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108)
=======================================
검의 향기 속으로(1)
다음날 일찍 갈사량과 나는 천궁단주 종천락(宗千珞)을 만났다.
종천락은 갈사량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번 작전의 군사가 갈군사인줄은 정말 몰랐소.”
“오랜만에 뵙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갈사량의 태도는 예전보다 정중했다. 일반 군사로 강등되었으니 이제 종천락보다 직급이 낮아진 것이다.
그럼에도 서로를 향한 눈빛이 부드러웠다. 본래 종천락은 갈사량을 존경했고, 갈사량 역시 중요삼단 중 끝까지 자신의 뜻을 지지해준 종천락을 고마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종천락이 갈사량과 함께 마차에 올랐다.
“임무가 바쁘니 자세한 내용은 가면서 이야기 합시다.”
“네, 그러시지요.”
두 사람이 먼저 마차에 올라탔다.
그때 천궁단의 무인 한 사람이 내게로 왔다. 그는 자신을 양호(梁浩)라 소개했다.
“제가 전담해서 두 분을 호위해 드릴 겁니다.”
보통 군사가 함께 작전에 나가면 그를 보호할 전담무인들이 따로 배정되었다. 이들은 여차하면 군사를 보호해서 탈출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상황이 발생하면 반드시 제 말에 따라 주십시오.”
“잘 부탁합니다.”
“그럼 마차에 타십시오.”
내가 올라타자 마차는 곧바로 출발했다. 그 뒤를 말을 탄 천궁단의 무인들이 따라 달렸다. 천궁단은 본래 천 명에 달하는 대규모 조직이었다.
이번 작전에 동원된 인원은 천궁단주 종천락과 그를 따르는 삼십 명의 정예들이었다.
* * *
달리는 마차에서 갈사량이 물었다.
“이번 작전이 극비작전이라 들었습니다.”
“그렇소이다.”
종천락의 대답은 원래 갈사량의 것이어야 했다. 보통의 경우 작전 내용을 알고 있는 쪽이 작전을 지휘하는 정의각의 군사들이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전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죄송하지만 작전 내용은 아직은 알려드릴 수 없소이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때 알려드리겠소.”
“알겠습니다.”
갈사량을 향한 종천락의 눈빛에 살짝 연민이 스쳤다. 들리는 소문으로 갈사량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왜 맹을 떠나지 않았소?’
종천락이 묻고 싶은 말이었다. 그는 갈사량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라면 절대 그런 치욕을 받으면서 무림맹에 남아있지 않았을 테니까.
비록 맹 내의 권력이나 영향력은 사라진 갈사량이었지만, 종천락은 상대의 처지가 나빠졌다고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은 아니었다.
종천락은 갈사량을 이렇게라도 다시 만나서 반가웠고, 되도록 그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애썼다.
그런 노력을 잘 알았기에 갈사량 역시 그를 조심스럽게 대했다. 하지만 이것만은 대답을 듣고 싶었다.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알면 작전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원래라면 이 역시 기밀이지만, 갈군사와의 지난 친분을 생각해서 특별히 알려드리겠소. 우리가 가는 곳은 중경의 검향림(劍香林)이오.”
“검향림!”
과거 혈천신교의 삼대 성지(聖地)중 한 곳이 바로 중경의 검향림이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오. 이번 작전에 갈군사가 오셔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소.”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나 역시 감회가 새로웠다.
종천락을 처음 봤을 때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그를 맹주가 되기 전에 만났다. 그는 당시 궁술의 조예가 아주 깊었다. 내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후기지수들 중 최고라는 그의 궁술 실력이 아니라, 잘 손질된 화살
촉처럼 맑았던 그의 눈빛 때문이었다.
더벅머리 청년이었던 그는 커다란 활을 등에 맨 채 내게 말했다.
“이 궁으로 강호제일이 될 거요. 그래서 언젠가 천하제일인인 당신을 이길 거요.”
그때의 인연이 계속 이어져 그는 천궁단주의 자리까지 올랐던 것이고.
끝까지 의리를 지켜줘서 고맙네, 천락.
* * *
일각쯤 갈사량과 이야기를 나누던 종천락은 마차에서 내려 말을 타고 달렸다.
갈사량과 나는 지도를 펼쳐서 중경으로 가는 길과 주위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비록 작전에 대해 아는 바는 목적지뿐이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들은 있었다. 목적지까지 최단거리를 찾아냈고, 가는 길에
문제가 생겼을 때 지원이 가능한 무림맹의 지부들을 확인했다. 미리 알고 있는 것과 문제가 생겼을 때 허겁지겁 찾는 것과는 그 결과에 상당한 차이가 있었으니까.
한참 지도를 들여다보던 갈사량이 불쑥 물었다.
“이번 작전이 첫 작전이 되겠군.”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별로 긴장하지 않은 것 같은데?”
