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lesperson Kim Yubin RAW novel - Chapter 16
16화 – 신입사원 교육(1)
신입사원 교육 장소는 삼성동 본사에서 5km 정도 거리에 있는 특2급 호텔이었다.
‘역시 제네스야. 신입사원 교육도 호텔에서 하네.’와 같은 감탄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신입사원들의 어깨 높이가 조금 더 올라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들뜬 마음도 잠시, 잠깐의 쉴 틈도 없이 교육이 진행되었다.
인사부 여직원이 대회의실을 가득 채운 48명의 신입사원에게 3주간의 교육 일정과 주의사항 등을 설명했다.
온종일 선배 옆에서 각을 잡고 긴장했던지라 몇몇은 졸음과 힘겹게 싸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수업은 오전 8시부터 시작되어서 저녁 5시에 끝납니다. 아침과 점심 식사는 호텔 뷔페식당에서 자유롭게 드시면 됩니다. 저녁은 임직원 분들과 같이하게 됩니다. 그 이후 시간은 자유시간이지만, 장시간 외출은 허락을 받으셔야 가능합니다.”
고등학교와 같은 빡빡한 시간표이지만, 자유시간이 있다고 하니 다들 한결 편해진 표정이었다.
“당일 수업에 대한 시험은 그다음 날 오전에 바로 보게 됩니다. 매 필기시험 점수와 태도 점수 그리고 마지막 디테일(의사에게 약품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영업) 실전 점수를 합산해 최종 평가를 하게 됩니다.”
“그럼, 매일 시험을 보는 거야?”
“역시, 자유시간이 있을 리가 없지.”
“잠이나 잘 수 있겠어?”
약간의 소란스러움 속에 교육 프레젠테이션이 계속 이어졌다.
“하암, 오빠 안 피곤해요? 어쩜 이렇게 아침부터 변함없이 쌩쌩해요?”
이번에도 유빈의 옆자리를 차지한 황연희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유빈은 피곤이 느껴지면 시도 때도 없이 호흡 수련을 했다. 눈을 뜨고 호흡을 해도 상관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이상한 낌새를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30분만 호흡을 해도 피로가 싹 사라졌다.
“연희야, 넌 조금 피곤해 보인다.”
“하아, 잠들기 일보 직전이에요.”
“OJT 자체도 긴장됐는데, 담당해 준 선배님이 얼마나 말이 많던지…… 경청하느라 힘들었어요.”
“해 보니까 영업은 잘 맞을 것 같아?”
“모르겠어요. 내가 뭘 하는 것도 아닌데 진료실에 들어갈 때마다 긴장되더라고요.”
“처음에는 다 그렇지 뭐.”
“오빠는 어땠어요? 주서윤 선배님 예쁘죠?”
‘응? 갑자기 웬 주서윤?’
“네가 어떻게 주서윤 선배를 알아?”
“아까 잠깐 봤는데 엄청나게 예뻐서 OJT 해 준 선배님한테 물어봤어요. 얼굴도 예쁜데 영업도 잘하고 성격마저 좋아서 안 좋아하는 사람이 없데요. 오빠 보기에는 어땠어요?”
“음, 괜찮은 사람인 것 같더라. 신입사원 교육 끝나면 마케팅으로 옮긴다고 하던데?”
“우왕, 약사도 아닌데 대단하다!”
“연희야, 너도 할 수 있어.”
“오늘 교육은 여기까지입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내일 오전 8시에 필기시험이 있습니다. 나눠드린 바인더의 챕터 원을 숙지하시기 바랍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마치 학기 시작 첫날부터 쪽지 시험을 치른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대학교였다면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렸겠지만, 여기서는 누구 하나 투덜대지 않았다.
시간은 이미 저녁 9시였다. 그야말로 긴 하루였지만, 내일 오전의 시험을 생각한다면 끝은 12시를 넘겨야 할 것 같았다.
“바인더 내용은 A반과 B반이 다르니까 확인하고 가져가세요. 아, 그리고 반장 두 분은 잠깐 남아 주세요.”
“두 분은 수업 시작하기 전에 인원파악을 꼭 해 주세요. 시작하기 전에 결원이 있으면 저한테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반장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산점을 받고 시작하는 거니까 힘들더라도 잘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네.”
유빈과 안소영은 방 배정표와 각 지원자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는 주소록을 받았다.
안소영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모든 것이 계획한 대로 순조로웠다.
그녀는 약대 3학년 때 이미 스터디에 가입해 제네스코리아 입사를 준비했다.
좁은 약국에서 평생을 보내기에는 꿈이 큰 그녀였다.
누구나 동경하는 제네스코리아는 꿈을 펼치기에 최고의 직장이었다.
오랜 기간 준비한 만큼, 서류도 한 번에 통과. 필기시험에는 공부했던 약품이 나와 운도 따랐다.
안소영은 압도적인 점수 차로 1등을 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게다가 그녀는 필기시험에서는 누구에게도 져 본 적이 없었다.
학창시절에는 줄곧 전교 1등이었고, 그 결과 S대 약대에 수석으로 입학했다. 물로 졸업도 수석 졸업이었다.
