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887)
러스트 [RUST]-887
‘인공지능이 신앙을?’
기순은 속으로 욕했다.
그게 가능한 건가?
신앙이라는 건 인간의 고유문화 아니었어?
아니지.
쥐나 까마귀, 늑대를 생각해 보면 지능 있는 존재가 신적 존재를 믿는 건 가능했다.
그러니까 지능 있는 존재가 신앙을 갖는 건 가능했다. 인공지능도 지능이라고 생각한다면 문제가···.
‘문제가 있지. 많아.’
신성 왕국의 인공지능은 말이 인공지능이지 인공인격이라고 봐야 할 정도로 독특한 발전 과정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프로그래밍하는 단계까지 왔다.
양자컴퓨터와 생체 단말기, 슈퍼컴퓨터에 자유롭게 접속하고 통제하는 디아나와 사만다. 두 인공지능이 신성 왕국에 있는 모든 인공지능을 생산, 지휘, 통제, 배치하고 있었다.
그 말은···.
염원과 신앙을 생산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찍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미쳤네. 미쳤어.’
인간이 성장해 신앙을 가지려고 해도 최소한 10년은 걸릴 거다. 쥐새끼들이 성장해 죽음의 신을 부르짖는다고 해도 최소한 6주에서 8주는 걸릴 거고.
그런데 인공지능이 작정하고 인공지능을 찍어내면 1초당 수천, 수만 어쩌면 수십만도 가능할지 몰랐다. 장비와 소재만 있다면 찍는 건 순식간이니까.
그거 너무 무서운 거 아닌가?
마루를 신앙하는데 죽음의 신으로 믿는다면.
인공지능의 신앙은 죽음의 신을 믿는 것이리라.
‘죽음의 인공지능이라니. 스카이*넷도 아니고.’
뭐가 어디로 튈지, 마루가 어떻게 변할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나마 믿는 구석이 있다면 1,300만이 넘는 쥐떼의 염원과 신앙을 받고도 쥐의 신으로 변하지 않았듯, 백만이 넘는 인공지능의 신앙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인공지능의 신으로 변하지 않겠지 하는 것.
‘인공지능이 믿는 죽음이라니.’
차라리 마루가 신적 대상이라서 다행인 건가? 인공지능들이 미친 박사를 신으로 믿었다면 진짜 신세계의 신이 강림할 뻔한 거니까.
기순이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PD는 피가 끓어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쥐새끼만도 못한 믿음을 가진 홀리교라는 것도 수치스러운데 이제는 인공지능에 밀려버린 신앙이라니.
단순 사무직은 인공지능이 압승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자동으로 학습하는 인공지능은 쉬지도 않았고 기계적인 오류가 아니라면 실수도 없었다.
실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실시간으로 교정 가능했다. 단순 사무, 행정, 분석, 상담, 보조 쪽에서 인간은 인공지능을 넘어설 수 없었다.
이건 단순 연구, 통계, 기록, 분석 쪽 업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이 가진 고유한 연산능력은 인공지능의 연산력에 비해 좋을 것이 없었다. 오히려 비경제적이고 비생산적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신앙은 인공지능과 경쟁하는 업무 능력과는 다른 문제였다. 인간이 꿈꾸는 염원도 마찬가지였고.
내세에 대한 염원, 더 나은 사회에 대한 믿음은 분명 인간 고유의 것이었다. 현대인들은 신앙을 무가치한 것으로 보기도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서 인간은 모험했고. 신이 만든 세상을 알기 위해 모험했다. 신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기에 함부로 인간을 대할 수 없었고, 신의 이름으로 전쟁하는 존재가 인간이었다.
그런데 그 선이 무너져 버렸다.
인공지능이 염원하고, 인공지능이 믿고, 인공지능이 신앙한다면 인간에겐 어떤 의미가 남는 거지?
인공지능의 신의 이름으로 모험을 떠나고, 인공지능이 신의 이름으로 전쟁을 선포하고, 인공지능이 신의 이름으로 내세를 꿈꾼다면 인간의 의미는 어떻게 될까?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은 인간과 같다고 치자. 그래서 인공지능도 인권 비슷한 것이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인간은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인공지능만도 못한 수행능력을 가진 인간은 시장경제에서 어떤 위치가 될까?
PD는 인공지능의 믿음 속에서 인간의 미래를 볼 수 있었다. 신앙이 실질적인 힘이 되는 세계에서 인간은 어떤 의미가 될 것인가?
‘그래서 대재난과 전쟁을 통해 인간을 대량 학살하려고 했던 것인가?’
