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ST RAW novel - Chapter (954)
러스트 [RUST]-954
쿠르르르릉—-
땅의 울림.
벽의 떨림.
이어진 붕괴.
쿠구구구궁—–
변이 괴수를 막았던 컨테이너가 장난감처럼 무너지기 시작하는 모습은 영화 속 장면 같았다. 결속을 위해 용접한 곳이 깨져나가고 비틀어지는 컨테이너 벽.
울부짖던 땅이 갈라지고 덜덜 떨던 건물들이 주저앉았다.
끔찍한 날씨와 변이 괴수. 그리고 약탈자와 식인귀에도 버텼던 소도시가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밖으로 피해!”
“전부 밖으로 나와!”
변이 괴수의 관심을 받지 않기 위해 울리지 않던 사이렌까지 울리는 선택을 했지만, 사이렌이 끝나기도 전 강력한 지진이 멈췄다.
“끄. 끝난 건가?”
“여진이 있다고 들었어. 최소 하루는 밖에서 야영하는 게 맞아.”
“잔해에 깔린 사람부터 구조해야지.”
“그러다가 건물이 무너지면? 함부로 들어갈 수 없어.”
200년간 단 한 번도 지진이 없었던 지역인지라, 전조 없이 터져버린 대지진에 작은 도시가 쑥대밭으로 변했다.
융단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뒤집힌 모습에 망연자실 넋이 나간 사람들이 우두커니 주저앉아 있었다.
지난 2~3년 동안 피와 땀으로 지켰던 터전이 무너지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몇 분. 그리고 이어진 불길이 잔해를 불태우기 시작했다.
“불이야!”
“불이다!”
망가진 도로 때문에 소방차가 올 수 없었다. 지하수를 뽑아 올리던 펌프도 단전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한쪽 구석에서 피어오른 불길이 5월 바싹 마른 들판과 무너진 도시를 뒤덮는 건 순식간이었다.
화르르르륵—
지진으로 시작된 거대한 불꽃이 사방으로 흩날리기 시작했다.
‧
어떤 소도시의 멸망을 촬영한 영상을 지켜보던 기순이 입을 열었다.
[덴 아재가 뭘 원하는지 생각해 봤다.]“······.”
[저 지진이 디트로이트를 덮쳤다면 우린 버틸 수 있었을까?]“어렵겠지.”
내진 설계가 된 건축물은 많지 않았으니까.
“······.”
빠르게 수상 도시를 건설한 뒤 핵심 생산시설을 이전한 후 우주로 진출하자는 것.
마루의 능력이 죽음의 정원으로 변하기 전 추진했던 계획.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제일 중요한 건 그렇게 하는 게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리라.
최근 북부 개미 제국과 교전한 것도 그랬다.
만약 끝까지 싸웠다면 어떻게 됐을까?
북부 개미 제국은 마루를 버티지 못하고 멸망했겠지만, 신성 왕국도 같이 멸망했을 것이다. 억 단위의 개미들이 마루를 피해 신성 왕국의 도시를 공격했다면 이쪽도 개미 군집을 막을 수 없었을 테니까.
결국. 마루를 제외한 모두가 죽는 결말이겠지.
개미 제국만 해도 그런데 변이 괴수와 세력화된 거미 군집까지 준동한다면 신성 왕국이 살아남기란 힘든 일이었다.
마루 혼자라면 끝까지 생존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말 그대로 생존일 뿐이었다. 생활 인프라가 모조리 박살 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인간은 먹고 마시고 자야 했다. 간이 침상에서 자고 변이 괴수를 잡아먹고, 락스로 정수한 물을 먹으며 몇 년, 몇십 년을 산다는 건 고문이 아닐까?
그러니 신성 왕국이 무너져 모든 인프라가 박살 난 뒤, 마루 혼자 살아남거나 몇 명이 살아남는 건 큰 의미 없었다.
[문제의 핵심은 인프라를 구축하고 보호하는 일이라고 본다. 우리의 수상 도시나 덴 아재의 해상 도시는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거지.]영상 속 작은 소도시는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살아남은 생존자들이 삼삼오오 흩어지는 장면의 끝엔 무엇이 담길까?
저들에겐 수상 도시나 해상 도시처럼 대비한 곳이 없었다.
지진이 휩쓸고 지역에 정착하긴 어려울 테니 결과가 좋지 않겠지.
[해상 도시가 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래서 너도 수상 도시 다음 단계로 우주로 진출하려고 한 것일 테고.]“······.”
하지만 제국은 우주 진출 같은 방법을 쓰긴 곤란했다. 인구의 규모, 과학 기술의 한계 그리고 무엇보다 누굴 얼마나 우주로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었다.
신성 왕국은 국왕인 마루가 조건을 정하고 결단하면 그만이지만, 제국은 달랐다. 조건을 협상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고 그 난관을 넘어간다고 쳐도. 그 뒤가 문제였다.
