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habilitating the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86
말
축복회가 끝나갈 시간이었다.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행사에 참여하지 못한 게 아쉬웠으나 샤엘과 많은 추억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 아무래도 좋았다.
그리고 이제 다시금 아즈벨가로 돌아갈 때였다. 우리는 마구간, 훌륭한 몸의 말을 앞둔 채로 서 있었다.
기분 좋게 먹이를 물어뜯고 있는 말 위에 올라타며 샤엘에게 말했다.
“제 뒤로 타시지요.”
“⋯⋯마차는 안 타고요?”
“말을 타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습니다.”
샤엘이 표정으로 불만을 내보였다. 순간이동장을 사용하자는 걸 굳이 막아낸 것도 나였는데, 마차도 타지 못하게 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떳떳했다. 이 모든 게 샤엘과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이왕이면 딱 붙어서 가고 싶다는 내 사심을 채우고도 싶었고.
히잉!
샤엘이 탑승하려고 손을 내밀자, 말이 울부짖으며 거부했다. 이에 녀석을 째려보던 샤엘이 입을 열었다.
“말을 바꾸는 게 좋겠어요.”
“조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 그럴 겁니다.”
“⋯⋯당신이 탈 때는 안 그랬잖아요.”
듣고 보니 그랬다. 내가 탈 때는 거부하지 않았던 말. 승마를 거부하는 샤엘의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걸까.
분명 그럴 거다. 그런데, 샤엘은 그것을 나와 다르게 해석한 것처럼 보였다.
“⋯설마.”
“왜 그러십니까?”
“⋯⋯암말인 것 같은데요.”
샤엘의 말은 사실이었다. 다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설마, 동물한테 질투를 느끼고 있는 건가?
희한한 일이었다. 무슨, 애정결핍증도 아니고⋯⋯.
“동물일 뿐입니다. 신경쓰지 마시고 타시지요.”
“⋯⋯.”
우리에게 말을 빌려준 마부에게 민폐였다. 빌린 지 꽤 시간이 지났음에도 우리는 아직까지도 마구간에 있었으니까.
제국의 신분이 약화되는 성국이기도 해서, 마부의 시선으로부터 재촉이 느껴졌다.
이내 얼굴을 찌푸리던 샤엘이 말을 향해 다가왔다. 말을 째려보며 말하는 것은 덤이었다.
“나는 오늘 하루, 이 사람이랑 키스를 100번이 넘도록 했는데.”
“아니⋯⋯.”
동물한테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황당한 샤엘의 말에 입도 제대로 열 수 없었다.
정말 키스를 100번이 넘도록 한 것도 사실이라서, 수치심이 솟구치기도 했고.
마부 역시 당황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창피했던 탓에 어서 샤엘을 태우고 마구간을 나와 버렸다.
“동물한테 그게 뭐 하는 짓입니까?”
“⋯⋯뭐가요.”
불퉁스럽게 대답하는 샤엘이었다. 이렇게까지 당당한 모습을 보니 또 생각이 달라진다.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다.
수말이 샤엘에게만 등을 맡기고, 나를 거부한다면?
‘⋯⋯기분이 더럽긴 하겠네.’
나를 거부하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샤엘에게 그런다면 기분이 더러울 것 같다.
바로 납득하며, 뒤에서 안겨오는 샤엘의 따뜻함을 즐겼다.
하지만 쉽사리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 하나 있었다. 조금 전부터 말을 차갑게 대하고 있는 샤엘이었다.
그래도 우리를 태워주고 있는 녀석인데⋯⋯.
쓰다듬어 주기는커녕, 무시하고 있다. 말이 몸부림을 칠 때에는 째려보기도 하고.
말이 나와 샤엘을 차별해서가 아니었다. 그것은 습관적인 악행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요즈음 샤엘이 내게 애정을 표하며 착해지기는 했어도, 버릇만큼은 고치지 못했으니까.
오죽하면 성국을 돌아다니며 샤엘이 짓밟은 꽃들이 불쌍해졌을까.
말이 먼저 이상한 행동을 저지르기는 했어도, 동물이었다. 애당초부터 샤엘이 좋게 대해준다면 괜찮게 될 터.
그러니 샤엘의 행동을 올바르게 고쳐주고 싶었다. 꽃들을 짓밟고, 죄 없는 새들을 괴롭히기도 하던 샤엘의 행동을 말이다.
그 갱생의 시작이 바로 지금이었다.
“따스하게 쓰다듬어 주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샤엘의 대답이 들려오지는 않았다. 달리고 있는 말을 이유로 뒤를 돌아볼 수는 없었지만, 샤엘의 표정이 뻔히 보였다.
절대로 하고 싶지 않다는, 제 감정이 드러나 있는 표정을 짓고 있을 테지.
싫은 소리를 하고 있는 내게 불만을 느끼고도 있을 테고.
그렇게 잠시간을 머뭇거렸을 샤엘이 마침내 말해왔다.
“⋯⋯제가 왜요.”
적당히 해 줄 대답을 찾지는 못했다. 꼭 해야만 하는 일은 아니었으니까.
샤엘이 가끔 습관적으로 악행을 저지른다고 하여도, 내가 영원히 붙어다니며 이를 막아내면 될 일이다.
그러니 굳이 샤엘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의외인 일이 벌어졌다. 나를 껴안고 있던 샤엘의 왼손이 떼어졌다. 말을 쓰다듬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열심히 달리던 말도 멈춘 채로 샤엘의 손길을 즐기기 시작했다.
기회가 찾아온 것 같아서, 샤엘을 데리고 말에 내린 뒤에 말했다.
“한번 껴안아 보는 건 어떻습니까? 동물과 교감하는 건 꽤 기분이 좋아집니다.”
