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392
392화. 출사표.
선배, 나 이자하요.
만나서 말로 전하면 편한데 서찰이라 불편하군. 내용이 불편하고, 문장이 엉망이어도 이해하시라. 서찰 적어본 적이 드물어서 그렇소.
서찰은 여인에게 적어야 하는 법이라서 나도 기분이 좋진 않소.
이거 읽으실 때쯤, 난 화산으로 가는 중일 거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화산에는 오지 마시라.
오지 말라면 오지 마시라. 오지 말라고 해도 꼭 오는 사람이 있어서 거듭 강조하오.
교주가 선배를 보고 싶지 않다는군.
죽이고 싶었으면 오라고 했을 텐데, 생각이 바뀐 모양이오.
오지 말라는 것은 선배를 죽이기 싫다는 뜻이겠지.
이유를 짐작하자면 맹주가 무림맹에 있는 강호가 더 낫다고 보는 것 같소. 내 생각도 같소.
화산에는 나, 검마, 몽연, 육합선생이 함께하고.
백의서생이나 천악 정도만 오면 좋겠소. 다른 제왕이 몇 명 추가되어도 큰 의미는 없소.
그러니 연락은 선배가 좀 취해주시오.
그곳에서 교주와 싸울 작정인데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소.
선배도 알다시피 우리가 애써 하는 일들의 결과는 크게 중요하지 않소. 그보다는 그저 애써 임하는 것이 더 중요할 거요.
다만, 우리 일행이 모두 죽는다면 교주도 살아서 화산을 내려갈 수 없을 것이라 약조하오.
내가 그렇게 마음을 먹었소.
최악의 상황에 치달으면 화산에서 전부 죽으리다.
그러나 교주가 옛 고수들의 비무처럼 선을 지킨다면. 어쩌면 화산에서의 싸움은 아무도 죽지 않은 채로 끝이 날 수도 있소.
사람의 앞일을 어찌 예측하겠소?
모를 일이오.
최악의 상황이 닥치면 선배도 교주의 팔을 잘라서 동귀어진할 생각이었겠지만 교주를 지켜본 바로는 그것도 쉽지 않겠소.
그러니 무림맹에서 잘 버텨 주시오.
교주는 가장 강한 수하들을 대동하고 화산에 오를 것인데, 내려갈 때는 혼자 내려가든가 아니면 나와 함께 전부 화산에 묻힐 거요.
그런 와중에 선배가 무림맹에서 버티고 있으면 당대의 강호는 별문제 없소.
교주가 이를 알면서도 선배를 보고 싶지 않다고 한 것은.
그저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그 사람만의 성격일 거요. 한편으로는 이해하는 바요. 패배를 생각해본 적이 없을 테니.
교주와 내 싸움을 이렇다 저렇다 정의하거나 예측하는 게 어렵소.
교주가 나보다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싸움의 승패는 내게 달렸소. 주어진 시간 안에 단 한 번만 더 경지를 끌어올릴 수 있다면 누구에게도 패배하지 않을 자신감이 있소. 다만 걱정인 것은 얼마 전에 경지가 상승한 터라, 짧은 기간 내에 큰 깨달음이 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요.
그래서 사실은 지금 아등바등 급하게 수련하지 않고 있소. 주어진 시간이 매우 제한적이라 그렇소.
맹주 선배, 당대의 천하제일은 교주였소.
여기서 아무 일 없이 내게 시간이 주어지면 다음 천하제일은 내가 될 거요. 만약 내가 화산에서 쓰러지고 운이 좋아 몽연이 살아남는다면, 아마 십팔 년 후쯤에는 색마 놈이 천하제일인이 될 거요. 그 시기 이후에도 아무런 일없이 평화가 이어진다면 이후 천하제일은 내 제자가 될 거요.
제자는 일양현의 장요란.
화산에서 내가 교주와 싸웠다는 소식이 들리고 나서.
내가 화산에서 내려오지 못하면.
맹주께서 일양현에 사람을 보내 장득수, 홍신, 요란이를 무림맹으로 불러주시오. 득수 형 내외는 숙수로 거둬주시고. 요란이에겐 육전대검을 알려주시오.
