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of the Mad Demon RAW novel - Chapter 391
391화.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날.
술이 아직 남았는데 교주가 일어섰다.
나는 밤새 떠들면서 술을 마실 수 있었으나 교주는 내게 떠들 기회를 주지 않았다.
나는 뒤따라 일어나서 입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교주가 원하지 않아도 배웅할 생각이었다.
교주는 자하객잔을 둘러본 다음에 돌아섰다.
단순히 교주가 강하다는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일양현까지 둘러본 다음에 등장했기 때문에 나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나는 교주의 발걸음에 맞춰서 교주의 우측에 나란히 섰다.
경험으로 비춰 봤을 때 교주의 우측에 미친놈이 서는 게 맞다. 그러니까 나는 광명우사의 자리를 차지한 채로 교주와 잠시 걸었다.
입구에서 교주가 귀찮은 파리처럼 쳐다보기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내가 또 언제 교주와 걸어보겠소? 갑시다.”
꺼지라는 말을 하고 싶었겠지만, 교주는 자신이 지키는 선이 있어서 함부로 떠들지 않았다.
교주는 걸음이 느렸다.
나는 옆에서 자하객잔을 뒤덮었던 어둠을 몰아내듯이 함께 걸었다. 맏형도 불러내서 함께 걷고 싶었으나 싫다는 사람을 억지로 끄집어낼 수는 없었다.
나는 걷다가 교주에게 물었다.
“교에서도 열 명 내외를 데리고 오실 거요?”
“그보단 적을 것이다.”
“그나저나 다른 삼재는 언제 넘으셨소?”
“싸울 때 이미 알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에 추측하던 것을 말해보았다.
“천악 선배는 대충 눈치를 챈 것 같던데 맞소?”
“각자 생각이 다르니 알 수 없다.”
이제야 나는 천하의 서열이 교주, 천악, 신개였음을 알게 되었다. 다른 삼재가 틀어박혀서 수련하는 이유는 이처럼 명확했다.
내 예상으로는 세 사람이 서로에게 동귀어진 수법까진 쓰지 않은 것 같다. 아니면, 여전히 비장의 한 수를 감춰뒀거나…….
그러니까 예전에는 확실히 한 사람이 월등한 우위를 차지하진 않았던 것 같다.
미세하게 우위를 점했던 정도?
시간이 흐르면 교주와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신개 선배와 천악이 깨달아서 수련에 매진했을 터였다.
교주가 우위에 있던 것은 확실하지만 천악과 신개가 동시에 동귀어진을 다짐한다면 교주도 살아남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을 터였다.
지금은 또 모를 일이다.
옆에서 걷는데도 교주의 기도를 파악할 수 없고, 수준을 가늠할 수 없으며, 빈틈 같은 것을 찾을 수도 없었다.
그저 함께 걷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 손발이 약간 허우적대는 느낌을 받았다.
긴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싸울 때 느끼는 것보다 미리 매를 맞는 게 전략상 좋은 판단이어서 함께 걸은 것은 내가 이곳에 와서 가장 잘한 행동이었다.
내가 교주와 함께 등장했음에도 교도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다만 시선은 한몸에 모였다.
나 같은 관심종자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교도들도 신기한 동물을 바라보는 것처럼 나를 구경했다. 나는 대기하고 있는 시커먼 교도들에게 말했다.
“……교도들은 들어라. 우사 자리가 다시 공석이 되었으니 내가 임시로 맡겠다.”
“……!”
근처에 있는 위 좌사가 고개를 홱 돌리면서 미간을 좁히더니 나를 노려본 다음에 이어서 교주를 바라봤다.
뜻밖의 개소리에 교주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
나는 이때다 싶어서 잠시 교주와 눈싸움을 시작했다. 교주가 말했다.
“문주야, 뭔 개소리냐?”
나는 교주의 말을 무시한 다음에 교도들을 쳐다봤다.
“새롭게 광명우사가 된 놈은 옛 좌사에게 패해서 죽었고. 그 전 광명우사는 정신 건강이 위태로워서 스스로 떠났다. 공석이란 뜻이지. 기간은 내가 너희 교주님과 화산에서 재회할 때까지. 그때 죽으면 자리도 내놓겠다. 그 전에 우사 자리가 탐나더라도 노리지 말도록. 너희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
위 좌사가 입을 열었다.
“교주님, 문주의 농이 심히…….”
교주가 대답했다.
“농담이니 넘어가.”
“예.”
위 좌사가 내게 말을 걸었다.
“문주, 농담도 자리를 가려가면서 하게.”
나는 위 좌사를 노려봤다. 이놈이 나를 모르는 모양이다. 이런 농담을 할 수 있다면 목숨을 걸 수도 있는 사람이 나다.
“위 좌사.”
“말하게.”
“이 얼굴에 욕심 그득한 돈벌레 같은 놈.”
“뭐?”
