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698)
러스트 [RUST]-698
기순이 적대적이라고 한 것과 동시에 김 양이 공격 명령을 내렸다.
[목표 전방. 지향사격개시. 화염방사기 준비.]투다다다다닥!
괴수의 부산물이 첨가된 특수 철갑탄이 300m 전방에서 꾸물거리는 검은색 키틴질 물결에 틀어박혔다.
7.62mm 탄이 박힐 때마다 검은 천에 작은 구멍이 생겼다가 다시 아무는 것 같은 광경이 이어졌다.
[화염방사기!] [후위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닥에 쏴!]푸화아아아악
중장갑 엑소슈트를 장비한 친위대원들이 화염을 뿜어대기 시작하자, 축축한 나무와 아스팔트가 한꺼번에 불타오르며 시커먼 연기를 울컥울컥 토하기 시작했다.
위이이잉-
엑소슈트 화생방 대응시스템이 자동으로 작동됐다. 김 양과 일행들은 불꽃으로 이뤄진 협곡을 등지고 서서히 뒷걸음질 쳤다.
[불꽃으로 길을 낸 곳으로만 이동.]엑소슈트는 고온에서도 일정 시간 버틸 수 있었기에, 화염방사기가 쏟아낸 네이팜 불꽃에도 문제없었다.
300m 정도 떨어졌던 검은 물결이 어느새 100m 안쪽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김 양은 지향사격과 화염방사기의 불꽃을 이용해 개미떼의 전진을 방해했다.
[드론 폭격은?] [장거리 통신 불량으로 지원 요청 불가능.] [전자기기 오작동이 심해, 어렵습니다.]개미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HUD 화면에 개미들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작은 것은 손바닥 길이, 큰 것은 팔뚝이나 허벅지 정도로 컸다.
[무슨 개미가 저렇게···.] [맙소사. 저게 다 몇 마리야.]무서운 건 숫자였다. 어디를 봐도 번들거리는 흑색 키틴질만 보였다.
[불꽃을 피해 우회하고 있습니다.] [우회하는 거 신경 쓰지 말고 후퇴에만 집중해. 이동 전에 미리 쏘고 간다.]퇴각로에 미리 네이팜 불꽃을 만들어 놨으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쌈 싸 먹히듯 포위됐을 것. 기순은 김 양의 지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짧고 명확한 명령.
생존을 최우선으로 하는 결정.
[센서 오작동.] [감지장치 먹통입니다.] [사이코메트리로 바닥 확인해.] [열기 때문에 할 수 없어요.]사이코메트리를 하려면 바닥에 직접 손을 대야 하는 데, 네이팜 불꽃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아직도 뜨거운 열기가 식지 않고 있었다.
김 양이 수통을 열어 바닥에 뿌렸다. 치이이익- 한 번. 치이이— 두 번. 하얗게 피워 오른 수증기가 서서히 약해졌다.
[확인해.]에리카가 주섬주섬 바닥에 손을 댔다. 아직 열기가 완전히 식지 않았는지 움찔 손을 뗐다가, ‘뒈지고 싶냐?’는 김 양의 압박에 다시 바닥에 손을 대는 에리카였다.
[읏- 개미가 지나간 흔적은 없어요.] [출발.]‘이거야 원.’
솔직히 김 양에 간호사, 에리카도 모자라 자기까지 엮는 건 너무 오버가 아닌가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간호사가 없었다면 의사소통 가능성을 확인할 수 없었을 것이고, 에리카가 아니었으면 안전한 루트를 찾지 못했을 거다.
‘내가 없었다면 그렇게 빨리 대응하지 못했겠지.’
감정을 확인하지 못해 접근을 허용했다면, 이렇게 쉽게 퇴각하지 못했을 터.
‘마루 녀석 판을 보는 눈이 생겼나?’
그런 눈이 생겼으면 행정 쪽에도 관심을 두지. 최소한 블라디 아크 타워에 있는 사람들도 확인해서 인력 수급도 좀 하고.
기순은 에리카를 사용해 안전지대를 확인하며 후퇴하는 김 양을 보며 과거가 떠올랐다. 요트를 타고 미국으로 올 때만 하더라도 저런 모습은 상상도 못 했었는데.
‘하긴. 그렇게 따지면 나도 그런가?’
응?
에리카가 개미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던 방향에 뭔가 거무스름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었다. 선명하지는 않지만, 적의와 살의가 내뿜는 색이었다.
기순의 말에 일행의 발걸음이 멈췄다.
[뭐임?]김 양의 질문에 기순의 시선이 적의로 뒤덮인 바닥에서 에리카로 향했다. 에리카의 표정은 왜 그러느냐는 듯 물음표 가득한 얼굴이었다.
기순의 가느다란 시선이 에리카의 얼굴에서 어깨, 팔. 그리고 장갑을 벗은 손으로 이어졌다.
장갑을 벗은 손.
에리카의 사이코메트리는 잔류 사념을 읽는 것. 그러니까 직접 접촉해야 알 수 있었다.
그럼 흙 속에서 움직이는 건?
지표로 올라오지 않고 땅굴을 파고 움직였다면?
