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carnated Heavenly Demon RAW novel - Chapter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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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시작은(2)
조금 전까지 그를 생각하며 걸어왔기에 더욱 놀랐다.
“주인이 바뀐 것 같소?”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자 백표가 웃으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얼마 전에 제가 인수해서 오늘 새롭게 문을 열었습니다. 손님이 제 첫 손님이십니다.”
나는 백표와의 인연이 새롭게 이어지고 있음에 온몸이 전율했다.
“자, 편하신 자리에 앉으시지요.”
내가 항상 앉았던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백표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우리 가게에서 그 자리를 가장 좋아합니다. 하하하.”
“유독 이 자리를 좋아하시는 이유라도 있으시오?”
“그냥 이유 없이 좋습니다.”
그가 어색하게 웃었다.
“술은 무엇으로 드시겠습니까?”
내가 항상 마시던 술과 안주를 주문했다. 그러자 백표는 깜짝 놀랐다.
“이 술과 안주도 마찬가지지요. 첫 손님이신데 그 자리에서 이 술과 안주를 시키실 줄은 몰랐습니다.”
당장이라도 그에게 내가 천하진임을 말해주고 싶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호위책임자였던 그였기에 나를 증명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었다. 둘만 나눴던 대화도 많이 있었고.
그라면 나를 따라 떠날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천하진은 이미 죽었다. 그의 인생에서도, 나의 인생에서도. 나는 이제 벽리단이다. 그를 도울 일이 생기더라도, 천하진이 아닌 벽리단이 도울 것이다.
그때 그곳으로 새로운 손님이 들어왔다.
“개업선물이네.”
한 중년사내가 난이 심겨진 작은 화분을 건넸다.
난 하마터면 들고 있던 잔을 떨어뜨릴 뻔 했다. 백표를 봤을 때만큼이나 놀랐다.
들어선 사내는 바로 갈사량이었던 것이다.
너무 놀란 표정이 들킬까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크게 뛰었다.
정말이지 이곳에서 갈사량을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것도 백표와 갈사량을 한 자리에서 만나게 되다니.
“어서 오십시오!”
백표가 감격스러운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갈사량이 직접 찾아올 줄은 몰랐던 모양이다.
“아늑하니 분위기 좋구먼.”
“운이 좋았습니다. 이곳 주인이 가게를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돼서.”
“그랬군.”
“술은 무엇으로 드시겠습니까?”
“자네가 알아서 주게.”
백표가 술을 내왔다.
갈사량이 힐끗 나를 쳐다보았지만 그다지 신경 쓰지는 않았다.
갈사량은 근래 신경을 많이 썼는지 얼굴이 수척했다.
당장 그에게 다가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싶었다. 대체 왜 이렇게 낭패를 당했는지.
술을 마시던 갈사량이 뒷문으로 나갔다.
“함께 바람 좀 쐬지.”
“그러시지요.”
백표가 뒤따라 나갔다.
나는 귀를 쫑긋 세웠다. 희미하게 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여기가 그분께서 오시던 곳이었지?”
“알고 계셨군요.”
“몇 번인가 말씀하셨다네. 아주 분위기 좋은 곳이 있다고. 다음에 시간 나면 같이 가자고 하셨는데…… 뭐가 그리 바빴는지.”
갈사량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후회가 된다. 갈사량과 조금만 더 허물없이 지냈으면 좋았을 텐데.
“무림맹에 계속 남아 있을 생각은 없나?”
“죄송합니다.”
“새 맹주는 제가 지켜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니네. 오히려 내가 미안하지.”
“군사께서도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광월단과 철기단이 배신한 이상, 어떻게 막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백표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광월단과 철기단이 배신을 했다고?
믿을 수 없었다. 만약 이 말을 객잔에서 들었다면 ‘헛소리 집어치워라!’ 일갈하며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장 믿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광월단주와 철기단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과 ‘배신’은 절대 조합될 수 없는 말이었는데.
갈사량이 쓸쓸하게 말했다.
“엄밀히 말하면 배신이 아니지. 그들은 맹주께서 살아 있을 때까진 충성을 다 바쳤으니까.”
아니, 이것은 배신이다. 내가 죽었다고 내가 아끼던 사람의 뜻을 저버린 것은 명백한 배신이다. 정말 내게 충성을 다 바쳤다면, 갈사량을 도왔어야 한다. 더구나 마봉기 같은 놈을 맹주 자리에 앉혀서는 결코 안 되었다.
“군사께서는 앞으로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나는 좀 더 버텨볼 생각이네. 저쪽에서는 나야말로 사라져 주길 바라고 있겠지만.”