기순의 실눈이 살짝 구겨졌다.
[성층권 비행선을 만들어서 독자적으로 정보통신망을 구축하고 그를 통해 군대개미 사태에 선제 대응했다는 건.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선제 대응을 하겠다는 신호겠지.]“선제 대응이라···.”
[그러니까 덴 아재는 최악의 상황이 온다고 하더라도 제국의 힘이 흩어지지 않고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계기를 만들려고 했을 거다. 전략핵 사용 결정을 표결한 것도 그 연장선이겠지.]“피곤한 아재네.”
덴 브라운의 선택을 이야기하던 기순이 화제를 살짝 돌렸다.
[뭐. 죠셉 마이어 뇌둥둥과 이야기해보니까 식인귀를 중심으로 남부 연맹을 결성한 것도 나름대로 종말에 대비한 거였더라. 정신파에 섞인 감정은 진짜였어.]기순은 자신의 감정 능력이 정신파 능력과 섞이면서 정신파에 녹아있는 감정선을 읽을 수 있게 됐다는 걸 공개했다.
“오- 감정선도 읽을 수 있게 됐다고? 그리고 제국 의회에서 죠셉 마이어가 말했던 이야기가 진심이었다고? 나보고 왕 운운한 것도 진심이었고?”
[그래.]죠셉 마이어를 죽이기 전에 이야기했던 것과 죠셉 마이어의 기억이 담긴 엠풀에 덧씌워진 내용이 똑같다는 기순의 이야기.
[지금 상황에서 뇌둥둥이 된 죠셉 마이어의 찌꺼기가 거짓말할 이유는 없겠지. 놈들의 세력과 휴전한 지금은 더욱 그렇고.]“그래서?”
놈들과 본의 아니게 휴전하게 된 마루가 살짝 인상을 썼다.
[인상 펴라. 북부 개미 제국과 종전한 것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 어차피 일본에 있는 놈들의 거점을 전부 파괴한다고 해서 끝나는 싸움이 아니었잖아. 오히려 더 위험해졌겠지.]“지랄. 그래서?”
“지랄 작작하자. 거기서 죠셉 식인귀 찌꺼기랑 지내다 보니, 스톡홀롬 증후군이라도 생긴 거냐? 식인귀를 선택했다는 건 인간을 먹겠다는 걸 선택한 거잖아.”
마루는 지배력이나 아우라를 이용하는 놈들이 싫었다. 그 자신이야 정신계 면역이라 상관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인간관계, 인간사회 자체를 파탄 낼 수 있는 놈들을 이해하라니 심지어 그걸 스스로 선택한 놈들이었다.
[······.]“피식자와 포식자 관계를 자기들이 선택해 놓고서는 무슨 어쩔 수 없니, 어쩌니. 말이 많아. 그리고 그 식인귀가 된 계기. 바퀴벌레 엑기스 때문에 그렇게 된 거 아니었어?”
기순이 모니터 속에 떠오른 마루의 표정을 보곤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 마루쉑 어지간하면 한번 결정한 건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으니까.
어차피 놈들과 잠정적으로 휴전한 상황인 만큼 ‘이 정도는 그냥 넘어갔으면 좋겠다.’ 싶은 부분이 생겨도, 절대 그러지 않겠지.
놈들에게 경고했던바. 저쪽이 마루의 눈앞에 알짱거리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썰어버리고 다시 모조리 죽이겠다고 길길이 뛸 게 분명했다.
‘안전과 생존이라더니.’
망할 새끼.
하긴. 마루가 식인귀 흡혈귀를 싫어하는 본질적인 이유엔 ‘안전과 생존.’이 있긴 했다. 피식자와 포식자 관계라면 언제고 안전과 생존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을 테니까.
근데 따지고 보면 마루가 절대 우위 아니었나? 이제껏 실컷 썰어댄 건 마루였다. 그런데도 피식자 포식자 관계 때문에 그냥 둘 수 없다니.
‘그만큼 일반인들을 신경 쓰는 걸까. 아니면···.’
작게 한숨을 내쉰 기순이 이야기를 계속했다.
[놈들이 그렇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변이 바이러스가 만든 특수 인자의 부작용이겠지. 그냥 바퀴벌레 분말 때문이 아니라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바퀴벌레 가루 때문이었으니까.]식인병 이전에도 인간을 뛰어넘는 연구는 계속되고 있었다.
장수 관련 연구.
노화를 늦추거나 회춘에 관한 연구.
질병에서 벗어나는 연구 등.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연구들이 수십 년간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식인병이 돌았고, 식인이라는 부작용만 무시한다면 쉽고 편하게 인간의 여러 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게 밝혀졌다.
