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162
◈ 162화
성녀 모르핀.
랭킹 6위의 플레이어이자, 천외천의 유일한 힐러.
그녀는 약간 꺼림칙한 사람이었다.
‘두말할 것도 없는 괴짜.’
단순히 신성력에 스텟을 올인했기 때문이 아니다. 강서준이 그녀를 괴짜라 칭하는 이유는 오직 그녀의 독특한 플레이 방식에 있었다.
‘신성력을 올리기 위해 몬스터도 가리지 않고 치료하는 사람이니까.’
물론 다소 독특하긴 해도, 따지고 보면 합리적인 방식이다.
숙련도를 올리는 데에 몬스터를 치료하든, 사람을 치료하든…… 결과적으로 그 스킬을 사용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
진짜 문제는 치료 이전에 있다.
‘때리고 치료하고 반쯤 죽여 놓고 다시 치료하고…… 보다 보면 몬스터가 불쌍할 지경이니 원.’
그뿐일까.
그녀는 연구라는 이유로 몬스터의 곳곳을 자르고 찌르며 고문을 일삼기도 했다.
발톱을 뽑거나 아킬레스건을 자르는 건 일상. 몬스터를 어떻게 괴롭히면 고통스러워하는지를 실험하는 괴짜 과학자 같기도 했다.
강서준조차 그녀의 연구 이전에는 드림 사이드의 자유도가 그 정도로 넓은 줄은 몰랐으니까.
‘어느 곳을 때리냐에 따라 미세하게 대미지도 다르다고 했고, 몬스터의 반응도 전부 달랐지.’
처음 그 사실을 알고 진짜 이 게임은 ‘갓겜’이다…… 뭐 그런 생각도 했었다.
결국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니 그런 자유도가 가능했던 것이지만.
한편 같은 생각을 한 걸까.
최하나는 약간 꺼림칙한 얼굴로 강서준을 바라봤다.
“결국 그녀를 찾는군요.”
“아무래도 마족을 상대하려면 그녀가 필요할 테니까요.”
솔직히 마주하기 약간 두렵다.
게임 내에서 봤을 때는 확실히 그녀는 성녀의 탈을 쓴 악마나 다름없었으니까.
혹시 인체 실험을 해 버리진 않을까.
과거에 NPC를 납치하겠다고 진지하게 계획을 짜던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렸다.
‘지레짐작하지 말자. 직접 만나 보기 전엔 아무것도 알 수 없어.’
냉혹한 저격수 클라크가 ‘아이돌 최하나’였고, 천외천 중에서도 랭킹 1위를 찍던 케이가 사실 ‘백수’였듯.
게임과 현실은 다르다.
성녀의 플레이 방식이 독특하다 하여 그 사람의 진면목을 쉽게 재단해선 안 될 일이었다.
막말로 FPS 게임을 한다고 실제 그 사람이 살인자가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따지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어둡겠지. 청소년 중 총 게임 한 번 안 해 본 애들이 몇이나 된다고.’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어쨌든 성녀를 만나 보죠. 듣자 하니 마음대로 만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 같지도 않지만…….”
여태 가만히 있던 진혁수가 나지막이 입을 연 건 그때였다.
“근데 어째서 광명동굴이죠?”
“네?”
“저도 성녀에 대한 얘기는 얼핏 들어 본 적 있어요. 분명 그녀는 ‘미국인’이라고 했는데…….”
아픈 아들을 데리고 있던 진혁수가 인터넷을 찾았을 때, 가장 먼저 검색해 본 게 ‘성녀 모르핀’이었다.
열병을 고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녀가 미국인이라는 걸 알고 진즉에 포기해 버린 것이다. 이 난리통에 미국으로 날아갈 수는 없었으니까.
“맞아요. 성녀는 미국인이죠. 살던 동네도 미국이고요.”
링링에게 전해 들은 바로는 그녀는 미국의 플레이어였다. 평소와 같았다면 미국까지 비행기를 타고 넘어갔어야 할 것이다.
강서준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서 광명동굴로 가는 겁니다.”
“……네?”
“그곳에 포탈이 열렸거든요.”
강서준은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의 진혁수를 향해 설명을 첨언하기로 했다.
“진혁수 씨는 던전 중 끝판왕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S급 던전?”
“아뇨. 그런 의미가 아니라 편의성을 중점으로 둬서요.”
곰곰이 고민하더니 말한다.
“이동 던전인가요? 도깨비 특급열차 같은…….”
강서준은 고개를 끄덕여 일단 긍정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드림 사이드에선 편의성에 주목할 법한 던전을 대개 ‘이동 던전’으로 부르곤 했으니까.