“괜찮으시겠습니까?”
“보는 눈들이 있으니 대놓고 나를 어쩌진 못할 것이네. 아마도 좌천되겠지. 어디 작은 조직으로. 그래도 끝까지 버텨볼 생각이네.”
“제 말씀은…….”
“알고 있네. 자네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하나 걱정 마시게, 이 한 몸은 지킬 정도는 되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만.”
갈사량이 어떤 사람인지 나는 잘 안다. 한 번 당하지, 두 번은 당하지 않을 사람이다. 자신이 저렇게 말한다면, 그는 자신의 목숨을 지킬 복안을 마련해 두었을 것이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왜 떠나지 않으시는 겁니까?”
“무림맹은 그 분의 터전이니까.”
“제가 형편없는 놈처럼 느껴집니다.”
“그렇지 않네. 자넨 그 분에 대한 그리움에 무림맹 맹호단주의 자리를 버렸네. 그런 말을 하면 오히려 내가 부끄럽다네.”
“군사님.”
“자네나 나나 그분 때문에 떠나고 남는 것이지. 우린 결국 같은 마음이라네.”
“전 맹주님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나도 그렇다네. 하지만 이제 잊으시게. 이제 자네의 인생을 살게. 난 이만 가보겠네.”
“부디 보중하십시오.”
“장사 잘 하시게. 가끔씩 들르겠네.”
“언제든지 오십시오.”
뒤뜰에서 곧장 갈사량이 떠나갔다. 그래서 떠나가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어깨가 쳐진 걸음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갈군사, 부디 힘내시게.
백표가 다시 주점으로 들어왔다. 그가 씁쓸함을 애써 털어내며 내게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맛은 어떠십니까?”
나는 그를 보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좋습니다. 아주.”
마지막 잔을 비우고 풍 주점을 나섰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여러 생각이 들었다.
광월단주와 철기단주의 배신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머릿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대체 왜?
객잔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마음을 정리했다.
일단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감정에 휩싸여 어설프게 나서지 않을 것이다.
돌아가서 힘을 키울 것이다. 당당히 물어볼 수 있도록, 확실히 지켜줄 수 있도록.
사량아, 백표야.
그때까지 그대들의 삶을 살게나.
* * *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가신 일은 어떻게 됐어요?”
광두는 내 무사복귀를 안도하면서 한편으로 궁금해 했다.
“잘못된 것은 바로 잡으셨어요?”
내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히려 광두가 웃었다.
“왜 웃냐?”
“뭐든 가시기만 하면 척척 해내시는 모습만 보여주셨잖아요? 말씀은 안 드렸지만 참 비인간적이었다고요.”
이게 광두의 위로고 격려임을 잘 안다.
“그러니까 수련 열심히 해. 이런 일은 네가 척척 처리하면 좋잖아?”
“후후, 도련님도 못 처리 하신 것을 제게 맡긴다? 순식간에 비인간적인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셨군요.”
“하하.”
“피곤하실 텐데. 쉬세요. 이따 저녁에 도련님 좋아하시는 요리 해놓으라고 할게요.”
종종 걸어가는 광두의 뒷모습을 보자 비로소 집에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더 이상 무림맹의 일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갈사량과 백표도, 마봉기도, 나의 죽음도.
어차피 지금 신경을 쓴다고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일단은 벽씨검문을 잘 키우자.
내 결론이었다. 대신 좀 더 적극적으로 키워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호의 정세가 심상치 않았다. 되지 않아야 될 사람이 맹주가 되었다. 분명 부작용이 생길 것이다. 그것이 우리 가문에까지 밀려들 때, 어떻게든 스스로를 지킬 힘이 있어야 한다.
폭풍우가 오기 전에 그것을 막을 방파제를 쌓을 생각이다.
반드시 폭풍은 온다.
* * *
수련의 강도를 높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무력이다.
최대한 드러내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을 때는 다 쓸어버릴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가장 절실한 것은 역시 내공이었다. 영약을 구할 수 있으면 가장 좋겠지만 그것은 돈과 운이 모두 따라야 하는 일.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 했다. 잠자는 시간을 줄이면서 심법수련을 했다.
동시에 체력단련을 극한으로 했다.
내공을 최대한 아끼면서 싸울 경우를 대비해서다. 최소한의 내공을 사용해서 초식을 사용할 때, 그땐 체력이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
다시 갈사량의 말이 떠올랐다.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래, 그의 말이 옳다.
분신술을 써서 내 몸을 수백 개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나만의 조직이 있어야 한다. 내 명령이라면 즉각 처리할 수 있는 정예조직이.
