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10th Circle mage RAW novel - Chapter 68
68
40.청사진
아리의 애마인 람보르기니 가이시스를 타고, 그녀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겼다.
20분 정도 차를 타고 달려 도착한 곳은,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63빌딩이었다.
“음······.”
내가 63빌딩을 멀찌감치 올려다보고 있자, 아리가 내 손을 이끌었다.
“어서 가요, 준혁 씨!”
“···네.”
아리와 나는 손을 잡고 63빌딩의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녀가 누른 버튼은 57층.
-만리향(萬里香)
이름부터가 아주 고급지고, 맛있는 냄새가 풍겨져 나올 거 같았다.
나는 저절로 미소가 지어져서, 표정관리를 하지 못했다.
‘이곳에서 먹는 짜장면 맛은 과연 어떤 맛일까?’
중식하면, 나는 보통 짜장면이 떠올랐다.
아니면 짬뽕, 탕수육.
중식에 대한 내 지식이 저게 한계였다. 깐풍기나 유산슬, 양장피 이런 건 비싸서 별로 먹어보지 못했다.
이계에서 지구로 귀환한 후로는, 혜은이가 치킨이나 피자 위주로 음식을 시켜서, 중국 요리를 별로 먹어볼 새가 없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예약하셨나요?”
“네. 이름은 최아리고요.”
“이쪽으로 오세요.”
붉은 챠파오 의상을 입은, 8등신 미녀가 우리를 이끌고 창가쪽의 룸으로 안내했다.
나와 아리는 20평은 돼 보이는 드넓은 방 한 개를 차지하고, 나란히 마주 보고 앉았다.
“괜찮죠?”
“네. 마음에 듭니다.”
“음식도 이에 맞으실 거예요.”
“맛없어도 이런 데 오면 다 맛있어져요.”
“호호호.”
아리는 내 농담에, 입을 가리고 작게 웃었다. 주로 아리가 질문하고, 내가 대답했다.
문제는 뭐가 나왔냐, 시험은 안 어려웠냐 등등.
수능에 대한 질문이 대체로 많았다. 내가 문제가 너무 쉬워서 방심할 뻔했다 하니까, 아리가 배를 잡고 미친 듯이 깔깔거렸다.
이미 시험이 끝났기 때문에, 이번 수능 시험지는 이미 공개되어 있었다. 아마 아리도 확인한 모양인데, 그녀가 말하길 불수능답게 엄청 어렵게 나왔다고 했다.
불수능이든 물수능이든, 수능 따위가 내 앞길을 막을 수는 없기에 그녀도 이번에는 그냥 여상하게 넘어갔다.
하지만.
“전국 1등 할 자신 있죠~?”
“······못 하면 걍 차 한 대 주면 되죠, 뭐.”
“에이, 그래도 내기인데 이기셔야죠.”
“져도 뭐 상관은 없어요.”
“피~ 재미없다.”
“아, 그럼 이길게요.”
“히히······.”
나와 아리는 그런 시덥잖은 애기를 하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드디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ㅡ홍삼불도장, 화고버섯건전복찜, 제비집호품전복, 바닷가재, 활생선찜, 한우스테이크, 식사, 특선 후식······.
360,000원짜리 특선 코스요리 세트가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올라왔다.
특히나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진 큰 쟁반 안에 각종 해산물과 재료가 올려진 ’불도장‘은 처음 보는 음식이었다.
‘중식들 중에 이런 음식도 있구나······.’
정말 태어나서 처음 맛보는 진귀한 음식들.
내 주먹보다 더 큰 전복으로 요리한 ‘화고버섯 건 전복찜’도 진짜 일품이었다.
“정말 끝내주게 맛있네요.”
“그렇죠~?”
어깨를 으쓱하며 의기양양해하는 아리의 모습이 되게 귀여웠다.
나는 그녀와 함께 상다리가 휘어지게 나온 음식들을 양껏 퍼먹기 시작했다.
우리 두 사람은 잠시간 말이 없을 정도였다.
아까 전, 아리가 싸 온 음식들도 맛있긴 했지만, 수십 년 경력의 중식 외길만 걸어온 이곳 주방장의 솜씨도 가히 일품이었다.
