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turn to super rich! RAW novel - Chapter 85
– 86화 –
얼마 후.
준성은 오래간만에 KBC를 찾았다. 재민이 약속을 잡은 시사 프로그램 PD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안녕하세요, 추적 90분 메인 프로듀서 김인권입니다.”
김인권 PD는 슬쩍 고개만 까닥여 인사하는 동시에 준성을 위아래로 쓱 훑었다. 그게 상대방을 무시해서라기보다는, 찾아온 의도를 가늠하기 위해서처럼 보였다.
‘네스트 사장이 날 왜 찾아와?’
사실 시사 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하다 보면 이런저런 사람이 자주 엮이기 때문이었다.
사회, 경제, 정치.
분야를 막론하고 공론화하기 좋음과 동시에 누구 하나를 골로 보내기 딱 좋은 게 시사 고발 프로그램 아니던가?
그렇기에 이런저런 ‘거래’가 들어오는 일이 잦았고, 시사 PD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제보를 가려 받아야만 했다.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요? 하세요.”
김인권 PD는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툭 던지듯 물었다.
‘기업체 쪽 제안이 다 거기서 거기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한 번 얘기는 들어 드릴게.’
준성 역시 그 태도에서 김인권 PD의 의중을 읽어내긴 했지만, 모르는 척 능숙하게 입을 열었다.
“이번에 좋은 소재가 있어서 가져왔습니다. 커피 산업에 관련된 고발이 좀 필요할 것 같아서요.”
“하, 고발요? 누구를?”
이후 김인권 PD는 ‘네스트 경쟁자를?’이라는 말을 속으로 삼키곤, 언짢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런 경우가 종종.
아니, 생각보다 자주 있었다.
얼마 전 EBC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만 해도 그랬다.
해당 다큐멘터리는 [환경 호르몬]과 [모유] 그리고 [오염물질 축적]에 대해 심각한 내용을 다뤘다.
대충 이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 주변에서 환경 호르몬이 넘쳐남. 아이들이 아토피 등의 피부질환을 겪음.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환경 호르몬을 격리함. 근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음.
– 이미 모체(엄마)에 환경 호르몬이 축적되어 있었음. 모유에도 자연스럽게 그 환경 호르몬이 묻어 나옴. 모유를 섭취한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질환이 생김. 면역계 생성을 위해 모유를 먹였는데, 정작 그 모유가 아이에게 병을 줬음.
… 이라는 내용의 다큐였다.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보면 ‘어? 맞는 말 같은데?’라고 느낄 내용이었다. 특히 다큐멘터리는 매우 현실감 있게 만들어진 TV 프로그램이기에 시청자에게 큰 영향을 주기 마련이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저 다큐멘터리 이후 분유의 매출이 크게 상승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시장에서 ‘가격 논리’를 완벽하게 벗어나는 대표적인 산업이 딱 3개가 있었다.
바로 [패션]과 [건강] 그리고 [육아]다.
당장 주변에 많은 가정들이 그렇지 않던가?
자기 쓸 건 싸구려 써도, 아이가 먹고 입고 쓰는 것엔 절대로 돈을 아끼지 않는다. 심지어 제품에 하자가 없어도 가격이 낮으면 괜히 ‘이거 어디 안 좋나?’ 라는 생각까지 든다.
분명 객관적으로 놓고 보면 현명한 소비가 아니라지만, 내 새끼 챙기는 데 현명이고 나발이고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특히 육아는 실수 한 번으로 큰일이 나는 경우가 많았기에, 부모들은 가격보다는 무조건 성능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첫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더더욱 그런 경향을 보였고 말이다.
그리고 육아용품 기업들 역시 이를 알기에 성능대비 가격을 높게 책정하는 편이었다.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위의 다큐멘터리 송출 이후 분유 매출이 크게 상승했다.
해당 방송이 워낙 자극적이었던 탓에 부모들. 특히 아이를 처음 가진 사람들이 모유 수유를 멀리하고 분유를 먹였기 때문이었다. 몇몇 사람들은 해당 다큐멘터리를 보며 날카로운 비판을 했지만, 주류가 되진 못했다.
자. 여기까지가 사회 현상의 단면이었다.
그저 방송이 만들어졌고,
그 결과 분유 매출이 올랐다.
하지만 여기에 ‘누가’와 ‘왜’를 넣으면 상황을 보는 시야가 조금 달라지기 시작한다. 과연 저 다큐멘터리로 인해 가장 큰 이익을 본 건 누굴까? 말할 것도 없이 유업이었다.
특히 해당 다큐멘터리 제작사가 유업과 관련된 곳이었기에 의심은 더더욱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게 바로 기업들의 ‘기만 마케팅’이었다.
자극적인 정보를 편집해 여론을 조작하고, 공포심을 불어 넣어 자사의 매출을 늘리는 방법 말이다.
비단 저뿐만이 아니었다.
당장 ‘결혼반지’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뭔가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왜 결혼반지에는 꼭 다이아몬드가 들어갈까? 굳이?
