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74
◈ 74화
강서준은 리자드 백부장의 눈 속에서 자르르 떨리는 마력을 확인했다.
‘누군지 몰라도 교묘하게도 숨어 있군.’
사실 비슷한 정황을 겪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10호선에서 ‘트리거 최만기’를 상대할 때도 비슷한 마력의 흐름을 미약하게나마 느낀 적이 있었다.
그땐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트리거 자체가 워낙 마력이 들쑥날쑥한 흐름을 보였으니까.
‘그조차 반복되면 우연은 아니겠지.’
다음으로 느꼈을 때는 의외로 이곳 ‘리자드맨의 우물’, 그것도 ‘생존 캠프’에서였다.
‘내 류안을 피한 것도 이 스킬 덕이겠지.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으니, 놈의 행적을 쫓을 수 없었던 거야.’
어쩌면 놈의 스킬은 다른 사람의 몸에 기생하는 방식일지도 몰랐다. 지금처럼 리자드맨 백부장의 눈 속에 마력을 심어 둬서, 염탐을 하는 것이다.
드림 사이드 1에서 비슷한 스킬을 쓰던 놈을 상대해 본 기억이 난다. 대충 어떤 스킬인지도 감이 잡힌다.
“……후우.”
강서준은 실낱같던 마력의 흐름조차 완전히 대기 중으로 소멸한 걸 확인하며, 리자드맨 백부장을 냅다 던져 버렸다.
시체가 떨어진 곳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이던 리자드맨 전사와 호른 부족 사람들 사이였다.
툭 떨어진 엘리트 몬스터.
서로 반대되는 감정이 순식간에 교차했다.
“……적장이 쓰러졌다!”
“와아아아!”
“키이이이잇!!”
노도와 같은 기세로 퍼져 나간 함성은 리자드맨 전사의 사기를 대폭 깎아 내려갔다. 놈들은 점차 무기를 떨어트리고 뒤로 물러났다.
강서준은 기세를 몰아 공격을 가했다.
마찬가지로 시기를 놓치질 않고, 부족의 전사와 플레이어가 한데 뭉쳐 맹공을 퍼부어 나갔다.
결국 놈들은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키이잇…… 키잇!”
“키이이이잇!!”
대충 해석하자면, ‘퇴각’이라는 단어라도 내뱉는 모양이었다. 놈들이 꼬리 빠지게 도망치기 시작했으니까.
사람들의 함성은 더욱 커졌고, 전투가 일단락되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눈앞으로 메시지가 나타났다.
[퀘스트의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당신은 ‘호른 부족’을 선택했습니다.] [‘호른 부족’을 도와, ‘주인’을 완성하십시오.] [보상으로 ‘호른 부족의 호의’를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무려 5레벨이나 단번에 올라가 버리고 말았다. 리자드맨 전사나 리자드맨 백부장의 평균 레벨을 고려한다면 마땅한 수준이었지만 그럼에도 대단한 폭업이었다.
‘이대로면 진짜 머지않아 C급 던전 보스를 공략할 수도 있겠는데.’
물론 이제야 103에 다다른 플레이어인 그가 200레벨에 근접하는 C급 던전 보스를 어찌할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강서준이 생각하는 건, 그의 심상치 않은 레벨 업 속도.
최소 레벨 120대의 던전에서 100레벨 플레이어가 활약을 한다는 것부터 폭업은 보장된 셈이었다.
그렇게 만족할 만한 폭업에 플레이어들이 기뻐하는 사이.
NPC 진영, 말하자면 ‘호른 부족’의 사람들이 한데 뭉쳐서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강서준은 금세 표정을 감추고 그들을 맞이했다. 전사들 사이로 누군가가 실루엣을 보이고 있었다.
“예를 갖추어라. 카린 호른 님이시다.”
그러자 일제히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는 부족의 전사들. 어정쩡하게 가만히 선 아크의 플레이어를 제외하고, 모두 한쪽 무릎을 굽히고 고개를 숙인 형국이 됐다.
전사들 사이에서 머리까지 눌러썼던 모자를 벗은 한 NPC가 강서준의 앞에 섰다.
‘……NPC?’
이름, 카린 호른.
움직일 때마다 이글거리는 불꽃 같은 붉은색 머리카락이 인상적인 여자였다.
[호른 부족의 무녀, ‘카린 호른’을 마주했습니다.]그녀는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로군요. 위기에 빠진 호른 부족을 구할 영웅이…….”
동시에 강서준의 눈앞이 점차 흐릿해지면서 주변의 풍경이 뭉개지는 걸 볼 수 있었다.
