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thless Warrior RAW novel - Chapter 1
참 지랄 맞은 난이도의 게임이 있었다.
제목은 <인류의 수호자>. 발매하자마자 전세계 차트를 정복하고 수많은 폐인을 양산한 사상초유의 대작이다.
몰락해가는 제국을 노리는 마왕들과 싸워 인류를 수호한다는 내용이다. 혀를 내두를 난이도이지만 가장 완벽한 가상현실 게임이란 찬사를 받으며 전세계에 두터운 팬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인류의 수호자>에는 탁월한 게임성만큼이나 악명 높은 점이 있었다.
바로 지금까지 누구도 해피엔딩을 본 사람이 없었다는 것. 현재 전세계 팬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언제쯤 돼야 해피엔딩을 보는 게이머가 나올까였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자가 여럿이었는데, 그중 가장 강력한 후보가 바로 나 한제우다. 대한민국의 22살 게이머인 내가 이 게임의 세계랭킹 1위였기 때문이다. 이 게임은 따로 플레이어들끼리 대결하는 게 아닌지라 게임 속에서 업적 점수로 랭킹이 집계된다.
현재 내 업적 점수는 5억 4,562만 점.
2위가 1억 9,213만 점이니 비교할 수 없이 앞서 있다.
하지만….
“에이! 시발.”
나는 침상에 쓰러지듯 누워서 괜히 베개를 내던졌다. 요 근래 입에서 욕이 떨어진 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게, 세계 랭킹 1위인 나도 해피엔딩을 못봤기 때문이었다. 이 게임에 도전한 지 2년째지만 도저히 답이 없었다. 솔직히 날 향해 쏠리는 세계인의 관심도 점점 버거워졌다. 답답한 마음에 멍하니 인터넷을 살폈다.
-야, 솔직히 한제우 별 거 아니지 않냐?
-세계 1위면 뭐하나. 나나 한제우나 게임 못 깨는 건 똑같은데.
-내 말이.
게임 기사에 달린 리플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 자식들이 남의 속도 모르고. 내가 얼마나 해피엔딩에 목매고 있는지 모를 거다. 진짜, 해피엔딩을 보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각오였다.
“아니, 무슨 이런 거지같은 게임을 만들어서….”
매번 이렇게 투덜거리지만, 자나 깨나 <인류의 수호자> 생각뿐이다. 가상현실 세계는 현실과 시간의 흐름이 다른데, 난 벌써 그 속에서 100년을 보냈다.
머릿속에 있는 무수히 많은 나노봇이 가상세계의 가속된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누구보다 빠르게 새로운 공략들을 발견해내었다. 업적점수 신기록을 갱신해 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탄성을 질렀고 내 실력에 전율 했다.
나는 이 게임을 그만둘 수 없었다.
-그나저나 한제우 새 공략 안 올리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마왕 공략법을 거의 다 찾아낸 게 한제우 걔잖아.
-그렇긴 하지. 한제우 아니었으면 상위권 마왕 아직도 못 죽이고 있었을 걸?
이 자식들이 병 주고 약 주나.
깔 때는 언제고 다시 찬양모드야.
“아, 배고파.”
장시간 게임을 한 후라 그런지 심한 허기가 느껴졌다. 그제야 창밖을 보고 새벽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컵라면을 뜯어 물을 부었다. 잠시 기다리니, 곧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올라온다. 따뜻한 수증기가 뺨을 간질이는 느낌도 좋았다.
“음?”
<인류의 수호자> 공식 홈페이지에 새로운 이벤트 소식이 떴다는 글이 올라왔다.
“뭐야? 이거. 일반 캐릭터 플레이?”
이벤트 소식을 읽던 나는 막 입에 넣은 라면 면발을 주르륵 흘리고 말았다. 그 이벤트란 게 말도 안 되는 황당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인류의 수호자 플레이하는 유저 분들을 위한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기존에 선택 가능한 수호자 캐릭터가 아닌 일반인 캐릭터로 세계를 도전해 보세요!
일반인 캐릭터로 플레이하여, 6개월 동안 가장 높은 업적 점수를 세운 플레이어가 우승하게 됩니다.
우승 상금은 250억!
누구나 참가 가능합니다.
상금이 어마어마했다.
2045년 현재, 아무리 물가가 많이 올라 억 단위가 수십 년 전 같지 않다고 해도, 이정도면 평생 팔자를 고칠 돈이었다.
나라고 혹하지 않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이벤트가 너무 괴상하지 않나. <인류의 수호자>는 그 사악한 난이도 때문에 시작부터 최상위직인 ‘수호자’를 고를 수 있게 해놓았다.
플레이 가능한 수호자 캐릭터들을 보면.
-인류용사: 어둠에 영혼을 판 자.
-적룡기병: 적룡 테르시아의 약혼자.
-강철 선제후: 철혈의 정치영웅.
-구마축사의 대주교: 사마를 퇴치하는 자.
등등. 하나 같이 이름만 봐도 대단해 보이는 직업이었다. 하지만 그런 수호자 클래스로도 못 깨는 게 이 게임인데, 일반인으로 어디까지 가나 대회를 연다고?