당장 1940년대 까지만 하더라도 부유층이 아니고서는 값비싼 결혼반지를 선물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에 어느 한 기업이 얼굴을 찌푸렸다.
바로 남아공의 다이아몬드 독점 기업 [드-비어스]였다.
이때 까지만 하더라도 다이아몬드는 그렇게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보석이 아니었다.
그저 단단하다는 특성 하나로 공업용 혹은 부유층의 사치에만 쓰였을 뿐. 대중들과는 거리가 먼 광물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한 사람이 이러한 마케팅을 하기 시작한다.
– 다이아몬드는 영원합니다. 당신의 영원한 결혼 생활을 위하여, 다이아 반지를 선물하세요! 단 한 번뿐인 결혼, 당신의 연인에게 최고의 다이아 반지를 선물하세요!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여러분의 월급 3개월 치면 충분합니다!
이러한 대중들을 향한 광고는 제대로 먹혀들었고, 그와 동시에 ‘평생 한 번 뿐인 사치’가 어마어마한 유행. 여성들에게 결혼 선물로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는 게 꿈이 되어갔다.
이에 남성들은 부담을 느끼긴 했지만, 주변에서 다 하는 데 본인만 빠질 순 없다고 판단. 이에 자기 석 달 치 월급을 때려 박아 반지를 사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이러한 사회 현상이 길게 유지됐고, 결과적으로 지금에 와서는 온갖 사치를 다 쏟아부은 결혼식이 정착됐다. 심지어 준비 과정에서 파혼되는 경우가 심심찮을 정도로 말이다.
이게 대중들에게 ‘상식’과 ‘유행’으로 위장한 마케팅.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였다.
이렇듯 기업들의 상술이 가지각색이었기에,
김인권 PD는 김재민이 건넨 서류를 별 기대 없이 슥 읽어내려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기업적인 색깔 없이 매우 중립적으로 만들어진 내용에 인권은 살짝 혼란스러워졌다.
“… 이거 진심이세요?”
“진심이니까 찾아왔겠죠?”
“아니… 혼란스러워서 그럽니다. 이걸 만들려는 의중이 뭡니까? 왜 굳이 자기 사업 잘 나가는데 장애물 만드시려고 그러세요? 이거 방송 나가면 네스트 매출에 타격이 갑니다.”
김인권 PD는 지금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시장에서 제일 잘 나가는 커피 프랜차이즈 사장이,
커피의 [가격 구조]를 고발하는 소재를 들고 왔다.
특히 스타벅스를 필두로 고가 정책을 유지하는 대기업 커피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 폭탄이 터지면 분명 네스트 역시 피해를 입을 게 분명했다.
한 마디로 본인에게 약점이 될 만한 정보를 건네준 꼴.
이에 인권은 자기 좀 쏴달라고 권총 건네는 사람 쳐다보듯 준성을 바라봤지만, 정작 준성은 온화하게 대답했다.
“저는 그저 소재를 드린 것뿐입니다. 어떻게 이용하실지는 모두 PD님께서 결정하시는 거죠. 제가 부탁드릴 건 딱 하나입니다. 저 다큐의 방영 시점이죠.”
참고로 이런 시사 고발 프로그램 같은 경우 역시 ‘흐름’을 잘 타야 시청률이 나오기 마련. 그렇기에 미리 만들어 놓고 주변에서 먼저 사건을 점화해주길 기다렸다가 터트리기 위해 소위 ‘킵’을 해놓는 편이었다.
준성은 해당 소재를 그렇게 쓰라고 얘기해 주고는,
김인권 PD에게 ‘네스트의 작은 성의’를 건네줬다.
“현재 커피 시장은 머지않아 경쟁이 시작될 겁니다. 머지않아 분명 비싼 가격에 얘기가 불거져 나올 테고, 추적 90분은 그때 이 소재를 쓰시면 되는 겁니다.”
준성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찌 보면 네스트에 피해가 갈 수도 있는 일.
하지만 그럼에도 준성은 씨익 웃었다.
‘어차피 네스트의 기본은 중저가다. 소비자 입장에서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이야. 하지만 경쟁자들은 다르다.’
스타벅스, 핸썸 플레이스, 엔젤링을 필두로 한 카페들.
그들은 네스트와는 다르게 고급스러움으로 무장했고, 가격 역시 네스트 대비 1.5배에서 2배 정도를 고수했다.
‘지금은 너희 이익률이 높다고, 네스트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고 기뻐하겠지. 마음껏 팽창해라.’
만약 그 와중에 [커피 가격] 고발 다큐가 터진다면?
특히 사치에 대해 예민한 외환위기 중에?
핸썸 플레이스와 스타벅스는 분노한 대중들의 공격을 감내해야 할 게 분명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네스트에게도 어느 정도 피해가 오겠지만… 저들에 비하면 생채기에 불과하리라.