다소 당황스러웠지만, ‘위기 감지’가 발동하질 않는 걸로 보아 해가 되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그는 ‘페루의 마추픽추’를 연상케 하는 공중 도시의 중앙에 서 있었다.
호른 부족의 도시, 갈릴리오.
마을의 주변으로 기암괴석이 빙 둘러 높이 솟았고, 우거진 수풀이 낮게 아래에 깔린 정경이 보였다.
강서준을 비롯한 아크의 모든 플레이어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둘러보며 나지막이 탄식했다.
‘……시나리오 영상이로군.’
C급 던전부터는 선택지가 존재했고, 원하는 진영을 선택하면 관련된 시나리오가 영상으로 나오는 것이다.
강서준은 갈릴리오의 중앙에 묶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확인했다.
입술은 메말랐고 벗겨진 살가죽 위로 피가 굳어 온몸이 얼룩덜룩했다. 살아는 있는지 종종 꿈틀거리긴 했다.
「똑바로 걸어!」
「……크윽!」
강서준은 영상의 시점이 누군가의 눈에 고정됐다는 걸 깨달았다. 시선 끝엔 등허리에 화살이 꽂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오빠!」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강서준은 그제야 이 시점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카린 호른.’
영상은 카린 호른의 시점으로 재생되고 있었다. 그녀의 곁으로 호른 부족의 전사가 은밀하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지금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하지만 오빠가…….」
「부족의 운명이 걸려 있습니다, 카린 님. 강해지셔야 합니다!」
전사의 목소리에도 카린의 발길은 쉽게 떨어지질 않았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은 오빠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렸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찌 모르십니까…… 이것도 전부 족장님의 의지인 것을.」
그러더니 전사가 참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디 용서하소서. 죄송합니다.」
뚝, 하고 영상이 점멸했다.
전사가 카린의 목을 손날로 내리쳐 잠시 기절을 시킨 것이다.
잠시 기다리니 영상은 3인칭으로 바뀌었다. 묶여 있는 족장을 뒤로하고 카린을 데리고 은밀하게 도망치는 전사들의 모습이었다.
몇 번 위험한 순간도 겪었지만 가까스로 갈릴리오를 벗어났다. 그들은 숨어 있던 동료들을 찾아 수림을 헤치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카린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갈릴리오에서 한참 떨어진 수풀의 한가운데였다.
「반드시 구해 줄게. 기다려.」
돌아가기엔 너무 늦은 시점이었다.
카린은 무녀인 자신의 능력을 십분 활용하기로 했고, 이윽고 ‘신탁’을 들을 수 있었다.
수림을 가로질러 리자드맨의 소굴인 동쪽으로 향하다 보면, 호른 부족을 구할 ‘영웅’을 만날 수 있다고.
그들은 보면 알 것이라고.
해서 전사들을 이끌고 수림을 가로질렀다. 도움을 줄 ‘영웅’을 찾아 먼 여정을 떠나왔다.
띠링!
[새로운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영상이 끝나고 순식간에 그들은 본래 서 있던 자리로 돌아왔다.
강서준은 자신의 앞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여는 카린을 바라봤다.
“영웅님, 부디 저희 호른 부족을 구해 주십시오. 저희 오빠…… 오가닉 족장님을 살려 주세요!”
+
분류 : 시나리오
난이도 : C
조건 : 호른 부족은 불온한 세력에게 침입을 당한 상태입니다. 카린 호른을 도와, 부족을 구하십시오. 그녀는 위기에 처한 족장의 생존을 원합니다.
제한 시간 : 24시간
보상 : 족장 오가닉의 생존
실패 시 : 족장 오가닉의 사망
* 족장 오가닉은 시나리오의 핵심 인물입니다. 사망 시, 퀘스트의 난이도는 대폭 상승합니다.
* 현재 족장 오가닉은 모종의 이유로 모든 힘을 봉인하고 있습니다. 원인을 제거하십시오.
+
[퀘스트를 수락하시겠습니까?] [Yes / No]강서준은 나지막이 침음을 삼켰다.
이 메시지창은 이른바 최후 통보였다. 여기서 Yes를 누른 순간부터 플레이어의 운명은 호른 부족과 함께하게 된다.
훗날 리자드맨이 ‘던전의 주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면, 호른 부족을 선택한 자들은 리자드맨의 하수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 시나리오의 퀘스트였다.
하지만.
‘고민할 것도 없다.’
