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gendary Ranker's Comeback RAW novel - Chapter 75
◈ 75화
C급 던전 ‘리자드맨의 우물’에서도 서쪽의 산봉우리에 있는 NPC들의 마을.
호른 부족의 공중 도시, 갈릴리오.
강서준은 수풀 속에서 그곳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시름시름 앓고 있다고요?”
“네. 알 수 없는 전염병이었습니다. 처음엔 무기력증이나 피로를 호소하다, 얼굴에 홍조를 띠면서 숨은 가빠졌죠. 점차 손발톱은 흑색으로 물들고…….”
요약하자면 호른 부족의 사람들은 ‘던전병 초기 증세’를 겪고 있었다. 반주역에서 수많은 시민들이 겪던 증상과 똑같았다.
호른 부족이 컴퍼니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연유 중 하나일 것이다.
‘던전병이라…….’
이 타이밍에서 던전병이 NPC들의 마을에 나타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이번 일에 관여한 그놈은 ‘트리거의 눈’에도 숨어 있었지 않은가.
‘반주역도 그놈 짓이겠지.’
강서준은 카린을 돌아보면서 물었다.
“혹시 족장님도 그 병에 걸린 겁니까?”
“그럴 리가요. 용맹스러운 분이십니다. 그딴 듣도 보도 못한 병에 걸리실 리가 없어요.”
“그럼 적에게 당한 겁니까?”
“말도 안 되죠. 족장님이 싸움에 지신다고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족장에 대한 믿음이 신실한 카린을 보면서 강서준도 같은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마따나 족장이 당했을 확률은 현저히 낮았다.
‘오가닉 족장.’
말하자면 호른 부족의 최고 수준에 해당하는 NPC였다.
리자드맨으로 따지자면 던전의 보스 격인 ‘리자드왕’과 같은 수준이었다. 만약 강서준이 리자드맨을 선택했다면 그의 최종 보스는 아마 ‘오가닉 족장’이 됐겠지.
카린은 입술을 잘근 깨물면서 말했다.
“저 때문이에요.”
“네?”
“제가 세아를 마을 밖으로 데려가지만 않았어도……!”
세아 호른.
오가닉 족장의 하나뿐인 딸.
사건의 발단은 카린이 세아를 데리고 마을 밖으로 나간 데에 있었다.
그날 카린은 컴퍼니를 비롯한 리자드맨의 습격을 받았고, 결국 세아 호른이 납치되는 결과를 낳았다.
세아 호른은 오가닉의 약점이었다.
“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요.”
부들부들 떨면서 애써 눈물을 삼킨 카린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점차 분노로 승화시켰다. 그녀의 살벌한 눈초리가 도시의 경계병을 훑었다.
부족의 전사를 대신하여, 갈릴리오의 외곽을 지키는 가면인들.
이미 그곳은 컴퍼니에게 장악당한 상태였다.
“약점이라…….”
곰곰이 고민하던 강서준은 카린과 시선을 맞추면서 말했다.
“우선 세아부터 구해야겠군요.”
퀘스트의 목적인 오가닉 구출 작전의 핵심은 아무래도 ‘세아’에게 있었다.
사실상 오가닉이 당장 죽을 위기에 처한 건, 오직 딸의 생사를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오가닉이 죽을 위기라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오가닉이 고작 컴퍼니에게 당할 정도로 약한가? 아니다. 그는 리자드왕에 버금가는 이 던전 내 최강의 NPC였다.
애초에 컴퍼니 내부에 오가닉을 가지고 놀 정도의 강한 플레이어가 포진됐다면, 구태여 세아를 납치할 이유도 없었다.
‘약점만 제거하면 공략은 쉬울 거야.’
그리하면 마을에 이딴 짓을 벌인 컴퍼니를 오가닉이 친히 나서서 직접 처단할 것이다.
무려 보스급 NPC가 말이다.
강서준은 계획을 일행과 공유하며 갈릴리오를 바라봤다. 백주대낮에 저곳으로 잠입할 생각은 없었다. 계획의 실행은 오늘밤이었다.
‘아직 제한 시간은 여유가 있으니까.’
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으레 그렇듯, 뜻대로 흘러가는 법은 없었다.
***
그래.
세상일이란 게 원래 이렇듯 막무가내로 흘러간다. 석 달 전, 갑자기 지구가 게임이 되어 버린 것처럼.
강서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 속으로 스며들었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오른 현재.
그는 갈릴리오의 중심에 다닥다닥 붙은 사람들 틈에 껴있었다. 멀리 수많은 사람들이 시체처럼 매달린 중앙 광장이 보였다.
그곳엔 호른 부족의 족장 ‘오가닉’도 죽은 듯이 통나무에 묶여 있었다.
“오빠…….”
작게 읊조리는 카린을 일별한 강서준은 퀘스트창을 확인했다. 그가 이처럼 계획대로 밤에 움직이지 못한 데에는 아주 단순한 이유가 있었다.