“돈이나 밝히고, 음흉한 속내에 아부 실력은 네가 천하제일이겠지. 네가 진짜 좌사가 되고 싶으면 지금 저기 또 망한 객잔에 있는 옛 좌사와 승부를 가린 다음에 좌사라 주장하는 게 옳다. 광명검도 옛 좌사가 지니고 있는데 네가 어째서 좌사란 말이냐? 염치가 있어야지.”
위 좌사가 공격을 할 것처럼 손가락 하나로 나를 가리켰다.
나는 그 손가락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듣자 하니 너는 교도의 목숨을 가지고 네 가문 재산 늘리는 데 이용한다고 들었다.”
위 좌사의 눈이 대번에 커졌다.
나는 말을 이어나갔다.
“곱게 죽지 못할 놈이야. 너도 화산에는 빠지지 말고 올라오도록 해. 내가 죽이든 천악 선배가 죽이든 간에 누구한테 처맞는 꼴 좀 보고 싶으니까. 알았어? 오늘은 살려주겠다.”
위 좌사의 얼굴이 염계대수인을 정통으로 맞은 것처럼 새빨갛게 돌변했다. 교주가 옆에서 침묵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혼자 웃었다.
교주가 내게 말했다.
“문주야.”
“말씀하시오.”
“정말 네 주둥아리는 강호 일절이구나.”
나는 교주에게 대충 포권을 취했다.
“과찬, 과찬이오.”
이래도 안 웃어?
나는 눈앞에서 웃음 참기 천하제일고수를 목격했다.
‘대단한 사람이네. 수양이 깊다.’
교주가 이간질을 발동했다.
“위 좌사.”
“예.”
“마음에 안 들면 이 자리에서 생사결을 해라. 문주와 겨루든지, 문주 말대로 안에 있는 옛 좌사와 겨루든지. 어떻게 하겠나?”
위 좌사는 잔머리가 제법 빠르게 돌아가는 모양인지 바로 대답했다.
“……교주님, 저도 화산에 오르겠습니다.”
교주가 냉소를 머금더니 위 좌사에게 한마디를 툭 던졌다.
“자네도 평정심이 대단한 줄 알았더니 문주의 농에는 참지를 못하는구나.”
위 좌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예, 순간…… 유념하겠습니다.”
나는 교주에게 물었다.
“삼 공자는 복귀했소? 못 본 지 오래됐는데.”
“외가를 수습한다고 들었다.”
“그 밑에 삼복이라는 수하가 있는데 눈치도 빠르고 공도 많이 세웠소.”
교주가 대답했다.
“어쩌란 말이냐?”
“이것이 청탁이란 거요. 충성심이 뛰어난 수하는 적이든 아군이든 칭찬하는 게 맞소. 돈을 잘 벌어준다고 해서 무조건 충신은 아니니까.”
나는 끝까지 위 좌사를 공격했다.
교주가 희미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다.”
나는 저 미세한 표정에서 교주도 본래 위 좌사를 그리 좋아하지 않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교주라면 충분히 수하들을 파악하고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일 터였다.
분위기가 제법 어색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따라온 이유를 교주에게 진지한 어조로 전했다.
“……우리가 적으로 만났으나 내 어린 제자를 살려줘서 고맙소. 장득수, 홍신 사매, 그 밖에도 평범한 일양현 사람들을 살려준 것도.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오늘은 검마 선배와 내가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날이었소.”
나는 교주를 쳐다보다가 덤덤하게 예의를 갖췄다.
“살펴 가시오. 화산에서 봅시다.”
교주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은 나도 무척 어려운 일이었지만 요란이나 득수 형 내외를 생각하면 얼마든지 더한 예의도 갖출 수 있었다.
교주가 나를 보면서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마차에 올랐다.
“가자.”
교도들은 마차의 방향을 따라서 일제히 돌아섰다. 아무도 내게 예의를 갖추지 않았지만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여서 상관없었다.
나는 출발하는 마차를 쳐다보다가, 교주를 따라서 이동하는 병력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싸우진 않았으나 호흡을 할 때마다 교주를 제외한 교도들을 몰살하는 생각을 여러 차례 하고, 그때마다 잘 참았다.
결국에 더하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분위기 때문에 꺼내지 못했다.
‘더 떠들어야 했는데…….’
어쩐지 교주는 내 말을 오랫동안 듣기 싫어서 일부러 떠나는 것처럼 보였다.
대체로 대화가 잘 안 되는 사내였다.
일단, 전면전이 벌어지면 교주의 무력이 어찌하든 간에 여기 있는 교도들은 맏형과 내 손에 전부 죽었을 것이라는 말을 전하지 못했다.
화산에서 재회하는 날…….
일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흡족하게 싸워서 출중한 고수들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행복이라는 걸 좀 느껴보라는 말도 전달하지 못했다. 강호인이 강호인을 상대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거부감이 없기 때문이다.
저렇게 어두운 사람은 행복이라는 것을 느껴봐야 변하는 법인데…….
자신이 만든 심리적인 만년한철 벽에 단단히 둘러싸인 사내였다.
아무도 나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나는 교도들이 모두 사라질 때까지 저 이상한 종교를 배웅했다.
광명우사가 되겠다는 것은 농담이지만.
