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God-Killing Archmage RAW novel - Chapter 65
64화
“….”
아이젠은 멍한 얼굴로 현석을 바라봤다.
예상치 못한 조우에, 그의 머릿속에 아카르덴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젠
그는 아카르덴 북부 지역에서 이름 좀 날리던 대마법사였다.
특히, 자신의 특기인 ‘저주’를 ‘불’과 융합하여 새로운 계열의 마법인 ‘저주의 불’을 창안했었다.
단순히 적을 태우는 것뿐만이 아니라 끔찍한 후유증을 안겨주는 마법.
‘더 이상 북부가 몬스터와 추위로 고통받는 일은 없을 거다!’
저주의 불이 완성되고 그가 외쳤던 말이었다.
당시의 북부는 몬스터와 추위를 상대로 수백 년 동안 싸워왔으니까.
굳이 저주의 불을 창안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아이젠 덕분에 북부는 빠르게 안정을 찾아 나갈 수 있었다.
모두가 아이젠을 찬양했고, 천재라 칭송했다.
‘드디어 내가 정점에 이르렀다.’
아이젠 또한 스스로를 뿌듯하게 여겼다.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운 자신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다.
‘크롬헬이라고 들어봤냐?’
‘당연히 들어봤지. 지금 대륙에서 크롬헬 모르면 간첩인데.’
얼마 있지 않아 ‘크롬헬’이라는 마법사가 신성처럼 나타난 탓이었다.
세간에 알려지기를 그는 말 그대로 천재(天才)였다.
다루지 못하는 마법이 없었고.
대륙의 모든 지식을 섭렵했을 정도로 박학다식했다.
마나는 또 어찌나 정순하고 막대한 양이던지, 현존하는 마법의 원로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문자 그대로 하늘이 점지해 내려준 재능을 가진 자.
‘근데 그게 말이 되냐?’
‘어떤 게?’
‘혼자서 드래곤 군단을 사냥한 거 말이야. 아무리 뛰어나도 그게 말이 되나 싶은데….’
‘에이. 그렇게 따지면 마법사인 크롬헬이 오우거나 오크들이랑 근접전으로 싸워서 이긴 게 더 말이 안 되지.’
‘그런가?’
콰앙!
그리고 그때 한 아이가 다급히 술집으로 들어오며 외쳤다.
‘야야야야 그거 들었냐? 이번에 크롬헬이 바다에 잠들어있던 고대의 악룡을 잡았대!’
그리고 크롬헬이 하루가 멀다고 세워대는 업적에, 아이젠은 빠른 속도로 북부에 잊혀 갔다.
그나마 입에 오를 때가 있다면.
‘그런데 아이젠 님이랑 비교하면 어떠려나.’
‘당연히 크롬헬이지. 북부까지 소문이 뻗은 걸 보면 모르겠냐?’
‘하긴. 북부에서 유명한 거랑 대륙에서 유명한 거랑 천지 차이니까.’
‘아마 아무리 아이젠 님이라 해도 크롬헬한텐 마법 하나에 끝일 걸?’
오직 크롬헬과 비교됐을 때만이었다.
‘빌어먹을 자식들….’
홀로 있는 연구실.
콰앙!
아이젠은 신경질적으로 책상을 걷어찼다.
지금껏 자신이 최고라 생각하고 있었건만.
얼굴도 모르는 마법사가 설치니 배알이 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북부의 수호자란 말이다…!’
그런데 대륙의 수호자이니 뭐니 하며 자신을 순식간에 그저 스쳐 지나가는 마법사로 만들어버리다니.
‘아무래도….’
얼굴을 한 번 봐야 할 듯싶었다.
그리고 그 기회는 금방 찾아왔다.
모종의 이유로 대륙 전체의 몬스터들이 갑자기 날뛰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에 크롬헬은.
[대륙을 지킬 수호자들을 모집한다.자격은 내가 보고 판단할 것.
나다 싶으면 일단 튀어와라. 장소는….]
따위의 공문을 대륙 전체로 퍼뜨렸다.
솔직히 말해 아이젠은 공문에서 역력히 드러나는 건방짐에 그냥 찢어버릴까 하는 충동이 일었지만.
꾹 참고 크롬헬을 향해 찾아갔다.
그리고 조건에 부합했는지, 아이젠은 수호자의 자격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당연히 그래야지. 내가 누구인데.’
아이젠은 그것을 당연히 여겼지만 그 뿌듯함 또한 잠시였다.
자신이… 수호자 중에서 가장 뒤처졌기 때문이었다.
북부의 수호자라고 자부했던 것이 창피할 정도로 세상에 뛰어난 이들은 많았다.
그리고 그중에서 특히 크롬헬은….
‘…넘을 수 없다.’