그저 부탁이니, 선배의 마음에 달렸소.
다만 강호에서 육전대검을 배울 수 있는 제자는 요란이가 유일할 거요.
물론 우리 사대 멍청이들이 살아 있으면 요란이도 육전대검을 배울 수 있는 마음가짐이 아닐 테니, 그때는 가르치지 않아도 좋소.
이해하지 못해서 아마 못 배울 거요.
내가 보기에 맹주의 무공은 그런 무공이요.
술이라도 한 잔 나누면서 말을 전했으면 맹주가 내게 이렇게 물었을 거요.
이길 자신은 있는가?
싸움을 피하면 안 되는가.
합공으로 죽이는 것은 어떤가 등등.
차례대로 답을 주자면.
당장은 이길 자신감이 없고, 싸움은 절대 피하면 안 되는 상황이며, 합공으로 죽이는 것도 불가하오.
교주와 화산에서 맞붙기로 한 것은 강호인의 약조인데.
우리는 맹약의 술을 나눠 마셨소.
이는 교주가 백도의 방식으로 싸우는 것을 허락한 거요. 일차전을 치러보니 계략이나 전략에도 밝은 사내여서 웬만한 방법으로는 꺾을 수가 없소.
화산에서 붙자는 것은…….
인간 같지 않은 사내, 강호인 같지 않은 사내가 강호인의 방식을 취한 것이니, 이때를 이용해 마도나 흑도처럼 대응한다면 모든 게 물거품이오.
이기면 이기는 것이고.
패배해도 올바르게 패배해야만.
교주를 인간으로 붙잡아 둘 수 있소. 나는 교주 자신을 위해서도 그가 인간으로 남길 바라오. 그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 같지 않은 자들을 상대했던 사람이라서 더욱 그렇소.
교주가 인간으로 남아야 그를 따르는 수하들이 선을 넘지 않을 테고. 그래야 저 알 수 없는 종교에 의한 피해도 결국에는 점차 줄어들 거요.
그렇게 되면, 또 다른 승부는 결국에 우리가 이긴 게 아닐는지?
나는 패배했을 때도 이기는 것을 생각하고 있소.
맹주께서도 이를 잘 헤아려 주시오.
내가 알기로 강호에서 가장 훌륭한 무인을 꼽으라면 맹주와 나밖에 없소.
장가는 언제 가실 거요?
선배, 그놈의 맹주 노릇은 앞으로 한 십팔 년만 더 하시고.
미련 없이 은퇴하시오.
장가를 못 가면 은퇴하기 어려운 팔자이니, 괜찮은 처자를 물색한 다음에 은퇴하는 것을 권하오.
젊은 자들에게 큰 짐을 지게 해야, 맹주처럼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오. 그렇게 버티고 있으면 본인은 점점 강해지겠지만 아랫세대와의 격차는 줄일 수가 없소.
사람은 반드시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데.
무림맹에 속해 있으면 행복할 겨를이 없소.
맹주는 행복을 찾으시오.
헛소리하지 말라고 중얼대는 맹주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도는데.
이것은 헛소리가 아니라 잔소리요.
교주와 화산에서 붙는 것을 결정했을 때.
무섭다기보다는 마음이 편해졌소. 나는 이런 싸움을 원했소. 강호에 나서기 전에는 고작 점소이였는데, 어느새 교주와 싸우게 되었으니 점소이의 강호행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소.
늘 그렇듯이 교주의 무공이 두려운 게 아니고.
내가 내 한계를 극복하지 못할까, 그것이 더 두렵소.
대장부로 태어났는데 이것 외에 무엇이 두렵겠소.
화산은 그 이름과 달리 꽃이 드물다고 하는데.
이 아우가 먼저 가서 확인해보리다.
일양현에서.
못난 아우가, 무림맹주에게.
* * *
붓을 내려놓자, 요란이가 다가와서 말했다.
“사부님, 다 쓰셨어요?”
“응.”
“누구한테 쓰는 서찰이에요?”
나는 요란이를 보면서 말했다.
“무림맹주.”
“우와.”
“사부가 이런 사람이야.”
“사부님, 대단하십니다.”
