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빙공은 아무것도 아니다.
어쨌든 잘 잤다.
.
.
.
“뭘 그렇게 열심히 보십니까?”
나는 왼손에 월영무정공을, 오른손에는 젓가락을 쥐고 있었다.
차성태의 물음에 대꾸했다.
“뭐라고?”
“뭘 그렇게 열심히 보시나 해서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콧구멍으로 들어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차성태의 말에 간략하게 대꾸했다.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왜 그렇게 열심히…….”
나는 서책을 내려놓은 다음에 밥에 집중했다.
“밥 먹자.”
대부분의 수하들은 패검회를 수습하느라 떠난 상태. 흑묘방에는 말단 무인들과 차성태, 호연청, 벽 총관 정도가 있었다.
차성태가 물었다.
“그거 제가 봐도 됩니까?”
“안 돼.”
서책에 무슨 마성이라도 깃든 것일까.
나는 내용을 숙지한 다음에 서책을 불태울 생각이다. 모용백까지 힘들어했을 정도였으니 이 책에는 확실히 문제가 많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문제가 많은 인간이라서 이따위 실연당한 여인의 일기에 흔들릴 사람이 아니다.
애초에 마도에는 이런 인간이 많다. 당장 내가 죽이려는 교주만 해도 마도대종사 위령하와 다를 바 없는 말종이기 때문이다.
위령하는 곤륜산에 있었다는 백월궁(白月宮)의 주인으로 실존 인물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곤륜파에게 멸문당한 세력인데 이후 곤륜파는 백월궁을 마교로 선언했다.
싹 죽이고 나서 ‘그놈들은 마교였다.’고 하는 행태는 솔직히 역겨운 일이다. 백도가 종종 역겨운 짓을 할 때가 있는데 승리하고 나서 상대를 쓰레기로 만드는 방식이 바로 그렇다.
어쨌든 중원에서 멀리 떨어진 청해의 서쪽에서 발생한 일이었으니 중원에서는 진위를 가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멸문했는데 시시비비를 어찌 가린다는 말인가.
그 억울함을 고스란히 가진 생존자가 있었다면…….
그런 자가 태어날 때부터 마도의 길을 걷게 되는 셈이다.
고로, 백도가 위선자의 길을 걸을수록 길게 보면 그 피해는 백도가 고스란히 입게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곤륜의 개파조사는 과거에 천하제일을 다투던 고수로 중원으로 넘어와 무림맹주 자리까지 앉았던 인물이다.
무림맹주 자리를 내려놓고 다시 곤륜으로 돌아갈 시점부터.
청해제일검파라는 칭호는 곤륜파의 것이 되었다.
청해는 무척 드넓은 강호여서 수많은 백도, 마도, 흑도가 난잡하게 얽혀 있으나 여전히 제일 강대한 세력은 저 곤륜파다.
나머지 세력이 총연합을 해도 곤륜파를 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심지어 이 월영무정공을 대성한 마도대종사도 곤륜을 넘지 못했으니 곤륜파의 강대함은 나조차도 불쾌할 지경이다.
나중에 내가 천하의 고수들과 자웅을 겨룰 때.
곤륜파는 어떤 식으로든 등장할 것이다. 이놈들도 목표가 늘 천하제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그 천하제일이라는 칭호를 개인과 단체 모두 빼앗긴 지금 시대에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
.
.
나는 밥을 먹으면서 월영무정공을 한 차례 독파하고, 매화나무 아래에서 다시 한번 정독했다. 잠시 후에 상념에 잠겼다가 세 번째로 정독을 한 다음에 서책을 미련 없이 염계로 불태웠다.
이로써 월영무정공은 사라졌다.
위령하가 생존해 있고, 피해자들의 가족이 여전히 고통스러워한다면.
언젠가 내가 위령하를 찾아가서 죽였을 것이나, 어쨌든 위령하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무슨 인연인지는 몰라도 월영무정공은 내가 익히게 되었다.
나는 위령하의 혼령을 생각하면서 덤덤한 인사를 건넸다.
‘비록 복수를 위해 만들어진 무공이지만 내가 향후 위선자들을 때려잡으면서 무공을 배우게 해준 것에 대해 답례를 하겠다. 아마도 아름다웠을…… 마도대종사 위령하 선배. 듣고 있나?’
내가 귀신과 소통하는 재주는 없었기 때문에 이 말도 안 되는 상념은 곧장 없앴다.