생전 처음으로 그에게 ‘벽’의 존재를 여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자신 또한 신동이다 천재다 하며 자랐지만….
크롬헬이 보여준 모습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아마 평생을 넘을 수 없을 거야.’
그의 활약을 볼 때마다 무력감이 들 정도로.
그리고 크롬헬이 세상을 불로 정화시키겠다던 용신 하프록스마저 죽였을 무렵엔.
‘불공평해. 불공평해. 불공평하다고…!’
크롬헬에 대한 악감정은 극에 달을 지경이었다.
신기하게도….
그건 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이젠.’
게일이 다가왔다.
‘너도 함께할 텐가?’
‘무엇을?’
‘크롬헬을 대륙에서 지워버리는 일.’
동료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아이젠과 비슷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천신을 죽였을 때.
그들은 그동안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 던졌다.
크롬헬를 죽이고 놈의 힘의 원천이 되는 심장을 적출했다.
모두가.
공평하게 힘을 나눠 가질 수 있도록.
“부, 분명 그랬는데… 크롬헬… 네가 어찌….”
그런데 그가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었다.
아이젠은 너무 놀라,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이리도 멀쩡히 살아있다니…!
“분명… 분명 심장이 뽑혀 죽는 걸 내 두 눈 똑똑히 봤는데….”
순간 자신이 착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아니었다.
느껴지는 분위기,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 여유로운 자세 등.
어느 하나 과거를 떠올리지 않게 하는 게 없었다.
리중쉰이 만든 키메라 따위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위압감이 절로 느껴졌다.
“그래 심장이 뽑혀 죽었었지.”
“그런데 대체 왜 네가 여기 있는 것이냐! 어떻게 여기에 온 것이야!”
현석의 대답에 아이젠이 분개하듯 눈을 부릅뜨며 외쳤다.
마치 현실을 부정하는 모습.
하지만 현석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한 마디 툭 뱉었다.
“어떻게 오긴. 배 타고 왔지.”
“….”
아이젠의 동공이 일순간 흔들렸다.
태연하게 말 같지도 않는 말을 내뱉는 것 또한 과거와 완전히 똑같았다.
동시에, 아이젠은 지금껏 자신이 받았던 방해가 전부 현석으로 비롯됐단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
“너였구나….”
현석이 아니고서야 자신을 이토록 집요하게 방해할 사람은 없었으니까.
“안배를 둔 던전도, 속리산도… 전부 네놈이었어.”
“그걸 이제야 눈치챘어? 그러니까 네가 예전부터 뭘 해도 안 됐던 거야.”
“시끄럽다 크롬헬. 아직도 내가 네 발밑에 있던 아이젠으로 보이나?”
“….”
현석은 아무 말 없이 여전히 선수(船首)에 매달려 있는 아이젠을 굽어봤다.
“…날 그렇게 오만한 눈으로 내려보지 마라!”
아이젠은 그렇게 말하며 현석을 향해 화염을 쐈다.
저주의 기운이 물씬 풍기는 화염이 날아왔다.
현석은 뒤로 멀찍이 물러나며 어렵지 않게 공격을 피해냈다.
그리고 다시 앞을 봤을 때.
아이젠은 어느덧 선박 위로 올라와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건방진 녀석.”
아이젠이 현석을 노려보며 읊조렸다.
촤아아아-!
판옥선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바다는 해일이라도 온 듯 크게 넘실거리는 중이었고, 하늘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그렇다고 어둡거나 하진 않았다.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빛기둥 덕분이었다.
빛기둥은 갑판 위까지 등대처럼 환하게 비췄다.
“메이… 린?”
그리고 그 순간.
갑판이 밝아진 덕분에, 차오린은 아이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절망감으로 서서히 무너져내렸다.
외형은 분명 자신의 동생의 것이었지만, 그곳에서부터 풍기는 분위기는 완전히 다른 사람의 것이었으니까.
“아, 차오린. 너도 여기 있었구나. 태워죽일 배신자 녀석.”
아이젠은 차오린을 보고는 빙긋 웃었다.
“다 죽어가는 동생을 기껏 살려줬더니 감히 내 뒤통수를 쳐?”
“재밌네? 아직도 내가 그런 거짓말을 믿을 거라 생각하는 거야?”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지만, 차오린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는 중이었다.
눈앞에 있는 건 분명 자신이 그토록 죽이고자 했던 아이젠임과 동시에 자신의 동생이었으니까.
“많이 컸군. 나한테 그런 말도 하고. 그런데… 말은 그렇게 해도 네가 날 어찌할 순 없을 것 같은데.”
아이젠의 시선이 차오린의 손으로 슬쩍 옮겨졌다.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젠장….”
이유는 다름이 아니었다.
아이젠의 말대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으니까.