“놀리냐?”
“아니에요. 그런데 뭐라고 적으셨어요?”
“빨리 장가 좀 가라고 적었지. 노총각이야.”
“노총각이 뭐예요?”
나는 요란이를 부른 다음에 귀에 속삭였다.
“첫째 사부랑 비슷하다고. 나이는 좀 있는데.”
“아.”
“이해했어?”
“예.”
요란이도 속삭였다.
“그럼 노총각 반대말이 색마에요?”
“그건 좀 논란이 있겠는데? 둘 다 안 좋은 말이야.”
“알겠습니다.”
나는 본래의 목소리로 물었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은 뭐냐? 읊어라.”
요란이도 헛기침을 한 다음에 대답했다.
“돼지통뼈입니다.”
“좋아.”
“사부님들이 바쁘시니까 맛보게 할 기회가 적다고 이번에는 매일 준비해서 대접하신대요.”
“교주도 못 참은 돼지통뼈, 일양현의 별미, 강호를 구원한 진미, 그것이 돼지통뼈다.”
요란이가 놀란 눈으로 대답했다.
“돼지통뼈가 강호를 구원했어요?”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장 숙수가 강호를 살렸지. 맛있는 음식이 이렇게 위대하다.”
“교주님이 정말 맛없는 것만 먹고 자랐나 봐요.”
“어떻게 알았어?”
“정말이에요?”
“정말이지. 교주는 어렸을 때부터 주변에 교주를 암살하려는 사람이 많았어. 끼니마다 독이 들어있지는 않은지 노심초사하면서 물도 마음 놓고 마시지 못했을 거다. 어쩌면 독이 들어있는 음식도 먹어본 적이 있을 거야.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되면 사람이 어떻게 될까?”
“표정이 정말 무뚝뚝했어요.”
“맞아. 오래전부터 그랬을 것이다.”
“근데 왜 암살하는데요?”
“그때는 교주가 아니었거든. 교주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들이 많았다.”
“교주가 되면 뭐가 좋은데요?”
나는 요란이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딱히 좋은 것도 없어.”
“그런데 왜 교주가 되려고 했을까요?”
“살아남으려고 그랬겠지.”
여기서부터는 조금 내용이 어려웠는지 요란이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이상한 종교네요.”
“내 말이. 들어가자.”
“예, 사부님.”
나는 요란이와 이 층에 오르면서 물었다.
“그런데 네가 보기에 어떤 게 이상하더냐?”
“그러니까 나 교주 하기 싫다. 그런 선택을 못 했나 봐요.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게 이상한 거죠. 하기 싫은데, 안 하면 죽게 되고. 그런 거니까 많이 이상한 거죠.”
“맞다.”
내 제자가 이렇게 똑똑하다.
맏형과 똥싸개는 이미 탁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요란이와 나란히 앉은 다음에 물부터 마셨다. 똥싸개가 나를 쳐다봤다가 요란이에게 물었다.
“셋째 사부가 또 내 욕했어?”
“아니요?”
“색마라는 말이 들리던데?”
“그건 넷째 사부님 별호 아니에요?”
물을 마시던 맏형이 물을 조금 내뱉었다.
나는 맏형을 보면서 혀를 찼다.
“물도 제대로 못 넘기네. 아직 젊으신 분이…….”
밥을 기다리면서 요란이가 우리에게 물었다.
“그런데 둘째 사부님은 언제 오세요?”
나는 맏형과 똥싸개를 바라봤다가 대답했다.
“……둘째 사부는 우리 넷 중에 가장 약하거든. 지금도 맹렬하게 수련 중이다. 우리 셋을 따라잡겠다고 말이야. 그래도 따라잡는 게 어렵겠다만 노력하는 자세는 존중해줘야지.”
“어디서 수련 중이신데요?”
“교주 다음으로 강한 사내가 있어. 별호는 나중에 알려주마.”
요란이가 나를 보면서 대답했다.
“천악요?”
“거기까지 알고 있어? 도대체 모르는 게 뭐야? 역시 일양현의 장요란이다.”
