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tar chef RAW novel - Chapter 165
165
Chapter39 – 기준 (3)
그렇게 하루란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 어느덧 대망의 파우스트 스프링 시즌 첫 번째 영업일 아침이 밝았다.
“베니, 암막 커튼은 점검하셨어요?”
필상의 물음에 홀 매니저 베니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답했다.
“예, 셰프. 확인했습니다.”
오전·점심 시간대에도 저녁과 마찬가지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자, 창마다 암막 커튼을 설치해 둔 상태였다. 이내 필상이 무심한 얼굴을 한 채로, 홀 이모저모를 천천히 점검해보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위해 설비해 둔, 이런저런 조명 장비들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해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윽고, 모든 장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필상이 진중한 어투로 재차 말문을 열었다.
“베니. 테스트 키친 행사를 통해 파우스트가 갖춘 *미(*美)적 요소들이 고평가를 받은 만큼, 방문을 예약한 손님들 역시 이 부분에 대한 기대감을 갖고 있을 겁니다.”
“예, 셰프.”
“그러니까, 더더욱. 고객들의 기대감을 저버려선 안 됩니다. 분위기와 직결되는 장비들이야말로, 앞으로 베니가 가장 유의 깊게 점검해야 할 사항 중 하나에요.”
“예, 셰프.”
나직이 답해 보인 베니가 장비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바닥에 매립형으로 설치해 둔 조명들, 또 천장 바텐 조명, 모르페우스 흉상이 거치된 분수대, 마지막으로 바닥에 자욱한 연기를 깔아 줄 스모그 머신에 이르기까지···.
그리고는 마지막으로 필상의 얼굴을 한 번 훑어보았다. 덤덤한 얼굴을 한 채, 굴곡 없는 어투로 대화를 나누는 중이라지만 평소와는 사뭇 다르다는 묘한 느낌을 좀처럼 떨칠 수가 없었다.
‘어제 일 때문에 괜히 넘겨짚고 있는 건가?’
그렇게 베니가 상념에 젖어 들어 있던 찰나, 필상이 “좋아요.” 하고 말해 보이고는 홀을 떠나 주방으로 향했다.
이내 베니가 곧장 주방 뒤편 하역장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오늘 매입해 온 식자재들이 가득 담긴 트럭에서, 나무 박스를 내리고 있는 이정준에게 다가가서는 말했다.
“쁘띠, 잠깐 대화 좀 해요.”
“급한 일이에요?”
“네. 보스 때문에요.”
“셰프요?”
“그래요.”
이내 이정준이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제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한 번 훔쳐냈다. 한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이정준의 이마 위로 구슬 땀이 송글송글 맺혀있는 상태였다. 그 모습을 본 베니가 고개를 한 번 내저어 보이고는 자연스러운 어투로 되물었다.
“쁘띠, 이런 업무는 ‘쿡 헬퍼’(Cook Helper)급 직원들에게 맡겨도 되지 않아요?”
“불가능해요.”
“왜요? 단순 노동이잖아요?”
“식자재 상태를 점검해야죠.”
말을 마친 이정준이 좌우를 한 번 살피고는 덧붙였다.
“저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요. 그런데 만약 셰프께서, 식자재 점검∙운반 업무를 저와 브래들리가 직접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신다면···.”
“화내시려나요?”
“아뇨, 설마요. 그냥 본인이 직접 하려 드시겠죠. 한데, 셰프께서는 맡고 계신 업무가 많으시잖아요?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드려야죠. 베니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셰프는 한결같은 분이시잖아요?”
그 말에 베니가 한숨을 푹 내쉬어 보이고는 답했다.
“맞아요. 한결같은 분이셨죠. 적어도 어제까지는요.”
“무슨 뜻이에요?”
“정말 몰라서 여쭤보시는 건 아니죠?”
“어제 셰프께서 하신 말씀 때문에 그러시는 거예요?”
“쁘띠, 셰프 말인데 어제부터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지 않아요?”
이내 이정준이 미간을 살짝 찡그린 채 답했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당장 주어진 상황이 견딜 수 없을만큼 힘들다고 느껴지곤 하는 순간 말이에요.”
“맞아요. 하지만 셰프께서는 여태껏 정말 단 한 번도 그랬던 적이 없잖아요? 더군다나 그럴 수 있는 상황도 아니실뿐더러, 그래도 되는 위치도 아니시고요. 이제 불과 몇 시간 뒤면 스프링 시즌이 시작될 예정인 데다가, 만약 모두의 예상대로 좋은 반응을 거둔다면 더욱 큰 비즈니스들이 줄줄이 들어올 텐데···.”