[제한 시간 : 1시간]퀘스트 창에 명시됐던 본래의 제한 시간인 24시간이 훌쩍 줄어들어, 금세 1시간밖에 남질 않았다.
원인은 금세 알았다.
‘플레이어가 개입한 거야.’
퀘스트의 내용에 간섭할 수 있는 녀석은 또 다른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을 플레이어밖에 없었다.
제한 시간도 컴퍼니가 어떻게 행동하냐는 것에 따라서 줄어들 수 있었다.
결국 컴퍼니가 관여하면서 생겨난 변수였다.
그리고 중앙 광장에 다다른 강서준은 놈들이 어떤 방법으로 제한 시간을 줄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말을 안 들으면 전부 이렇게 될 것이다.”
험악한 목소리였다. 날붙이를 들고 오가닉의 앞에서 망나니처럼 칼춤을 추는 놈이 있었다.
오가닉은 곧 죽을 안색이었다.
놈은 오가닉의 어깨에 칼을 콱 찔러 넣으면서 마을 사람들을 재차 돌아봤다.
“똑똑히 보아라. 감히 반항하면 어찌 되는지!”
검붉은 피가 어깨를 뚫고 나온 검신을 따라 쭈욱 흘러내렸다. 바닥으로 뚝뚝 피가 떨어졌지만 오가닉은 신음 하나 흘리지 않았다.
시시각각 떨어지는 HP의 총량과 제한 시간조차 분 단위로 줄어들고 있었다. 그의 목숨은 지금 한낱 종잇장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오가닉은 비명조차 지르지 않았다.
엄청난 기개였다.
“……지독한 놈.”
그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컴퍼니는 대뜸 칼을 어깨에서 뽑았다. 그리고 씨익 웃으면서 광장을 쭉 둘러봤다.
놈의 시선이 닿은 곳엔 허름한 옷의 여자가 있었다.
“저 여자를 데려와라.”
그의 명에 중앙 광장에 서 있던 한 여자가 억지로 끌려왔다. 그녀는 배가 불룩 나온 임산부였다.
망나니는 칼을 흔들면서 임산부의 목 언저리에 날붙이를 댔다.
“오가닉. 네놈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 보느냐.”
“…….”
“당장이라도 항복하질 않는다면, 이년을 죽일 것이다.”
임산부의 목에 칼이 닿아 피가 흘렀다. 그런 서늘한 감각에 몸을 떠는 임산부였지만, 당장 그녀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는 듯했다.
전사들은 이미 마을을 떠났고.
족장은 약점이 붙잡혀 빈사 상태였다.
강서준은 금방이라도 뛰쳐나가려는 카린과 부족의 전사들을 억지로 억누르며 말했다.
“아직입니다. 아직 때가 아니에요.”
“하지만 이대로는……!”
“기다려요.”
대신 강서준은 인이어 이어폰을 통해서 빠르게 작전 지역에 잠입한 그의 일행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제한 시간은 얼추 40분.
하지만 이조차 놈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쉽게 뒤집을 수 있는 시간이니, 제한 시간에 큰 의미를 둘 것도 없었다.
그래.
제한 시간은 의미가 없다.
강서준도 플레이어였으니까.
‘시간을 줄일 수 있다면.’
반대로 늘릴 수도 있는 법이다.
강서준은 모든 준비가 끝났다는 문자를 확인하며, 오가닉 족장을 확인했다. 망나니의 칼에 찔릴 위기에 처한 임산부를 보고도, 그는 아무런 감정도 없는 눈을 하고 있었다.
모든 걸 포기한 걸까.
반면 강서준은 망나니를 노려봤다. 가면 속으로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놈이 호쾌하게 터뜨리는 웃음소리는 들렸다.
사이코패스처럼 임산부를 인질로 삼아 웃음을 터뜨리는 꼴이라니.
어느 쪽이 몬스터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저런 불쾌한 인질극을 펼치는 이유는 뻔했다.
‘이 마을을 통째로 꿀꺽할 속셈이겠지.’
족장의 의지를 꺾는다면 마을 사람들의 실낱같던 의지도 전부 꺾여 나갈 것이다. 놈들의 목적은 그것이었다.
‘네들 뜻대로 될 것 같냐.’
그때였다.
타아아아아앙!
지축을 흔드는 커다란 총성과 함께 임산부를 위협하던 망나니의 몸이 한 차례 들썩였다. 어깨를 가격당한 놈이 두어 바퀴 바닥을 구르더니 괴로운 비명을 질렀다.
단 한순간이었다.
“끄아아아악!”
“저, 저격이다!!”
타아아앙!
누군가의 어깨를 스치고 바닥에 불꽃이 튀었다. 가면인들은 빠르게 엄폐물에 몸을 숨겼다.
두 발의 저격.
