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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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30 – 미슐랭의 품격 (4)
장내에 자리한 모든 이들의 시선이 ‘호세 아빌레’ 셰프 팀의 조리대로 향했다. 많은 이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예선이 아닌, 본선. 애매모호한 실력을 지닌 팀은 모두 탈락하고, 확실한 실력을 갖춘 이들만 남은 상황이지 않던가?
물론 조리 속도가 셰프 개개인의 스타일에 따라 큰 차이가 생길 수 있는 부분이라지만, 어찌 됐든 그들이 장내에 자리해 있는 모든 팀들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조리를 마친 것은 명백하기 그지없는 사실이었다. 여타 참가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일절 부족함이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 팀의 조리대를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필상 역시 마찬가지였다.
‘빠르네.’
그렇게 필상이 분주히 움직이던 손을 잠시 멈춘 채로, 호세 아빌레 셰프 팀의 조리대를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찰나였다. 바로 곁을 지키고 서 있던 다빈이 슬쩍 다가와서는, 낮은 목소리로 물음을 건네 왔다.
“저쪽 팀 메뉴와 심사위원진 평이 궁금하긴 하네요. 요리하는 내내, 틈이 날 때마다 곁눈질로 살펴봤는데 생소한 요리들이 태반인 것 같더라고요.”
“아마 남미 쪽 전통 요리들을 주로 선보였을 거예요. 포르투갈 전통 요리를 비롯한 남미풍 요리들을 *축(*軸)으로 삼아, 여러 방식을 대입해서 새롭게 해석하는 게 호세 셰프의 특징이자 특기니까요.”
두 사람이 낮은 목소리로 사담을 주고받던 그때였다. 어느새 호세 셰프 팀의 조리대 앞에 다다른 심사위원, ‘폴 보티즈’가 콧잔등까지 흘러내린 제 무테 안경을 손끝으로 살짝 밀어 올리고는 되물었다.
“셰프, 서른두 개 팀 중 가장 먼저 조리를 마치셨군요.”
“예, 어쩌다 보니 그렇네요.”
“코스에 대한 간략한 설명 좀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이내 호세 아빌레 셰프가 심사위원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춰가며 천천히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제가 현재 운영 중인 파인다이닝, ‘필 하모닉 디너’에서 선보였던 메뉴들을 살짝 변형시켜봤습니다. 하지만 미국 곳곳에 널려있는 포르투갈 레스토랑을 상상하셔선 안 될 겁니다. 인테리어만 리스본풍으로 꾸며놓은 게 전부인 주제에, 퓨전 포르투갈 전문점이라 주장하는 삼류 레스토랑과는 아예 격 자체가 다를 테니까요.”
그 말에 몇몇 심사위원들이 눈살을 살짝 찌푸려 보이기를 잠시. 폴 보티즈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고즈넉한 투로 덧붙였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정말 대단하신 것 같군요. 하지만 뭐든 지나치면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일쑤죠.”
그의 말이 끝맺어지기 무섭게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반면, 호세 아빌레 셰프는 초지일관 태연하게 굴어대고 있을 따름이었다.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심사위원들을 한 번 쭉 둘러보며 자연스레 제 할 말을 늘어놓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오만이나 자만이 아닌, 자부심이라 여겨주시면 감사할 것 같군요. 몇몇 심사위원분들은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저는 여덟 살이 되던 해에 화로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장장 이십 년이란 시간 동안 요리를 배웠죠. 실무 경력만 하더라도 족히 십수 년은 될 겁니다. *쿡 헬퍼(*Cookhelper:주방보조) 신분으로 주방에 첫발을 내디뎠던 게 열네 살 무렵의 일이니까요.”
그가 지닌 이십 년가량의 경력은, 어지간한 기성 셰프들과 견주더라도 절대 손색이 없는 기나긴 경력이랄 수 있었다.
그가 젊은 나이에 업계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많은 것들을 이뤄냈음에도 그나마 질투와 시기를 덜 받을 수 있던 이유이기도 했고 말이다.
“또, 저는 요리를 시작한 이후로 오직 한 가지 고민만을 하며 살아왔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파인다이닝, ‘필 하모닉 디너’는 그 고민의 정수가 모여 만들어진 집약체죠. 제 삶을 다 바쳐 일구어낸 곳인데, 당연히 자부심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있던 심사위원들이 하나둘씩 긍정적인 반응을 표하기 시작했다. 아직 요리를 맛보지도 않았는데 그에게 매료된 듯 보일 따름이었다.
