 보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무려 27번이야.’
무려 27회차나 이쪽을 도와줬다는 게 명백한 사실이 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어떻게 저 꼬맹이가 사랑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
‘27번이나 나를 도와준 거냐고요… 진가가. 시바. 이쯤 되면 사랑 아니냐고요….’
녀석이 단순한 호의로 나를 도와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분명히 목적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직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이 새끼 설마… 진짜로 모용화연한테 푹 빠져버린 거… 아니야? 하… 시바… 전부 다 모용화연이 잘못했네. 전부 다 화연이가 잘못했어.’
그러니 저렇게 꼬맹이인 상태로도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는 것이 아닐까. 거의 이성을 잃은 것처럼 말이다. 내력을 아낄 생각이 없는지 경공에 모든 걸 쏟아부은 놈처럼 달려오고 있다.
누가 시바 진 군사가 느린 발을 가지고 있는 느림보 마법쟁이라고 했던가.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내가 다 당황스럽다.
‘근데… 너무 빠… 빠르….’
“…….”
‘지금 어떻게 할지… 생각하면서 달려오고 있는 거 맞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콰앙!!! 콰아아아아앙!!!! 하는 소리가 소림의 정문에서 들려온다.
‘아니… 이, 이렇게 무작정 달려오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앗 하는 사이에, 몸을 낮춘 은발의 꼬맹이 하나가, 거대한 붉은색 전신의 눈앞에 선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부인!!!”
과연 27번이나 모용화연을 지킨 놈이라 말할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