“군사님이 함께 계시잖습니까?”
“듣기 좋은 말을 잘 하는군.”
“진심이었습니다. 한때 무림맹 전체를 이끌던 분과 함께 있는데 뭐가 겁이 나겠습니까? 아, 이 대답 역시 오해를 받을 대답인가요?”
고개를 숙이고 있어 보이진 않았지만 갈사량이 픽 하고 웃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금씩이라도 그에게 호감이나 신뢰를 쌓아가는 일은 매우 중요했다.
이번에는 내가 물었다.
“이런 작전 많이 경험하셨겠군요?”
“그랬지.”
“어떤 작전이 가장 기억이 남습니까?”
솔직히 궁금했다. 과연 그가 가장 기억하는 싸움이 어떤 싸움이었는지.
흑도십삼맹을 상대하던 싸움 중 하나일까? 아니면 혈천신교를 상대할 때의 싸움일까? 어쩌면 마교주의 행방을 찾아내서 죽였던 그 날의 작전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신룡(新龍)작전.”
나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게 어떤 작전이었습니까?”
그는 미소를 지을 뿐,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신룡작전?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도 생각나지 않았다. 작전명에 지명이 붙었다면 대충 짐작이라도 할 텐데, 이렇게 암어처럼 이름이 지어지면 나로선 알 수 없는 것이다.
대체 어떤 작전이었을까?
* * *
그날 밤, 우린 야영을 하게 되었다.
몇 개의 모닥불이 피어올랐고, 사방으로 경계망이 펼쳐졌다.
나는 직접 갈사량의 잠자리를 챙겨주었다. 바닥에 푹신한 나뭇잎을 깔고 그 위에 가져온 모포를 올렸다.
“밤공기가 차니, 모포를 꼭 덮고 주무십시오.”
“이 담요는 자네가 덮게.”
“아닙니다. 저는 무공을 익혀서 이 정도 추위는 타지 않습니다. 군사님을 위해 가져온 것입니다.”
“고맙네.”
전생에 챙겨주지 못한 것을 이제라도 챙겨줄 수 있어서 기뻤다.
“힘들지 않으십니까?”
“아니네. 오랜만에 밖에 나오니 오히려 기분이 좋네.”
예전 사마외도와 전쟁을 할 때, 그는 나와 함께 움직이며 작전을 짰다. 나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고 그가 힘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제와 생각하니 그가 참으로 힘들었을 것 같다. 무공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무림인들과 함께 움직여야 했으니. 아무리 말을 타고 마차를 탔다고 하더라도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전쟁은 아주 오랫동안 계속 되었
으니까.
그때 종천락이 술병을 들고 다가왔다.
“한잔 하시겠소?”
“좋습니다.”
두 사람이 술잔을 나눴다.
종천락이 나를 보며 물었다.
“아까 얼핏 들으니 무공을 배웠다고?”
“네, 가전무공을 익혔습니다.”
“혹시 적과 싸움이 벌어졌을 때 괜히 나서지 말게.”
“알겠습니다.”
나야말로 부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두 사람이 술을 마시도록 두고 나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래도 그들의 대화는 내 귀에 들려왔다.
오가는 이야기를 통해 종천락은 젊은 시절과 하나도 변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그야말로 충성심 강한 전형적인 무인이다.
내게 필요한 사람이긴 하지만, 쉽게 올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갈사량보다 끌어들이기 어려운 상대였다. 그의 충성심이 사람을 향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림맹을 향한 것이고, 이 강호를 위한 것이었다. 기왕이면 내 편이 되면 든든하겠지만, 억지로 끌어들일 생
각은 없었다.
그렇게 앉아 있는데 앞서 우리 담당호위였던 양호가 나를 불렀다. 오늘밤 경계근무가 없는 무인들이 몇 명 모여서 술을 한 잔 마시고 있었다.
워낙 정예들인데다가 기강이 확고했기에, 오히려 이런 자유로움이 있었다.
그들이 내게도 술을 한 잔 권했다.
“날도 추운데 한 잔 마시게.”
“감사합니다.”
뜨거운 국물도 건넸다. 야영을 자주해서인지 얼큰한 국물 맛이 제법이었다.
“아, 맛있습니다.”
“입맛에 맞다니 다행이군.”
천궁단의 무인들은 활에 있어선 일가견이 있는 무인들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활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본적인 검술도 익혀서 다들 검도 차고 있었다.
“검술을 익혔나?”
“그렇습니다.”
“정의각 군사가 무공을 익힌 경우는 아주 드문데.”
모두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군사란 말이 낯선 신입에 불과합니다.”
그러자 다들 한 마디씩 던졌다.
“그래도 군사는 군사지.”
“암, 그렇지.”
“언젠가 자네가 우릴 지휘할 날이 오지 않겠나? 자, 그때 우릴 잘 봐주게.”