내 말에 기겁하던 샤엘. 샤엘이 무어라 반박하기 전에 선수쳤다.
“부탁입니다.”
원래 동물과 교감을 나누는 것이, 성격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당연히 샤엘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다.
나와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원체 시간을 보내지도 않는 샤엘에게, 도움이 되기도 할 테고.
내 부탁에도 샤엘은 행동하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린 채로 나를 바라보는 샤엘의 시선이 느껴질 뿐이었다.
“⋯⋯더 이유를 말해 보세요.”
“제 부탁인데 안 들어 주시는 겁니까?”
샤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부탁을 단번에 거절한 것이었다.
나는 어떻게 하면 샤엘을 설득해낼 수 있을지 고민하며, 샤엘에게 물었다.
“저를 좋아한다고 하셨잖습니까.”
“⋯⋯그게, 갑자기 왜요.”
“제가 당신을 좋아하는 것보다도, 더 좋아한다고도 말하셨습니다.”
물론 내가 샤엘을 사랑하는 감정의 크기는 나를 향한 샤엘의 감정 못지않게 클 테지만.
어쨌건 샤엘이 저런 말을 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래서요?”
“원래 더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법입니다.”
“⋯.”
샤엘이 나를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본다. 그 시선에 웃음을 흘기며,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러자 나오는 것은 한 장의 계약서였다.
긴 여정 동안 샤엘의 배를 만족시키기 위해, 온갖 디저트들을 마법 주머니에 넣어둔 탓에 주머니에 대충 넣어두었던 계약서.
샤엘이 내게 적으라며 건넸던 계약서이기도 했다.
“⋯⋯그건.”
“아주 재밌는 계약서더군요.”
“⋯.”
그야 그렇다. 첫 번째 조항부터가, 샤엘 아즈벨을 제외한 이성과는 접촉을 금하라는 조항이었으니까.
모든 조항이 샤엘을 위한 조항이었다. 그러니 내가 취할 수 있는 이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계약서였다.
“사인은 해두었습니다. 그런데⋯⋯.”
“⋯⋯그럼 이리 주세요.”
“저한테는 이득인 게 하나도 없잖습니까?”
샤엘도 그걸 알고 있었던 건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휙 돌렸다. 그러면서도 시선은 계약서를 향해 있었다.
동시에 뚱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득인 것, 있잖아요.”
⋯⋯나한테 이득인 게 있다고?
아무리 보아도 없었다. 계약서에는 샤엘에게 잡혀 살게 될 조항들만이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샤엘이 말한 이득은 무엇일까. 그 의문을 입에 담아 말했다.
“도대체 그 이득이란 게 뭡니까?”
그러자 샤엘이 수줍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샤엘⋯ 아즈벨⋯⋯?”
어색하게 흐르는 침묵. 따뜻하던 성국의 공기가 으슬하게 바뀐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그래. 이득이긴 하네.
고작해야 이런 조항들을 지켜 받는 것이 샤엘이라면 충분히 이득이었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을 정도로.
내가 계약서를 건네자, 샤엘은 방금 전의 내 부탁을 들어 주겠다는 듯이 미소를 지어냈다. 거부감을 떨쳐내며, 말을 조용히 껴안는 샤엘이었다.
그 포옹이 끝나기 전에 말했다.
“동물이지만, 존중하며 칭찬을 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샤엘이 말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예쁜 것 같기도 하네요.”
‘예쁜 것 같아요’가 뭐람. 조금은 아쉬운 칭찬이었다.
거기에, 존중하라고 했더니 말한테 존댓말을 쓰는 건가⋯⋯.
믿을 수 없는 샤엘의 사고방식이었다.
말은 샤엘의 칭찬에 대답하듯, 샤엘에게 얼굴을 들이밀며 핥아 주겠다는 것처럼 혀를 내밀었다.
다음으로는 기겁하며 녀석을 막아내는 샤엘이 보였다.
“그건 안 돼요.”
이어지는 말은,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나조차도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는 발언이었다.
“⋯⋯한 명만 허락해 줬거든요.”
그 한 명이 누구일지는, 뻔한 일이었다. 그 말을 끝으로 샤엘과 내 침묵은 계속되었다.
* * *
잠시 말과 함께 시간을 보낸 다음으로는 말을 탄 채로 열심히 이동했다.
신분에 상관없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제국 축제가 조만간 열린다. 그 전에는, 온갖 귀족들이 모일 사교회가 열릴 테고.
당연히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샤엘에 대한 소문이 워낙 안 좋게 퍼져 있었으니까.
그러니 사교회에 가기 전까지는 샤엘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이를 위해 나는 제국의 의상실로 향하고 있었다. 함께 연인들이 입을 법한 옷을 맞춰 입는다면, 행복할 거다.
나는 누구를 위해 온갖 생각을 하며 머리를 혹사시키고 있었는데⋯⋯.
샤엘은 말을 타느라 어쩔 수 없이 나를 잡은 척 나를 껴안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상관없었다. 샤엘이 나를 은근슬쩍 더듬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열심히 운동을 해둔 몸이라 복근이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양복에 손을 넣은 것 같기도 한데?
나는 이를 악물며 침묵했다. 그러던 도중, 샤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물약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달리는 말의 위였다. 바람이 귀를 두드리는 탓에 샤엘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샤엘이 워낙 작게 말하기도 했고.
굳이 말하자면, 샤엘의 손길에 온갖 신경을 집중하느라 그랬을 수도 있다.
“아니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
그렇다기에는 무언가 당황한 것처럼 들렸었는데.
어쨌건 중요한 일은 아니었을 거다. 어떻게 하면 샤엘과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며, 나는 시원한 바람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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