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16
– 16화 –
고등학생 무렵.
지금은 이름조차 흐릿한 고3 시절 담임이 했던 말이 있었다. 당시에는 조는 애들을 깨우려고 했던 말이었지만, 어째선지 그 말이 참 인상 깊었었다.
– 지금 공부하느라 죽을 것 같지?
– 시간 참 안 간다고 느낄 거다. 근데 나중에 가면 그 시간이 엄청나게 빨라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은 원래 화살 같은 거라서,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거든.
– 눈 깜빡하면 대학, 다시 깜빡하면 군대, 또 깜빡하면 직장. 그러니까 지금을 소중하게 여겨. 시간은 너무 빨라서, 정신 놓고 있다가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게 되거든. 그렇게 되고 나면 늦는다. 빨라진 시간은 아무리 붙잡아 봐야 느려지지 않거든.
참 맞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뜬금없이 고3 시절 추억을 꺼낸 이유는 간단했다.
솨아아아 –
짐을 챙겨 대전으로 내려가는 길.
어느새 장마도 다 끝나 가는지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듯 퍼붓던 빗줄기도 한창 때에 비해 퍽 가늘어져 있었다.
‘벌써 7월 말인가.’
아마 이 장마가 끝나면 업화의 무더위가 시작될 테고,
준성 역시 회귀 이후 첫 여름을 맞이하게 될 테지.
‘… 가야 할 길이 먼데, 시간이 너무 빠르다.’
회귀를 한 지 벌써 5달이나 지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준성은 제 행동이 너무 느리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저 차근차근, 느리지만 착실히 제 목표를 향해 걸어가고자 마음먹었다.
…
본가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는 집을 둘러봤다.
저번에도 한 번 오긴 했지만, 그땐 어머니께 집중하느라 자세히 보지 못했던 집. 그 감상은 참 짧고 간결했다.
‘… 허름하네.’
도대체 언제 지어졌는지 가늠조차 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걸 증명하듯 문을 열자마자 바로 부엌이 나왔고, 사람 두 명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 법한 80cm쯤 되는 거실을 지나자, 4평 남짓한 안방이 나왔다.
준성은 그 방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어렸을 적.
준성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
어머니께선 홀몸으로 준성을 정말 성심성의껏 키우셨다.
괜찮은 집에서 태어났지만, 남편을 여의고 나서부턴 공장에 다니셨다. 하지만 당시 노동자 인권이 바닥을 기던 시기인지라 얼마 못 가 부당한 이유로 해고를 당하셨다.
이후 시장을 전전하며 소일거리를 하셨고, 종잣돈을 마련하신 이후 작게나마 곡물 매대를 했으나 수익이 나지 않아 포기. 그다음엔 방앗간에서 잠깐 계셨다가, 지금 일하는 국밥집에 안착하게 되셨다.
참으로 기구한 인생이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서 태어나,
어떻게 행복한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얻었지만,
어린 나이에 남편을 잃어 세 살배기 아들을 업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손에 닿는 모든 일을 하셨다.
그저 인생과 드잡이질하며 살아남기 위해 애썼고,
당장 내일, 다음 주, 다음 달, 내년만 바라보며 사셨다.
‘어머니는 그렇게 살아오셨었다.’
아직도 어머니께서 준성이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셨던 게 잊혀지질 않았다.
아마 여태까지 본인이 겪었던 힘든 일들이 모두 씻은 듯이 사라지는 기분이었을 테고, 보상을 받는 기분이었겠지.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준성은 서울로 올라가게 된 후 대학생 되어 철없이 노느라 바빴고, 직장 생활을 하고 된 이후에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거의 3년에 한 번씩 어머니 얼굴을 뵀다.
그 사이 어머니의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
준성이 30대 후반이 됐을 무렵 돌아가셨다.
흔하디흔한 암이었다.
평생 아들만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삶.
본인 몸이 병들어도 혹 아들에게 피해가 갈까,
아프다고 말씀 안 하시다가 병을 잔뜩 키운 것이었다.
위독하다는 말을 들은 이후 준성이 모든 것을 동원해 좋은 병원과 뛰어난 간병인을 붙여드리긴 했지만…
‘… 어머니가 원하시던 건 그딴 게 아니었어.’
솜씨 좋은 의료진이나 극진한 간호인 따윈 어머니께 그 어떠한 도움도 되지 않았다. 그저 홀로 남은 피붙이인 아들의 손길을 훨씬 더 원했으리라.
하지만 준성은 몰랐다.
아니, 정확하게는 일이 바빠 모르는 척 외면했다.
그리고 그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왔다.