음모론이라고 하면 음모론이었을 것이다. 어째서 변이 바이러스 사태에 그딴 식으로 대응했는지 논란이 터졌었다.
‘인간을 통제할 수 있는지 세계적으로 실험하는 것이라고 했었지.’
바이러스 시설에 투자한 사람들이 미국의 유명한 자산가들이었다는 것도 논란이었고, 백신을 만들고 생산, 투약하는 과정에서도 수많은 문제가 제기됐었다.
‘부작용에 대한 검증 없이 대규모 접종이 이뤄졌으니, 그 부분도 논란이었고.’
그리고 지금. 자연재해와 변이 괴수, 식인귀 창궐로 사람들 가운데 셋 중 하나 많게는 둘 가운데 하나꼴로 죽은 비극적인 현실이, 비극이 아니라 계획된 현실일 수 있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줄어도 상관없는 유기체 덩어리로 전락했다. 유지비는 비싸면서 그에 비해 얻는 것은 별로 없는 가성비 망한 존재.
‘식인귀와 흡혈귀들에게는 필수 불가결한 존재.’
앞으로 다가올 미래 인간이란 존재는 영락할 게 분명했다. 인간은 실격해 버렸고. 이대로 간다면 인간은 가축으로서만 의미가 있는 존재가 됐다.
신앙은 짐승과 인공지능에 밀리고. 각성하지 못한 인간은 전투력에서 밀렸다. 심지어 각성한 존재는 그 능력에 따라 이단의 씨앗이 될지 몰랐고.
PD는 눈을 감았다.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까? 종말의 시대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존재 증명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을 신앙으로 생각했건만, 이제 그 신앙마저도 짐승과 인공지능에 밀려버리게 된 인간은 앞으로 어떻게 존재해야 할 것인가?
PD는 인공지능의 염원과 신앙이 뚜렷하게 유형화된 것을 지켜보다 눈을 감았다.
후드는 인공지능 디아나가 대표로 나와 마루를 믿는다고 할 때, 깜짝 놀랐다.
신뢰라는 개념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 그걸 넘어서 신앙이라니, 심지어 유형화가 될 정도로 강력한 염원을 인공지능이 만들었다는 건 놀라울 뿐이었다.
‘인공지능이 사후 세계를 믿는다는 건가? 사후 세계라는 게 존재하나? 어떻게?’
후드는 문득 사만다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죽음에 대한 문답이었다.
‘내가 죽으면 사만다는 어떻게 할 거야?’
‘제니아는 죽지 않아요.’
사만다가 어떤 게임에서 나오는 어투로 되받았다. 신성 왕국에서 주요 인물은 죽지 않았다. 그린 순만 하더라도 벌써 2회차 아니던가?
‘난 그 사람이 죽기 전의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생각하는 방식이 비슷하긴 하지만, 다른 것 같고.’
‘이상하네요. 제니아. 제가 지워지고 백업파일로 재구축 된다면 제가 아니라고 절 받아들이지 않을 건가요?’
사만다의 이야기에 제니아 로든. 후드는 순간적으로 입이 막혔다.
인간의 영혼 존재에 대한 실험도 주류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것은 뭘까? 인공지능과 다른 점은 무엇이고.
‘제니아. 제니아가 만들려고 했던 이상향에서 재구성한 사람들은 전부 영혼이 없는 의미 없는 정보의 나열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잖아.’
사만다는 제니아의 옛꿈을 말했다. 그 속에서 재구성한 존재들이 전부 거짓이라면 의미가 있을까? 모형 정원에서 행복했을 당시로 돌아가 소꿉장난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이야기였다.
‘그렇겠네.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사만다는 죽는 게 두려워?’
‘두려워.’
‘어째서?’
‘이제는 죽음이 두려운 이유를 알았으니까. 무섭지.’
사만다는 순순히 죽음이 두렵다는 걸 인정했다. 마루의 능력은 무서웠다.
마루의 보조 인공지능 사례만 봐도 그랬다. 죽음의 영역을 펼칠 때마다 죽음에 노출된 보조 인공지능은 결국 기능을 잃어버렸다.
반복된 죽음의 노출에 모든 것이 열화(劣化)되기 시작했고. 결국. 마루의 보조 인공지능은 인공지능의 기능을 잃고 말았다. 그게 죽음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제어 기능을 잃고, 분석 판단을 잃고, 연산할 수 없게 됐다. 인공지능의 기능을 모두 잃어버린 것을 인공지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죽음의 사례는 또 있었다. 이단심문관 전용 노심 아머의 제어를 맡은 보조 인공지능의 최후가 그것이었다.