어쨌든 나는 월영무정공을 내 것으로 만든 다음에 마두와 위선자를 죽여서 죽은 자들의 넋을 기릴 생각이다.
나는 잠시 흩날리는 매화를 바라봤다.
월영무정공에 입문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만에 하나라도 일위도강이 기습하면 곤란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어나서 대청으로 들어갔다.
“차 총관.”
“예, 문주님.”
“따라와.”
“예.”
나는 가장 넓은 방의 중앙에서 가부좌를 튼 다음에 차성태에게 말했다.
“새로운 무공에 입문하려는데 시간이 얼마나 흐를지 모르겠다. 중요한 순간이야.”
차성태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음.”
“네가 호위 서라.”
“바깥에서 설까요?”
“아니. 이곳에서. 변고가 발생하면 네가 알아서 대처해라.”
“알겠습니다.”
나는 눈을 감은 다음에 월영무정공에 입문하는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입문 과정은 짧을 수도 있고 길어질 수도 있다. 물론 도중에 주화입마가 올 수도 있다.
만약 월영무정공이 주화입마를 일으킨다면 나는 미련 없이 이 무공을 포기한 다음에 백응지로 뛰어가서 광명좌사를 죽을 때까지 팰 것이다.
입문 과정은 간단하다.
월영무정공은 힘을 끌어내는 경로가 금구소요공과 다르다.
이것은 내가 정한 게 아니고 월영무정공을 만든 이가 정한 경로다. 처음에는 금구소요공의 진기로 경로를 탐사한 다음에 어떤 경우에도 빠르게 오갈 수 있도록 주요 거점에 지부(支部)를 설립한다.
지부는 일종의 파발(擺撥)이다.
이곳을 드나드는 진기는 파발꾼이다.
나는 파발을 설치하는 사전작업을 빠르게 마쳤다. 다음에 할 일은 논두렁에 구멍을 뚫는 일과 흡사하다.
이 부분이 약간 어렵다.
극양의 기운으로 천옥을 두들겨서 구멍을 뚫어야 한다. 그다음에 미리 설립해 둔 지부에 극음의 기운을 이끌어서 순환시키면 일주천이 끝난다. 이 과정을 매끄럽게 연결해야 극음의 기운이 단전에 쌓이고, 내가 원할 때 장력이나 지법에 한랭한 힘을 담을 수 있다.
본래는 무척 어려운 과정이지만 전생에도 이미 고생했던 과정의 변형인지라 큰 어려움 없이 탐사, 설립, 물꼬 트기, 예행, 일주천의 과정을 연달아 진행했다.
나는 일주천을 마치자마자 욕심을 내려놓고 눈을 떴다.
차성태가 놀란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벌써 끝나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새로운 무공을 익히신 겁니까?”
“아마도.”
“보여주시죠.”
“그럴까.”
나는 품에서 섬광비수를 꺼냈다.
월영무정공은 크게 삼 단계로 나뉜다.
잔월(殘月), 현월(弦月), 만월(滿月).
이는 한랭한 기운과 냉기의 정도를 구분하는 말이다.
당연히 입문을 마친 나는 잔월의 경지에 위치한 상태. 나도 이것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섬광비수에 잔월냉기(殘月冷氣)를 주입했다.
칼날에 희미한 냉기가 휩싸이더니 희뿌연 서리가 칼끝에 내려앉았다.
차성태가 놀란 눈빛으로 물었다.
“빙공이에요?”
“응.”
“아까 책 어딨어요?”
“불태웠어.”
“문주님, 저는 안 가르쳐주세요?”
“성태야.”
“예.”
“이것은 너무 어려운 영역의 무공이야.”
“아니, 눈 감고 있다가 뜨니까 배웠다면서요.”
나는 진중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거짓말이 아니라 눈을 감고 있었던 찰나가 영원처럼 느껴졌어.”
내 개소리를 예감한 차성태가 빠르게 포기했다.
“안 배울게요. 알겠습니다.”
“멋으로 따지면 검객이 강호제일이다. 검법이나 혹독하게 수련해. 다른데 한눈팔지 말고. 검법 익혔다가 빙공 익혔다가 뭐 하나 제대로 못 해서 얻다 쓸래?”
“와…….”
“왜?”
“세상 진지한 마음가짐으로 호법을 섰는데 갑자기 이렇게 갈군다고요?”