갈릴리오는 침묵에 휩싸였고, 뒤늦게 마을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며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강서준은 혼란 속에서도 퀘스트 내역을 확인했다.
‘……10분 늘어났군.’
꺾일 뻔한 오가닉의 의지가 조금 굳건해졌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오가닉은 죽을 위기였다.
가만히 놔둬도 과다 출혈로 사망하겠지.
“지금입니다!”
강서준은 재차 울리는 총성을 들으며, 엄폐물 뒤로 숨은 가면인을 향해 검을 뽑아 들었다.
귀신같은 움직임으로 뒤를 잡은 그는 빠르게 검을 찔러 넣었다.
동시에 숨어 있던 아크의 플레이어, 곳곳에 산재했던 호른 부족의 전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아!!”
“적습! 적습이다!”
그 순간, 요란하게 하늘 위로 뭔가가 날아왔다. 콰앙! 공중을 날아 폭발한 무언가는 중앙 광장 위로 비처럼 쏟아졌다.
[‘중급 HP포션’을 온몸에 맞았습니다.] [‘중급 HP포션’을 온몸에 맞았습니다.] [‘중급 HP포션’을 온몸에 맞았습니다.] [미미하게 체력이 회복됩니다.] [미미하게 체력이 회복됩니다.] [미미하게 체력이 회복됩니다.]실시간으로 전투를 벌이는 사람들 사이로 쏟아지는 포션 비.
이는 곧, 다친 사람들에게 미미하지만 체력 회복 효과를 주었다. 서로 주고받는 상처에 비해 허접한 성능에 불과했지만 상관없었다.
목적은 그게 아니니까.
그 미미한 체력 회복 효과조차 오가닉의 체력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다.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리고 오가닉의 목을 베려고 몇몇의 가면인이 달려들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타아아앙! 타아앙!
“젠장…… 저격수 좀 어떻게 해 봐!”
“어디에 있는데?”
“몰라!”
“끄아아아악!”
여지없이 날아드는 총알은 오가닉에게 향하는 모든 이들을 저격했다. 강서준은 이를 의지하며 더욱 화려하게 날뛰기로 했다.
기왕 시간을 끌 거라면 더욱 요란하게 움직여 줘야겠지.
“무, 무슨 공격력이……!”
강서준의 검은 서릿발을 만들고, 부딪칠 때마다 얼어붙을 것만 같은 대단한 추위를 느끼게 했다.
전투는 중앙 광장 전체로 확대됐고, 갈릴리오 전역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소음으로 가득 찼다.
“족장님을 구해 내자!”
“와아아아!!”
***
한편 김강렬은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쿠구구궁.
천장이 흔들리고 돌가루가 연신 떨어져 댔다. 긴장한 대원들을 돌아본 김강렬은 은밀하게 수신호를 보냈다.
“커헉!”
어둠을 틈타 적진에 숨어든 대원들이 주변을 경계하던 가면인들의 목에 칼을 꽂았다. 성대를 찔렀는지 놈들은 그저 꺽꺽대며 소리 없이 죽어 갔다.
안쪽으로 먼저 들어간 대원이 무전을 보내 왔다.
-입구 클리어.
-통로 클리어.
시시각각 전해 들은 보고를 따라서 이동한 김강렬은 이윽고 기다리던 무전을 들을 수 있었다.
-VIP 찾았습니다.
꼬불꼬불하게 개미굴처럼 기암괴석 내에 만들어진 갈릴리오의 감옥.
그곳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엔 한 소녀가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오랫동안 어둠 속에 있어서 빛에 익숙하지 못했는지, 눈조차 제대로 뜨질 못하는 그녀였다.
김강렬은 일단 HP포션부터 꺼냈다.
“세아 님 맞으십니까?”
“……누, 누구시죠.”
“카린 님이 보내서 왔습니다. 이것부터 드시지요.”
꿀꺽꿀꺽, HP포션을 받아 마시니 점차 그녀의 얼굴에도 혈색이 돌았다. 세아는 황망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한 남자를 발견했다.
“……칼?”
“네. 세아 님. 저 칼입니다.”
“칼!!”
호른 부족의 전사. 이곳까지 안내를 해 준 그는 세아를 꽉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
두 사람을 가만히 보던 김강렬은 괜히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닙니다. 얼른 나가야 해요.”
갈릴리오의 전역으로 퍼지는 폭음은 점점 커지기만 했다. 강서준이 컴퍼니를 상대로 열심히 어그로를 끌고 있다는 증거였다.
김강렬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갑시다. 안전한 곳으로 먼저 이동하는 게 우선입니다.”
“……네.”
작전은 성공적이었고, 이젠 NPC 세아를 안전한 곳으로 빼돌리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김강렬은 무전으로 작전이 성공했음을 알릴 생각이었다.
……쿠구구궁!!
소름 끼치는 괴성과 함께 눈앞의 천장이 무너져 내리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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