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133
133화. 그래서 정적에 휩싸였다.
술을 퍼마신 다음 날.
나는 백응지로 떠나고 있는 검마와 색마 그리고 행장을 챙긴 사마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길지 않았던 동행이 검마와 색마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모를 일이다.
검마와 색마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두 사람에게 최선을 다했다.
돼지통뼈를 먹였고, 매화루의 방을 내줬으며, 두강주를 나눠 마셨다.
고향으로 초대했고, 내 병장기를 만들고 있는 철방을 보여줬으며, 공사 중인 자하객잔까지 보여줬다.
내가 두 사람을 적으로 대했다면 이 중의 한 가지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두 사람의 인생이 변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대했다.
검마가 어느 날 황량한 곳을 배회하다가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길 바라고 있고.
색마가 공적으로 몰려서 마교로 도주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다.
이것은 내 바람이다.
하지만 각자의 삶이 있다.
이제 다시 흩어져서 무공을 수련하고 각자에게 닥치는 삶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사이에 갑자기 검마가 마교에게 당하고, 색마가 사고를 쳐서 전생과 비슷하게 흘러간다면 그것 또한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이다.
문득 언덕길에서 곧 사라질 것 같았던 검마, 색마, 사마비가 걸음을 멈추더니 매화루의 창가에서 쳐다보고 있는 나를 돌아봤다.
나는 팔짱을 낀 채로 검마와 눈빛을 교환했다.
“…….”
그 와중에 색마는 코에 끼어뒀던 천 쪼가리를 어디론가 집어던졌다.
사마비가 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나는 어색하게 손을 한 번 들었다.
“……또 봅시다.”
검마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돌아서서 이내 제자와 사마비를 데리고 언덕에서 사라졌다.
이제 색마 놈은 다시 빙공을 수련하고.
검마는 목검을 수련할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고 보면 저 개인적인 성향을 지닌 검마도 내게 조언을 남겼다. 적을 쫓다가 수련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지적. 그것은 옳은 말이다.
색마 놈도 나름 인내력을 발휘했다.
비록 우리가 서로에게 흙을 먹이고, 머리끄덩이를 잡고, 주먹과 뺨따귀를 사이좋게 교환하긴 했으나 중요한 것은 추잡하게 싸우는 와중에도 끝내 내공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자에 미치고, 광증에 시달리고, 심마를 극복하는 와중에도…….
약속은 약속이다.
나는 사마비에게 일양현 업무에 대한 인수인계를 받은 혁련홍을 재차 다양한 말로 갈구고 협박한 다음에 오랜만에 일양현을 한 바퀴 순찰했다.
사람들이 별문제 없이 평상시와 다름이 없는 일상을 시작하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다음에 조용히 일양현을 떠났다.
하오문주가 어디에 머물고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하오문도들이 자세히 알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
나는 흑묘방의 정문을 발로 차서 활짝 연 다음에 기습을 펼치듯이 들어섰다.
흑묘방의 수하들이 전부 대가리를 땅에 박은 채로 뒷짐을 지고 있었다.
“…….”
소군평이 화들짝 놀라면서 내게 다가왔다.
“오셨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수하들을 바라봤다. 한 놈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내게 포권을 취했다.
“방주님, 오셨습니까!”
그러자 주춤거리던 놈들이 전부 벌떡 일어나더니 일제히 내게 포권을 취했다.
“방주님, 오셨습니까!”
“어, 그래.”
나는 소군평에게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왜 다들 대가리를 박고 있나.”
소군평이 대답했다.
“예, 방주님. 요새 요령 피는 놈들이 늘어나서 특별히 이마를 단련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진중한 어조로 대꾸했다.
“좋았어. 이마 단련은 강호인들에게 필수다.”
“그렇습니다.”
“딱밤을 방어할 때도 효과적이지.”
“맞습니다.”
나는 수하들에게 말했다.
“강철의 이마가 될 수 있도록 대가리 박아라.”
“예!”
수하들이 다시 대가리를 박는 동안에 소군평을 지나치면서 말했다.
“수고가 많다.”
소군평이 씨익 웃으면서 대꾸했다.
“예.”
외원을 통과해서 내원에 들어서자, 한창 비무가 진행 중이었다. 십이신장 사제들과 호연청이 둘러앉아서 비무를 구경하고. 그 중앙에서는 차성태가 누군가에게 신나게 처맞고 있었다.
차성태는 머리에 뜬금없이 흰 띠를 두르고 있었는데, 검을 휘두르다가 어김없이 부채에 맞아서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보아하니 백유 사제가 차성태를 신나게 두들겨 패는 상황.
잠시 후에 차성태가 부채에 이마를 정통으로 가격당하더니 엉덩방아를 찧었다.
백유가 가장 먼저 나를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
“대사형, 오셨습니까.”
나는 사제들과 호연청의 인사를 받은 다음에 주저앉아 있는 차성태를 노려봤다.
