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386
386화. 마도에 어울리는 검법은
맏형과 탑왕이 대치하는 상황에서 나는 여러 가지를 눈에 담았다. 무엇보다 탑왕이 대동한 식객(食客)이 많았다.
사실 식객은 꽤 오래된 말이다.
예를 들면 검객이나 자객도 본래는 식객에서 파생된 말이다.
하지만 이런 단어들도 시기에 따라 신분과 분위기는 물론이고 뜻도 변하는 모양인지.
지금 내 느낌은 검객이나 자객의 하위 신분에 식객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광명검을 휘두르기 시작한 맏형을 보고 나서는…….
생각을 금세 또 바꿨다.
검객이 객(客)의 정점인 것처럼 느껴졌다.
나도 검객이라서 그렇다.
실제도 맏형은 자신의 별호인 검마보다도 검객을 더 위에 두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쯤 벌써 귀곡성이 터졌을 것이다.
교주는 항상 맏형에게 사람들의 원혼을 빨아들이는 검마가 되길 원하는 모양인지 사실 속마음을 말하자면 나도 그렇다. 맏형이 죽는 것보단 낫기 때문이다. 다만 나는 교주처럼 강요할 마음은 없었다. 어떻게 싸우든 간에 결과를 책임지는 것은 본인의 문제라서 그렇다.
하지만 의외로 탑왕은 내가 예상하던 것보다도 강했다.
그렇다는 것은 탑왕에게 죽은 전마도 평범한 고수는 아니었다는 뜻이겠지?
저 치열한 싸움을 보고 있으려니 속으로 못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맏형, 그렇게 싸워서 삼재를 꺾을 수 있겠어?’
교주가 내내 맏형에게 검마가 되어보라고 유혹했는데 나도 비슷한 마음으로 맏형을 바라봤다.
어쨌든 마귀가 되어서라도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후계자 다툼 시절의 교주처럼 말이다.
인생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다만 이후의 삶이 어떤 것인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후회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사람과 후회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다.
나는 오랫동안 품었던 의문을 그나마 해소했다.
교주와 우리들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아낸 기분이랄까.
교주는 여태 후회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인(非人)에 가깝고.
우리는 후회한다는 마음을 가진 채로 완성의 길을 바라고 있다. 물론 이러다가 교주에게 처맞게 되면 그때 또 처절하게 후회하겠지.
하지만 이것이 인생이다.
내가 본 인간들은 모두 각자의 후회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검마는 탑왕의 기형대도를 튕겨내면서 줄곧 전마를 생각했다. 검마는 전마를 안다. 나이는 자신보다 서너 살이 어렸지만 우사 자리에 어울릴 만한 사내였다.
사이가 어땠냐면?
아무런 사이도 아니었다.
명령을 내리면, 명령을 수행하는 사내가 전마였다.
일전에 항상 그랬듯이 전마를 나름 사내로 인정하면서도 단 한 번도 살가운 말을 해본 적이 없었다.
술 한잔 나눠 마신 적도 없다.
잡담을 나눠본 적도 없다.
그저 얼굴을 알고, 무공의 특징을 알고, 성격을 대충 파악해놓은 것이 전부다. 대부분의 수하가 그렇듯이 패배를 무척 싫어한다는 공통점이 있을 뿐이었다. 전마가 죽어도 사실 슬퍼할 이유가 없고, 자신이 어디선가 객사해도 전마는 딱히 슬퍼하지 않을 사내였다.
그런데 왜 이렇게 속이 불편한 것일까.
왜 이렇게 마음이 부글부글 끓는 것일까.
검마는 광명검을 휘두르면서도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냉정하게 바라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조금 더 대종사와 같은 행보를 보였다면 교에 있는 자들을 더 빼내지 않았을까. 실현 가능성이 없었던 허망한 생각을 하다가 조금 더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러니까 화가 나는 것은…….
오랜 세월 알고 지냈던 전마와 술 한잔도 나누지 못했다는 점이 역겨웠다. 수하들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은 교주나 자신이나 마찬가지였다는 것도 역겨웠다. 대체로 교주와 다를 바 없는 광명좌사였던 셈이다.
전마는 아부를 한마디도 못 하는 사내였는데…….
그래도 가끔은 웃을 줄 아는 사내였다.
반면에 자신은 언제나 무뚝뚝한 표정으로 수하들을 쳐다보곤 했었다. 배교자가 교도의 복수를 할 이유는 없다.
이것은 그저 자신처럼…….
이름을 갖지 못한 채 번호로 불렸던 몇 살 어린 아우에 대한 복수였다.
교도면 어떻고 배교자면 어떤가.
돌진하듯이 달려드는 탑왕의 기형대도를 튕겨내다가 균형을 잃고 탑왕의 후속타를 방어하는 도중에 몸이 공중으로 뜬 검마가 일직선으로 멀리 밀려났다.
검마는 공중에서 균형을 잡는 와중에 셋째의 목소리가 귀에 꽂혔다.
