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16
16화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화르르륵!
우리가 다가서자, 화염이 좌우로 열리며 우리가 지나갈 길을 만들었다.
-팀장님! 너무 무모해요!
백영희는 아까부터 나를 말리고 있었다.
-다른 초인들이 싸우는 거 봤잖아요! 팀장님이 아무리 강해도 저 괴물을 상대하는 건 불가능해요!
위이이이잉!
우리 뒤쪽에는 화이트하우스 길드의 촬영용 드론이 떠 있었다.
촬영팀은 다른 길드의 초인들이 괴물 달팽이와 싸우기 시작할 때쯤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곧바로 드론을 띄웠고, 드론을 통해 찍힌 영상은 실시간으로 작전통제실로 전송됐다.
괴물 달팽이가 초인들을 박살내는 영상을 본 작전통제실은 내게 이렇게 제안했다.
-5분 정도면 지원팀이 도착할 거예요. 그들과 합류한 후에 전투를 시작하세요!
하지만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5분이면 다른 길드 지원팀도 다 도착해요. 혼자 먹을 수 있는걸 나눠 먹으라고요? 길드의 이익을 위해서라도 독식하는 쪽이 낫죠.”
이렇게 말하면 쉽게 수긍할 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백영희가 내게 화를 냈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위험하다고요! 걱정 돼서 말하면 좀 들어요!
“······.”
나는 잠시 멈춰 서서 뒤에 떠 있는 드론을 바라봤다.
드론은 화염 때문에 일정거리이상 다가오지 못하고 있었다.
“걱정할 것 없는데. 무사히 잡고 나올 테니까.”
그 전에 보여준 몇몇 모습들 때문에 백영희가 날 오해하는 모양인데, 난 승산이 없는 싸움은 되도록 피하는 주의다.
-어떻게 잡을 건데요? 방법은 있어요?
나는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대며 말했다.
“그건 영업비밀.”
그리고 돌아서서 불길 속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릴리가 내 옆에서 쫄래쫄래 따라왔다.
-진짜… 다쳐서 돌아오기만 해봐! 그땐…
나는 이어마이크를 껐다.
화르르르륵!
우리가 지나온 자리에 다시 불꽃이 치솟았다.
화염벽 안에서는 괴물 달팽이가 괴로워하고 있었다.
나는 양손에 소검을 빼들며, 전에 『괴수도감 최신개정판』 에서 저 녀석에 대해 읽었던 부분을 떠올렸다.
「대왕 고린내 달팽이.
높이 5미터 이상의 크기를 ‘괴수급’으로 규정한다. 성장환경에 따라 껍질의 형태는 천차만별이다.
자웅동체이지만 짝짓기를 통해 알을 낳아 번식하는데, 괴수급의 경우에는 적절한 짝을 찾기가 무척 어렵다.
종종 괴수급 고린내 달팽이가 마구잡이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현상이 목격된다. 일부 학자들은 이 현상을 짝짓기를 못해 발생하는 스트레스로 인한···.」
···쓸데없는 부분은 스킵하고, 공략법이 적힌 부분으로 넘어가자.
「녀석의 약점은 첫째, 열기에 약하다는 것이다.」
「열기로 인해 표피의 수분손실이 일어나면 움직임이 둔해진다.」
과연 불길 속에서 괴물 달팽이의 움직임은 처음보다 많이 둔해져 있었다. 표피에서 흘러나오는 점액의 양도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열기만 쬐인다고 저 괴물 달팽이를 죽일 수는 없다.
스륵. 스르륵.
녀석은 불길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동속도를 높였다. 나는 놈을 향해 달려들며 릴리에게 말했다.
“엄호해.”
수십 개의 촉수가 동시에 날아왔지만, 열기에 느려진데다 아까 충분히 공격패턴을 보아둔 터라 어렵지 않게 피할 수 있었다.
휘리릭! 휘리릭!
나는 얼굴 옆을 스쳐가는 촉수 하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소검에 마나를 담아 싹뚝 잘라냈다.
촉수는 잘려나가기 무섭게 꾸물꾸물 재생을 시작했다.
「껍질 밖으로 드러난 표피는 재생력이 매우 뛰어나다. 특히 촉수 부분은 트롤 이상의 재생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 재생을 막는 방법에는···」
“불에 지지는 게 최고지.”
퍼어엉!
불꽃이 날아와 잘려나간 촉수 끝에 달라붙었다.