오롯이 화려한 언변 덕일 수도 있다지만, 뭐랄까? 그의 낮고 조곤조곤한 목소리 속에는, 듣는 이로 하여금 경청할 수밖에 없게끔 하는 형용할 수 없는 힘이 실려있는 것만 같았다고 해야 할까?
이내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그를 들여다보고 있던 심사위원 ‘다비 리트’가 제 고개를 천천히 한 번 주억거려 보이고는 나직이 말을 이었다.
“인정하죠. 짧지만 임팩트 있는 훌륭한 스피치였네요. 그럴 수만 있다면, 가산점을 드리고 싶을 지경이에요. 심사에 앞서 한 가지만 더 여쭤보도록 하죠. 요리를 시작한 이후로 오직 한 가지 고민만을 하며 살아왔다고 하셨죠?”
“예, 그렇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어떤 고민을 품은 채로 주방에 계셨을지가 자못 궁금해지는군요. 혹시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말에 호세 아빌레 셰프가 고개를 살짝 비스듬히 기울여 보이고는 되물었다.
“혹시 메뉴를 서비스해드리며 말씀드려도 될까요?”
“얼마든지요.”
“감사합니다.”
이내 호세 아빌레 셰프가 코스의 초미(初味)를 장식하게 될 첫 번째 요리가 담긴 접시를, 조리대 위에 가볍게 내려놓으며 재차 말을 이었다.
“간단합니다. 제가 나고 자란 포르투갈 전통 요리의 맛을 끌어올릴 방법에 대해서만 고민했습니다. 전통이나 격식 등에 얽매이지 않고, 쉽게 말씀드리자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골몰하고 대입했죠.”
말을 마친 그가 첫 번째 메뉴가 담긴 접시의 테두리를 가볍게 ‘톡, 톡.’ 두드려가며 재차 덧붙였다.
“저는 스물이 되기 전까지 여덟 개 국가를 돌아다녔습니다. 비록 제대로 된 한 명의 스승 밑에서 배우지는 못했지만, 세계 각국을 떠돌며 타국의 조리법을 배웠고 오롯이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시간을 보냈죠.”
“결과는 어떤 것 같습니까?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입니다. 제 파인다이닝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작년에는 최연소 미슐랭 스타 셰프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거머쥐기까지 했고요. 불과 얼마 전부터 제가 해온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로버트가,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 나직이 중얼댔다.
“아침마다 오일로 가글을 할 것 같은 매끄러운 언변은 그닥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마음가짐은 확실히 본받고 싶군요.”
그 말에 필상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동감하는 바예요.”
조리복보다는 톰 포드사의 양복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잘생긴 외모와 더불어, 안정된 중저음의 목소리 톤. 몸에 배어있는 예의와 셰프로서의 직업 정신에 이르기까지. 여러모로 매력적인 사람임이 분명했다. 이윽고, 호세 아빌레 셰프가 특유의 차분한 목소리로 요리에 대한 설명을 이어나가고 시작했다.
“*아뮤즈부쉬(*식사 전 입맛을 돋우기 위해 서비스되는 한입 크기의 요리) 메뉴로 포르투갈 전통 요리인 ‘엠파나다’를 준비해 봤습니다.”
한데, 왜일까? 접시 안에 담긴 메뉴를 들여다보고 있는 심사위원들의 얼굴이 약속이라도 한 양 하나같이 떨떠름해 보일 따름이었다.
그렇게 미묘하기 그지없는 침묵이 장내에 드리워있기를 잠시, 폴 보티즈 셰프가 가장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음, 정말 난해하기 그지없는 요리로군요.”
그 말에 다른 심사위원들이 동조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대기 시작했다. 다름 아니라, 서비스된 아뮤즈부쉬 메뉴의 외형 탓이었다.
홈이 살짝 파여있는 접시 위로, 내용물을 전혀 알 수 없는 직사각형 형태의 튀김 한 개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따름이었다.
또 어째서인지는 모르나 엠파나다의 튀김 옷이 터지기 직전까지 펑퍼짐하게 부풀어 있었으며, 플레이팅을 위해 가미된 요소라고 해봐야 그 위로 얹은 그라인더를 이용해 잘게 갈아 낸 *코리안더(고수) 잎사귀 한 꼬집 정도가 전부였고 말이다.
