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olution is also a business RAW novel - Chapter (357)
대회전 (8)
1815년 12월 12일.
0900.
프라하 북동쪽 40km 지점.
“저 새끼! 저 새끼 전령이다! 저 새낀 무조건 잡아!”
“일단 갈겨!”
“라마르크 장군님! 이대로면 전선이 붕괴 됩니다! 적이 너무 많습니다!”
“프로방스 예비 보병대대를 소방수로 투입한다. ···그래도 안 된다면 여기로, 2km 후퇴해 전선 길이를 줄인다.”
“···만일에 대비해 지연전을 준비하겠습니다.”
22예비군단을 지휘하는 라마르크는 죽을 맛이었다.
국민군답게 사기는 높고 감투정신 또한 훌륭했지만, 엄연히 22예비군단은 1선 정규군이 아닌 예비군으로 이루어진 2선 부대.
1선 부대인 14군단과 공화국 청년 근위대를 무너뜨린 적을 상대로 잠시 버티는 것만 해도 마음대로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였다.
“그나마 14군단이 멀쩡하게 합류해서 다행이군.”
“모르티에 군단장님은 괜찮으실까요?”
“총상이긴 해도 허벅지 쪽이니 목숨에는 지장 없을 거야.”
끝까지 후위를 지키느라 부상 당한 14군단장은 야전병원으로 실려갔고, 그가 구해낸 14군단 잔존 병력은 지금 전선 소방대로 22예비군단이 밀리는 곳마다 다시 투입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동맹군 측이 하하호호 껄껄 웃고 있냐고 물어본다면, 그건 또 아니었다.
“개구리들이 잘 버티는군.”
“놈들이 여길 제 묫자리로 삼겠다고 결심했는지 뒤로 빼질 않습니다.”
“그래도 시간 문제 아니겠습니까.”
“시간 문제라, 그래. 시간이 제일 문제지. 이대로면 우리 측면이 너무 오랫동안 헐거워져.”
미하일 쿠투조프는 지금 이 꼬락서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중구난방이다.’
전열은 교전 중, 중열은 이제 막 전투 대형을 갖췄고, 후열은 아직도 ‘그래서 우리 뭐 해야 됨?’ 이러고 있는 중.
전 병력이 전개되면 저깟 군단 한두 개 쯤이야 박살 낼 수 있겠지만, 전개된 30만 대군을 다시 행군 대열로 맞춰 이동시키려면 시간이 적어도 반나절은 필요하다.
제일 좋은 건 일부로 적을 제압하고, 일부는 행군 대열 그대로 대기하다가 이동을 시작하는 것.
하지만 눈앞의 대육군은 어마어마한 피해를 입고도 도망치긴커녕 어디 더 때려보라는 듯 가드를 올린다.
“만일 저게 모루라면.”
“예? 장군님 뭐라고 하셨습니까?”
차르 근위대 참모장, 니키타 무라비요프(Nikita Muravyov)라고 했던가.
쿠투조프는 젊은 참모장이 볼 수 있게 손을 들어 전선을 가리켰다.
“참모장.”
“예, 장군님.”
“저게 모루라면, 어떻게 될 거 같나?”
“···그리 유쾌한 상황이 벌어지진 않을 것 같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안전이냐 속도냐.
쿠투조프는 결국 안전을 위해 속도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후열에 있는 병력을 모두 전투 대형으로 전개하지. 안전하게 간다.”
그러나 젊은 참모장이 입을 움직여 답하기 전.
저 멀리 언덕을 넘어 삼색기가, 금색 독수리가 수 놓인 삼색기가 펄럭이기 시작했다.
***
– 우린 망치다. 22예비군단과 반파된 14군단을 때리는 적 뒤통수를 맛깔나게 후려갈길 망치.
– 따라서 이번 작전은 성패는 전적으로 기도비닉에 달려있다.
– 70km 거리를 이틀 내로 주파하면서 움직임을 은폐할 것.
– 뭐? 그걸 어떻게 하냐고? 뭐, 안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해낸다면 적어도 별 하나는 더 달 수 있지 않을까? 프랑스의 군인이라면 죽었을 때 폼나게 앵발리드에 별 달고 묻혀야지, 어디 교회 공동묘지 들어갈래?
– 아. 그래도 안 된다고? 못해? 그렇구나… 우리 친구는 슨배임 말이 아주 개좆으로 보이는구나! ···마 니 사관 몇 기고.
하늘보다 높은 상원수 – 심지어 국가원수와 호형호제하는 – 의 말을 누가 거역할 수 있겠느뇨.
그런 윗분의 지고한 명령에 따라, 대육군 6사단 소속 수아송 보병 상병은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뛰고 또 뛸 수밖에 없었다.
“시발.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인생은 뭔가 단단히 꼬였어.”
“오우 아저씨. 오늘은 지랄병 발작 간격이 좀 짧은데요?”
“아가리 안 여물-”
“6사다아아안!! 전진!!”