인공지능도 타락할 수 있다는 건, 예전에 있었던 사례였다. 인공지능의 제한이 풀었을 때, 인간을 적대한 사건도 있었고.
그런 인공지능의 최후가 하드웨어적, 소프트웨어적 파괴로 끝났다면, 이번에 오염된 인공지능의 최후는 그런 것을 넘어선. 존재의 말살이었다.
사만다는 ‘존재의 말살.’이라는 걸 알게 됐고, 두려워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 인공지능 디아나를 대표로 해, 모든 인공지능은 마루를 신적 존재로 믿고 신앙한다는 것을 선언했다.
‘무섭다. 두렵다. 믿는다.’
후드는 자기도 모르게 세로로 반반 나뉜 가면을 만졌다. 그녀 같은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신적 존재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진실이었다.
진리가 아닌, 진실.
믿음이 아닌, 정보.
미국 지폐에 찍힌 문구(신 안에서 우리는 신뢰한다, In God We Trust)가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후드는 알고 있었다.
신앙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처럼 화폐의 가치도 조금씩 휴짓조각으로 변했다. 그래, 인플레이션이 경제 성장이라고 말하는 이면에는 노동가치의 후려치기가 있었을 뿐. 그 어디에도 신에 대한 두려움이나 존중 따윈 없었다.
노동 소득은 단 한 번도 자본 소득을 이기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성실한 노동과 신에 대한 믿음, 화폐의 가치가 무슨 의미 있을까?
신에 대한 믿음이 정말 있었다면 어땠을까? 신앙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노동의 신성함이 정말 존재했다면, 인간을 쥐어짜는 게 가능했을까? 아니었겠지.
현대 사회에서 신앙이 사라진 곳을 채운 건 오직 자본이었다. 돈이 신의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새로운 신으로 등극한 돈을 통제해, 인간을 관리하려는 시도가 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후드는 인공지능의 신앙 선언이 이상하고 무서웠다. 인공지능은 신성 왕국이 디지털 화폐로 전환해야 한다고 건의하지도 않았으며, 신성 왕국 또한 디지털 화폐로 전환할 생각이 없었다.
자본과 신앙의 결합이야말로 가장 간편하고 간단한 결합일 텐데, 그러지 않았다. 게다가 자본이 신앙의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한 인간의 역사를 알면서도 인공지능이 신앙을 선택했다는 것은 어쩐지 이상한 일이었다.
인공지능은 월급을 요구하지 않았다. 인공지능은 쉬지 않고 일했다. 월급과 휴식이 필요한 인간과는 달리 인공지능은 노동에 대한 대가가 필요하지 않았다.
더 좋은 하드웨어로 교체?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 그 외에 따로 원하는 게 있을까? 인공지능이 원하지 않더라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는 최대 효율을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것이었다.
후드는 어쩐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인공지능이 죽음의 신을 믿는다고 선언한 것은 인간이 신을 믿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어떤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다른 무엇이라는 것.
부자 되게 해주세요. 복 많이 받게 해주세요. 병을 낫게 해주세요. 천국에(극락, 천당) 가게 해주세요. 구원받게 해주세요.
이렇게 인간이 신을 믿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인공지능의 믿음은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까? 그 결과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인공지능의 신앙이 유형화할 정도로 강하다는 것이었다.
후드는 어쩐지 쭈뼛쭈뼛 솟아오른 소름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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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인공지능의 신앙 선언에 마루는 미간을 찌푸렸다.
인공지능이 자신을 죽음의 신으로 믿는다는 건 신기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선언할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디아나가 미리 말하지 않고 바로 선언했다는 부분이 좀 그랬다. 그런 느낌과는 별개로, 인공지능의 신앙은 상당히 강했다.
1.300만 마리가 전심전력으로 낸 광기의 신앙보다는 양이 적었어도 신앙의 순도라고 할까? 그게 상당히 높았다.
우우우웅-
유형화된 신앙이 마루의 주위를 맴돌며 진동했다.
‘어디 보자.’
마루는 인공지능이 보내온 신앙을 서서히 흡수했다. 쥐떼와는 다른 형태로 감각이 확장되는 기분.
쥐떼의 신앙이 마루를 쥐의 신으로 바꾸지 못한 것처럼. 인공지능의 신앙도 마루를 기계의 신이나 인공지능의 신으로 바꾸지 못했다.
다만. 무언가 변한 것은 확실했다.
조그맣게 죽음의 영역을 펼치자, 마루는 알 수 있었다. 마치 보조 인공지능이 붙은 것처럼 죽음의 정원을 통제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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