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350
350화. 단호함 (2)
임옥진은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어제의 숙취로 인해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기분은 아주 좋아 육함에게 어느 집부터 답례를 해야할지 이야기하고 큰 일, 작은 일 가리지 않고 한 번 쭉 설명해 주었다. 육함은 줄곧 웃으며 그녀의 말을 들었고,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다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마침내 비단 상자를 하나 꺼내 임옥진에게 건네며 말했다.
“경성에 있는 당가 금은방에서 어머니를 위해 특별히 만든 비취두면(*头面: 여자의 머리 장식)인데 어머니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비단함에 담긴 비취두면은 아주 정교하고 품질이 좋아 보였다. 임옥진은 다소 의아해했지만 매우 기뻐했다. 방 마마와 육운이 얼른 해 보라고 부추겼다. 그녀는 한사코 만류하며 대충 훑어보더니 한쪽에 내려놓고 담담하게 웃었다.
“가족끼리 굳이 뭘 이런 걸 다 선물하고 그러느냐?”
육함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가족끼리 더욱 아껴 주어야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는 임옥진의 면전에서 육운을 위해 준비한 진주 순금 목걸이를 건네며 말했다.
“이것 말고도 네 화장으로 준비해 둔 것들이 좀 더 있는데, 내일 사람을 시켜 보내줄게.”
육운은 진심으로 기뻐하며 임근용을 끌어다 그녀는 무엇을 받았는지 물었고 임근용이 웃으며 말했다.
“예쁘게 조각된 향구 한 쌍이요.”
임근용은 육함이 임옥진과 육운에게 준 물건들이 그녀에게 준 것보다 더 눈에 띄고 값진 물건들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육함은 임옥진과 육운이 모두 기뻐하는 걸 보고 그 틈에 입을 열었다.
“어머니, 아들이 어머니께 여쭤볼 일이 있어요.”
임옥진이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말해 보거라.”
육함이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채홍이란 아이가 절 보자마자 울며 추태를 부리더니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도 한 권 망가뜨렸어요……. 정말 분수도 모르고 눈치도 없는 아이에요.”
임옥진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그녀는 갑자기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임근용을 바라보며 냉소했다.
“넌 역시 분수를 모르는구나!”
역시나 이럴 줄 알았어. 임옥진은 남한테 화풀이하는 걸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임근용은 순종적으로 눈을 내리깔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육운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육함은 임옥진의 표정을 못 본 척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아들은 상경하자마자 직무를 맡게 될 예정이라 아무래도 주변에는 좀 총명한 사람들을 두어야 할 것 같아요…….”
“무슨 말인지 알았다! 진사 나으리께서는 내가 준 사람은 둔하고 멍청해서 마음에 안 찬다는 뜻 아니냐?”
임옥진은 아주 기분이 나빠 더더욱 분노가 일었다.
‘이놈이 시험에 합격하고 나더니 역시나 전이랑은 다른 사람이 되었구나. 고개를 빳빳이 들고 집에 돌아와 제일 먼저 하는 짓이 나한테 대드는 거라니. 이런 배은망덕한 놈 같으니라고!’
“어머니…….”
육운이 황급히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가 말리려 하자 임옥진이 우악스럽게 말했다.
“넌 가! 네가 나설 일이 아니야!”
육운은 하는 수 없이 육함에게 동정 어린 눈빛을 보내고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임근용도 따라서 일어나자 임옥진이 말했다.
“넌 거기 서! 네가 한 번 설명해 보거라. 그 아이가 우리 집에 있을 때는 아주 얌전하고 성실했는데 어찌 너희 집에 가서 갑자기 그렇게 천지분간을 못 하고 날뛰는 바보가 되었단 말이냐? 난 여태껏 네가 철이 든 줄 알았는데 넌 날 이렇게 속였구나!”
그녀는 무척 화가 나서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임근용도 걸음을 멈추고 눈을 들어 임옥진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육함이 한걸음에 다가와 임근용의 손을 잡고 말을 가로챘다.
“어머니, 조급해하지 마세요. 아용은 어머니께서 아들에게 골라 준 아내이자 어머니의 친조카딸이에요. 저는 아용이를 아주 좋아해요. 저희는 아직 젊잖아요. 결혼한 지 2년이 되었지만 그동안 제가 공부를 하느라 같이 있는 시간은 적고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었어요. 더구나 집안일도 아주 많고 힘들어서 아용이도 여러모로 고생이 많았고요. 그러니 아용이를 탓할 수는 없지요. 아들은 진심으로 아용이와 함께 어머니께 효도하고 싶어요.”