겉면이야 적당한 온도에서 잘 튀겨낸 듯 먹음직스러운 빛을 띠고 있었으나, 사실상 그게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었다.
모르긴 모르더라도, 파인다이닝보다는 길거리에 즐비한 노점과 더 어울릴 법한 외형을 지니고 있음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이내 폴 보티즈 셰프가 미간을 잔뜩 찡그린 채로 되물었다.
“일단 문제가 많은 것 같군요. 단출하다 못해 초라하다는 느낌이 드는 플레이팅에, 접시 선정도 잘못됐어요. 굳이 홈이 파인 접시를 채택한 이유를 모르겠군요. 또 결정적으로 아뮤즈부쉬치고는 크기가 상당히 큰 편인 것 같군요. 보통은 식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또 메뉴를 주문하기에 앞서 간단히 맛보는 한입 크기의 요리를 아뮤즈부쉬라 일컫는다는 사실을 모르실 것 같지는 않고….”
“네, 맞습니다. 본래는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으나, 대다수의 일류 파인다이닝 셰프들은 자신이 앞으로 선보이게 될 코스 메뉴에 대한 ‘정체성’을 설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아뮤즈부쉬를 사용하기도 하죠. 파인다이닝을 찾은 손님이 가장 처음 경험하는 요리이자, 입맛을 돋우는 수단인 동시에, 이어질 코스에 대한 기대감을 상승시킬 수 있는 장치의 역할도 하니까요.”
“그럼 지금 이 접시 안에 세프께서 앞으로 선보여주실 코스의 ‘정체성’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여가며 “예, 맞습니다.” 하고 단호하게 답해 보인 호세 아빌레 셰프가 곧장 폴 보티즈 셰프에게 나이프 한 개를 건네주며 말했다.
“플레이팅이나 접시 선정에 대한 의문은 요리로 답해 드릴 테니, 우선 ‘튀김 옷’을 한번 두드려보시겠습니까?”
이윽고, 나이프를 받아 든 폴 보티즈 셰프가 그 끄트머리로 엠파나다의 표면을 가볍게 톡톡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나이프와 튀김 옷이 맞닿을 때마다 ‘바스락, 바스락.’ 하는 소리가 울려댔고, 이내 몇몇 심사위원의 입가 위로 드리운 미소가 점차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조금 전의 소음이, 엠파나다를 완벽하게 튀겨냈다는 증거나 마찬가지였던 까닭이었다.
심사위원들의 반응이 긍정적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호세 아빌레 셰프가, 제 양 손바닥을 가볍게 맞대 보이며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기존 엠파나다의 반죽법이 아니라, 일전에 일본에서 배워온 방식대로 조리해봤습니다. 우연히 찾은 도쿄 외곽 ‘오메’(おうめ)의 골목 음식점에서 맛본 튀김의 맛에 반해버렸고 그곳의 셰프를 3개월간 매일 찾아가 사정한 끝에, 결국 반죽의 배합 및 튀겨내는 온도와 시간 등을 비롯한 레시피를 전수할 수 있었죠.”
이내 몇몇 심사위원들이 저들끼리 눈빛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호세 아빌레가 말한 일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호세 아빌레 셰프가 폴 보티즈 셰프를 바라보며 재차 말을 건넸다.
“셰프, 이번에는 엠파나다를 한번 썰어보시겠습니까?”
그 말에 폴 보티즈 셰프가 제 손에 들린 포크의 끄트머리로 접시 안에 담긴 엠파나다를 잘 고정한 채로, 나이프의 날을 가져다 대고는 계속해서 앞∙뒤로 움직여대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바삭하게 잘 튀겨진 튀김 옷이 썰리며, 다시금 허기를 자극하는 소리를 내뿜어대기를 잠시. 이윽고, 엠파나다가 제 단면을 오롯이 드러내던 순간이었다.
심사위원들이 하나같이 경악으로 물든 얼굴을 한 채로, 일제히 탄성을 흘려대기 시작했다.
“맙소사.”
“허….”
다름 아니라, 엠파나다의 중앙부에 균열이 생김과 동시에 그 속에 꽉 채워져 있던 육즙이 새어 나와서는 접시의 밑면을 메워나가기 시작했던 탓이었다. 비록 많은 양은 아니었다지만, 접시의 밑면을 가득 채우는 데는 부족함이 없는 양이었다.