“맞아요. 다른 때도 아니고 하필 지금 흔들리시는 건 곤란한 일이죠. 왜 그러시는지 도통 알 길이 없긴 하네요.”
두 사람이 한껏 심각한 얼굴을 한 채로, 또 한껏 조곤조곤한 어투로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때였다. 돌연 두 사람의 등 뒤편에서, 마냥 낭랑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두 분, 무슨 대화를 그렇게 심각하게 나누고 계세요? 혹시 반역 모의라도 하고 계신 건 아니죠?”
다름 아니라, 줄리아였다. 이내 이정준이 화들짝 놀란 마음을 추스리고자, 제 가슴팍을 살살 쓸어내리며 어색하기 그지없는 어투로 되물었다.
“하, 하역장에는 어쩐 일이세요?”
그 말에 줄리아가 두 눈을 게슴츠레 뜬 채로 되물었다.
“어쩐 일이냐고요? 그야 당연히 오늘 들어온 식자재 상태를 점검하러 왔죠. 응당 해야 할 일이잖아요?”
“그렇긴 한데···.”
“뭐에요? 농담 삼아 건넨 말인데, 혹시 정말 그런 거예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더 수상한데요?”
“아뇨···.”
“흠, 아쉽네요. 만약 반역 모의 중이셨으면 저도 낀 다음, 한자리 꿰차려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대체 무슨 대화를 나누고 계셨던 건데요?”
이내 베니가 제 옆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 넘겨가며 답했다.
“다름 아니라, 셰프 때문에요. 어제 이후로, 내색은 안 하고 계시는데 뭔가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해야 할지···.”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닐 거 아녜요? 원래 셰프들이 으레 그렇잖아요. 괴팍하고 제멋대로인 데다가, 이따금씩 감정을 종잡을 수 없기도 하고요.”
“글쎄요? 저는 그렇게 많은 셰프분들을 만나 뵙지 못해서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영 셰프는 달라요.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거든요.”
그 말에 이정준이 덧붙였다.
“이렇게 말하면 조금 그렇지만, 겉으로 봤을 때는 항상 밝으셔서 이렇다 할 감정의 동요를 좀처럼 읽어낼 수 없는 분이시거든요.”
말을 마친 이정준이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정말 단 한 번도 필상이 흔들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한국에서 잘못된 투자자의 모략 탓에 자신에 대한 대중들의 평판이 추락했을 때에도, 또 파우스트의 개업을 앞두고 있던 시점 모든 업계 종사자들이 셰프를 힐난하고 물어뜯던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쯤 되니, 대체 어떤 생각이 셰프를 짓누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피어오를 지경이었다. 이내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베니와 이정준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던 줄리아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말했다.
“좋아요, 그럼 제게 맡겨주시겠어요?”
이내 이정준과 베니가 약속이라도 한 양, 의아함이 가득 서린 얼굴을 한 채로 줄리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시선을 한 몸으로 받아내고 있던 줄리아가 제 턱을 살짝 치켜든 채, 의기양양한 어투로 나직이 말했다.
“젊은 남자를 손질하고 요리하는 건 제 전문이거든요.”
“정말요?”
“아마도요.”
짤막하게 답해 보인 그녀가 곧장 파우스트 내부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터벅, 터벅.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연신 머릿속에 피어올라 그녀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지금, 줄리아는 일련의 의무감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영 셰프 덕에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았던가? 비록 직접적으로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한 적은 없다지만, 그녀는 필상을 자신의 ‘은인’이라 생각했다.
필상의 도움 덕에 비록 샵 인 샵 형태라지만 자신만의 디저트 파인다이닝, ‘레이첼의 꿈’을 런칭할 수 있었을뿐더러 한 번에 뉴욕 외식업계 스타덤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만약 필상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이토록 빠르게 무수히 많은 이들에게 제 디저트를 선보이고 평가받는 것은 먼 미래의 일이 되었을 게 분명했다.
또, 일에 골몰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줌과 동시에 형식적이지 않은 격려의 말을 통해 자신을 잡아끌어 내리는 것만 같던 음울한 감정에서 꺼내주었다.
은인이 분명했다.
‘은인이지, 그것도 꽤나 매력적인 은인.’
한차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인 그녀가, 셰프 집무실 앞에 멈춰섰다. 그리고는 심호흡을 한 번 해 보인 뒤,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고는 곧장 안으로 들어섰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서류 검토 작업에 여념이 없는 필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자신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무미건조한 어투로 말문을 열었다.