중식이 보통 해산물도 많이 섞여서 나온다지만, 여기는 그 클라스가 달랐다.
바닷가재도 나오고, 킹크랩, 활대하, 캐비어, 성게알, 해삼알, 꽃게, 새우, 전복 등등.
그 하나하나만 해도 값비싼 재료들이, 한 식탁 위에 모두 올라오니 눈도 호강이고, 입도 호강이었다.
“준혁 씨, 어때요?”
“맛있어요.”
나는 아리가 심심해하는 거 같아서, 스퍼트를 서서히 낮추며 그녀와 단란히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가벼운 얘깃거리들.
특히 내가 아리를 놀려주기 위해 많은 장난을 쳤다. 도시락 직접 싸온 거 아니고, 한솥에서 사 온 거 아니냐? 뭐 이런 농담들.
그래서 그녀가 음식을 먹다 말고,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울뻔한 적도 있었다.
당연히 나는 그녀를 달래느라 애를 먹었다.
그리고, 음식을 다 먹어갈 때쯤, 우리는 슬슬 진지한 얘기로 이야기 주제가 넘어갔다.
“사업도 하고, 학교도 다니고······. 앞으로 정말 바쁘시겠어요?”
“바쁘긴요. 남들도 다 이렇게 하는 거 아닌가요?”
“에이, 누가 그렇게 해요. 농담도 참~”
“그렇군요. 그런데 생각보다 바쁘진 않을 거 같아요.”
“준혁 씨는 똑똑하니까 교수님이 어려운 과제 같은 거 내줘도 그 자리에서 금방금방 뚝딱 해내실 거 같아요.”
“과제야, 뭐······. 어차피 인간들이 내는 거잖아요?”
“네?”
“아··· 아니, 그냥 같은 사람이 내는 문제인데 뭐가 어려울까 싶어서요.”
“······.”
“···.”
나는 분위기가 급격하게 가라앉는 걸 느끼고 양손을 내저었다.
“농담이에요, 농담.”
“진담 같았는데······.”
“걍 장난친 거죠. 하하······.”
물론 진담이긴 했다.
인간이 따위가 내주는 과제로 나를 힘들게 할 리가 없지. 나는 이계에서 주신이 내주는 과제까지 모두 다 해치웠는데, 그깟 인간 따위······.
“아무튼, 아리 씨 오늘 정말 고마워요.”
“뭘요~”
아리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칭찬을 바라는 강아지처럼 헤실거렸다. 꼭 저럴 때 보면, 우리 집의 백설이를 조금 닮았다. 백설이도 맨날 배 만져 달라고 맨날 다가와서 애교를 부린다.
‘진짜 배부르게 한 상 잘 먹었다.’
아까 점심때도 아리가 도시락을 싸 와서 정말 배터지게 먹었었는데, 이번 저녁에도 정말 배부른데도 계속 먹고 싶어질 만큼 진귀하고 맛있는 음식들이었다.
‘혜은이가 알면 난리 나겠지······.’
아리가 도시락 싸 온 걸 아침에 봤을 때, 그냥 넘어갔는데 이런 최고급 중식 코스요리까지 먹고 온 걸 알면, 진짜 노발대발할 수도 있었다.
“준혁 씨는 계속 의약 만들고, 수능 아이템을 만들 거죠?”
“네. 공부효율 아이템 외에도 착용하면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기분 좋은 팔찌라던가, 아픈 곳의 통증이 깨끗이 사라지는 통증꺼져 목걸이라던가······.”
“푸훗~ 그게 뭐예요~”
“왜요? 이상해요?”
“정말 그런 효능이 있으면 좋을 거 같긴 한데, 이름이 너무~~”
아리는 잠시 개구쟁이같은 표정을 지으며 나를 놀려댔다. 이름이 너무 초딩같다, 개대충 지은 거 같다 등등.
나름 날카롭게 세운 비수처럼 나를 찔러댔으나, 별로 타격은 없었다. 저런 얘기는 웹서핑하면서 이미 많이 봤기 때문에 면역이 됐다.
“그리고 반도체도 한 번 만들어 보려고요.”