한데 또 놀랍게도 알록달록한 색감의 여타 속 재료들은 요지부동, 여전히 제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었고 말이다.
이내 폴 보티즈 셰프가 제 고개를 좌∙우로 내저어 보이고는, 옅은 웃음기가 서려 있는 어투로 다시금 말문을 열었다.
“순식간에 그럴싸한 플레이팅이 완성되었군요. 굳이 홈이 파인 접시를 채택한 이유 역시 이해하게 되었고요.”
바닥에 얕게 깔린 맑은 갈색 육수와, 엠파나다의 속을 지키고 있는 여러 색의 속 재료, 흐드러지듯 흩어져버린 고수 잎. 불과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단출하기 그지없는 느낌이었던 요리가, 순식간에 꽤 그럴싸한 외형을 띄게 된 것이다.
이내 호세 아빌레 셰프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다시금 설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엠파나다는 굳이 비유하자면 중국의 딤섬이나 교자, 이탈리아의 칼조네, 영국의 코니쉬 패이스티, 브라질의 파스테우 등과 비슷한 형태의 요리입니다. 속 재료를 밀가루 반죽으로 감싼 뒤, 굽거나 튀기는 요리죠.”
“이 엠파나다라는 요리가 한껏 팽창해 있던 이유가 품고 있던 육수 때문이었군요? 대체 어떻게 육수를 튀김 안에 가두실 수 있던 겁니까?”
“속 재료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양배추’ 덕분입니다. 여러 향신료와 섞은 물에 오랜 시간 절여둔 양배추가 머금고 있던 수분이 바깥으로 분출되며 만들어진 육수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그렇다면 향미도 꽤 훌륭하겠군요. 한데, 조리 과정에서 육수가 바깥으로 새어 나올 여지가 있을 것 같은데….”
“새어 나오지 않은 이유는 제가 일본 오메에서 배워온 반죽법 덕입니다.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입자가 촘촘한 반죽으로 감싸준 뒤, 정확한 온도에서 시간을 엄수하여 튀겨내니 육수가 새어 나오지 않더군요.”
말을 마친 호세 아빌레 셰프가 심사위원들을 천천히 한 번 둘러본 뒤에 덧붙였다.
“우선 식거나, 눅눅해지기 전에 시식을 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군요.”
이내 폴 보티즈 셰프가 숟가락 끄트머리로 엠파나다를 먹기 좋게끔 자그맣게 썰어내서는, 육수에 살짝 적신 뒤 곧장 입에 쏙 집어넣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폴 보티즈 셰프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나직이 “오.” 하고 감탄을 흘려 보였다.
첫 번째로 느껴진 것은 여러 식감의 훌륭한 대비였다.
바삭한 튀김 옷의 겉면이 기분 좋게 바스러지자, 촉촉하게 젖어있는 부드러운 속 재료들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속 재료로 쓰인 고기는 부드럽고 기름졌으며, 여전히 아삭한 식감을 유지하고 있는 양배추는 씹을 때마다 머금고 있던 향과 육수를 뿜어 혀를 흠뻑 적셔주었다.
이내 강렬한 향이 쇄도해오기 시작했다.
마늘을 시작으로 고수, 심지어 샤프란에 이르기까지. 취향이 갈리는 여러 향신료의 잔향이 해 질 녘의 윤슬 마냥 너울대기 시작한 것이다.
분명 취향이 갈리는 데다가 좀처럼 뒤섞이기 힘들 것 같은 화려한 향신료들이 얼룩덜룩 뒤섞인 상태였으나, 예상외로 오묘하면서도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듯 보일 따름이었다.
놀라운 점은 씹으면 씹을수록 그 풍미와 향이 점점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는 점에 있었다.
‘양배추를 향신료 물에 절여둔 게 탁월한 선택이었던 것 같군.’
꿀꺽.
입안에 머금고 있던 엠파나다가 잘게 으깨진 채, 목구멍을 타고 매끈하게 넘어갔다. 이내 폴 보티즈 셰프가 너털웃음을 흘려대더니, 웃음이 사그라지기 시작할 무렵이 되어서야 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흔한 남미 요리에 아시아권 국가의 조리 기법이 가미되니 이토록 재미있고 훌륭한 요리로 거듭날 수 있군요. 반죽법과 튀김 조리는 말씀하신 대로 일본 느낌인 것 같은데, 속 재료는 중국의 기법을 차용하여 조리하셨죠?”