도깨비 특급열차, 유람선…… 아마 드림 사이드 1에서는 마차의 형태를 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그게 편의성의 끝판왕이 되진 못했어요. 진짜는 따로 있거든요.”
눈치 빠른 진혁수가 강서준이 하는 말의 맥락을 파악하고 말했다.
“……그게 광명동굴인 겁니까?”
“네. 정확하게 말하자면 광명동굴에 생긴 ‘포탈 던전’이 그 이유입니다.”
포탈 던전.
일명 ‘편의성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이 던전은 입구가 여러 개라는 특징이 있었다.
‘입구는 세계 각지에 열리고 단 하나의 던전으로 연결돼. 즉, 이 던전을 경유하면 다른 입구로 나갈 수도 있다는 거지.’
원한다면 광명동굴을 통해 미국으로도 넘어갈 수 있었다. 잠시 말이 없던 진혁수도 어림짐작하더니 물었다.
“포탈 던전을 이용해서 외국으로 넘어가실 계획이군요. 성녀가 있는 미국으로요.”
“음…… 반은 틀렸고 반은 맞아요.”
“네?”
“다시 말하지만 우리 목적지는 미국이 아니에요. 포탈 던전 그 자체죠.”
강서준은 서서히 보이는 광명동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쪽에서 무채색을 띤 채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포탈 던전 특유의 색이었다.
“포탈 던전은 세계 각지로 문이 열리는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기 쉬워요. 그 때문에 큰 규모의 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죠.”
세계 각지의 강자들이 모여들고 수많은 자본이 흘러 들어왔다. 포탈 던전은 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갖고 있었다.
“문제는 이 땅엔 몬스터가 없다는 거고, 다른 곳으로 나가는 문만이 생성된다는 거겠죠.”
“……몬스터가 없는 게 문제가 돼요?”
“그럼요. 모르긴 몰라도 여긴 전 세계의 무력이 충돌하는 각축장이 될 테니까요.”
몬스터가 생성되지 않은 유일무이한 안전지대. 하지만 던전의 등급만큼이나 넓은 땅덩어리는 고스란히 남았다.
원한다면 세계 어디든 문이 열리기까지 하니…… 군침이 돌지 않는다면 거짓일 것이다.
강서준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성녀는 그런 곳에서 지금 가장 큰 세력의 단체를 이끌고 있답니다.”
“아…….”
“그리고 성녀란 존재는 세계의 누구나 원할 수밖에 없죠. 그녀의 힐량은 가히 신의 기적과도 같을 테니까. 아마 경쟁이 심할 겁니다.”
현대 의학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각종 병들마저 고쳐 낼 것이다. 실질적으로 드림 사이드 2가 되면서 가장 큰 기적은 성녀의 등장이었다.
“그러니 조심해요. 우린 전쟁터로 가는 걸지도 몰라요.”
동시에 강서준은 손을 들어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을 콱 집을 수 있었다.
아연실색하여 놀라는 진혁수.
빠르게 무기를 꺼내어 경계를 하는 일행을 돌아보며 그가 말했다.
“어쩌면 이미 들어왔는지도 모르지만요.”
***
매복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콰앙! 콰아아앙!
포탈 던전.
다시 말하지만 이곳은 향후 세계의 거점이 될 정도로 그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장소니까.
누구든 주도권을 가져가려 할 것이다.
매복도 그 일환이었다.
‘하지만 던전에 입장도 하기 전에 이 난리라…… 흐음.’
부지불식간에 공간을 가르고 날아오는 건 반월의 형태로 압축된 공기였다.
바람을 활용한 마법 ‘바람 칼날’.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특징과 빠른 공격 속도로 인해서 대인 전투에 지나치게 탁월한 성능을 가졌다.
강서준은 류안부터 활성화시켰다.
‘마법사는…… 옥상에 있어.’
보이지 않는 마법이라 해도 그 흐름까지 속일 순 없다.
류안으로 흐름을 쫓은 강서준은 곧바로 광명동굴 인근 건물의 외벽을 박차고 올라 옥상에 다다랐다.
날카로운 바람 칼날과 수시로 쏘아지는 화살 세례가 그를 방해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스킬, ‘초상비(F)’를 발동합니다.]타아아앙!
한 번의 총성이 울리며 누군가의 미간이 꿰뚫렸다.
여지없이 뒤로 넘어가는 궁수들.
강서준은 그때를 놓치질 않았다.
[스킬, ‘파이어볼(F)’을 발동합니다]수 개의 파이어볼이 정면을 불태우고 궁수들을 괴롭혔다. 마법사들이 애써 방해했지만 공간을 이동하는 최하나의 총알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둘에게 어그로가 끌린 사이.
스거어억!
공간이동으로 순식간에 근접한 김훈의 기습이 펼쳐졌다.
