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gressor’s Life After Retirement RAW novel - Chapter 300
300화 양동 작전(1)
-콰콰콰콰쾅!
쏟아지는 포격에 성벽이 무너질 듯 크게 흔들렸다.
[반격해라! 제대로 반격하란 말이다!]성벽 위.
마왕 프로손은 손에 든 창을 마구 휘두르며 고함을 질렀다.
그의 몸에서 뭉텅이로 마력이 빠져나갔고, 잠시 후 그의 마왕성이 수십 발의 마력포를 발사했다.
-퍼버벙! 퍼벙!
그러나 쏟아지는 적의 포화에 비하면, 아군의 화력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 어설픈 반격을 통째로 집어삼키며, 시뻘건 화염이 담긴 마력포가 다시금 성벽을 때렸다.
-콰콰콰콰콰콰쾅!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공격에, 두꺼운 성벽에 쩌저적, 금이 가고 있었다.
[똑같은 마왕성이거늘! 어째서 화력 차이가 이렇게나 나는 것인가!]마왕 프로손은 멀리서부터 포화를 퍼부으며 다가오는 적의 마왕성을 노려봤다.
끼릭. 끼릭. 끼리릭.
거미처럼 여러 개의 다리가 달린 다각요새.
많은 다리를 이용해 빠르게 전후좌우로 기동해 적의 포격을 피하고, 그러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정밀한 포격으로 성벽의 같은 부분을 노렸다.
-퍼버버버버벙!
-쩌적, 쩌저적···.
성벽의 균열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동시에 프로손의 표정에도 균열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토록 원했던 마왕의 자리에 오른 지 고작 며칠밖에 되지 않았거늘···!’
연합군에 의해 마왕들이 실종된 후, 마계에는 주인을 잃은 영토와 마왕성이 여럿 생겨났다.
프로손은 바알군의 군단장 중 하나로, 바알의 명령으로 비어 있는 마왕성 중 하나를 차지해 마왕이 된 자였다.
거기까지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었다.
지평선 너머에서, 불길한 붉은빛을 뿜어내는 저 괴물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미친놈들! 감히 바알 님에게 반역을 일으키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프로손은 자신을 공격하는 상대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니바니바.
벨리알의 성을 접수하기 위해 보낸 바알군 제3 군단장 베리트를 쓰러뜨리고, 그 몸에 강림한 바알마저 쫓아내고 마왕이 된 자.
그 직후 바알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전쟁을 일으킨 미친 마왕!
온 마계가, 지금 그 이름으로 들썩이고 있었다.
[마왕성이여! 너도 저것처럼 일어서라! 마력이라면 얼마든지 줄 테니, 멍청하게 맞고만 있지 말고 움직여 싸우란 말이다!]프로손은 마왕성의 코어에 마력을 잔뜩 불어넣으며 명령했다.
그러나 그의 마왕성은 난색을 표했다.
{현재로써는 이행이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왜 불가능하다는 것이냐!]{성의 구조를 바꾸고 움직이기 위해서는 높은 동조율을 필요로 합니다. 현재 저희의 동조율은 그에 미치지 못합니다.}
조곤조곤 설명하는 마왕성의 말에, 프로손은 벌컥 화를 내며 창으로 적의 마왕성을 겨누었다.
[놈도 마왕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저런 걸 움직여서 우릴 공격하고 있지 않느냐!]{···그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알 길이 없었다.
지구에서 소멸한 줄 알았던 마왕 벨리알이, 저 붉은 다각요새의 운전기사가 되어 릴리를 보좌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콰콰콰콰쾅!
결국, 집중공격을 당한 성벽 한쪽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각요새가 다리를 빠르게 움직여 다가왔다.
끼릭. 끼릭. 끼릭.
그 모습은 마치 거미줄에 걸린 먹이를 향해 다가오는 붉은 독거미 같았다.
[빌어먹을···!]프로손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뒤를 돌아보며 자신의 명령을 기다리는 부하들에게 외쳤다.
[전투를 준비하라! 곧 바알 님께서 지원군을 보내주실 것이니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자신의 군단에서 직접 데려온 마족들은 무기를 치켜들고 포효했지만, 나머지는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았다.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바알 님께서 지원군을 보내주실 때까지는!’
적의 움직임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로 빨랐다.
순식간에 자신을 따르는 마족들을 규합하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프로손을 공격했다.
‘바알 님께서는 이미 이 사실을 알고 계실 것이다. 지금쯤 지원군이 오고 있을 터···.’
프로손은 스스로를 세뇌하듯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눈앞에 닥친 마왕의 힘은 공포스러웠다.
곧 붉은 거미가 무너진 성벽을 기어올랐다.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프로손이 외쳤다.