강서준은 망설임 없이 Yes를 눌렀다. 여타 다른 플레이어도 마찬가지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리자드맨이 아무리 막강해도, 도마뱀 인간으로 구성된 몬스터 집단이었다. 놈들의 편을 든다면 당연히 이곳에 있는 NPC 집단인 호른 부족을 향해 칼을 뽑아 들어야 하는 것이다.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NPC라 해도 인간을 상대로 몬스터와 손을 잡고 싶진 않아.’
강서준은 카린에게 말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퀘스트를 수락하셨습니다.] [‘강서준의 파티’는 ‘호른 부족’의 운명 공동체가 되었습니다.]그리고 한편으로 컴퍼니의 수작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퀘스트 내역에 적혀 있는 ‘불온한 세력’은 컴퍼니를 말하는 걸 수도 있었다.
‘시나리오 영상을 보면 족장을 묶은 건 인간이었어. 놈들이 지능이 있다고 해도 완전히 인간의 모습을 할 수는 없어.’
S급 던전에서의 용족이 폴리모프라도 하는 거라면 모를까. 고작 리자드맨 따위가 인간이 될 수는 없었다.
즉 인간이 개입한 일이다.
‘호른 부족을 돕다 보면 자연스레 컴퍼니도 쫓을 수 있겠어. 눈 속에 숨었던 그놈도 만날 수 있겠지.’
강서준은 서늘하게 웃었다.
‘두고 보자고. 이름 모를 새끼야.’
***
어두운 방. 수정구를 내려다보던 한 남자는 질겁하며 손에 힘을 놓고 말았다.
투우웅.
바닥에 떨어져 데굴데굴 굴러가는 수정구. 남자는 그런 것 따위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는 듯했다.
그는 진실로 공포를 느꼈다.
“……날 봤어.”
크록, 현재 이름은 배기찬.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수정구 너머로 이쪽을 노려보는 한 남자를 가만히 응시했다.
꿈에도 나올까 두려운 얼굴이었다.
케이.
배기찬은 침음을 삼켰다.
[스킬, ‘염탐(A)’을 해제했습니다.]그의 A급 스킬 ‘염탐’이 해제되면서 수정구는 무채색으로 색깔이 변했다. 배기찬은 그 와중에 입을 열 수 없었다.
“젠장…….”
그는 번뜩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섰다. 후덥지근한 열대기후가 그를 반겼고, 가까이에서 대련 중인 리자드맨 전사들이 보였다.
배기찬은 입술을 잘근 깨물며 그의 수하를 불러들였다.
“홍길.”
“무슨 일이십니까?”
“호른 부족의 진척 상황을 보고해라.”
“……10분 전에도 말씀드렸는데요.”
“닥치고 말해.”
사나운 배기찬의 기세에 홍길은 한숨을 푹 내쉬며 스마트폰을 꺼냈다. 발신은 가장 최근 목록에 있었다. 따로 조작할 것도 없다.
-……왜 또 전화야?
“배기찬 님이 호른 부족 상황을 알고 싶어 하셔.”
-10분 전에 알려 줬잖아.
“그니까 그간 변화는 없었냐고.”
-끙……. 기다려 봐.
10분 전에 보고된 일일지라도 상부의 명이라면 일단 따르는 게 상책이었다.
별수 없이 잠시 멀어졌던 소리는 금세 돌아왔다.
-특이 사항은 없어. 여전해.
“아직 안 죽었지?”
-응. 하지만 얼마 안 남았어. 하루면 끝날걸?
“마을 사람들은?”
-거의 다 넘어왔지. 지들 족장이 저 모양이고, 부족의 전사들은 도망갔어. 안 버티고 배기겠어?
“그래, 알겠다.”
그렇게 홍길이 전화를 끊으려 하자, 대뜸 배기찬이 전화기를 낚아채 갔다.
“나 배기찬이다.”
-……네?
“재지 말고. 당장 도마뱀을 준비시켜라.”
-도마뱀이라뇨?
배기찬은 사나운 어조로 재차 입을 열었다.
“같은 말을 반복하게 할 건가?”
-아, 아닙니다. 하지만 제대로 움직이려면 하루의 여유 시간은 필요합니다.
“반나절로 끊어.”
-네?
“또 되물으면 죽일 것이다.”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홍길은 사색이 된 얼굴이었다. 배기찬은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어 버리더니 그대로 홍길에게 던져 줬다.
“……아니야. 이대로도 불안해.”
배기찬은 홍길에게 한 가지 명령을 더 내렸다.
“트리거도 움직여야겠어. 2단계 작전을 당장 시작하라고 전해라.”
그럼에도 배기찬의 눈은 불안한 듯 세차게 흔들릴 뿐이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