그것도 에리카의 사이코메트리로 확인할 수 있을까?
[땅속에 적의가 있다.] [방향은?] [우리가 이동하려는 방향.] [화염방사기. 전방에 방사.]푸화아아아악
시뻘건 화염이 땅바닥을 태우기 시작하자, 어둑한 색이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처럼.
뜨거운 열기가 조금 가라앉자, 김 양이 어떻게 됐느냐는 듯 턱짓했다. 어떻게 됐느냐는 뜻. 기순도 살짝 고개를 끄덕여 안전하다는 신호를 보냈다.
[옅어졌다.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 같아.] [알겠음.]김 양은 바로 진형을 바꿨다. 에리카와 함께 기순도 선두에서 개미들 향방을 확인하게 됐다. 기순의 뒤를 따르던 간호사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개미들은 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았어요.] [아마 그럴 겁니다.]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는 기순의 말에 간호사가 멍했다.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당연하다는 건 그럴 줄 알고 있었다는 건가?
[에?] [개미는 청각으로 의사소통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너무 긴장해서 잊고 있었구나. 개미는 쥐나 까마귀, 늑대처럼 소리로 의사소통하지 않았다. 독특한 페로몬을 이용해 정보를 전달하는 게 개미였다.
[그럼 왜 저를···.]개미와 의사소통이 안 될 걸 알면서 보냈다는 건가?
[대화 능력이 소리를 매개로 이뤄지는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아- 예. 그렇군요.]알아듣는 간호사에게 기순이 설명을 계속했다.
[개미 샘플을 확보하게 되면, 제대로 시간을 들여서 능력을 써보세요. 혹시라도 가능하다면 방법을 달리해야 할 테니까요.] [네. 그럴게요.]‧
[네이팜 잔량은?] [2~3번 정도 쓸 수 있습니다.]견마형 짐꾼 로봇으로 넉넉하게 챙겨왔던 네이팜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개미와의 교전을 가능성까지 예측해서 상당히 많은 양을 가져왔는데도 그랬다.
‘네이팜이 부족해.’
이렇게 생각할 때면 김 양은 마루를 먼저 떠올렸다.
백정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최고 존엄이라면 여기서 어떤 선택을 했을까?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그냥 확 달려들어서 살! 해버리고 모조리 썰었겠지.’
근데 살이 먹힐까?
‘먹히지. 충분히 먹혀. 응’
그거 살. 인공지능 년들도 꼼짝 못 했던 거니까.
정말 배우고 싶었던 건데.
마루 특유의 감각은 생사에 있어서만큼은 예지 능력과 닮았고, 살기는 일반적인 능력을 넘어 뭔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능력이었다.
‘뭐 그래도 조금은···.’
살은 인간에서 벗어난 영역이니까 어쩔 수 없다지만, 생로(生路)를 찾는 건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됐다고 할까?
지금 떠올려 보면 회사에서 작업했을 때도 약간 그런 걸 느끼곤 했었다. 당시에는 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단순한 운이 아니었던 것.
백정과 처음 마주쳤을 때도 마찬가지. 미묘한 감각이 없었다면 붙자마자 뒈졌을 거다.
응.
그녀는 어쩐지 뿌듯했다.
‘잘하고 있어.’
위대한 옆자리를 향해 착실하게 가고 있었다. 조그맣게 자화자찬한 김 양이 HUD에 지도를 펼쳤다.
[지도와 현재까지 이동한 경로, 개미들 위치 표시해.]보조 인공지능이 출력한 지도와 상황을 살펴보던 그녀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혔다.
지도를 전송받은 기순의 실눈도 가늘어졌다.
[···확실히 이상하네.]김 양의 말대로 현재까지 이동한 탈출 경로가 우연이라고 보기엔 좀 이상했다. 지도를 통해 보면 신성 왕국으로 가는 최단 방향이 막히고 있었으니까.
완전히 대놓고 틀어막은 건 아니고, 비스듬히 옆으로 가도록 유도되고 있다고 봐도 될 정도로 조금씩 옆으로 밀리고 있었다.
‘어떻게 옆으로 밀었지?’
개미들이 원정대를 포위하는 건 불가능했다.
화염방사기를 써서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며 이동했기도 했거니와, 에리카와 기순이 포위망이 형성되기 전에 빠져나갈 구멍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 빠져나갈 구멍이 함정이었나?’
지도를 뚫어지게 보던 기순의 실눈이 반개했다.
‘아니. 아니다.’
센서의 오작동, 통신 두절 등으로 주변에 개미가 깔렸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게 쫙 깔렸으면 어째서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 추격하는 걸까? 땅속에 대기하고 있던 개미들을 동원했으면 되는 일 아닌가?
기순은 역으로 개미 관점에서 상황을 분석했다. 대기하고 있던 개미들을 전부 동원해 퇴로를 막았다면 화염방사기를 막지 못해 뚫렸을 터. 원정대를 잡는 데 실패했을 게 분명했다.
[씨발.]대놓고 추격하는 모습을 보여 화력을 낭비하게 했다. 그뿐 아니라 추격과 매복을 통해 심리적 압박을 쉬지 않고 준 것이었다.