임옥진의 얼굴빛이 변화무쌍하게 바뀌었다. 그녀의 시선이 임근용의 얼굴에서 육함의 얼굴로 옮겨졌다. 그녀가 갑자기 한바탕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나도 다 너희들을 위해 이리하는 게야. 너희들은 내가 너희 사이를 방해한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굳이 나서서 악역을 자처하며 미움을 살 필요가 뭐가 있겠니? 앞으로 후회하지나 말거라!”
육함은 더욱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들은 어머니께서 키워 주신 은혜를 감히 잊지 못하고,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마음은 더더욱 잊지 않을 거예요. 저는 절대 그렇게 양심 없는 사람이 아니에요.”
임옥진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다.
육함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더니 고개를 돌려 임근용을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이제 됐소. 좀 이따가 사람을 시켜 짐을 싸라고 하시오.”
임근용은 복잡한 표정으로 육함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쪽도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있지 않소.”
육함은 마침내 가뿐한 마음으로 가슴을 펴고 자신의 불만과 불쾌감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한 남자로서 누구와 아이를 낳을지, 누구랑 살고 싶은지 선택할 자유도 없단 말인가? 자기만의 취향도 가지면 안 된다는 말인가?
* * *
육함은 영경거에서 돌아온 후 사람을 데리고 외출했다. 한가로워진 임근용은 방죽에게 지시했다.
“넌 가서 채홍이를 돌봐줘.”
그리고 또 쌍전에게 분부했다.
“가서 두아, 앵두, 계원이를 불러와.”
쌍전은 임근용의 엄숙한 표정을 보고 가슴이 떨렸다. 그녀는 쏜살같이 뛰어나가 사람들을 불러왔다.
두아를 비롯한 사람들이 차례로 들어오자 임근용이 차갑게 말했다.
“전부 무릎 꿇어.”
두아는 두말없이 눈을 내리깔고 무릎을 꿇었다. 앵두도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얌전히 무릎을 꿇었다. 계원은 이런 두 사람을 보다 한 발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낭랑하게 말했다.
“아가씨, 전부 노비가 한 짓이니 벌하시려면 노비를 벌하세요.”
임근용이 분노하며 소리쳤다.
“이 집안에는 법도라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시키는 대로나 할 것이지 네가 감히 날 가르치려고 들어? 따귀를 쳐라!”
계원은 잠시 멍해졌다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임근용이 말했다.
“네 손으로 직접 때릴래, 아님 사람을 불러다 때려 줄까?”
계원은 오랫동안 임근용을 곁에서 모신 일등 시녀일 뿐만 아니라 임근용의 유모의 친딸로 결코 낮은 신분이 아니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문을 닫아걸고 스스로 때리면 이 사람들 앞에서만 창피하고 끝나겠지만, 만약 다른 누군가가 와서 그녀를 때리게 된다면 정말로 망신스러워서 쥐구멍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계원은 향을 하나 피울 정도의 시간 동안 딱딱하게 굳어 있다가 결국 손을 들어 자기 얼굴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임근용은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계원이 좌우로 연속 대여섯대를 때렸지만 임근용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듯이 반쯤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마음 깊은 곳에 눌러두었던 고집과 객기가 욱하고 올라왔다. 계원은 이를 악물고 임근용을 똑바로 쳐다보며 두 손에 더욱 힘을 주어 때렸다. 그녀의 얼굴은 이내 붉게 달아오르고 코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두아가 급하게 말했다.
“아가씨, 노비도 잘못이 있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손을 들어 자기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앵두도 낮게 흐느끼며 울다가 말했다.
“아가씨, 노비도 잘못했어요.”
때마침 계 마마가 문발을 걷으며 안으로 들어오더니 임근용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
“아가씨…… 용서해 주세요……. 이 아이들도 사실 좋은 마음에서…….”
계원과 달리 두아와 앵두는 정말 선의에서 나선 것이었다. 임근용도 두 사람에게는 그저 교훈을 좀 주려 했던 것뿐이라 얼른 말했다.
“됐어, 다들 그만해. 너희들은 억울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젯밤에 나도 지금 너희와 같은 기분이었어. 다른 점이 있다면 어젯밤 일은 너희들이 내 뺨을 후려친 것이고 오늘 일은 너희들의 자업자득이라는 거야.”
두아는 땅에 엎드린 채 목이 메어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아가씨, 노비가 잘못했어요.”
앵두는 계속 두아를 따라 울었고, 계원은 임근용의 말을 듣지 못한 듯 계속 자기 얼굴을 때렸다. 계 마마가 황급히 계원의 손을 잡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웬수 같은 것아, 이 어미까지 죽일 셈이냐!”