농담처럼 말했지만 거기에는 그들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현장에서 활동하는 무인들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어서 왠지 모를 울컥함이 치밀었다. 불과 일 년 전만 해도 이들은 나의 수하들이었으니까.
“네, 잊지 않겠습니다.”
“말만 하지 말고! 꼭!
“하하. 꼭 기억하겠습니다.”
그들과의 술자리는 즐거웠다.
그런 내 모습을 저 멀리서 갈사량이 힐끗 쳐다보았다.
* * *
우리가 완전히 호북성을 벗어나자 종천락이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각자 분산해서 목적지에서 집결한다!”
아무래도 삼십 명 이상이 한꺼번에 움직이면 아무리 조심해도 이목을 끌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보통의 경우 분산해서 이동한 후, 약속한 장소에서 집결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다.
그때 갈사량이 나섰다.
“종단주님.”
“말씀하십시오, 갈군사님.”
“분산하지 않고 이동하기를 권합니다.”
생각지 않은 권유였는지 종천락이 다소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이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움직이면 이목을 끌게 될 겁니다. 정보가 새서 놈이 눈치를 채고 달아날 수도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이유를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이번 임무의 내용을 모르지만, 마교와 관련된 임무라면 좀 더 조심하는 것이 좋다고 판단됩니다.”
“그 말씀은 이번 작전이 함정일 수도 있단 말씀입니까?”
물론 종천락은 그 함정을 판 쪽이 마교쪽이라 생각하고 한 말일 것이다.
갈사량은 굳이 그 함정이 무림맹에서 판 것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말하지 않았다.
“네. 만약 그렇다면 각개격파 당하고 말 겁니다.”
“으음.”
“예감이 좋지 않습니다. 부디 제 예감을 믿어주십시오.”
종천락이 고민에 빠졌다. 그는 갈사량이 어떤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가 내린 작전으로 이긴 싸움이 한두 개가 아니었으니까.
“설령 함정이라고 해도 다 같이 움직이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군사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다행히 종천락은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 * *
우린 병력을 분산하지 않고 이동했다.
하루가 지나고, 또 다음날이 지났다.
사건이 터진 것은 넷째 날 새벽이었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위기감을 느낀 내 본능이 잠에서 나를 깨운 것이다.
저 앞으로 거의 다 타버린 모닥불이 보였다.
해가 떠오르기 직전, 경계를 서던 무인들의 긴장감이 가장 느슨해지는 시간이었다.
내가 기감을 최대한 끌어올려 주위를 살폈다. 사방에서 아주 은밀한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었다. 숫자가 하나 둘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우리 쪽 경계를 서고 있는 무인을 보았다.
각 방향으로 한 명씩, 그리고 중앙에 두 명이 번을 서고 있었다.
워낙 은밀한 움직임이어서 아직은 접근하는 자들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조금 더 접근해 왔다. 놈들이 선수를 치기 직전.
“적이다!”
내 고함에 모두가 벌떡 일어났다.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번을 서고 있던 무인들이었다. 그들이 순식간에 시위를 당겨 화살을 날렸다.
핑핑핑핑핑!
과연 무림맹의 중요삼단의 정예들답게 그들은 더 없이 기민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도 당황하지 않았고, 날아간 화살은 정확히 적들에게 적중했다.
자고 있던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잠에서 깨어 몸을 일으키고 화살을 재고 적을 확인해서 날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정말이지 눈 깜짝 할 사이였다.
핑핑핑핑핑핑핑핑핑핑핑!
순식간에 수십 발의 화살이 허공을 수놓았다.
간발의 차이였지만, 선공을 하느냐 당하느냐의 차이는 아주 컸다. 특히 이쪽은 활을 주로 사용하는 이들이었다. 거리를 내어주면 절대적으로 불리해진다.
선공을 빼앗긴 암습자들이 십여 구의 시체를 남겨두고 달아났다. 비록 암습에는 실패했지만 물러나는 움직임이 보통이 아니었다.
“쫓지 마라! 경계태세를 강화하라!”
무인들이 알아서 사방으로 흩어져 경계태세를 갖췄다.
다행히 빠른 대응 덕분에 이쪽에 희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적들의 시체는 모두 아홉 구였다.
시체를 살폈지만 아무런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문신도 없었고, 그 어떤 소지품도 없었다. 사용하는 무기 역시 아무런 특징이 없는 것들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정예조직의 무인들입니다.”
살수든, 혹은 다른 조직이든.
나도 무인들 사이에 끼어 시체를 살폈다. 내가 주목한 것은 혹시나 불회마령단을 복용한 자들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아니었다. 만약 그 약을 복용한 자들이 죽기 직전 미쳐 날뛰기 시작하면, 천궁단 무인
들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갈사량이 종천락에게 다가가서 나직이 물었다.
“이번 임무, 어떤 임무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