그녀에게 영업은 단지 지나쳐 가는 과정일 뿐이었다. 1등으로 입사해서 회사 내에 인지도를 쌓고 최대한 빨리 마케팅으로 옮겨 최연소 임원이 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그녀의 완벽한 계획은 시작되기도 전에 어그러졌다.
바로 옆에 서 있는 남자 때문에!
오전에 반장으로 호명되었을 때만 해도 2등으로 입사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두 번째로 이름이 불린 것이 기분이 나쁜 정도였다.
안소영에게 사실을 확인해 준 사람은 그녀의 OJT를 담당했던 최석원이었다.
최석원에 의하면 옆에 서 있는 남자의 필기점수는 93점으로 역대 최고의 점수였다.
안소영은 81점이었다. 81점도 역대 세 번째로 높은 점수였지만,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김유빈, 두고 보자. 신입사원 교육에서만큼은 내가 1등이야!’
안소영은 필요하다면 3주간 잠도 자지 않을 생각이었다.
안소영이 불타는 눈으로 전의를 불태우고 있지만, 유빈의 관심사는 책상 위에 놓인 두 종류의 바인더였다.
‘바인더의 내용이 다르다고?’
유빈은 두 바인더를 빠르게 펼쳐 봤다.
약동학, 약리학 기본적인 내용은 공통으로 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내용이 달랐다.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유빈의 바인더에는 FSH, LH등 여성호르몬과 여성생식기 그림이 보였다.
그에 반해 다른 바인더에는 자가면역질환, 고혈압, 간염 등의 단어가 얼핏 보였다.
‘……부서가 이미 결정되어 있구나.’
그러고 보니 A반은 B반보다 여자가 훨씬 많았다.
여자 16명, 남자 8명.
여성건강사업부의 특성상 여자 영업사원이 유리한 측면이 있었다.
제네스코리아의 제약 사업부는 크게 항암/면역치료 사업부, 전문의약품 사업부, 여성건강사업부, CC(컨슈머케어, 의약외품) 그리고 동물 약품 사업부로 나누어져 있었다.
‘전 직장에서도 산부인과에 다녔는데, 이번에도 여성건강사업부라. 산부인과 하고 인연이 있나?’
회사에서 신입사원을 3주간 교육하는 데 헛돈을 쓸 리가 없었다.
그것도 교육장소가 호텔이니 유빈의 추측으로는 한 사람당 몇천만 원의 비용이 들 것 같았다.
신입사원은 3주 교육이 끝나면 바로 현장으로 투입된다. 그러므로 신입사원 교육에서 배우는 내용이 바로 배정된 사업부서의 제품과 관련된 내용일 수밖에 없었다.
‘나하고 같은 반이 된 23명.’
교육이 끝나면 뿔뿔이 흩어질 친구들이 아니었다.
유빈은 영업이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최대한 내 편을 많이 만들어야 해.’
*
삼성동 뒷골목의 작은 술집. 양복을 입은 세 명의 중년 회사원이 건배했다.
“본부장님, 한 잔 받으십시오.”
“이렇게 자네 둘하고만 술 마시는 것도 오랜만이군.”
“예전에는 참 자주도 마셨죠.”
“맞아. 가끔 그렇게 젊은 혈기로 영업하고 직장 동료들과 어울렸을 때가 그립기도 해.”
“그러고 보니 그 많던 직원 중에 영업부에 남은 사람은 본부장님과 권 이사님, 그리고 저 이렇게 셋뿐입니다.”
“가장 열정이 많았던 셋이었지.”
“하하. 맞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신입사원은 어떤 것 같아?”
“괜찮은 친구들이 많이 지원했습니다. 약사와 수의사도 꽤 되고요.”
“그 친구들은 나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그리고 그 친구도 있지 않습니까. 93점 맞은.”
“아, 김유빈이.”
“본부장님, 이름도 기억하십니까?”
“그 친구는 물건이야. 스토리텔링도 있고 능력도 있고.”
“하긴 저하고 권 이사님도 서로 데려가겠다고 싸웠죠. 하하.”
“장 이사, 잘 키워 봐.”
“시험 성적 때문이 아니더라도 보통 친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왜?”
“아까 주서윤이 작성한 OJT 평가서를 읽었는데, 내용이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무슨 내용인데?”
“한강대병원에서 피레논의 DC통과를 도왔다더군요.”
“뭐? 하하. 신입사원이 OJT에서 뭘 어쨌다고?”
“잠깐. 본부장님, 김유빈은 다시 상의해 보면 안 될까요? 항암사업부로 보내면 잘 맞을 것 같은데요.”
“권 이사님, 이미 끝난 이야기입니다. 하하.”
“권 이사는 사람 욕심이 너무 많아. 내가 김유빈을 여성건강사업부로 보낸 데는 다 이유가 있어. 지금 가장 경쟁이 치열한 부서가 어디지?”
“여성건강사업부입니다.”
“맞아. 다른 부서에서는 우리 회사가 압도적이잖아. 그래서 보낸 거야. 녀석이 진짜 물건이라면 송곳처럼 드러나겠지.”
“두고 보면 진짜인지 알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