계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힘껏 손을 흔들어 계 마마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계속 임근용을 주시하며 아까처럼 얼굴을 때리려 했다.
대체 누구한테 보여주려 저러는 걸까? 임근용은 반드시 오늘 이 일을 깔끔하게 끝을 내야겠다고 생각하며 두아와 앵두에게 낮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너희들은 먼저 가 보거라.”
두아가 머뭇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임근용의 표정을 보고 얼른 앵두를 잡아당기며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멀리 가지는 않고 문발 밖에 서서 밖을 지켰다. 앵두는 두어 번 흐느껴 울다 울음을 그치고 두아의 옆에 서서 속삭였다.
“언니, 우리가 정말 잘못한 거예요?”
두아가 말했다.
“아가씨의 믿음을 저버렸으니 잘못한 거지.”
임근용이 두아와 앵두를 집에 남겨둔 건 계원이 말썽을 부리지 못하게 지켜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임근용의 믿음을 져버리고 계원의 행동을 보고도 못 본척하며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내버려두었고, 심지어 계원이 스스로 공신으로 자처하는 것도 방임했다. 두아는 임근용 같은 사람은 머리 위에 태산을 짊어지고 있는 것과 다름없어서 조금만 방심하면 모든 책임을 임근용이 지게 될 수도 있다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이 이런 방면에서 여전히 여지보다 사려 깊지 못하다는 걸 깨닫고 한없이 부끄럽고 괴로워졌다.
방 안에 있는 계원은 여전히 울음을 그칠 생각을 하지 않고 계속 울고 있었다. 임근용이 차가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맞는 게 좋으면 계속 때려. 어차피 난 악명이 한두 개가 아닌 사람이라 하나 더 생긴다고 달라질 것도 없어. 그래도 살살하는 게 좋지 않겠니. 얼굴이 망가지고 이가 흔들리면 너만 손해니까 말이야.”
계원의 움직임이 한 박자 느려지자 계 마마가 황급히 그녀를 붙잡으며 울었다.
“이 못된 계집애! 빨리 아가씨께 죄를 빌지 않고 뭐해? 아가씨께서 도리를 모르실 분이 아니잖아.”
임근용은 마음속에서 불같이 치솟는 화를 참으며 냉소했다.
“마마, 섣부르게 그런 말 하지 마. 도리도 다 사람 봐가면서 따지는 거지 도리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하고 무슨 말을 하겠어.”
계원이 임근용의 곁에서 보낸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닌데 이 지경에 이르러서까지 임근용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무엇을 하려는 건지 모를 리가 없었다. 마지막 한 가닥의 희망마저 사라지자 계원은 침착한 표정으로 임근용을 응시하며 천천히 말했다.
“아가씨 말씀이 맞아요. 세상에는 도리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있지요. 노비는 지금까지 아가씨께 충성을 다했고, 아가씨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나 분부하시는 것이 무엇이든 전부 최선을 다했어요. 아가씨께서 생각도 못 하셨던 것이나 하기 싫어하셨던 것, 하기 어려워하셨던 것들도 노비는 전부 아가씨를 위해 했어요. 그런데 아가씨께서는 노비에게 좋은 말은 한 마디도 해 주시지 않고 결국 이렇게 내치시는군요. 정말 너무하시네요!”
그녀가 대체 언제 하기 싫고 하기 불편한 일을 하인들에게 대신 처리하라고 시켰단 말인가? 그럼 어제 계원이 채홍을 모함한 것도 처음부터 임근용을 위해서 그랬단 뜻인가. 임근용은 기가 막혀서 웃음이 다 나왔다. 그녀는 계원과 도리를 따지는 것조차 피곤했다.
“네 말이 맞아, 난 너한테서 좋은 점을 못 찾았어. 내 눈엔 그저 네가 분수를 모른다는 것밖에 안 보여. 그럼 넌 네가 어떤 결말을 맞이해야 너한테 공평하다고 생각하는데?”
“분수요?”
흥분한 계원은 계 마마의 만류도 뿌리치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아가씨께서는 노비가 도대체 어찌해야 분수를 안다고 생각하실 건데요? 그 자리에 생판 남인 채홍이도 들이시면서 노비는 왜 안 된다고 하시는 건데요? 십여 년 동안 쌓은 정이 있는데 노비보다 아가씨께 더 충성스러울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요?”
계 마마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힘없이 바닥에 엎드렸다. 그녀는 십여 년 동안 쌓은 정은 계원의 이 한 마디와 함께 완전히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