하지만 그러한 조직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몇 년을 투자해서 키워나가야 한다.
결국 내 결심은 폭탄선언으로 이어졌다.
“제 검대를 갖고 싶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입이 동시에 쩍 벌어졌다. 여태껏 내가 터뜨린 것 중에 이번 것이 제일 컸나 보다.
“너, 검대가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있느냐?”
“당연히 알고 있지요.”
“검대를 이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아느냐?”
“네,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조금 걱정스럽게 물었다.
“우리에겐 이미 검대가 있지 않느냐?”
“네, 아주 훌륭한 검대가 있지요. 기존의 검대와 별개의 검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예비검대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성격을 그렇게 가져가야 기존 검대와 충돌이 없을 것이다.
“기존 검대를 존중하는 의미로 소검대라 이름붙이겠습니다.”
내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음을 밝히자 아버지는 내 뜻을 받아들였다.
“네 뜻이 그렇다면 좋다. 대신 그들이 묵을 잠자리와 식사 이외에 다른 지원은 일체 하지 않겠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몇 명이나 뽑을 생각이냐?”
“처음에는 이십 명 정도에서 시작할 생각입니다. 차츰 숫자를 늘여갈 생각입니다.”
어머니가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처럼 아들을 지지하는, 그래서 반드시 보답하고 싶어지게 하는 그런 미소였다.
“잘 할 수 있지, 아들?”
내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네, 어머니.”
* * *
검대원을 모집하기 전에 먼저 서중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조직을 다루는 경험이나 실력이야 내가 더 위겠지만 적어도 검대를 운영하는 것만큼은 서중의 경험을 무시해선 안 될 일이다.
광두를 데려가서 함께 들었다.
훈련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체계는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누굴 조장으로 삼고, 검대원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명예와 자존심은 어떤 것인지.
마지막으로 서중이 해준 말은 이것이었다.
“검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이다.”
내가 광두를 가르칠 때 했던 말과 같은 말이었다.
-무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사람이다.
서중과 헤어지고 둘만 남게 되자 광두가 내게 물었다.
“마지막에 서대주께서 하신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직접 물어보지 그랬느냐?”
“그게…… 아무래도 서대주님은 어렵잖아요?”
“나는 만만하고?”
“친근하다고 해야죠.”
그러면서 배시시 웃는 녀석을 어찌 미워하겠는가?
“무림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력이다.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는 말이지. 하지만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각자의 인성이 쓰레기라면? 검대원이 양기강으로 다 채워진다면?”
“상상도 하기 싫네요.”
“서대주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일 게다. 검대도 결국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는. 그래서 무엇보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가지는가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도련님이라면 모두 충성을 바칠 겁니다.”
“처음부터 충성심을 기대해선 안 되겠지. 충성심은 오랜 시간에 걸쳐 여러 경험들이 쌓여서 생기는 것일 테니까. 처음에는 소속감을 가지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어떻게 이렇게 똑똑해요?”
“부럽냐? 너도…….”
나이를 먹으면 다 알 수 있는 일이다. 아마 맹에만 갇혀 살았던 나보다 훨씬 더 깊고 똑똑한 생각을 하게 되겠지.
“한데 그 검대에 저도 속할 수 있는 겁니까?”
“아니.”
“왜요? 저도 넣어주십시오!”
“넌 아직 멀었어.”
너는 그보다 훨씬 귀하게 쓸 생각이니까.
“나중에 실력 되면 꼭 넣어주셔야 돼요.”
“그때 보고.”
“그런데 도련님, 검대는 왜 만드시는 겁니까?”
광두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돈을 벌려면 조직이 필요하니까.”
가진 힘이 크면 클수록 큰돈을 벌어들일 수 있다. 힘이 곧 돈이고, 돈이 곧 힘이다.
“돈은 왜 버는데요?”
“조직을 키워야지.”
“키워서는요?”
“벽씨검문을 중원제일문으로 키울 생각이다.”
중원제일이란 말에 광두가 깜짝 놀랐다.
내 결심이었다. 광두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전 중원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벽씨검문은 중원에서 가장 강한 가문이 될 것이다. 그 누구도 감히 덤비지 못하는 강력한 가문으로 키워낼 것이다.”
“진심이시죠?”
묻는 광두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 진심이다. 검대는 그 꿈의 시작이다.”
광두의 얼굴에 격정이 차올랐다.
“반드시 이루실 겁니다. 제가 온힘을 다해 돕겠습니다.”
시작은 비록 스무 명의 작은 검대이지만 끝은 중원을 질주하고 호령하는 검대로 만들 것이다.
따스한 봄빛 햇살 아래, 나의 첫 출사표가 던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