“성태야. 내가 하오문을 지키기 위해, 일하는 자들을 위해, 강호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우리 일양현을 위해 주화입마의 공포를 무릅쓰고, 모용의가의 모용백 선생과 밤낮으로 연구해서 얻은 빙공이야. 내가 개인의 사리사욕, 개인의 욕망, 개인의 허영심을 위해서 이 무공을 익혔을까?”
차성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말을 말자. 못난 놈.”
“농담이죠. 어쨌든 부럽고 축하드립니다. 얼마나 더 강해진 걸까요?”
“이제 시작이야.”
말 그대로다.
나는 빙공을 사용해본 적이 없다. 대체 이것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조합의 수가 너무 무궁무진해서 난감할 정도였다. 일단 일주천을 계속 반복해서 잔월의 경지를 현월로 올려놓을 필요도 있었다.
어느 정도 금구소요공과 균형을 맞춰야 실전에서도 빛을 볼 테니까.
어쨌든 한 손에는 불길을, 한 손에는 냉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잠시 차성태를 내보낸 다음에 홀로 생각에 잠겼다.
‘만약…….’
금구소요공과 월영무정공을 조화롭게 사용하게 되어서.
마치 처음부터 하나의 무공이었던 것처럼 펼치게 되면.
이것은 대체 어떤 무공일까.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애초에 천옥 자체가 음양이 조화로운 하나의 개체였기 때문이다.
금구소요공은 극양의 기를 다루기 때문에 일(日)이라 규정하고.
월영무정공은 극음의 기를 다루기 때문에 월(月)이라 규정하면.
두 가지를 양손에 각기 펼치는 것은 일월공(日月功)이라 부를 수 있다. 따라서 내가 수련해야 할 것은 월영무정공의 경지를 높여 실전에서 일월공을 사용해보는 것이다.
이를 완성하면 비로소 일월신공(日月神功)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도 될 것이다.
하지만…….
두 가지 힘을 각각 사용하지 않고.
해와 달이 교차하는 순간처럼 동시에 사용하면 어떻게 될까.
상상은 자유로운 것이기에 나는 마음껏 자하객잔에서 바라보던 노을을 떠올렸다.
해님이 가라앉고 달님이 떠올라서 교대하는 짧은 시간…….
양과 음이 공존해서 만들어내는 자줏빛이 천하를 뒤덮을 때.
일월신공과는 또 다른 경지에 다다른 무공.
당연하게도 그것은 자하신공(紫霞神功)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모용백에게 했던 말은 거짓이 아니다.
빙공은 아무것도 아니다.
자하신공에 비하면…….
나는 바깥으로 나가, 흑묘방에서 가장 높은 지붕 위에 가부좌를 틀고 시시각각 색이 변하고 있는 천하를 주시했다.
내가 비록 성격이 좋지 않고.
광증에 시달리고 있으며.
마음도 하루에 수십 번이 바뀌어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사내이긴 하나 세상사 대부분의 일은 어차피 일신의 무공으로 결판이 난다.
하오문을 아무리 크게 키운다고 한들…….
어느 날 내가 나보다 강한 고수에게 죽으면 하오문도 끝장이다.
정말 밑바닥 인생만 남아 있는 문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일신의 무력이 천하를 뒤덮을 정도로 강해지면 영향력이라는 것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오래 살아남아…….
제자를 협객으로 키우고.
하오문을 퍼뜨리고.
그 제자가 다시 협객을 키우는 문파를 만들면.
내 영향력은 강호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강호의 가장 밑바닥에서 악인을 쓸어 담아 불구덩이로 이끌고.
내 제자는 강호에서 가장 빛나는 위치에 올라 많은 이들이 협객을 동경하게끔 만든다면…….
내가 행하는 일 또한 빛과 어둠처럼 조화롭게 맞물릴 것이다.
하늘이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줬으니.
포부를 크게 가져야 한다.
내가 품은 포부가 이처럼 실로 크기 때문에…….
점소이가 천하제일이 되는 것처럼 지극히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내가 하늘을 바라보면서 온갖 상념에 빠져 있자…….
자줏빛 노을에 물든 천하가 천천히 나를 마중 나오고 있었다.
나는 가슴 속에 자하신공을 품은 채로 다가오는 천하를 맞이했다.
오늘은 내 안에 깃든 광기를 그 자체로 인정하는 날.
내가 품고 있는 미친 짓은 제정신으로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오늘따라 내 마음은 실로 평온했다.
내 이름은 자하(紫霞).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내 존재 자체가 천하(天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