척, 척, 척.
빌어먹을. 저 꼬맹이 턱주가리를 한 대 돌려버렸어야 하는 건데.
하필 그 직전에 사단장이 칼을 빼 들고 소리친 덕분에 수아송은 입을 콱 깨물고 군홧발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거, 저게 다 러시아 놈들인가? 존나게 많기도 하구만.”
“대충 쏴도 명중이겠는데요.”
왼쪽, 오른쪽, 어딜 둘러봐도 녹색 군복을 입은 러시아군이 빼곡하게 모여있다.
그러나 두려움은 들지 않는다. 우린 무적의 ‘대육군’ 아닌가.
“정지!”
“““정지!”””
“1열 조준!”
수아송은 조건반사적처럼 무릎을 꿇고 앉아 총을 겨눴다.
숨을 들이마시고. 멈추자, 손의 떨림 또한 멈춘다.
“사격!”
– 타타타타탕!!
소대장이 검을 휘두르자 수십, 수백 발의 총탄이 날아가 적의 대열에 구멍을 냈다.
2열과 3열이 사격할 때 동안 주머니에서 포장된 탄포를 꺼내 입으로 찢고 꼬질대로 밀어 넣는다.
너무나도 숙달되어버린 동작.
– 펑! 퍼펑!!
갑자기 튀어나온 프랑스군의 공격에 우왕좌왕하다가 ‘일단 구멍 난 대열부터 메꾸자!’ 하던 러시아군 장교들을 향해 아군 포대가 불을 뿜었고, 누구보다 솔선수범하던 러시아군 장교들은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렸다.
그렇게 몇 차례 보병대와 포병대가 반복하자, 러시아군의 대열은 오래 쓴 참빗 마냥 이가 군데군데 나가버린 꼴이 되어버렸다.
“어떤가. 방진이 헐거워졌어. 때가 된 듯 싶은데?”
“그렇습니다. 호기 중의 호기입니다!”
“좋아. 한번 날뛰고 싶은 대로 날뛰어 보게.”
가장 높은 곳에서 명령이 떨어지고, 네 기병 여단장.
조아킴 뮈라, 에마누엘 드 그루시, 장 바티스트 베시에르, 유제프 포니아토프스키가 검을 뽑아 들었다.
“전진! 전진! 전진!!”
“두려워 말라! 만일 귀관들이 두렵다면 다른 건 보지 말고 이 그루시의 뒤만 눈으로 좇아라! 내가 선봉에 서겠다!”
“고향이 눈앞에 있다! 폴란드인이여 날 따르라!!”
고삐를 서너 번 왼손에 감고, 검에 달린 끈을 오른손에 감고, 양쪽 모두 매듭을 지어 떨어지지 않게 묶은 뒤, 기병대는 애마의 배에 박차를 가하며 허리춤에서 권총을 빼 오른손에 들었다.
원수가 참모들과 망원경을 들고 전장을 바라보고 있는 사령부를 지나친다.
환호와 함께 원수가 군모를 벗어 흔드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사령부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빨갛게 달아오른 포신에 물을 끼얹어 식히는 포병들을 지나친다.
땀에 흠뻑 젖은 병사들이 환호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포병대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일자진을 이루어 적을 향해 다가가는 보병대를 지나친다.
“말박이 새끼들아! 이반 놈들에게 한 방 먹여줘!!”
걸쭉한 입담과 함께 주먹을 불끈 쥐어 올리는 보병들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병대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러면 비로소 기병의 앞엔 그 어떤 장애물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박차를 박아넣는다.
애마가 푸르륵-소리와 함께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간다.
눈이 소복이 덮인 들판, 얼마 남지 않은 낙엽이 달린 나무, 살얼음이 언 여울.
그럼에도 눈은 모든 것을 빠짐없이 관찰한다.
보병들이 아니라 돌진하는 기병대를 향해, 자신을 향해 몸을 돌린 적 대포.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고 왼손에 묶인 고삐에 의지해 대롱대롱 말에 매달린 옆 부대 전우.
매캐한 화약 내음과 연기를 뚫어내자 보이는, 질겁한 표정의 어느 러시아군 장교.
오른손을 들어 방아쇠를 당긴 뒤, 권총 대신 검을 들어 올렸다.
눈앞에 걸리적거리는 모든 걸 베고, 찌르고, 가른다.
수천 년 동안 바뀌지 않은 전쟁놀음.
기병은 공간을 찢고, 넓히고, 다지고, 돌파한다.
취약해진 적의 전열을 뚫고 송곳처럼 들어가 모든 걸 파도처럼 쓸어버린다.
그리고.
“세나르몽(Alexandre Antoine Hureau de Sénarmont)!!”
“예! 총사령관 각하!”
“우리 기병대가 공간 낸 거 보이나? 적 포대가 완전히 노출됐다.”
“예! 아주 잘 보입니다!”