[지금이다! 옭아매라!]바닥에서 수십 가닥의 거대한 촉수가 솟구쳐 붉은 거미를 옭아맸다.
끼리릭···!
거미의 다리가 멈추고, 녀석은 성벽 위에 올라선 채 멈춰 섰다.
[됐다!]주먹을 움켜쥔 프로손은 직접 선두로 나섰다.
마왕성 대 마왕성의 화력전이라면 밀릴지 몰라도, 백병전이라면 승산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프로손은 판단했다.
자신은 별다른 저항 없이 성을 차지했기에, 병력의 손실이 거의 없었으니까.
[공격하라-!]우와아아아아아!
그의 명령에 수만에 달하는 마족과 마수들이 달려 나갔다.
‘이대로 적의 마왕성을 옭아매고, 난전으로 몰고 간다면···.’
그 순간 붉은 거미를 닮은 마왕성의 전면부가 열리고, 그 안에서 한 인영이 걸어 나왔다.
“클클.”
-촤아아아아아악!
검은빛이 번쩍인 순간, 선두에서 달려 나간 백여 명의 마족들이 반으로 갈라졌다.
[!!]프로손 또한 그 공격에 휩쓸릴 뻔했으나, 오랜 시간 전장을 전전하며 생긴 본능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뒤로 물러날 수 있었다.
“호오. 잔챙이뿐인 줄 알았더니 제법 쓸 만해 보이는 놈도 있구나.”
마왕에게 ‘제법 쓸 만해 보이는’이라는 평가를 내리는 존재.
사티로스로 분장한 천무극이 이빨을 드러내며 마왕에게 걸어갔다.
[감히, 천한 사티로스 따위가···!]“클클. 지금까지 몸을 풀 일도 없어서 근질근질했거늘. 너는 본좌와 한번 겨루어 보자꾸나.”
천무극이 벼락처럼 프로손을 향해 달려들었고, 프로손도 창을 뻗어 상대의 심장을 찔렀다.
까앙!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나는 마왕 프로손이다!]-푸화아아아악!
프로손은 기세를 폭발시키며 일갈했다.
그는 단숨에 천무극을 죽이고, 전장의 흐름을 아군으로 가져올 생각이었다.
그러나 싸움은 마왕의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채채채채채챙!
천마의 검과 마왕의 창이 부딪치며 시퍼런 불꽃이 연달아 튀었다.
어느 쪽도 물러서지 않는 팽팽한 접전.
프로손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반면 천무극의 눈에는 반달 웃음이 맺혔다.
“클클. 비슷한 놈들을 여럿 상대해 봤더니 이젠 이골이 나서 말이다.”
헬게이트라는 대재앙을 겪으면 강해진 것은 릴리만이 아니다.
자신보다 강한 천외천의 존재들과 계속 싸우고 부딪치며, 천마는 자신의 무공을 새롭게 돌아볼 수 있었다.
여러 차원의 강자들과 겨루고, 그들의 기술을 견식하고, 끊임없이 자극받으며 하루도 쉬지 않고 스스로를 갈고 닦았다.
그 덕분에,
고오오오오오!
천마는 또 다른 경지를 엿보고 있었다.
“덤비거라. 오늘은 본좌가 한 수 가르쳐 줄 터이니.”
호수처럼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천마는 마왕을 겨누었다.
***
프로손이 천무극 단 한 명에게 발이 묶여 있는 동안, 다른 이들도 하나둘 마왕성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하여튼 성격만 급해서···.”
아브락사스는 혼자 뛰쳐나간 천무극을 바라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그녀가 몰려드는 마족들을 향해 가볍게 손을 휘젓자, 일곱 가지 원소 마법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졌다.
“컥, 커헉!”
“살려줘···!”
숫자는 아무 의미도 없었다.
폭우에 쓸려나가는 벌레들처럼 쓸려나가는 마족들.
간혹 운 좋게 그 폭우를 피한 자들도 있었지만,
“언니! 나도 싸울래!”
-쩌저저저적!
어디선가 들려온 앳된 목소리와 함께, 반경 수백 미터의 마족들이 순식간에 얼음 동상으로 변해 버렸다.
아브락사스와 웬디가 나서자 단숨에 넓은 공간이 확보되었다.
그다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베리트였다.
[마왕이시여. 제가 당신이 걸으실 길을 열겠습니다.]다각요새에서 훌쩍 뛰어내린 베리트는, 며칠 전보다 한층 강해진 검술을 보여주며 닥치는 대로 적들을 베어 넘겼다.
“커허어어억!”
“사, 살려줘···.”
니바니바의 마왕성에서 내린 자는 고작 넷이었다.
하지만 한 명 한 명이 마왕급의 강자.
수만에 달하는 마족들이 그 넷을 감당하지 못하고 쓸려나갔다.