식인귀를 선택하지 않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인류 역사를 봤을 때 인육을 먹는 건 생각보다 흔한 일이었고. 인육을 먹는 부작용이 있다지만 인육만 먹으면 더 강해질 수 있고 다양한 질병과 오염된 먹거리와 식수에 내성이 생긴다면? 그래도 식인귀를 선택하지 않아야 할까?
질병에서 안전해질 수 있고 생존에 유리해지는 건데?
회춘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체능력이 향상될 뿐 아니라 노화까지 늦춰지는데?
[어쨌든 문제의 핵심은 변이 바이러스가 만든 특수 인자라고 보는 게 맞을 거다.]변이 바이러스 사태도 그렇고 변이 괴수나 곤충, 식인귀와 흡혈귀 모두 변이 바이러스가 가진 인자 때문이니까.
[편의상 변이 인자라고 하자. 이제껏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일본 도쿄 지하 비밀 연구소에서 연구했던 건 특수 인자와 연관된 것이었어.]일본 지하 연구소뿐만이 아니었다. 중국에도 있었고 유럽 여러 나라와 미국에도 있었다.
[지구가 종말을 향해 달려간다는 걸 상류층은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해 대비하고 있었지.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변이 바이러스 사태였다.]“알아. 변이 바이러스를 의도적으로 확산시켜 변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특수 인자를 생산하는 숙주로 만들기 위해서 그랬다는 거. 그래서 난 그런 짓을 해놓고 태연하게 식인귀가 된 놈들이 싫다.”
[그래. 거기까지 갔었지. 어쨌든. 놈들이 한 짓 때문에 종말이 빨라지기도 했지만, 종말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계기가 퍼지게 된 것도 사실 아닐까?]“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냐?”
[놈들이 변이 바이러스를 확산시켜 변이 괴수와 식인병이 생긴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에 따른 결과, 능력을 각성한 사람들이 생긴 것도 사실이고. 놈들만 식인귀가 되어 힘을 갖게 됐다면 현 상황이 뭣 같겠지만, 반작용도 생겼잖아. 각성자가 생겼고 신성 왕국이 생겼으니 충분히 놈들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놈들을 감당할 수 있다?”
[죠셉 마이어의 찌꺼기가 그런 말을 하더라. 새로운 질서는 다수의 일반인을 적절하게 관리하는 질서로 가야 한다고. 지금 같은 종말의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다수의 의견이 아니라, 문제를 합리적 효율적으로 판단하고 추진할 수 있는 결단력 있는 철인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그리고 죠셉 마이어도 그렇고 그의 기억을 이어받은 찌꺼기도 마찬가지였다. 변이 인자의 부작용을 극복하고, 죽음을 다룰 수 있으며,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존재. 그런 존재가 신인류를 이끌어야 한다고 믿고 있었다.
새로운 질서가 어떻든 일반인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였다. 모두가 신인류가 된다는 것은 결국 멸종하자는 이야기가 될 테니까.
[인간을 먹으면 먹을수록 강해지는 성질이 있으니, 인간을 함부로 먹지 않게 관리해야 하지. 그것도 모자라, 경쟁자가 더 강해지면, 상대방에게 지배당할 위험까지 있고. 그러니까 자칭 신인류라는 놈들도 결코 편하게 꿀 빨 상황이 아니라는 거다.]그게 가능할까? 이기적인 놈들인데? 남부 연맹의 머리치고 나자, 우후죽순처럼 서로 지배력을 확보해 왕과 귀족이 되겠다고 서로 드잡이질하는 놈들인데?
“그래서 내가 놈들을 다스리는 왕이 돼야 한다?”
[죠셉 마이어와 찌꺼기, 놈들 가운데 적지 않은 자들이 너만이 의미 없는 견제와 싸움을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더라. 내 생각도 그렇고.]“와- 씨- 너 진짜 스톡홀롬 증후군인 거냐? 죠셉 마이어의 찌꺼기랑 정신파 교류하더니 자연스럽게 생각이 지배당한 거 아니야?
[그건 아니다. 흥분하지 말고 객관적으로 생각해 봐라. 네가 왕이 되어 놈들의 세력을 관리하는 것과 놈들과 전쟁을 선택해 계속 싸우는 것. 둘 가운데 어떤 게 ‘안전과 생존.’에 유리할지.]마루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휴전했으니까. 됐다. 그리고 정신 감정 좀 빡세게 하라고 해야겠네.”
[그렇지 않아도 나주연이 쥐어짜고 있으니까 좀 봐줘라.]“즐- 새꺄. 그리고 정신파에 섞인 감정까지 느낄 수 있게 됐다면. 눈으로 보지 않아도 정신파와 연결만 된다면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됐다는 거냐?”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럴 수 있을 거 같다.]“좋아. 제국에서 특사가 온다는데. 멀리서 감정 좀 확인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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