“말씀하세요.”
이내 줄리아가 자연스레 필상의 집무용 탁상 앞에 바짝 다가서며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셰프, 그나저나 디저트 바는 왜 점검하지 않으시는 거예요? 홀과 주방은 모두 둘러보셨다면서요?”
“설마 서운해서 따지러 오신 건 아니죠? 파우스트와 개별적인 공간일뿐더러, 거긴 오롯이 줄리아의 영역이랄 수 있는 곳이잖아요?”
나직이 되물어 보인 필상이 그제야 고개를 들어 올리며, 웃음기 서린 눈으로 줄리아를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려놓은 펜이 데구르르 굴러서는, 아슬아슬하게 탁상 끄트머리에 멈춰섰다.
이내 볼펜을 바라보고 있던 줄리아가 “좋아요.” 하고 말해 보인 뒤, 소파 한 자리를 꿰차고 앉으며 되물었다.
“면담을 요청해도 될까요?”
그 말에 필상이 제 손목시계를 한 번 내려다보았다. 아직 오픈까지 두 시간 남짓한 여유가 남아있는 상태였다. 또, 당장 검토 중인 서류들 중 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서류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좋아요.”
짧게 답해 보인 필상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는, 줄리아가 꿰차고 앉은 소파의 상석에 털썩 주저앉으며 되물었다.
“그나저나 어떤 관계에서의 면담 요청인 거예요? 샵 인 샵 형태로 함께 공생하고 있는 디저트 바의 오너 셰프로서?”
“아뇨, 친구로서의 면담 요청이에요.”
필상이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흘려 보이자, 줄리아가 제 어깨를 가볍게 한 번 들썩여 보이고는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던 거예요?” 하고 되물었다. 이내 필상이 계속 말해보라는 듯 그녀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셰프, 대체 뭐가 문제인 거예요? 어제 오전까지만 하더라도 괜찮으셨잖아요? 어제 이후로 지금까지 쭉 그렇잖아요?”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오늘 오전에 빌리 반 측에서 서류가 도착했는데, 엄청 큰 비즈니스도 한 건 들어왔어요. 게스트 셰프로, 명망 높은 아트 퀴진 파인다이닝 ‘홀리 데이’의 한 시즌을 구축해달라는 내용이었죠. 줄리아께서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엄청난 일이에요. 유명세를 떨친 아트 퀴진 셰프들만 근근이 초빙받을 수 있는 곳이거든요. 엄청나게 명예로운 일인 데다가, 심지어 보수도 확실하죠.”
말을 마친 필상이 곧장 일어서서는, 탁상 한쪽 끄트머리에 놓여있던 파일철을 건네주며 덧붙였다.
“자, 보세요. 저 프로젝트까지 마치고 나면, 또 한 번 삶이 궤도에 오를 거예요.”
“셰프.”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니까요?”
“저는 못 속여요.”
“정말이에요. 인생이 최고 전성기에 접어들었잖아요?”
“자꾸 학습된 월 스트리트식 화법으로 말씀하실 거에요?”
“무슨 뜻이에요?”
“계속 감정을 숨기려고만 하시잖아요.”
그 말에 필상이 얼어붙은 얼굴을 한 채로, 줄리아를 빤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줄리아는 마치 어린아이를 혼내기라도 하는 양, 엄숙한 표정을 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중이었다.
이내 필상이 한차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어 보이고는, 조심스레 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았다.
“좋아요. 말할게요. 사실 두렵고 무력해요.”
“대체 뭐가요?”
“저를 둘러싼 모든 일들이요.”
말을 마친 필상이 줄리아를 뚫어지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내 줄리아가 고개를 한 번 끄덕여 보이고는, 협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던 필상의 손을 가볍게 움켜쥐며 조곤조곤한 투로 말했다.
“천천히 말씀해보세요.”
이내 필상이 줄리아를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불과 한두 달 남짓한 사이에 주객이 완전히 전도된 느낌이었다. 음울한 감정으로 차 있던 그녀의 눈빛이 풍기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한데, 이제 자신이 그런 눈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정적이 길게 이어졌다. 영원할 것만 같은 침묵 속에서, 필상은 연신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필상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잔잔하게 가라앉은 눈을 보고 있노라니, 말할 수 없는 영역에 놓여있는 일들은 제외한 나머지 정도는 털어놓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무렵, 필상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그러니까···.”
제 감정을 타인에게 숨김없이 드러내는 것, 회귀라는 기현상을 맞이한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