어떻게 동생의 몸을 공격한단 말인가?
지금 당장만 하더라도 혹여 아이젠이 동생의 몸에 무슨 짓을 할까 노심초사한 상황인데.
“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현석은 그런 차오린의 속마음을 눈치채곤 말했다.
“…뭐?”
“어차피 공격할 수 있다고 해도 육체에 아무런 피해도 없이 공격하는 법도 모르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럼 이번에도 내 말 들어. 난 할 수 있으니까.”
“할 수 있다고?”
대체 어떻게? 라는 의문이 입속에 맴돌았지만, 차오린은 그 말을 삼켰다.
지금껏 현석의 행보를 보면 결코 거짓말은 아닐 테니까.
“…믿어도 되는 거지?”
“믿지 않으면 할 수 있는 건 있고?”
“그렇긴 하지.”
차오린이 납득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별일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있어. 금방 끝날 테니까.”
“하! 허세가 많이 늘었구나 크롬헬.”
아이젠이 크게 헛웃음을 들이킨 건 그때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육안으로 봤을 때 현석의 무력이 과거와 다르게 많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름 힘을 복구한 것 같긴 하다만… 과거에 비하면 정말이지 안쓰러울 정도로 약해졌어.”
너무나 확실하게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 정도로.
‘여전히 어떻게 부활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차라리 잘 됐군.’
다른 누구도 아닌 평생 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벽, ‘크롬헬’을 직접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 줄이야.
‘과거였다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을 일이었지만.’
지금만큼은 달랐다.
충분히 가능해 보였다.
물론 크롬헬이 온전한 상태인 것은 아니긴 하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크롬헬은… 죽였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는 존재였으니까.
화륵!
아이젠의 그렇게 생각하며 마나를 예열했다.
그의 등 뒤로 수십 개의 도깨비불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야,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구나?”
현석도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옛날엔 나 무서워서 쳐다보지도 못했던 아이젠이 내 앞에서 마나도 데우고 말이야.”
“….”
“그러고 보니 옛날에도 이러다가 호되게 처맞지 않았었나?”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분명 말했을 텐데?”
아이젠이 미간을 좁혔다.
화르르르르-!
도깨비불이 빠르게 회전했다.
“보여주마 크롬헬. 너와 나의 격차가 얼마나 벌어졌는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아이젠이 기운을 터뜨렸다.
사방으로 검은 불이 튀었다.
불들은 바닥에서 타오르다, 이내 사람의 손으로 그 외형이 변했다.
“….”
“….”
선박 위를 가득 채운 화염으로 뒤덮인 수백 개의 손이 꼬물거리며 일어났다.
그 기괴한 풍경에 현석과 차오린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저게 뭐야?”
“‘저주의 손’. 스치기라도 하면 각종 저주에 걸릴 수 있어.”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까득, 까드드드득!
카드드드득!
배 아래에서 무언가 기어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에단은 곧장 날아올라 배를 살피곤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현석. 또 다른 손들과 구울들이다.
짧은 하체에 비해 비약적으로 큰 상체를 지닌 괴물 구울.
놈들 또한 손처럼 불에 뒤덮인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포위된 상황.
“아무래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을 것 같은데?”
차오린은 짐짓 긴장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그러게.”
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발키리를 소환했다.
그리곤 차오린과 에단, 그리고 발키리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저것들 좀 처리하고 있어 줘.”
“그러지.”
-알겠다 현석.
나머지 인원들이 곧장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에단의 몸이 맹렬하게 타오르고, 차오린은 선박 위로 적당한 크기의 화염 뱀 두 마리를 소환해냈다.
발키리들 또한 날개를 활짝 펼치며 창을 쥐었다.
화륵!
뒤이어 현석은 파이어 랜스를 소환해 쥐었다.
“그 창도 오랜만이군.”
아이젠이 현석을 노려보며 말했다.
꾸득, 꾸드드득!
그런 그의 등 뒤에서 마나가 폭주하며 끔찍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후우… 누군가에게 이 모습을 보이는 건 처음인데.”
잠시 뒤.
그의 등 뒤에서 거대한 팔 한 쌍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주의 팔.
일전에 소환한 손들처럼 검은 불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투둑, 툭….
거대한 팔에서 검은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배가 신물이어서 망정이지, 만일 평범한 배였다면 진작에 녹거나 반파됐을 것이었다.
“들어와라 크롬헬. 내 친히 옛 전우에게 선공권을 넘겨주지.”
“그렇게 말한다면야.”
현석은 어깨를 으쓱이더니.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곤 아이젠을 향해 돌진했다.
콰아아아앙-!
곧바로 거대한 폭음이 선박 위에서 터져 나왔다.
신을 죽인 대마도사의 귀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