– 아들, 오늘 얼굴 한 번 볼 수 있을까? 보고 싶어.
– 와서 손 한 번만 잡아보자…. 아… 바쁘니?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아냐, 네가 뭘 미안해… 오히려 엄마가 미안하지. 나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그냥 외로워서… 아니야. 끊을 게. 일 열심히 해.
저게 어머니의 유언이었다.
중요한 말 따윈 있지도 않았다.
그저 얼굴 한번 보고 싶다고, 손 한번 잡고 싶다고.
그 애원이 유언이 되어버렸다.
후우-
준성은 후회 섞은 숨을 내뱉으며 습기 찬 눈을 닦았다.
곧 있으면 어머니가 돌아오실 시간.
눈물을 보여드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내가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다. 그러기 위한 성공이고, 그러기 위한 돈이니까.’
…
오후 8시.
일을 끝낸 어머니께서 돌아오셨다.
원래는 저녁 장사 이후 마감까지 하고 오시던 터라 10시가 넘어서야 돌아오는 일이 부지기수. 오늘은 아들이 온다고 조금 일찍 끝내신 모양이었다.
“오래 기다렸지? 저녁 먹었니?”
준성은 분명 혼자 끼니를 때우긴 했지만,
괜히 안 먹은 척 거짓말을 했다. 온갖 산해진미 따위보다 더 중요한 맛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었기에.
“에휴… 잘 좀 챙겨 먹으라니까. 요즘 취업 준비한다고 많이 힘들 테니까, 든든하게 먹어둬야 해. 안 그러면 나중에 더 힘들어진다? 기다려, 금방 저녁 준비할게.”
취업 준비라는 말에 준성이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취업 따윈 하지 않을 생각이었고, 할 필요도 없었지만… 아직 그 얘기는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머니, 같이 준비할까요? 힘드시잖아요.”
“됐어. 아들 밥 먹이는 게 대수라고. 너 어렸을 때는 등에 업고 일도 했었어. 그때 비하면 별거 아니지. 오히려 우리 아들내미 대기업에 취직하는 생각만 해도 힘이 다 난다니까?”
어머니는 됐다고 앉아 있으라고 했지만,
준성은 막무가내로 끼어들어 같이 요리를 시작했다.
“근데, 이번엔 얼마나 있다가 갈 거니?”
“열흘 정도요. 아니면 그것보다 조금 더 많이.”
어머니는 열흘이라는 말에 조금 놀란 기색을 보였다.
“괜찮겠어? 너 바쁘잖아. 조금 있으면 하반기 취업 시즌 아니니? 괜히 내가 너 붙잡고 있는 건 아닌지…”
그 말에 준성의 눈동자가 씁쓸함을 머금었다.
‘시간은 쪼개면 항상 나는 것이었거늘…’
전생의 준성은 항상 바빴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바쁜 척을 하며 살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항상 뒷전이었고, 어머니 역시 준성이 시간을 잘 내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버렸으리라.
“하나도 안 바빠요. 그리고 바쁘면 어때요. 어머니 보러 오는 건데. 다 미루고 달려와야죠.”
준성은 그렇게 말하고 어머니의 등을 끌어안았다.
평생 무뚝뚝하던 아들의 갑작스러운 스킨십 때문이었을까?
어머니는 당황하면서도 싫지는 않은 듯 말씀하셨다.
“에이, 애가 왜 이럴까.”
하지만 동시에 변화가 낯선 듯 걱정스러워 하기도 했다.
“너 정말 괜찮은 거 맞니? 몇 달 전에도 갑자기 찾아와서 펑펑 울면서 행복하자는 말만 반복하고. 나 걱정된다.”
“괜찮아요. 정말. 아무 일도 없어요.”
그렇게 준성은 어머니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식사 준비를 했고, 나란히 앉아 늦은 저녁 식사를 했다.
수저 소리와 함께 즐거운 담화가 오가고, 이내 식사가 끝났을 무렵. 준성은 한결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 어머니.”
“왜?”
“대전에 혼자 계시는 거 힘들지 않으세요?”
“괜찮아. 하나도 안 힘들어.”
언제나 그랬듯 항상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서울에 같이 사는 건 어떠세요?”
“글쎄. 나도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은데, 서울 물가 생각하면 아무래도 조금 그렇지. 거기서 일자리 구하기도 어려울 것 같고. 괜히 너한테 짐만 될 수도 있잖아. 안 갈래.”
“… 그럼 돈 문제 해결되면 다 상관없는 거예요?”
“뭐, 그렇겠지? 우리 오빠들, 사촌들 전부 대전에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너랑 있는 게 더 좋으니까.”
