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b the Dungeon! RAW novel - Chapter 13
12화 – 라이센스 획득
용훈은 여의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의 TV 방송국 부지는 거의 10년 전서부터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제는 UN보다도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단체로 성장한, UHRS의 한국지부가 들어선 것이었다.
용훈은 삐까뻔쩍한 UHRS 코리아의 회전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인포 데스크에 앉은 예쁜 미소의 아가씨가 그를 맞아 주었다.
“UHRS 코리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 음. 라이센스를 따러 왔는데요.”
“아, 그러시군요? 재발급이신가요?”
“아니요. 처음입니다.”
“아, 네. 그러시다면 자격검정을 거치셔야 해요. 지하 3층의 테스트실로 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용훈에게 인포 데스크의 아가씨는 다시 한 번 환한 미소로 답했다.
‘예쁘네.’
[그보다는 비정상적으로 높은 매력 수치 때문에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 아닐까요.]‘그럴 수도 있겠네. 근데 왜 매력 계열의 각성자가 여기에 있지? 보통 가수나 탤런트를 하지 않나?’
[요즘에는 각성자가 너무나 많아서 자리를 잡는 게 쉽지 않다고 합니다. 게다가 UHRS 코리아는 급여 수준이 높아서 각성자들도 많이 지원합니다.]‘그렇구나.’
용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화려한 식당가를 지나 지하 3층에 이르자 삭막한 연구실 같은 공간이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검사받으러 오셨습니까?”
건장한 체구의 남자가 다가오며 물었다. 용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용훈을 한 공간으로 이끌었다.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용훈을 반겼다.
“반갑습니다. 지금부터 검사를 시작할 텐데, 다소 불편하실 수도 있습니다. 괜찮으시죠?”
“네, 뭐. 너무 아프게만 하지 말아주세요.”
검사가 시작됐다. 그들은 갖가지 장비로 용훈의 온몸을 이리저리 들쑤셨다.
한 사람은 줄이 주렁주렁 매달린 테잎을 그의 머리에 덕지덕지 붙여댔고 다른 사람은 꼬불거리는 줄이 달린 고무망치로 그의 몸 여기저기를 두들겨댔다.
그럴 때마다 한쪽 벽에 달린 스크린에 알아볼 수 없는 수치들이 떠올랐다. 그 앞에 앉은 남자는 연신 키보드를 두들기며 뭔가를 계산하고 있었다.
“어···. 근데 질문이 있는데요.”
용훈의 말에 고무망치로 그의 발등을 내려치던 남자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대답했다.
“네, 말씀하세요.”
“저, 원래 자격검정이 이렇게 진행되나요? 무슨 기계가 알아서 결과를 내놓는 거 아니었어요? 마나를 감지한다든가, 뭐 그런···.”
“어휴. 그런 게 되면 저희가 이런 개고생을 하겠습니까? 아니, 애초에 기계가 마나를 느낀다는 게 말이나 되냐구요. 그게 됐으면 벌써 인공적으로 헌터를 만들어내는 기술도 나왔을 겁니다. 어떤 에너지의 존재를 실증하는 것은 그 분야의 기술 발전에 있어서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단 말입니다.”
“그, 그래도 그, 뭐냐, 그 마력석 발전 같은 것도 하잖아요?”
“그건 마력석의 마나를 사용하는 게 아닙니다. 마력석을 파괴할 때 발생하는 폭발적인 열에너지를 사용하는 것뿐이에요. 재료만 다를 뿐 화력발전과 다를 게 없는 거죠. 물론 에너지 효율이나 환경문제 등에서 진일보한 것은 사실이지만요.”
“그, 그런가요?”
“그럼요. 보세요. 우리 인간은 매우 우수해요. 하지만 아무리 우수해도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데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겠습니까? 그 말은 반대로 말하면 목적지만 주어지면 우리는 어떻게든 그곳에 도달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에너지의 존재를 입증한다는 것은 일종의 내비게이션이나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도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거란 말입니다. 이 불가사의한, 그러면서도 실제로 존재하는 에너지를 과학적으로 정립하기 위해서. 아시겠습니까?”