“성태야, 살아 있는 게 참 기특하구나.”
차성태가 자신의 이마를 만지면서 내게 말했다.
“오셨습니까. 문주님.”
차성태의 이마에서 피가 번지더니 흰 띠가 점점 붉게 물들고 있었다. 나는 저절로 백유의 상태를 확인했다.
백유는 놀랍게도 이마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백유에게 말했다.
“닭 사제, 그래도 차성태를 패려면 땀이 좀 나는 모양이지?”
백유가 멋쩍게 웃으면서 이마의 땀을 닦았다.
“아니요? 더워서 흘렸는데요.”
“덥긴 하네.”
“예.”
나는 지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차성태에게 손을 내밀었다. 차성태가 내 손을 붙잡고서 일어났다.
나는 내원에 있는 자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다들 잘 있었나?”
“예.”
“왜 이렇게 오랜만에 보는 거 같지?”
차성태가 대꾸했다.
“실제로 오랜만에 봐서 그렇습니다.”
나는 차성태의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바라보면서 대꾸했다.
“못 본 사이에 현명해졌구나.”
“감사합니다.”
“피 좀 닦아라.”
“예.”
“대가리 깨진 거 아니냐?”
“깨지진 않았습니다.”
“좋았어. 계속하도록.”
나는 그제야 대청에 들어섰다가 문득 걸음을 멈췄다. 대청에 배치된 기다란 탁자 위가 매우 어지러웠다.
서류로 진법을 배치한 것 같은 엉망진창의 광경.
벽 총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다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허리를 붙잡았다.
“아이고, 허리가…….”
“…….”
“오, 오셨습니까.”
“벽 총관, 숨넘어가겠네. 천천히 좀 일어나지.”
“예.”
나는 탁자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서류를 보면서 상석으로 이동했다.
“이야, 이건 뭐 서류로 된 진법인가? 제갈량이 와도 갇히겠는데?”
“하하… 과찬이십니다.”
“칭찬은 아닌데.”
“예.”
사실 이것이 전부 벽 총관의 그림이었다면 내게 주화입마가 찾아왔을 것이나 다행히 전부 서류였다.
내가 서류를 잠시 살펴보니 대부분 금전 출납이었다.
“금전 출납을 왜 이렇게 어지럽게 해놨어?”
벽 총관이 대꾸했다.
“아, 이것은 금전 출납 양식을 연습하는 중입니다. 그러니까 문주님의 세력이 많지 않습니까? 한꺼번에 정리하는 게 어려워서…….”
“요약하면?”
“그러니까 윗줄에 흑묘방, 매화루, 시화루, 흑선보, 패검회 이런 항목을 적고, 좌측 선에는 먼저 순서를 적고 중앙에는 금액을 적어넣는 것이지요. 설명을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오, 그러니까 효율적으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금전 출납 양식을 연구해서 작성해봤다 이 말이군.”
벽 총관이 기쁜 표정으로 대꾸했다.
“맞습니다. 다들 제가 무엇을 하는지 이해를 못 했는데 한 번에 알아봐 주시는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때려 맞혔네.’
벽 총관이 설명했다.
“이 양식을 세 개 정도 완성해서 각 지부의 부총관들에게 전달할 생각입니다.”
“부총관이 누구인가?”
“그것은 문주님이 차차 정해주셔야지요.”
“그렇군. 이번에 혈야궁이라는 세력에 다녀왔는데 말이야.”
“예.”
“거기 장로의 나이가 백십일 세더라고.”
“엄청난 노인이로군요.”
나는 탁자를 두드렸다.
“벽 총관도 혼자 일하지 말고. 제자를 가르치도록. 쉬운 업무들은 나눠줘야 오래 일하지. 이게 다 뭐 하는 짓이야? 탁자를 보기만 해도 진법에 빠지는 기분인데. 싹 다 치우도록.”
“알겠습니다.”
나는 안쪽을 향해 외쳤다.
“손 부인!”
잠시 후에 우당탕 소리가 들리면서 손 부인이 달려 나왔다.
“문주님, 오셨어요?”
“우리 손 소소, 손 부인.”
“예.”
“오늘부로 벽 총관의 제자로 임명한다.”
“예?”
“닥쳐라. 금전 출납에 관한 일체의 업무를 배워놓도록. 백 일 후에 수석 부총관에 임명할 테니까 똑바로 배워 놔.”
“알겠습니다.”
“이것 좀 같이 정리해라.”
나는 탁자를 치우는 두 사람에게 말했다.
“두 사람이 나중에 각 지부의 총관들을 교육할 수 있도록 해.”
“예.”
문득 활짝 열어놓은 대청 바깥을 바라보니 차성태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경공을 펼쳐서 날아가는 게 아니라, 처맞아서 날아가는 모양새였다.
“아이고, 열심히 산다. 열심히 살아.”