그냥 불이 아니다. 무려 불의 마녀가 만들어낸 불꽃.
달팽이 따위가 견딜 수 있을 리 없었다.
치이이익-.
촉수는 짧아진 상태에서 재생을 멈췄다.
“나이스!”
내가 엄지를 치켜세워주자, 꼬맹이는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며 허리에 척하고 손을 올렸다.
“엣헴!”
은근히 다루기 쉬운 꼬맹이라니까.
그런 식으로 우리는 촉수의 대부분을 자르고, 불로 지져서 무력화시켰다.
잠시 후, 전체적으로 짜리몽땅한 모습으로 변한 괴물 달팽이가 우물쭈물하는 것이 느껴졌다.
이러고 보니 은근히 귀여운데?
「촉수를 대부분 무력화시키면, 녀석은 껍질로 숨어 몸을 회복하려고 할 것이다.」
도감에서 읽은 대로, 괴물 달팽이는 곧 껍질 속으로 숨어들었다. 껍질로 들어가는 구멍에 차단막 같은 것이 내려와서 스스로를 외부와 완전히 차단시켰다.
「이 껍질은 매우 단단하지만, 구조상 약점을 알면 쉽게 부술 수 있으니 당황할 필요는 없다.」
나는 주머니에서 굵은 쇠못을 꺼냈다. 그것을 달팽이 껍질이 끝나는 부분, 가장 바깥쪽 부분에서 30cm쯤 떨어진 위치에 박아 넣었다.
까앙!
마나를 잔뜩 불어넣은 못이 껍질 겉면에 살짝 박혔다.
나는 한손으로 못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다른 손은 검면으로 못 대가리를 후려쳤다.
까앙! 까앙! 까앙!
못을 끝까지 박는데 전력으로 20번쯤 내리쳐야 했다.
“휴우···.”
간신히 못 하나를 박아 넣는데 성공한 나는, 품에서 새로운 못을 꺼냈다.
「강도가 가장 약한 껍질 바깥쪽에서부터 점점 안쪽으로, 소용돌이무늬를 따라 못이나 말뚝을 박아 넣는다.」
「처음에는 어렵겠지만, 껍질에 균열이 생기면서 점점 쉬워질 것이다.」
까앙! 까앙! 까앙!
한동안은 못질하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아마 불길 밖에서는 내가 여기서 무슨 짓을 하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일 것이다.
「못이나 말뚝은 적당한 간격으로 20~30개 정도를 박아 넣으면 적당하다.」
서른 개의 못을 모두 껍질에 박아 넣자, 내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다.
「못을 박는 작업이 끝나면, 껍질의 소용돌이무늬가 시작되는 지점에 강한 충격을 주어야 한다.」
「주의. 단숨에 처리해야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껍질을 얻을 수 있다.」
나는 껍질 위로 올라가서 마나를 잔뜩 끌어올렸다.
“흐으읍!”
스스스스슷.
대해심법의 구결에 따라, 단전의 마나가 내 주먹으로 모여들었다.
지금의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공격.
벽력권 1초식이 괴물 달팽이의 껍질 중심에 작렬했다.
―콰아아앙!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충격파가 바닥까지 퍼져나갔다.
쩌적, 쩌저저적-!
달팽이 껍질이 소용돌이무늬를 따라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나선 형태로 쪼개져나갔다.
“끄아악!”
바닥에 나동그라진 나는 온몸의 근육통으로 한 동안 경련을 일으켰다.
몸에 무리가 가는 벽력권을 하루에 두 번이나 사용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
제대로 된 무공을 사용하기에는 아직 내 몸이 너무 약했다.
젠장. 빨리 이 비루한 몸뚱이를 어떻게든 해야지.
“아저씨···. 괜찮아?”
릴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오더니, 쓰러져 있는 내 엉덩이를 꾹꾹 찔렀다.
망할 꼬맹이. 부축은 못해줄 망정…
잠시 후 나는 버둥거리는 꼬맹이를 지팡이 삼아 몸을 일으켰다.
“후우. 그래도 잡긴 잡았네.”
우리 앞에는 뽀얀 속살을 드러난 괴물 달팽이가 쓰러져 있었다.
나는 소검을 들고 녀석에게 걸어갔다.