“네, 네···.”
괜히 질문을 꺼냈다가 일장연설을 듣고 말았다. 용훈은 검사가 끝날 때까지 그냥 잠자코 기다리기로 했다.
“다 끝났습니다. 근력과 골밀도, 신경전달속도가 확실히 규격을 넘어섰습니다. 혹시 보여주실만한 이능력이 있으십니까? 없으시면 그냥 강화계로 표시됩니다.”
“음···. 아뇨, 없네요.”
그러고 보니 용훈은 자신에게 계열 특성이나 액티브 스킬이 하나도 없음을 깨달았다.
‘나 완전 장비빨이네, 생각해보니까.’
“알겠습니다. 잠시 기다리시면 라이센스를 발급해 드리겠습니다.”
용훈은 지하 3층의 로비로 이동했다. 그보다 먼저 와서 검사를 받았던 사람들이 로비에 여기저기 앉아있었다. 용훈은 아무 데나 빈자리에 앉았다.
라이센스는 한꺼번에 일괄적으로 찍어내는지, 대기 중인 사람들의 라이센스가 한꺼번에 발급이 됐다. 미소가 예쁜 아가씨가 나타나 환히 웃으며 이름을 불렀고 호명된 사람들은 앞으로 나가 라이센스를 받아들었다.
“조용훈 씨?”
“네.”
그가 앞으로 나서자 아가씨는 환히 웃으며 라이센스를 내밀었다.
“브론즈 랭커가 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아, 감사합니다.”
용훈은 황동으로 테두리가 둘러진 묵직한 카드를 보며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사실 이것은 길 가다 마주치는 사람 열 명 중 다섯 명은 가지고 있을 법한 물건이었지만, 용훈은 지금껏 그것조차 갖지 못했었다.
“그렇게 좋으세요?”
눈앞의 아가씨가 환히 웃으며 물었다. 그녀의 미모 때문인지 매력 수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용훈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용훈은 UHRS 코리아를 나섰다. 오늘 안에 처리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용산으로 향했다. 용산은 십여 년 전까지 ‘용팔이’라는 악명이 자자했던 컴퓨터 상가였다. 그리고 이곳은 이제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아이템 거래소가 되어 있었다.
커다란 규모의 대형 상점에서부터 코딱지만 한 개인 상점까지, 거의 천여 개의 상점이 밀집한 곳. 용훈은 이곳에서 아이템을 처분할 생각이었다.
[잘 아시는 상점이 있으십니까?]“있을 리가 없잖아.”
[그럼 제가 검색을 좀 해 볼까요?]“그런 것도 할 수 있어?”
[그렇습니다. 이래 봬도 저는 신력을 지닌 로컬 시스템입니다. 인간이 만든 네트워크 따위는 아무리 깊이 숨은 딥웹이라 하더라도 제 탐색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이열~ 대단한데? 그럼 부탁할게.”
[알겠습니다. 검색 완료. 21동 1층 130호로 가십시오.]“빠르기도 하네. 알았다, 가자.”
용훈은 여러 개의 건물 중 21동을 골라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자비스가 골라준 상점은 용산 아이템 상가의 21동 1층 130호에 위치한 ‘아이템 스테이션’이었다. 각종 아이템의 그림이 걸린 쇼윈도를 슬쩍 둘러본 용훈이 유리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머리가 벗겨진 후덕한 인상의 사장님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아, 네. 제가 아이템을 좀 처분하려고 하는데요.”
“그러시군요. 이리로 앉으세요. 커피라도 드릴까요?”
“네, 감사합니다.”
그는 직접 믹스 커피를 두 잔 타서 가져와 앞에 앉았다. 안경을 고쳐 쓰고 계산기까지 각을 맞춰 앞에 내려놓은 그가 커피를 홀짝였다.
“어떤 품목을 처분하실 생각이신가요?”
“일단은 드래곤 금괴를 처분하려 합니다.”
“오, 드래곤 금괴요? 가만있자, 드래곤 금괴 시세가···.”