벽 총관이 서류를 정리하면서 내게 핵심만 보고했다.
“패검회가 쌓아둔 재산이 어마어마했습니다. 홍신과 금해 신장이 고생해서 운반하다가 금해 신장 의견에 따라서 만금전장(萬金錢莊)에 무사히 보관했습니다.”
“만금전장?”
“예.”
“왜 하필이면 만금전장이냐…….”
“아십니까?”
“무림맹에게 보호받고 있는 전장 아니야? 자금 출처도 캐묻고 절차가 복잡했을 텐데?”
“맞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안전한 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금해 신장이 자금을 맡길 때 하오문임을 밝히고 문주님의 성함을 썼는데. 놀랍게도 만금전장이 무림맹에 정보 요청을 했다가 사흘 만에 바로 승낙이 떨어져서 맡기게 되었습니다. 거절당했으면 또 옮기느라 고생했을 겁니다.”
“무림맹이 바로 승낙했다고?”
“예.”
“임 맹주의 일 처리가 그렇게 꼼꼼한가?”
벽 총관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맹주님을 아세요?”
“이번에 잠깐 만났어.”
“무림맹에 가셨었어요?”
“이야기하면 길어지니까 넘어가자고.”
“예.”
“어쨌든 하오문이라는 이름이 무림맹에 보고가 되었다 이 말이로군.”
새삼스럽게 무림공적에서 한 발자국 멀어진 느낌이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살짝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사고를 치는 것은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니 아쉬워도 어쩔 수 없었다.
서류를 얼추 다 정리한 벽 총관이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이번에 들어보니 무림맹이 대대적으로 맹원을 모으는 모양입니다. 비무 대회도 열고, 특채도 있고, 공적들에 대한 자수 권고를 하는 방문도 이곳저곳에 붙였습니다. 특히 비무 대회의 성적에 따라서 무림맹이 차출하는 형식으로 맹원과 외부맹원(外部盟員)을 구한다고 하는데 문주님은 생각이 없으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없어.”
“예.”
벽 총관이 씨익 웃으면서 나를 바라봤다.
“왜 웃어?”
“문주님, 그렇다면 문도들을 보내는 건 어떻겠습니까?”
“음?”
“십이신장 실력이면 한두 명 정도 비무를 통해 무림맹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무림맹에 간자(間者)를 집어넣자는 말처럼 들리는데? 우리가 그럴 필요가 있나?”
벽 총관이 다시 한번 음흉하게 웃었다.
“세상일은 알 수가 없지요. 간자라는 나쁜 표현보다는 그냥 유학을 보내신다……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저희가 뭐 나쁜 일을 하는 흑도 세력도 아니고 말이지요.”
“흑묘방은 흑도 아니었나?”
벽 총관이 단호한 어조로 대꾸했다.
“저희는 하오문입니다.”
하오문을 직접 만든 사람으로서 뜬금없이 신선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깜박했군. 생각해 볼 테니 일들 보라고.”
나는 벽 총관과 손 부인을 물러가게 한 다음에 고개를 젖혔다가 탁자에 두 발을 올렸다.
“하아…….”
잠이 정말 폭포처럼 쏟아지는 중이었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잠을 자는 것인지, 주화입마에 빠지는 것인지 모를 정도의 피곤함과 졸음이 밀려들었다.
하품을 늘어지게 하자, 두 눈에서 눈물이 살짝 흘러나왔다.
이것이 어느 정도의 피곤함이냐면…….
지금 일어나서 침상까지 걸어가지 못할 정도의 피곤함이었다. 나는 잠시 눈을 감은 채로 흑묘방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했다.
“…….”
외원에서는 여전히 소군평이 수하들에게 호통을 내지르고 있었고.
내원에서는 돌아가면서 겨루는 듯한 소리와 차성태를 놀리는 사제들의 웃음소리가 겹쳐서 들렸다.
안쪽에서는 시비들의 속삭임과 벽 총관, 손 부인의 대화가 들렸다.
이 모든 잡소리가…….
불쑥 찾아올 뻔한 주화입마의 전조 증상을 가까스로 잠재웠다. 얕은 잠과 상상이 뒤섞이면서 행장을 꾸린 채로 길을 걷고 있는 사마비의 모습이 문득 떠올랐다.
다시 입을 굳게 다문 검마의 표정…….
길을 걸으면서도 머리를 이리저리 매만지는 색마.
혈야궁에서 용명의 부축을 받은 채로 산책을 하는 허 장로의 얼굴도 떠올랐다.
문득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들처럼 나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고…….
내 전신을 뒤덮고 있는 수면의 무게가 그 증거다.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품에서 꺼낸 섬광비수를 탁자에 꽂은 다음에 잠을 청했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중얼거림이 저절로 흘러나왔다.
“나 이제 좀 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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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흑묘방은 고요한 정적에 휩싸였다.
복귀한 하오문주가 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