“……맏형, 정신 안 차려? 싸우면서 무슨 잡념이 그렇게 많은 거야? 정신 안 차리냐고. 정신 더 못 차리게 해줘? 정신 차릴 거야, 안 차릴 거야. 오늘 저녁 내가 차려줘? 내 국수 맛 좀 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검마는 셋째가 잔소리를 할 때마다 종종 귀에서 피가 나는 심정을 맛보곤 했는데 지금이 그랬다.
“저놈의 잔소리…….”
탑왕이 여유로운 표정으로 다가오면서 말했다.
“옛 좌사, 소문대로군.”
검마가 대답했다.
“무엇이?”
“마공을 경계한다는 소문 말이다. 인제 와서 맹주처럼 싸우고 싶어졌나? 이거 자자했던 소문보다 너무 약해서 흥이 빠지는데……이렇게 싸우면 전마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검마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에 대답했다.
“마공을 쓰지 않은 것이 더 강하다면 마공을 쓸 이유도 없다.”
“네가 지금 그렇단 말이냐?”
검마는 고개를 저었다.
“수련 중이니 부족한 게 보여도 양해하게. 탑왕. 실력으로 보면 충분히 왕이라는 별호에 어울리는데 왜 위가에 의탁하고 있는지 모르겠군. 어렸을 때부터 위가에서 먹고 자랐다면 이해하네.”
무엇이 기분 나빴는지 탑왕이 재차 돌진했다.
검마는 상념을 지운 채로 독고중검에 돌입했다. 독고중검에 돌입했다는 것은 이제 수비의 비중을 줄인다는 뜻이다.
검마는 자신이 익혔던 검법에서 마음가짐을 달리하는 게 무척 힘들었었다.
그러니까 독고중검은 공격 일변도다.
기존에 익혔던 초식에서 방어, 수비 초식을 버려야 했기에 적응하는 게 쉽진 않았다. 무언가 운율이 가미된 검법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나, 그 운율에 목숨마저 걸어야 했기 때문에 수준을 높이는 게 쉽지 않았다.
수비를 포기하기 위해서…….
탑왕의 공격을 거의 같은 궤적의 공격으로 받아쳤다. 동시에 두 사람이 밀려났다가 재차 맞붙었을 때 검마는 최적의 경로를 찾아서 반박자 빠르게 광명검을 탑왕의 목으로 내밀었다.
어쩔 수 없이 탑왕이 기형대도로 광명검을 쳐낸 순간…….
그 순간부터 독고중검은 시작됐다.
선수를 붙잡은 검마는 수비를 잊은 사람처럼 공격 의도만 담긴 검을 내질렀다. 목을 찌르고, 옆구리를 찌르고, 물러나는 탑왕의 발을 노렸다가 검풍을 날린 다음에 추격했다. 속도를 높여서 검의 잔상을 늘린 다음에 공중에서 탑왕의 머리, 목, 가슴을 쓸어내리듯이 찔렀다가 공격의 운율을 찾았다.
이 운율은 미묘한 것이어서…….
탑왕의 대처에 따라 변하는 운율이었다.
그러니까 여태 탑왕의 호흡, 움직임, 반격, 버릇, 내공, 외공이 모두 검마의 운율에 담겨 있었다. 이것은 계산만 가지고서는 터득할 수 없는 검법이었다.
무엇보다 손에도 익어야 한다.
손에 익음과 동시에 생각은 탑왕의 대처를 미리 읽고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에 익숙해도 한 번만 실수하면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먼저 목숨을 걸지 않으면 절대로 펼칠 수 없는 생사검(生死劍)이 곧 독고중검이었다.
문득 검마는 자신이 목숨을 걸었다고 느낀 순간…….
독고중검이 마공보다 더 위험한 무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마공이 오히려 보신(保身)적인 성향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마도(魔道)에 어울리는 검법인 것일까?
승부, 그리고 찰나의 선택에 시시각각 목숨을 걸었다는 점에서 독고중검보다 더 마도와 어울리는 검법은 천하에 없을 터였다.
검마 정도 되는 사내가 목숨을 걸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검마는 탑왕에게 한 번도 끊기지 않는 공격을 펼치면서.
오랜만에 스스로에게 만족했다.
이 정도 검법이면 마도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겠다고.
자신이 죽였던 자들에게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허망하게 죽었던 수하들에게도 부끄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하게도 독고중검은 확신을 가진 채로 운율에 더욱 힘을 실었을 때 위력 또한 점점 더 커졌다.
칼날 위에서 칼을 휘두르는 심정이랄까.
검마는 미친 사람처럼 칼춤을 추다가 독고중검에 심리적인 함정을 하나 추가로 설치했다.
특정 순간에만 운율을 살짝 비틀어서 단 하나의 빈틈이 있는 것처럼 춤을 췄다.
그러니까 그 운율의 빈틈은 이미 마기가 스며들어서 도검불침 상태가 된 왼쪽 팔이었다.
빈틈을 내보이는 과정은 이미 군검왕을 상대로 실험을 해봤던 상태.
그러니까 검마는 싸우는 와중에도 백도의 비무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군검왕을 상대로 펼쳐봤었던 과정이었기에 지금 펼치는 독고중검에 무척 자연스럽게 적용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탑왕을 죽이는 것은…….