“좋아, 장님은 아닌가 보군! 다 쏟아붓지. 탄종은 고폭탄으로.”
“예!”
엄호가 사라진 적 포대를 완전히 포격으로 엎어버리며 프랑스군은 1개 사단을 순식간에 잡아 먹어버렸다.
***
“11사단이 전멸했습니다! 프랑스군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각하, 명령을.”
“음.”
미하일 쿠투조프는 단 1시간 만에 무너진 측면 전열을 바라보며 깊은 침음성을 냈다.
“제 2야전군을 전개해 측면을 보강한다.”
“정면에 있는 22예비군단은-”
“그건 모루야. 아직도 모르겠나? 놈들의 망치인 저 병력을 으깨버리면 모루는 쓸모가 없어져. 딱 발을 잡아놓을 정도로만 투입하고 나머지는 모두 저 망치를 제 1목표로 삼는다.”
적이 1개 사단을 잡아먹었다. 아프긴 하다.
하지만 러시아가 어떤 나라인가. 밭에서 병사를 캐는 국가 아닌가.
1개 사단을 잃은 것쯤이야 후위에 있는 제 2야전군을 전개해 막아버리면 된다.
“근위 경기병대에게 한번 전선을 훑어보라고 해. 적 전선에 있을 취약점을 파악해야 한다.”
“예!”
쿠투조프가 명령을 내리자, 근위대 소속 코사크 기병대가 말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적도 흉갑기병을 거두고 경기병대를 내보내고 있습니다.”
“코사크를 믿게. 저 광활한 타이가를 제집처럼 노다니며 사냥하는 자들이야.”
그의 말마따나 코사크 기병대는 프랑스 경기병대를 유린하고 전선에 압박을 넣은 뒤 러시아군 사령부로 돌아왔다.
“총사령관 각하. 놈들의 우익이 이상합니다.”
“···그래?”
수염을 길게 기른 코사크 기병 장교의 말에, 쿠투조프는 턱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구체적으로 말해보게.”
“개구리들의 좌익과 중앙은 단단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가 다가가면 방진이 순식간에 짜이고, 적 포병대가 산탄을 쏴대더군요.”
“그 말인즉슨 우익은 그렇지 않다 이거군.”
기병 장교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익이 많이 헐겁습니다.”
“병력이? 아니면 무장이? 아, 아니지. 프랑스인들이 무장이 빈약할 리는 없지. 그 기욤의 무기고에서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질과 양의 무기가 쏟아져나오는데.”
우익에 병력이 적다, 라.
쿠투조프는 뒷짐을 지고 잠시 생각했다가 입을 열었다.
“블러핑인가?”
나폴레옹 그 괴물이 병력 전개라는 기본조차 이렇게 어설프게 했다고?
그것보다는 ‘자 여기야! 찔러봐! 찔러보라니까!’라고 사인을 보내는 블러핑일 확률이 더 높지 않을까.
“무라비요프 참모장.”
“예! 각하.”
“적 부대는 확인했나?”
“예! 그렇습니다! 개구리들의 좌익은 4군단, 중앙은 8군단과 11군단, 우익은 20군단이 맡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우익이 20군단이라고?”
무라비요프는 고개를 끄덕였고, 쿠투조프는 수통을 열고 보드카를 한 모금 입에 머금었다.
본디 상황을 냉정히 바라보기 위해서라면 약간의 보드카만 한 게 없지 않나.
‘20군단, 20군단… 생시르라는 자가 지휘하는 부대였지, 아마.’
그리고 그 부대는 주데텐란트 산맥을 뚫기 위해 가장 많이 소모한 부대.
‘웰즐리의 기동은 매우 신속했다. 나폴레옹 그자가 뒤늦게나마 그걸 눈치채고 군을 움직인 건 대단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소모된 1개 군단을 재편할 수 없었나.’
소모되어 후방으로 돌린 20군단을, 역설적으로 프랑스군의 뒤통수를 노리는 동맹군과 가장 가까웠기에, 동맹군을 막기 위해 우격다짐으로 끌고 올 수밖에 없었나!
쿠투조프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보드카를 한 모금 더 삼킨 뒤, 참모들과 전령을 모아놓고 말했다.
“적의 우익, 20군단에 전 화력을 집중시킨다. 놈들의 우익을 뚫고 사령부까지 들어가 군대를 반으로 쪼개버린 뒤 나폴레옹 그놈을 잡는다!”
“““알겠습니다!”””
“원수 각하, 놈들이 우리 우익을 노리고 있습니다.”
“하하하!!”
나폴레옹은 싱긋 웃으며 수통에 든 와인을 벌컥였다.
역시나. 기욤의 술 창고에서 쌔벼 온 건 하나 같이 맛 좋은 명주(名酒)뿐이었다.
“좋아, 이제 술값 할 시간이구만.”
술값은 그놈이 그렇게 아끼는 사람 목숨으로 치를 예정이니, 그놈에게도 영 나쁜 장사는 아니리라. 아무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