“예, 맞습니다. 알아봐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제야 알 것 같네요. 돼지비계와 살코기를 섞어 고기 속 재료를 만들고, 완성된 고기 속 재료를 향신료 물에 절여둔 양배추와 함께 섞어낸 뒤 반죽으로 감싸 튀겨내셨죠? 또, 돼지의 누린내와 잡내. 기름진 맛을 중화시키고자 양배추를 마리네이드시켜 두신 거고요.”
“모두 맞습니다.”
짤막하게 답해 보인 호세 아빌레 셰프가 다시 한번, 심사위원들을 쭉 둘러본 뒤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일전에 일본에서 맛본 튀김 라멘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게 된 요리입니다. 튀김을 육수에 적셔 먹던 때, 이중적인 식감이 꽤 재미있게 느껴졌죠. 다만, 평범한 방식으로 조리하고 싶지는 않더군요. 비로소 테이블 위에서 완성되는 요리를 만들고자, 속에 넣을 채소로 양배추를 선택했습니다.”
“수분 분출을 위해서요?”
“예, 맞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양배추를 조리하는 과정에서 분출되는 수분은 맹 맛인 데다가 일련의 비린내도 지니고 있으니, 여러 채소를 푹 끓이고 향신료를 잔뜩 풀어둔 물에 절여보게 되었고요. 더군다나 돼지 특유의 누린내와 잡내까지 제거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 그 자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내 심사위원들이 낮은 목소리로 저들끼리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대부분이 상당히 긍정적인 의견을 늘어놓는 중이었다. 고작 아뮤즈부쉬 한 접시에 이토록 짙은 정성을 담아낼 정도로 열정적인 요리사가 준비한 정찬 메뉴는 과연 어떨지에 대한 기대감이 자연스레 점점 증폭되고 있던 것이다.
그때 폴 보티즈 셰프가 호세 아빌레 셰프를 바라보며 되물었다.
“조금 전, 셰프께서 선보이신 아뮤즈부쉬를 자체적으로 평가한다면 몇 점입니까?”
“만점입니다.”
“확실하십니까?”
“예.”
이내 폴 보티즈 셰프가 제 턱 끝을 살살 어루만져 보이고는 “이유는?” 하고 되묻던 찰나였다. 호세 아빌레 셰프가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유려하게 제 할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제가 이 레시피를 완성하기까지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아마 그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할 겁니다. 저는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요리는 절대 선보이지 않습니다. 절대로요.”
“좋은 마음가짐이로군요.”
“아마 모든 심사위원분들이 조금 전, 제가 선보였던 아뮤즈부쉬를 통해 앞으로 전개될 코스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되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기대감을 느끼셨더라면 정답이에요. 이게 제가 요리를 대하는 자세이자 마음가짐입니다.”
이내 심사위원들이 인정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여 가며 저마다 한마디씩, 호세 아빌레 셰프의 요리에 대한 감상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훌륭하네요. 마치 입안에 오로라가 펼쳐진 느낌이었어요.”
“극도로 정돈된 맛이더군요.”
“어째서 최연소 미슐랭 스타 셰프란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던 건지 알 수 있겠군요.”
심사위원들의 호평에 일일이 화답해 보인 호세 아빌레 셰프가 이내 제 고개를 살짝 돌려서는, 저 멀리 떨어진 채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필상과 눈을 맞춰가며 덧붙였다.
“약속드리죠. 앞으로 전개될 모든 요리에, 방금 서비스된 아뮤즈부쉬에 담겨있는 것 이상의 고민과 노력이 담겨있을 겁니다.”
이내 필상이 피식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가 생각하는 ‘미슐랭의 품격’이 무엇인지, 또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한차례 바짝 마른 아랫입술을 한 번 핥아내 보인 필상이, 제 손을 꽉 말아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손안에는 식은땀이 잔뜩 맺혀있었고 가슴은 돌연 미친 듯 두근대기 시작했다. 강적이다. 어쩌면 회귀 이후로 맞붙은 상대 중 가장 강한 저력을 지닌 상대일지도 모른다.
그는 내년도 미슐랭 심사단으로부터 엄청난 극찬을 받으며, 미슐랭 쓰리 스타 셰프로 거듭나게 될 예정이었으니 말이다. 이제 보니 그럴 자격이 충분해 보였다. 아뮤즈부쉬가 이 정도라면, *정찬(*正餐)은 더욱 철저히 준비해두었을 터였다.