「껍질 속에 보호받고 있는 표피는 매우 약하다. 식용으로 평가가 좋고 영양가도 높으니, 기회가 된다면 한번 먹어보길 추천한다.」
추천메뉴를 거절할 이유는 없지.
촤아아악-
가장 부드러운 등 부위의 살점을 큼직하게 한 덩어리 잘라내, 가방에서 비닐을 꺼내 담았다.
“고기는 이정도면 되겠고···.”
그때 불길 밖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대인 팀장! 그 안에 있나! 화이트하우스 2팀장 방우혁이다!”
아까 본부에서 보낸다던 지원이 이제 도착한 모양이다.
방우혁이 계속 외쳤다.
“오면서 상황은 전해 들었다! 우리도 안으로 진입하겠다!”
이런, 가장 중요한 해체작업이 아직 안 끝났는데.
나는 바깥을 향해 급하게 소리쳤다.
“잠깐만! 불길을 거둘 테니 그때 들어오세요!”
약간의 시간을 번 나는 괴물 달팽이의 몸을 헤집었다.
촤악, 촤아아악-!
등을 가르며 안으로 들어가자 느리게 뛰고 있는 심장이 보였다.
심장을 가르고 그 안에 손을 집어넣어 헤집자, 그 안에서 내 주먹만한 뭔가가 만져졌다.
그 순간 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찾았다.”
나는 그것을 내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릴리에게 손짓해 불길을 사그라뜨리게 했다.
불길이 줄어들자, 가장 가까이 서 있던 초인들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임대인 팀장! 괜찮은가!”
꽁지머리를 한 날렵한 체형의 중년사내.
화이트하우스 2팀장 방우혁과 그의 팀원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저 여기 있습니다.”
“자네! 왜 무모하게 전투를···!”
화를 내려던 방우혁은 내 뒤에 쓰러져 있는 괴물 달팽이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축 늘어진 거대한 몸뚱이.
그리고 그 옆에 예쁘게 결을 따라 쪼개진 등껍질.
“···세상에.”
그 뒤로 줄줄이 다른 길드의 초인들도 줄어든 불길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 역시 방우혁과 같은 것을 목격하고는 입을 떡 벌렸다.
“말도 안 돼!”
“저, 저걸 둘이서 잡았다고?”
누구보다 놀란 이들은 직접 괴물달팽이를 상대했던 뚱뚱이과 홀쭉이, 그리고 장석현이었다.
그들은 마치 괴물이라도 본 것처럼 나를 쳐다봤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피식 웃으며 그들을 바라봤다.
“아까 누가 나한테 사과하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게 누구더라?”
셋 다 슬그머니 내 시선을 피했다.
그때 방우혁이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믿기지가 않는군. 오면서 저 괴물과 초인들이 싸우는 영상을 봤는데···. 정말 둘이서 잡은 건가?”
나는 무척 초췌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을 건 싸움이었습니다.”
방금 전까지 근육통이 너무 심해서 죽는 줄 알았다.
물론 그 사실을 모르는 방우혁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네. 엄청난 사투였겠지.”
“다행히 운이 좋았죠.”
운은 무슨.
10년 넘게 매달 발행되는 몬스터 도감을 빼놓지 않고 구독한 덕분이다.
방우혁은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겸손하기까지. 그 애가 반할만 하군.”
“네?”
“아, 지금 건 못들은 걸로 해주게.”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너무 피곤했다. 엄살이 아니라 정말로.
오늘하루 동안 몸을 너무 많이 움직인 탓이었다.
“저 방팀장님. 죄송한데 뒷정리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래그래. 자네는 걱정하지 말고 먼저 퇴근해.”
다행히 방팀장은 말이 통하는 양반이었다.
그는 고생했다며 내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럼 먼저 퇴근하겠습니다.”
“아, 잠깐만. 영희가 자네한테 할 얘기가 있다는데?”
그가 자신의 이어마이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나보고 이어마이크를 켜라는 뜻이었다.
“제가 나중에 연락한다고 전해주세요.”
또 잔소리나 하겠지 뭐.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이제 치킨 먹으러 가자! 빨리!”
옆에서 꼬맹이가 내 소매를 잡아당기며 치킨치킨 노래를 불러댔다.
그래. 오늘은 너도 활약했으니 포상을 주지.
나는 꼬맹이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오늘은 특별히 먹고싶은 만큼 먹게 해주마.”
퇴근길의 치맥을 떠올리자, 나 역시 입안에 침이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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