이제 요란이는 웃음도 참을 줄 알아서 표정 관리도 하고 있었다. 요란이가 애써 웃음을 참는 표정으로 내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과찬이십니다.”
“눈치가 빠르구나. 과찬이었다.”
이번에는 요란이의 콧구멍이 커진 상태였다. 이어서 득수 형이 돼지통뼈가 잔뜩 담긴 그릇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가장 큰 탁자여서 득수 형과 홍 사매도 자리에 앉아서 젓가락을 나눈 다음에 다들 맏형을 바라봤다.
맏형이 슬쩍 웃더니 짤막하게 말했다.
“먹자.”
득수 형도 웃으면서 말했다.
“많이 드십시오. 이것은 교주마저도 감탄했다던 전설의 돼지통뼈입니다.”
요란이가 나를 보더니 젓가락 하나를 슬쩍 내밀었다.
“사부님?”
“응?”
요란이가 나무젓가락을 쥐더니 돼지통뼈 위에 찔러넣으면서 말했다.
“교주님이 이렇게 했는데 나무젓가락이 뼈 안으로 쑥 들어갔어요. 아주 부드럽게. 할 수 있으세요?”
나는 요란이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사부들도 다 하는 거다.”
“정말이에요? 차 총관 아저씨도 해요?”
“그놈은 어림없지. 못해.”
“예.”
나는 젓가락을 하나 쥔 다음에 맏형과 색마를 바라봤다.
“보여줘야 믿을 눈치로군.”
내가 먼저 젓가락에 목계의 기를 주입한 다음에 돼지통뼈에 찔러넣었다. 당연하게도 젓가락이 뼈에 박혔다. 이어서 맏형이 아무렇지도 않게 젓가락을 찔러넣고, 똥싸개도 젓가락 하나를 돼지통뼈 중앙에 푹 찔러넣은 다음에 요란이에게 건넸다.
“이거 먹어라.”
요란이가 두 손으로 받은 다음에 말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돼지통뼈를 뜯어 먹다가 이미 요란이가 앞으로 벌어질 일을 대부분 눈치채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은 어린 나이라서 표정을 다 숨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돼지통뼈를 먹던 요란이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교주님에게 이길 수 있어요?”
어린 제자의 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지금이 그렇다. 맏형과 똥싸개도 대답을 못 하고. 득수 형과 홍 사매도 입을 열지 못했다.
나까지 침묵하면 요란이의 걱정이 커질 것 같았는데.
나도 당장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어린 제자라고, 거짓말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고민하다가 겨우 할 말을 골라서 요란이에게 말했다.
“사부들은 오래전부터 교주와 겨뤘다.”
“예.”
“그게 꼭 무공만을 말하는 건 아니야. 각자의 삶으로도 겨루고, 생각도 겨뤘지. 마음가짐으로도 자주 겨뤘다. 교주도 마음의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이곳에 와서 돼지통뼈를 먹었겠지. 큰 걱정할 필요 없다.”
요란이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셋째 사부님.”
“응.”
“마음가짐으로는 어떻게 이기는 거예요?”
나는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가 대답해줬다.
“교주보다 자주 웃으면 돼. 이렇게 쉬운 일을 교주는 정말 어려워한다.”
요란이가 꽤 놀랄만한 대답을 했다.
“……사부님들도 자주 안 웃으시는데요?”
나는 맏형과 똥싸개를 바라봤다가 대답했다.
“우리는 전부 속으로 자주 웃는다. 맏형, 맞지?”
맏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요란이가 똥싸개의 마음을 확인하겠다는 것처럼 물었다.
“넷째 사부님, 맞아요? 속으로 웃으세요?”
넷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속으로 웃고 있어.”
요란이가 돼지통뼈를 손에 든 채로 선언했다.
“저도 앞으로 속으로 웃겠습니다.”
나는 요란이의 표정을 보다가 지적했다.
“요란아, 그건 비웃는 표정이고.”
“예.”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나중에 골려주고 싶은 맞수를 만나면 항상 그 표정을 유지하도록. 연습해둬라.”
득수 형이 한숨을 내쉬더니 나를 쳐다봤다.
“참, 좋은 거 가르쳐준다.”
그제야 나도 웃고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도 다 같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