처음이었다.
회귀라는 기현상을 맞이한 이후, 정말 처음으로 패배에 대한 상상을 떠올린 것이다.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에 똬리를 틈과 동시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긴장감이 목을 꽉 옥죄는 것 같은 느낌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다.
썩 유쾌하지는 않은 경험이라지만, 글쎄? 어쩌면 여태껏 너무 쉬운 승부에 길들여져 있던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후우-.”
한차례 긴 숨을 내쉬어 보인 필상이 이내 다시금 선보일 요리를 조리하는 데 전념하기 시작했다.
호세 아빌레 세프 팀은 ‘*알란테주’(*Alentojo:포르투갈 남부)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전 세계 각국의 조리 기법과 식재료가 가미된 혁신적인 요리를 연달아 선보였다.
“고등어를 활용한 *에스카베슈(포르투갈식 초절임 요리) 입니다. 사과와 비트, 마늘, 양파, 식초를 혼합하여 만든 퓌레를 곁들였고 식감을 부각시키기 위해 튀김 조각을 흩뿌렸습니다.”
이내 심사위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감탄을 터트려대기 시작했다. 새하얀 원형 접시 위로 분홍빛이 감도는 퓌레가 잔뜩 묻혀져 있었으며, 퓌레의 점성을 이용해 얇게 저며진 고등어 에스카베슈 몇 조각을 세로로 세워둔 상태였다. 또 그 위로 슬라이스한 분홍색 샬롯과 더불어, 자그마한 튀김 가루를 잔뜩 흩뿌려둔 상태였고 말이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것은 둘째치고 아름답네요.”
“조형미가 마치 예술작품을 방불케 하는군요.”
“공감하는 바입니다.”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훔친 것은 단연 외형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맛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훌륭했으니 말이다. 상큼한 퓌레의 독특한 향이 고등어 특유의 비린내를 잡아주는 것은 물론이고, 도리어 풍미를 배가시켜주는 듯했다. 또 살짝 달짝지근한 맛이 나는 샬롯 슬라이스의 아삭한 질감과 숙성된 고등어의 쫀득한 식감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기 시작했다.
외형도, 맛도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는 요리였다.
또 코스에 포함된 모든 메뉴가 이런 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상태였다. 창의적이지만 균형이 잘 맞춰진, 완벽에 가까운 요리들이 줄줄이 선보여지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거친 질감의 양배추 잎 위에 삶은 대하와 식초를 얹은 메뉴를 시작으로, 알란테주를 대표하는 식재료랄 수 있는 ‘*바칼라우’(절인 대구)를 활용한 메인 디쉬, 또 디저트에 이르기까지. 모든 메뉴가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 상황이었다.
호세 아빌레 셰프 팀의 요리에 대한 심사가 끝났고 제한 시간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또 차츰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여타 팀들 역시 하나둘씩 조리를 마치고 벨을 울려대기 시작했고 말이다.
띠잉-.
띵-.
띵-.
반면, 필상 팀은 여전히 조리를 끝마치지 못한 상태였다. 어느덧 제한 시간이 고작 2분밖에 남지 않았을 무렵에 접어들자, 장내에 아직 조리를 마치지 못한 팀은 오직 필상 팀뿐인 듯 보일 따름이었다. 이내 무수히 많은 이들이 필상 팀의 조리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만약 제한 시간 내에 요리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실격을 면치 못할 터였다. 행여나,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지 우려하고 있던 것이다.
[ 00:00:03 ] [ 00:00:02 ] [ 00:00:01 ]그렇게 제한 시간이 종료되기 직전.
띠잉-.
필상 팀 조리대 위에 놓여있던 벨이 울렸다. 제한시간이 종료되기 직전이 되어서야, 간신히 조리를 마친 것이다.
“흠, 예선 내내 가장 먼저 조리를 마치더니 이번에는 맨 마지막 순서로군.”
“처음이 아니리면, 차라리 맨 끝이 낫지 않겠어요?”
“의도되었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말을 마친 필상이 심사위원들을 한 번 둘러본 뒤, 확신에 가득 찬 어투로 덧붙였다.
“앞서 맛보신 모든 셰프들의 요리를 잊게 만들어드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