“반도체요?”
“네. 반도체에 21세기 4차 산업의 쌀이라고 많이들 얘기하잖아요. 그래서 돈을 끌어모아서 반도체 생산 설비도 구입해서 한 번 반도체를 만들어 보려고요.”
“······.”
내 말에 아리는 멀뚱히 내 얼굴을 쳐다보기만 했다. ‘그거 진담이니?’ 하는 표정이었다.
“왜요? 못할 거 같아요?”
“네.”
“······.”
“준혁 씨가 그런 쪽에도 지식이 있었어요?”
“네. 제가 공고 나왔거든요. 전자과.”
“······.”
아리는 또 자신을 놀리는 것인 줄 알고, 그냥 피식 웃기만 했다 장난 아닌데.
‘마력회로를 이용한 반도체를 만들면, 그 효과가 엄청날 테지.’
나는 이미 공부효율 아이템으로 그것을 체험했다.
마법의 위대함을.
본래 이계에선 마법을 공격 용도 위주로 사용했으나, 이곳에선 그렇게 큰 힘이 필요 없기 때문에, 대부분 생활에 보조적인 데 마법이 많이 사용되었다.
‘아무래도 일반 사람들에겐 허황되게 들릴 수도 있지.’
사실 나도 반도체까진 생각하지 못했는데, 경제신문을 구독해서 매일매일 읽다 보니, 반도체 산업이 정말 중요한 거 같았다.
게다가, 이번에 대동그룹을 접수하면서 예전 아버지가 운영하던 파운드리 회사도 되찾았다.
파운드리 회사는 반도체 설계회사로부터 설계주문을 받아 대량으로 양산하는 공장이었다.
나는 자체적인 설비라인을 갖추고, 대동그룹이 가진 생산라인으로 우월한 반도체들을 찍어낼 생각이었다.
‘이대로 손 놓고 있다간 중국이나 다른 국가에 우리의 반도체 기술이 추월당할지도 모르니까.’
지금 진성전자가 메모리 부분에서 1등을 달리고 있다지만, 중국의 추격과 다른 세계적인 기업의 견제에 위태위태하고 있었다.
‘마력회로를 새겨넣은 반도체라면, 아마 지금 나오는 컴퓨터들의 사양이 확 올라갈지도 모른다.’
이건 이번 수능 때같이 밸붕 걱정 안 하고, 내가 낼 수 있는 최고 역량으로 만들어도 괜찮을 거 같았다.
‘아주 작고, 성능은 최고인 칩들을 찍어내는 거지.’
마력 메모리, 마력 CPU, 마력 그래픽카드, 마력 슈퍼컴퓨터 등등······.
마법을 이용해 제대로 활용한다면, 정말 떼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할 거 같았다.
‘그렇게 돈을 벌어서, 아리네 아버지가 추진하는 정책들을 도와주는 거지.’
지금 나라에 돈이 없어서 난리였다.
재벌들의 투자유보금을 계속 올라가기만 하고, 풀지를 않았서 경기는 얼어붙었다.
물가는 계속 오르기만했고, 사람들의 월급은 20년 넘게 제자리였다.
부익부 빈인빈의 격차는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사람들은 새로운 도전보다 안정적인 공무원 같은 자리에만 우르르 몰렸다.
‘나라가 망하면 공무원이고 뭐고 없지.’
일단 내 나라가 부강해야, 공무원들도 좋은 대우를 받고, 연금도 많이 받는 것이다.
나라가 망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리고 아까 시험시간에 생각했던 우리나라의 통일 문제에도 많은 돈이 필요할 터였다.
그래서 나는 최종환 대통령과 우리나라를 돕기 위해 겸사겸사 내가 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 큰돈을 벌어보기로 결심했다.
물론, 내게 한계란 없었지만.
“다 먹었으면 그만 일어날까요?”
“네.”
아리는 계속 젓가락질하는 나를 기다려주다가, 가방을 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이대로 헤어지지 않고, 수능 쫑파티 분위기를 내어 2차로 맥줏집에 갔다.
그곳에서 4병 정도 시키고 아리와 함께 나눠마시다가 3차는 노래방에 갔다.