뭐냐, 이 변태적인 컨셉은? 누가 주최한 건지 모르겠지만 세계 랭킹 수위권의 플레이들을 능욕하려고 만든 게 틀림없었다.
“이상한 짓만 한다니까 운영자 새끼들.”
바로 신경 껐다.
세계 랭킹 1위의 위엄과 체면이 있지, 일반인으로 플레이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려고? 안 그래도 내가 언제 망하나 기다리는 놈들이 투성이다.
삽질 한 번 했다가는 흑역사로 박제돼서 두고두고 인터넷에 떠돌 거다. 나는 다 귀찮아졌기에 누운 김에 그대로 잠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세계 랭킹 1위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
-한제우 쫄았냐?
-한제우 새끼 꼬리 말고 도망간 거 보게.
-딱 보니까 각이 안 나온 거지. 나가서 개망신 당하느니 모른 척하겠다 그거.
-아니, 난 솔직히 이해 가는데? 수호자로도 쳐 발리는 게임을 일반인으로 어떻게 깨?
이벤트가 시작되고 한 달이 지나자 인터넷 게시판은 온통 날 씹는 얘기로 가득 찼다. 비난의 요지는 세계 랭킹 1위가 왜 이런 재미난 이벤트에 참가 안 하냐는 거였다.
“이 자식들이 진짜….”
혈압이 올라서 뒷목을 잡았다. 나라고 혹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이벤트가 시작되자마자 얼마 뒤에 속속 뜨기 시작한 업적 점수를 보고 미련 없이 마음을 접었다.
현재 최고 스코어가 7,923점이다.
세상에. 7,923점.
대체 뭐하고 다녔기에 7,923점 밖에 안 나오냐. 내가 수호자 캐릭터로 수립한 5억 4,562만 점과는 하늘과 땅처럼 아득한 차이였다.
참고로 저 7,923점을 기록한 애가 세계 랭킹 2위란다. 나한테는 부족하지만 게임 방송에도 자주 나오는 유명한 놈이다. 내심 녀석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었던 터라 더 충격적이었다.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역시 불참하길 잘했다. 게다가 이 게임은 한 번 죽으면 끝이다. 일반인으로 플레이하다가 어디서 날아온 짱돌에 맞아 죽으면 게임 오버란 소리.
참고로 세계 랭킹 3위는 일반인 플레이에서 업적 점수는 0점을 받았다. 길가다 소똥을 밟고 미끄러져 후두부가 깨져 죽었단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뜨거운 조롱거리였다.
다들 세계랭킹 3위를 소똥킬이라고 불렀다. 결국 그는 지금까지 쌓은 커리어를 포기하고 아이디를 새로 팠다고 한다. 어딜 가도 소똥킬, 최고의 플레이 소똥! 이라고 놀리니 그럴 수밖에.
두렵다. 두려워서 이벤트에 참가할 자신이 없었다.
***
이벤트 3개월이 지나자 날 향한 조롱은 더욱 노골적이 됐다. 인터넷 게임 방송에서까지 야유를 보냈다.
-한국의 한제우는 비겁합니다. 자기 명예 때문에 이 모험을 거절하고 있죠. 10위권 랭커 중에 아직도 이벤트를 무시하고 있는 건 그뿐입니다. 고추를 잘라버려야 합니다.
스웨덴의 유명한 피디파이란 게임 채널 운영자 놈이 요즘 틈만 나면 날 씹어대고 있었다. 이 빌어먹을 놈의 채널이 뭐가 좋은지 구독자가 수천만이라, 아주 나는 전세계적 겁쟁이로 전락 중이었다.
“그래, 시발. 나간다. 나가.”
으득.
이가 절로 갈렸다. 바보도 아니고 무턱대고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나사를 풀려면 당연히 드라이버가 있어야 한다. 지금 랭커들의 행동은 내가 아주 힘이 세니까 드라이버를 못 찾아도 손으로 풀 거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바보 같은 놈들.
현재 나는 일반인 플레이로 이 세계에서 승리할 방법을 남몰래 연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료가 너무 부족했다. 이벤트에 참가한 다른 이들의 일반인 플레이는 대회 규칙상 자세한 사항은 공개가 안 된다.
아무래도 후발 주자가 유리해 지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나 자신의 지혜로 이 문제에 대처해야 했다.
세계의 지식과 비밀을 파헤쳐서 일반인이 어떻게 해야 성장할 수 있는지 찾고 또 찾았다. 그렇게 다시 3개월가량이 흘렀다. 이제 이벤트 끝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침식도 잊고 해법에 몰두한 사이, 이제는 나를 향한 조롱조차 시들해져갔다. 하지만 나는 마침내 세계의 비밀 한 가지를 알아냈다.
“해냈다! 내가 발견했다고!”
그래, 이거라면 일반인으로 시작해도 분명히 가능성이 있다. 이제 모두를 놀라 게 해줄 차례였다.
이벤트가 끝나기 일주일 전.
나는 SNS에 짧은 문구를 남겼다.
-참전합니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날 인터넷은 열광하는 게이머들로 뒤집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