무엇보다 욕이 나오는 건. 옆으로 틀어진 진행 방향 때문이었다. 이렇게 지도로 살펴보니 옆으로 기울어진 진행 방향은 의도적인 구멍에 따른 방향이었다.
‘매복을 알아챈 존재가 있다는 걸 확인한 뒤에는 일부러 약한 구멍을 남겼어.’
개미들이 에리카와 기순의 존재를 알고 의도적으로 구멍을 만들었다는 소리.
그 목적은?
[네이팜의 소모겠군.]국경과 거의 수평으로 이동하면서 이동 거리가 늘어났다. 매복에 대응하기 위해 화염방사기를 쓰면서 이동했으니 사용량이 많을 수밖에.
기순의 설명에 김 양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수를 읽는 놈들이 이렇게까지 수고스럽게 빙빙 도는 이유가 뭘까? 그건 원정대를 생포하기 위함은 아닐까? 그러니까
기순의 주저함에 김 양이 의문을 제기했다.
[이렇게 수 쓰는 이유가 우릴 생포하기 위해서라면? 그렇지 않음? 개미 년들이 숫자로 밀어버렸으면 사생결판이 났을 텐데 빙빙 도는 건 자기들 피해도 줄이면서 우릴 잡겠다는 것 아니겠음?] [······.]김 양은 마루를 떠올렸다.
마루였다면 역으로 안쪽으로 파고 들어가서 대가리를 땄거나, 단숨에 포위망을 돌파했을 것이다.
[수를 읽는 놈들이니까 우리가 뒤 없이 돌격하면 오히려 기회를 잡을 수 있음.]이것저것 생각이 많은 놈에게는 무지성이 쥐약. 그냥 대놓고 까는 게 최고의 방법인 경우가 많았다.
김 양은 기순의 답변을 기다리지 않고 돌파 준비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여유가 생긴 것도 놈들의 계획일 수 있을 테니까.
[국경 지역까지만 가면 들쥐와 까마귀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10km 정도만 가면 신성 왕국의 국경지대였다. 개미들이 신성 왕국 국경을 침입하지 않았으니, 거기까지만 가면 추격을 뿌리칠 수 있을 것.
[네이팜은 대기. 명령하기 전까지는 쏘지 마.] [옛.]현장지휘관 김 양의 명령에 따라, 원정대의 진형이 변했다. 매복을 탐지하던 에리카와 기순은 중위로 물러났고, 선두와 후미에 화염방사기가 자리 잡았다.
[매복. 함정 전부 무시하고 전진한다.] [어떤 일이 생기든 무슨 일이 벌어지든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거동할 수 없을 정도의 부상병이 생기거나, 함정에 빠져 낙오되는 사람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멈추지 않겠다는 이야기.
[돌격!]그녀가 선두에서 화염방사기와 기관총을 들고 달리기 시작했다.
[돌아가자!] [간드아아!]그녀를 따라 친위대의 돌격이 이어졌다.
그리곤
푹-
김 양이 밟은 땅이 꺼졌다.
?
엑소슈트의 발목을 우악스러운 집게가 콱 집더니, 아래로 쑥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대장님!] [뭐 하고 있어 돌격해!] [대장님의 마지막 명령을 어길 셈이냐?] [멈추지 마!] [뒤돌아보지 말고 전진해!] [대장님은 언제나 우리 가슴 속에 살아 계실 거다.]‘이 샛키들이.’
김 양은 엑소슈트의 발목을 물고 늘어진 거대 개미를 향해 화염방사기를 쐈다. 무너져내리는 흙더미와 뒤섞인 네이팜 불꽃이 뜨거운 열기를 훅 내뿜었다.
그래도 물고 늘어지는 거대 개미. 들쥐나 다른 동물이었으면 진작 문 걸 놓고 도망쳤을 텐데. 이 미친 개미 년은 문 걸 놓지 않고 있었다.
[추진기 가동] [위험합니다.]보조 인공지능이 위험을 경고하자, 김 양이 이를 드러냈다.
[지금 당장 뒈지게 생겼는데. 가동해.] [추진기 점화. 3. 2. 1. 가동.]푸화아아악-
강력한 반동과 함께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던 김 양의 엑소슈트가 위로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우측 추진기. 버너 파손.] [좌측 추진기. 압력 약화.]삑삑삑삑-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닥치고 최대 출력!] [최대 출력.]푸화아아악-
무너져내리는 흙더미를 뚫고 하늘로 떠오른 그녀가 다리에 달라붙은 거대 개미의 대가리를 노릇하게 구워버렸다.
[오. Fuck!] [저거 봤지?] [내 말이 맞았지.] [대장님은 안 뒈진다니까.]그녀가 빠진 구덩이를 지키고 서 있는 친위대원들이 있었다.
‘씨발 새끼들이.’
‘간다더니.’
‘가라니까.’
[추진기 과열.] [우측 추진기 고장. 착지합니다. 3. 2. 1.]병신새끼들.
바삭바삭하게 구워진 거대 개미가 공중에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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