눈을 휘둥그레 뜬 마법사들이 잠시 김훈에게 시선을 팔리고 말았다.
큰 실수였다.
“다짜고짜 기습이라…… 넌 누구냐?”
“……!”
“뭐 당장 말할 필요는 없어.”
재차 그를 노리고 쏘아진 바람 칼날이 약간 위협적이었지만, 가뿐히 피해 내며 마법사의 목을 잘라 냈다.
강서준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말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에요. 매복한 놈들 아직 많아요.”
“왼쪽은 제가 맡을게요.”
“오른쪽은 제가…….”
그렇게 양측으로 흩어진 최하나와 김훈이었다. 강서준은 호흡을 가다듬고는 동굴 내부로 시선을 돌렸다.
사실 이쪽이 본진인 듯했다.
가장 강력한 마력이 수시로 휘몰아쳤으니까.
‘보스몹도 아니고…… 귀찮게.’
류안은 흐름을 보는 눈이기에 상대의 수준을 명확하게 판단할 근거가 없다. 하지만 대충 봐도 알 수 있는 건 상대가 무시할 수 없는 강자라는 점.
‘과연…….’
어둠이 깔린 동굴 내부로 들어서니, 누군가가 권태로운 눈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너가 케이입니까?”
어눌한 말투.
지난날 짝퉁 하르트처럼 진짜 한국어를 구사하는 게 아니라, 통역 스킬로 하는 말이라 어색하기만 했다.
‘통역 스킬의 등급이 낮은 거겠지. 그나저나 중국인이라…….’
무협지에서 당장이라도 뛰쳐나온 듯한 복장과 삼국지에 나올 법한 청룡언월도를 꽉 쥔 청년.
나이는 동년배로 보였다.
“본인은 추공이다. 케이. 당신의 명성은 익히 들었다.”
“그거 영광이네.”
“싸우자. 널 쓰러트려 위대한 진 제국의 위상을 드높일 예정일 것이다.”
인터넷 번역기라도 돌린 듯한 어눌한 말투에 비해, 놈이 잡는 자세는 긴장을 불러왔다.
다소 위협적이었다.
‘스텟은 엇비슷하려나…….’
아직 영혼 수급이 부족하여 이매망량은 봉인해야 했다.
그가 활용할 스킬은 재앙의 유성검의 전용 스킬인 ‘블러드 석션’.
물론 이걸로도 충분했다.
사소한 문제가 있다면…….
“나랑 싸우자면서 왜 친구들을 데려와. 양심도 번역기에 갈아 버렸냐?”
“진 제국은 하나다! 죽어라!”
어둠 속에 숨어있는 놈들이 정체를 드러내자 물경 수십은 되는 중국인들이 나타났다.
유기적인 움직임.
마치 무협지의 천라지망(天羅地網)이라도 펼친 듯 촘촘한 포위망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근데 다 보이거든?”
가볍게 혀를 찬 강서준은 두 다리의 근육을 팽팽히 당겼다. 그리고 금빛으로 물들인 눈으로 놈들의 움직임을 빠짐없이 읽어 냈다.
흐름 속의 빈틈.
그곳으로 여지없이 파고들면서 재앙의 유성검을 재빠르게 휘둘렀다.
[장비 ‘재앙의 유성검’의 전용 스킬, ‘블러드 석션’을 발동합니다.]“으아아악!”
바깥으로 터지는 핏물은 없었다. 그대로 검이 미친 듯이 흡수해 버렸으니까.
강서준은 물 흐르듯 놈들의 포위망을 잘라 내면서 말했다.
“맞다. 궁금한 게 있어.”
“……?”
“내가 케이라는 거 어떻게 알았어?”
그가 지구로 복귀했다는 소식은 아직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다들 죽은 줄만 아는 게 그였다.
“다짜고짜 날 케이라 부르질 않나, 이만한 인원을 미리 준비한 것도 그렇고…… 내가 여기 올 줄 알고 있었나 본데.”
하지만 놈은 강서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질 못했다. 통역 스킬이 오직 말하는 것에 치중된 걸까.
그도 아니면 모른 척하는 걸까.
“너는 오늘 죽었다. 이 추공의 창술이 널 찌를 것이다.”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됐다. 말해 뭐 하겠냐.”
물어도 돌아오지 않는 질문은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상대가 누구든 당장 그들의 목적은 하나였다.
강서준을 죽여야겠다는 것.
집단으로 펼치는 살기가 불쾌할 정도로 그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결국 내가 할 일도 하나인데.”
아직 배가 고프다는 듯 아우성을 치는 재앙의 유성검을 의식하며, 강서준은 묵묵히 적진으로 뛰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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