맞상대를 해줬던 군검왕과 함께 죽이는 셈이었다.
검마는 완벽하게 검무를 펼치면서도 희미하게 왼팔에만 약점을 노출했다. 말이 쉽지, 이것은 평생의 수련을 통해서 만들어낸 작은 틈새였다. 그 와중에도 운율에 뒤섞인 독고중검은 여전해서 탑왕을 계속 몰아붙였다. 검마는 자신이 만장애를 가기 전에 탑왕과 붙었다면 더 고전했으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검마는 탑왕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 투기를 유지하는 것을 보고 슬쩍 웃었다.
그저 웃었을 뿐인데 왜 셋째의 표정이 생각나는 것일까.
생각해보니까 싸우다가 웃은 적은 처음이라서 그렇다.
탑왕을 완벽하게 농락하듯이 공격을 퍼붓던 검마는 한껏 방심한 사내처럼 입을 열었다.
“이보게. 탑왕, 전마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돌진한 탑왕의 기형대도가 수직으로 떨어지더니 검마의 어깨 윗부분을 정확하게 찍었다.
푹!
오히려 일보를 전진한 검마의 광명검은 기형대도를 들고 있는 탑왕의 팔을 관통한 상태. 어깨를 타격하는 순간도 허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광명검을 두 손으로 붙잡은 검마는 탑왕의 팔을 두 갈래로 가르면서 동시에 목까지 순식간에 베었다.
푸악!
탑왕은 오른팔이 찢어지고, 좌장으로 반격하려던 움직임은 사람의 본능대로 이동해서 자신의 목을 붙잡았다. 팔과 목에서 피 분수가 터지는 상황이었다.
검마는 광명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다음에 엉덩방아를 찧은 탑왕을 바라봤다.
“…….”
검마는 여태껏 싸우면서 이렇게 많은 속임수를 검과 움직임에 담은 적이 없었다.
그런데 탑왕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왜 이렇게 속이 통쾌한 것일까?
검마가 말했다.
“배교자가 교도의 복수를 할 이유는 없지만. 이것은 명백하게 전마 아우에 대한 복수다. 탑왕.”
식객들이 단체로 무어라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검마는 다시 한번 검을 휘둘러서 탑왕의 목을 날렸다.
탑왕의 몸에서 핏물이 높이 솟구치는 사이에…….
검마를 향해서 온갖 암기와 검풍, 검기 등이 밀려들면서 명천위가의 식객들이 강호의 도리를 무시한 채로 합공을 펼치기 시작했다.
검마는 좌장을 휘둘러서 총천연색의 암기와 기습을 단박에 날려버린 다음에 다시 검을 우하단으로 내렸다.
겨우 외당에 속한 가문의 식객들?
이런 자들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할 검마가 아니었다.
검마는 평소와 다른 표정으로 웃으면서 다가오는 식객들을 맞이했다.
“와라.”
순간, 가장 전방에서 달려오던 자들이 새하얗게 얼어붙더니 공중에서 셋째가 떨어졌다. 빙공으로 식객 일부를 단박에 얼린 셋째가 고개를 돌리더니 검마를 바라봤다.
딱히 서로 할 말은 없었다.
셋째가 씨익 웃더니 일살을 뽑으면서 말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어. 난장판이 될 줄 알았다니까. 항상 그래.”
검마는 셋째의 나불대는 말에 무어라 대꾸를 하고 싶었는데 당장은 요령이 없어서 대답할 말을 떠올리지 못했다. 대신에 셋째의 옆으로 가서 어깨를 한 번 친 다음에 적이 있는 곳으로 걸었다.
“가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금호대주와 은룡대주는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다.
“…….”
한숨이 세 차례나 더 이어졌다. 이미 옛 좌사와 하오문주는 수가 더 많은 중천위가의 식객들을 상대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금호대주와 은룡대주는 서로의 표정을 확인했다.
당연히 중천위가가 이겨야 하는데, 속내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서로의 표정을 통해 확인했다. 한숨이 계속 나오는 이유였다.
금호대주가 겨우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겠나? 부상이 크지?”
은룡대주가 헛기침을 한 다음에 말했다.
“내상이 깊어서 좀 피해있어야 할 것 같은데. 함께 이동하겠나?”
금호대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수하들부터 따라잡자고.”
두 사람은 일단 도주를 선택했다. 근처에서 운남칠살이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한때의 치욕이라 생각하고 그냥 도망을 선택했다. 서둘러서 이동하는 사이에 그나마 솔직한 금호대주가 한 마디를 더 보탰다.
“탑왕 놈 죽으니까 속이 다 시원하네.”
은룡대주가 대답했다.
“그건 좀 논란이 될 수 있는 발언인데?”
“생사결인데 무슨 논란인가? 정당한 대결이었다.”
금호대주는 경공을 펼치는 와중에 자신의 도주까지 정당화했다.
“……아무래도 옛 좌사와는 싸우기가 싫다.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야.”
“나도 마찬가지네.”
대체 어떻게 싸우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옛 좌사와 하오문주가 있는 곳에서 굉음이 터졌다. 비명이 많은 것으로 추정해보니 옛 좌사 측이 당하는 구도는 아닌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