그가 꾸깃꾸깃한 문서를 들추며 드래곤 금괴의 시세를 뒤졌다.
“아, 여깄네. 오늘 자로 시세가 좀 올랐어요. 아무래도 요즘 계속 오르는 추세네요. 어디 연구소에서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느라 대량으로 드래곤 금괴를 필요로 한다는 소문이 돌던데, 아마 그것 때문인가 봅니다. 오늘 시세대로라면 하나에 7천4백까지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용훈은 이상할 정도로 자세하고 친절한 사장님의 설명에 대략 머리가 멍해졌다.
‘자비스. 원래 용산 아이템 상가가 이렇게 친절해?’
용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그러면 일단 서른 개 정도 처분할게요.”
“컥! 서른 개요?”
“네. 무슨 문제라도···.”
후덕한 인상의 사장은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손님. 혹시라도 다른 가게에서는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일단’이라는 건 물건이 더 있다는 뜻이니까, 그걸 매입하기보단 납치, 고문해서 인벤을 털어먹으려는 놈들도 있다구요. 게다가 그렇게 대량으로 거래하시면 시세대로 못 받는 경우도 많아요. 제일 좋은 건 일단 주기적으로 소량을 거래하시면서 상대방을 평가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나면 UHRS 코리아에서 제공하는 법무대리 서비스를 끼고 대량거래계약을 맺으세요. 그러면 나중에 시세 보상도 받을 수 있고 혹시라도 불미스런 일이 벌어지면 UHRS 코리아 소속 헌터들이 물리적으로 개입하기도 하거든요.”
“아, 네···.”
정말 과도하게 정직하고 친절한 사장님이다.
“혹시 지금 돈이 급하신가요?”
“아, 네. 20억 정도 급하게 쓸 일이 있어서.”
“그러면 이렇게 하죠. 저랑 대리 거래 계약을 맺으세요. 그리고 드래곤 금괴 서른 개를 제가 임시로 매입하겠습니다. 현재 시세로 하면 개당 7,430만 원에 서른 개니까···. 22억 2,900만 원이네요. 일단 이 금액을 지급하고 나서 향후 오른 시세만큼의 차액을 5:5로 나누는 겁니다. 이렇게 하면 시세차익에 따른 추가 이익을 얻으실 수 있죠. 어떻습니까?”
용훈은 일단 자비스에게 묻기로 했다. 자신은 이런 거래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했으니까.
[좋은 거래입니다. 보통은 이런 경우 시세 차익을 상인이 전부 가져갑니다. 만약 가격이 하락세라면 그것을 감안해서 터무니없이 시세를 후려치기도 하고요. 혹시라도 못 믿으시겠다면 헌터 라이센스를 사용해서 UHRS의 거래보증서비스를 받으세요. 수수료가 꽤 들긴 하겠지만, 그편이 안전합니다.]‘그래, 알았어.’
“혹시 UHRS의 거래보증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습니까?”
“당연하죠. 원하시면 저희 쪽에서 수수료를 절반 부담하겠습니다.”
이후 거래는 일사천리였다. 사장은 카드단말기처럼 생긴 라이센스 단말기에 헌터 라이센스를 긁고 업소코드를 입력해 거래보증서를 출력했다. 거래보증서비스는 스마트폰의 UHRS 앱에서도 조회가 가능하므로 안심할 수 있었다.
용훈은 15억은 현금으로 받았고 나머지 돈으로 쿼렐을 샀다. 서른 개들이 카트리지를 천 개나 주문하는 통에 한동안 상점 주인은 야단법석을 피우며 온 상가를 돌아다녀야만 했다.
개당 3만 원인 쿼렐을 대량으로 주문해 2만6천 원까지 깎았는데도 돈이 모자라, 부족분은 차후에 발생할 시세차익에서 메꾸기로 했다.
“좋은 거래였습니다. 앞으로도 저희 아이템 스테이션 많이 이용해주세요.“
그가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사장 이경식’이라고 적혀있었다. 용훈은 명함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렇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