준성은 그 말에 결심을 굳혔다. 그리고는 서류 가방을 열어 통장과 각 봉투를 꺼내 어머니께 건네드렸다.
“통장? 이게 뭐니?”
“열어보세요.”
어머니는 반신반의하면서도 통장을 열어보셨고,
이내 눈동자가 몇 번 움직이더니…
그대로 굳어버렸다.
– 남은 예금 2,100,000,000
그 안에는 21억 원이라는 현금이 들어 있었다.
보험 하나 없이 버는 족족 전부 생활비와 아들 뒷바라지하며 하루하루 살아가던 상황에선 매우 큰 돈이었다.
“이, 이게 뭐니…? 이 큰돈을 어떻게…?”
이후 어머니께선 준성이 최근 들어 이상했던 것을 떠올리고는, 덜컥 겁이 나셨는지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하셨다.
“너 요즘 무슨 일을 하고 다니는 거니. 혹시 위험한 일을 한 거야? 다 사실대로 얘기해. 너 이 돈 어디서 났어!”
이에 준성은 준비해 놨던 다른 각 봉투에서 샤리와 맺었던 두 건의 계약서를 꺼내 어머니께 건네드렸다.
“어머니. 저 사실 취업 준비 안 하고 있었어요. 대신 다른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조금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들어 주시겠어요?”
그 말을 시작으로 준성은 여태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다.
샤리에서 일어났던 일과 더불어 김국지를 모델로 빵을 만들고, 샤리의 전략자문을 역을 맡았다는 것까지 말이다.
그 얘기를 들은 어머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계약서를 자세히 읽어 내려갔다. 분명 실제 증거가 있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것처럼 보였다.
하긴. 당장 얼마 전에 졸업한 아들 녀석이 갑자기 21억을 벌어 왔으니 그럴 수밖에.
“사업한다고 말씀드리면 걱정하실까 봐 못 드렸어요, 그래서 다 끝나고 말씀드린 거예요. 죄송합니다.”
준성은 그렇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말을 이었다.
“어머니. 아니, 엄마. 나 돈 많이 벌었어. 그러니까 우리 이사 가자. 서울로 가자. 내가 좋은 집 사서 엄마 호강시켜줄게. 내가 약속했잖아. 호강시켜준다고. 그러니까 이제 행복하자. 우리 앞으로 행복하기만 하자. 아프지 말고… 죽지도 말고…”
어머니는 그 말에 말없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셨다.
그간 얼마나 힘든 삶이었단 말인가?
평생 홀몸으로 세상과 멱살잡이하며 어린 아들을 키웠고, 남편 잡아먹은 년이라는 소리 들어가면서도 아들만 바라보며 꾸역꾸역 참고 견뎌오던 삶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서 준성은 인생의 의미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런 준성이 그녀에게 보답하기 위해 돌아왔다.
어머니는 아무런 말 없이 한참이나 눈물을 흘리셨다.
그리곤 이내 준성을 쳐다보고는…
와락 – !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아이고, 아이고 준성아… 준성아… 내 아들 준성아…”
준성 역시 눈물을 가득 머금은 눈으로 있는 힘껏 어머니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엄마, 오래 걸렸지? 내가 호강시켜준다고 약속했는데… 정말 오래 걸렸다. 정말… 정말 오래 걸렸어…”
근 50년 인생을 살아 어머니를 한 번 잃고,
되돌아오고 나서야 드디어 그 약속을 지켰다.
“아니야, 준성아. 엄마가 미안해… 내가 너 더 챙겨줘야 하는데… 잘 사는 집처럼 좋은 것만 먹이고, 좋은 옷만 입히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주고 키웠어야 했는데… 집도 사주고, 차도 사주고… 근데 엄마가 못나서 못 해줬어… 미안해…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하지만 어머니는 오히려 미안하다는 말을 꺼냈다.
도대체 뭐가 미안하다고. 그저 아들만을 위해서 사셨으면 이제 그 보상을 받을 때도 됐는데.
하지만 어머니라는 게 그런 걸까?
제 인생을 모두 포기하고 아들만 바라보고 살았음에도,
아들이 본인을 위해 뭔가 준다면 받고 싶지 않은… 그런?
“뭐가 미안해. 미안할 거 없어. 엄마 그동안 고생 많이 했잖아. 괜찮아, 엄마. 이제 다 잘 될 거야…”
준성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를 다독였다.
그렇게 평생을 불효자로 살았던 준성은,
평생을 아들만을 위해 헌신하며 살았던 어머니께,
회귀하고 나서야 첫 효도를 할 수 있었다.
끝
ⓒ 김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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