나는 별로 아는 노래가 없었기에, 아리가 주로 선곡하고 노래를 불렀다.
빅마무가 부른 체념,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 스라운 아이드 걸스의 Ebracadabra 등등.
주로 2000년도에 나온 히트곡 위주로 불렀다. 내가 2007년에 배를 타러 갔다고 했으니, 일부러 나 때문에 그때의 유행곡들 위주로 불러주는 거 같았다.
게다가, 그녀가 노래까지 아주 잘 부르고, 귀엽고 아기자기하게 율동도 쳐줘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표정관리를 하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됐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크게 웃음을 내고, 물개 박수를 치곤 했다.
그리고, 대망의 하이라이트!
“텔리, 텔리, 테테테테테 텔리~ 나를 사랑한다고 날 기다려 왔다고오~”
바로 텔리였다.
빅빙의 거짓말과 함께 2007년도 최고의 히트곡이라 뽑히는 레전드 곡이었다.
아직도 많이 회자되는 것은 물론이요, 아마 100년이 지나도 사랑받는 그런 곡일 게 분명했다.
아리는 귀여운 텔리 율동까지 모두 완벽히 소화해내며, 내 입꼬리가 계속 올라가게 했다.
분홍색 플라워 원피스를 입은 아리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 예쁘고 깜찍하게 보였다.
“내가 필요하다 말해~ 말해~ 줘요~~~”
마지막엔 쥐어짜는 듯한 고성으로, 절규하듯 외치는 아리.
“필요해요~”
나는 그런 재미없는 애드립을 치고, 머쓱하게 피식 웃었다.
그렇게 아리와 함께 정말 원 없이 놀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4시간이나 지나버렸다.
저녁 5시 40분에 마쳐서, 저녁에 만리향에서 같이 밥 먹고, 저녁 후엔 맥줏집에서 한잔하고, 마지막에 노래방까지 와서 4시간을 달려버리니 벌써 시간은 새벽 1시가 되어버렸다.
“이런, 너무 늦어버렸네.”
“준혁 씨이~ 저아아지익, 멀쩌엉 해요오~~~”
아리는 혀가 베베 꼬인 말투로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대며 그렇게 웅얼거렸다. 전혀 멀쩡하지 않아 보였다.
“아리 씨가 많이 취했네.”
나도 많이 마시긴 했는데, 아리도 엄청 많이 마셨다. 만리향에서도 고량주로 살짝 한 잔 걸치고 그때부터 대리를 불렀으니 우리 둘이 이렇게 만취해도 이상한 상황은 아니었다.
“아리 씨. 집이 어디예요? 제가 데려다줄게요.”
“······.”
아리는 만취해서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이미 정신이 비몽사몽을 넘어, 아예 뻗어 있었다.
뚜, 뚜, 뚜······.
하필이면 아리 동생인 최진우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핸드폰을 꺼내 잠금을 해제하려 했지만, 비밀번호를 몰랐다.
“이거 큰일이네······.”
큰일은 큰일인데, 왜 내 입가엔 음흉한 미소가 걸리는 걸까?
나는 일단 아리를 등에 업고, 노래방 카운터로 나갔다. 그리고 계산을 하고, 밖으로 나오니 대리기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예, 오늘 하루 풀로 고용한다고 20만 원을 줬다.
“어디로 가실래요?”
“음······.”
이렇게 만취한 여자를 우리집으로 데려가기도 그렇고······.
“일단 가까운 곳에 좀 쉴만한 곳이······ 있을까요······?”
“흐흐흐. 많죠.”
대리기사는 내 말을 이상하게 알아듣고, 곧바로 흉측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다 알고 있어 임마. 형이 좋은 곳으로 데려다줄게’ 하는 표정이었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가 운전해주는 대로 레드와 핑크빛이 조화된 아름답고 야시시한 모텔 앞에 도착했다.
20층 이상은 되어 보이는, 꽤 큰 모텔이었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차는 주차장에 주차해놓고, 나는 아리를 업고 방을 하나 빌렸다. 아리의 만취한 얼굴을 본 카운터의 중년 사장은, 입맛을 쩍쩍 다시며 부러운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