‘스타벅스, 핸썸 플레이스. 어차피 너희는 밟고 밟아봐야 죽지 않는다는 걸 안다. 그렇다면… 맹독은 어떨까?’
준성은 매우 기대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물론, 네스트를 위한 해독제 역시 생각해 둔 상태였기에 더더욱 기대되는 건 두말할 것 없었다.
…
약 일주일 후.
김인권 PD에게서 반가운 연락이 돌아왔다.
– 하겠습니다, 그거.
– 분명 네스트에서 뭔가 계략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전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네요. 소재가 워낙 괜찮으니까 그냥 속아 드릴게요. 하지만 이번뿐입니다. 그리고 약속은 약속이니까, 제작은 지금 하되 적당한 시기에 방영하겠습니다.
‘계획대로군.’
그렇게 KBC에서는 커피 산업을 휩쓸 맹독 제작이 시작했다. 이에 준성은 해독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
비슷한 무렵.
KBC 보도국 산하 경제부.
타닥- 탁- 타닥- 탁-
어느 한 기자가 퀭-한 눈으로 어느 문서를 보도국 전용 서식으로 붙여넣었다. 그 정체는 바로 대기업 홍보팀에서 건네받은 보도자료였다.
본디 참된 언론인은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아야만 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자기 발로 뛰며 직접 취재를 해야만 했지만… 실상은 달랐다.
‘하, 씨발… 지금 이게 뭐하는 짓거리야.’
그는 처음 시쳇말로 언론고시라 불릴 정도로 힘든 KBC 공채에 합격했을 때만 하더라도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기자. 이 얼마나 멋진 이름이란 말인가?
비밀을 밝혀 대중들에게 진실을 전하는 메신저이자,
세상의 약자들을 위해 싸우는 미디어의 영웅.
그게 바로 기자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가 합격 이후 한 거라곤 기삿거리가 있을 만한 곳에서 하루 12시간씩 대기한 것뿐. 그나마도 짬이 좀 쌓이고 난 뒤부터는 제대로 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됐지만…
그가 한 일은 제 상상과는 많이 달랐다.
직접 취재를 하는 일 따윈 없이 그저 대기업에서 던져 준 보도자료를 적당히 수정해서 발표하는 게 전부였다.
‘난 이러려고 기자를 한 게 아닌데. 대기업들의 이익싸움을 위해 대신 펜대를 굴려대고 싶었던 게 아닌데…’
한숨을 푹- 푹- 내쉬고 있기도 잠시.
그의 귀에 재미있는 얘기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 야, 이번에 중소기업 관련 인터뷰 누가 할 것 같냐?
– 영양가 없으니까 뭐 윗선은 안 할테고… 우리가 하겠지 뭐. 나는 별론데. 재미없잖아? 주머니 두둑해지는 일도 없고.
– 아… 솔직히 나도 싫은데, 좀 압박이 심한가 봐. 이번에 DJ가 벤처에 드라이브 걸잖아. 그래서 우리도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를 띄워서 그쪽 프레임 맞추려는 모양인데…
– 에휴, 뭐 어쩌겠냐. 할 사람이 알아서 하겠지.
그 말에 경제부 기자는 눈을 몇 번 깜빡였다.
‘재밌겠는데? 저거 내가 하고 싶다…’
그러던 그의 머릿속에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과거에 선배 기자와 한 번 얘기했던 기업.
바로 [네스트]와 [디움]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덜컥 걸리는 게 하나 있었으니…
– 네스트랑 디움? 그거 지뢰야. 걔네 색이 너무 강해.
– 디움은 대영 그린비랑 싸우고 있고, 커피는 CK랑 뉴월드 그룹이랑 멱살잡이하는 중이잖아. 근데 그 와중에 걔네한테 우호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너 그러다 큰일 난다. 대기업 눈 밖에 나면 피곤해져 임마.
과거에 그의 선배가 해줬던 말이었다.
그리고 애석하게도 부정할 수 없는 말이었다.
결국, 그는 옥상으로 올라가 조용히 담배를 물었다.
한숨인지 연기인지 모를 것을 얼마나 뿜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더라?’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희망을 주고 싶었다.
근데 나이가 들고 나니…
어째 진실을 캐내려던 자신이,
다들 그런다는 이유로 대기업의 앵무새가 됐다.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경제부 기자.
우동민은 제 안에서 뭔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 한 번쯤은 남이 만든 스토리가 아니라, 내가 직접 취재한 거 하나쯤은 만들어야 하지 않나? 그게 기자잖아.’
그는 그 길로 바로 팀장에게로 향했고,
선언하듯이 외쳤다.
“팀장님! 이번 중소기업 인터뷰 건. 제가 할게요! 아니, 하게 해주세요! 꼭 하고 싶습니다!”
*
사흘쯤 지났을까?
출근하자마자 재민이 싱글벙글하며 찾아왔다.
“대표님, KBC에서 인터뷰 제안 들어왔습니다. 저희 이제 뉴스에 나올 모양인데요?”
끝
ⓒ 김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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