[항복하는 자는 죽이지 않을 것이다! 마왕 니바니바 님께 충성을 맹세하는 자에게는 자비를 베풀 것이다!]적장의 목을 벤 베리트가 그것을 검에 꿰어 치켜들었다.
프로손에 대한 충성심이 부족한 마족들이 가장 먼저 무릎을 꿇었다.
털썩. 털썩. 털썩.
“하, 항복하겠습니다.”
“니바니바 님 만세!”
“만세에-!!”
처음이 어려웠을 뿐, 무릎을 꿇는 마족의 숫자는 전염되듯 빠르게 늘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왕성 안에 있는 모든 마족이 무릎을 꿇었다.
그것은 마왕도 예외는 아니었다.
털썩.
“클클. 저쪽도 정리가 끝난 모양이구나.”
[크으윽···!]강제로 바닥에 무릎 꿇려진 프로손은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충성스러웠던 부하들은 모두 죽거나 사로잡혔고, 원래 이 땅에 살던 마족들은 진작 항복해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저벅, 저벅.
붉은 마왕성의 가장 높은 첨탑의 문이 열리고, 소문의 마왕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자가···.]통통한 몸과 하늘을 향해 쫑긋 세운 귀.
“흠흠!”
가슴에 단 빨간색 리본을 한 차례 정돈한 마계토끼가 아래로 힘차게 걸어 내려왔다.
그 외모에 대해서 익히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처음 본 마족들은 멍하니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마계토끼라니···.’
마계에서 가장 약한 종족 중 하나.
마족들에게는 별미로나 유명한 그 마계토끼가!
“안녕! 난 마왕 니바니바라고 해! 모두 잘 부탁해!”
허리에 두 손을 척 얹은 채, 자신에게 무릎을 꿇은 마족들에게 반갑다는 듯 인사하고 있었다.
프로손은 그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크아아악! 인정할 수 없다! 어떻게 저런 하찮은 종족이 마왕의 옥좌에 앉을 수가··· 컥!]자리에서 일어나려는 프로손의 복부를 베리트가 후려쳤다.
쓰러진 프로손에게 베리트가 말했다.
[옛 동료여. 내 주인께 너무 무례하지 않은가.] [···베리트.]프로손은 베리트를 죽일 듯 노려보았다.
그들은 같은 바알 군단에 소속돼 있었기에, 예전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다.
[네가 어떻게 바알 님을 배신할 수 있단 말이냐!] [큭큭. 바알이 나를 이용하고 버린 것은 신기하지 않고, 내가 바알을 배신한 것은 신기한 모양이지?]베리트의 빈정거림에 프로손은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한 일이니 묻는 것이다. 너는 분명···. 바알 님께 존재 맹세를 했을 텐데···.]존재 맹세.
스스로의 영혼에 대고 하는 맹세이기에, 소멸될 각오를 하지 않는 한 결코 어길 수 없는 맹세.
하지만 이미 배신자가 되고도 멀쩡한 베리트는 히죽 웃을 뿐이었다.
[아, 이것 말인가?]스스슷.
그의 이마 위로 바알의 낙인이 떠올랐다.
역오망성 한가운데 그려진 흉측한 염소.
그러나 그 낙인은 이내 새로운 낙인으로 지워지기 시작했다.
치이이익···!
불꽃이 염소의 형상을 지워버리고 그 자리를 대체했다.
[맹세의 낙인이···!] [내 주인께서 어떤 격을 갖추셨는지, 이제 좀 알겠나?] [말도 안 돼···.]이마 한가운데 불꽃의 낙인을 드러낸 채로, 베리트는 옛 동료를 마주 보았다.
[바알의 시대는 끝났다. 곧 내 주인께서 새로운 마계의 지배자가 되실 것이다. 너도 나와 함께 새 주인을 모시는 것이 어떤가?]비록 바알의 낙인이 지워진 모습에 놀라기는 했으나, 프로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곧 바알께서 직접 대군을 이끌고 반역자들을 토벌하러 오실 것이다. 그러면 너희가 아무리 강해도 버티지 못한다···.]반란.
이것은 바알의 영역 안에서 벌어진 최초의 반란이었다.
바알이 이 사태를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그런데···.
[큭큭큭···.]갑자기 베리트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는 것처럼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의아해하는 옛 동료의 귀에 대고,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걱정할 것 없다. 바알은 결코 이곳으로 오지 못할 테니.] [···무슨 말이지?]니바니바에게 충성을 맹세한 대가로, 베리트는 앞으로 벌어질 사건의 일부를 들을 수 있었다.
그가 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지금쯤이면, 서쪽 토벌을 끝낸 바사고가 바알의 성으로 북진 중이겠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