요란이를 비롯한 약자들을 살려준 것에 대한 마음은 거짓이 아니다. 이것이 내 정신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니, 말로 전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돌아서서 개업도 하지 못한 채로 망한 자하객잔을 쳐다봤다.
‘또 망했네.’
물론 자하객잔만 망한 것은 아니다.
내가 망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남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자하객잔 입구에 서서 운남칠살을 바라봤다. 다소 잔망스러웠던 만박마군마저 아무런 말이 없었다.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우두커니 남은 난민처럼 보였다.
돌려보낼까 하다가 맏형의 식사 때문에 그대로 뒀다.
“……밥이나 먹자.”
운남칠살의 밥 담당이 조용한 어조로 대답했다.
“예, 문주님.”
내가 복귀하자 맏형은 그제야 탁자에 앉으면서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은 다 했나?”
나도 맞은편에 앉으면서 대답했다.
“못 했어. 어려운 사람이야. 듣기 싫은 모양이지.”
맏형이 코웃음을 내뱉은 다음에 대답했다.
“그러냐. 네 말을 오래 듣고 있으면 휘말린다고 생각해서 떠났을 것이다.”
“그렇게 눈치가 빠른가?”
맏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 앞에서 너처럼 잘 떠드는 사내도 본 적이 없다. 어쨌든 열 명 내외라 한 것은 다른 자들의 비무도 구경하고 싶다는 뜻이다. 어렸을 때부터 취미라고는 직접 싸우거나 남이 싸우는 것을 구경하는 게 전부였을 테니. 실은 다른 교도들도 크게 다르진 않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좀 이상하군. 어차피 교주가 아니면 천악 선배를 상대할 고수도 없을 것 같은데.”
“위 좌사 같은 인물이 나나 천악에게 도전하고. 힘이 조금 빠진 고수를 단체로 상대할 수도 있겠지. 그것이 어느 정도 균형에 맞는 일이라 생각할 테고.”
“비무 한 차례, 생사결 한 차례. 총 두 번이겠군. 그건 그때 상황 보고 대처하자고.”
정확한 것은 가봐야 알 터였다.
입으로 가져가던 술잔을 멈춘 맏형이 입구를 쳐다봤다.
“…….”
돌아보니 개방의 지부장이 된 것 같은 색마가 숨을 몰아쉬면서 들어오고 있었다. 옷은 군데군데 찢어지고, 얼굴과 의복에는 누군가의 핏물이 잔뜩 묻어 있었다.
색마가 탁자 옆으로 오더니 맏형에게 말했다.
“사부님, 저 왔습니다.”
맏형이 제자를 위아래로 살피면서 대답했다.
“다친 곳은?”
누가 봐도 전쟁터 몇 곳을 조자룡처럼 돌파해서 도착한 것처럼 보였는데 똥싸개는 당당한 어조로 대답했다.
“아무 일 없었습니다.”
“고생했다.”
색마가 내 우측 자리를 차지하자, 맏형이 직접 술을 따라줬다. 색마는 물을 마시듯이 삼킨 다음에 숨을 길게 내뱉었다. 동시에 색마의 정수리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색마가 나를 쳐다봤다.
“여기는 별일 없었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가 다녀갔다.”
“그랬군…… 뭐?”
“일단 일살을 빼앗겼고 화산에서 재회한 다음에 붙기로 했다.”
색마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맏형에게 보고했다.
“사부님, 권왕과 이군악이 각각 다쳤습니다. 외상이 크지는 않은데 독무를 들이마셔서 당분간은 쉽게 못 움직일 겁니다.”
교주의 말에 의하면 권왕 쪽이 가장 피해가 크다고 했는데 색마가 끼어 있어서 그랬던 모양이다.
나는 두 사람에게 술을 따라줬다.
술을 마시던 색마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가 밥을 짓고 있는 운남칠살을 바라봤다.
“너희는 뭐냐? 사파 놈들 같은데.”
내가 대신 대답해줬다.
“사파 아니야.”
색마가 나를 쳐다봤다.
“그럼?”
나는 만박마군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점소이와 숙수들.”
색마는 이내 운남칠살에게 관심을 끈 다음에 품에 손을 넣더니 꼬깃꼬깃한 헝겊을 하나 꺼냈다. 그 헝겊을 탁자에 내려놓은 다음에 손으로 주름을 없애면서 말했다.
“……권왕 선배가 깃발 같은 건 없다고 하셔서 오기 전에 급하게 만들었었다. 어쨌든 전달해달라고 부탁하더군.”
나는 맏형과 함께 권왕이 전달한 꼬깃꼬깃한 깃발을 바라봤다.
힘찬 필체로…….
권(拳)이라는 글자 하나가 적혀 있었다.
문득 맏형과 눈을 마주쳤다가 동시에 웃었다. 전략은 교주에게 간파당해서 실패한 것이나 다름이 없으나 선물을 하나 받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깃발을 손으로 들어서 예술 작품을 보듯이 감상했다.
“귀한 선물이네.”
이것은 오로지 내 마음에만 스며드는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