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hon RAW novel - Chapter 447
447화. 불공평
육소가 앞으로 나와 작은 목소리로 몇 마디 했다.
이에 육건중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알고 보니 육건신과 육건립이 하겠다고 했던 두 가지 일은 이미 노부인에게도 승낙을 받아 가문에서도 일부 금액을 보조해 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차남가에서도 성의를 보였음에도 명성은 장남가와 삼남가에서 얻고 차남가는 그냥 돈만 많이 낸 꼴이 된 것이다.
송 씨는 넋이 나갔다.
이건 너무 불공평하지 않은가. 육소가 분개하며 말했다.
“아니면, 우리도 할머니께 가서 의전에 관해서 말씀을 드려보는 게 어떨까요. 장남가와 삼남가한테 돈을 보조해 주기로 하셨으면 우리한테도 해 주셔야죠. 불공평하게 한쪽에만 주시면 안 되는 거잖아요!”
육건중은 가슴속에 울분이 차오르고 원망과 분노가 극에 달했지만, 두 아들들 앞에서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결국 천천히 다시 누우며 말했다.
“됐어! 이번에는 그냥 손해를 보는 수밖에 없어.”
“왜요?”
육경이 바로 뒤따라 들어오며 말했다.
“무슨 일이든 공정하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쪽에서 우릴 괴롭히려고 이렇게 농간을 부리는 건데 할머니께서 그걸 도와주시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육건중이 담담하게 말했다.
“더 멀리 내다볼 줄 알아야지. 우리가 지금 너희 할머니를 찾아가 소란을 피우고 돈에 대해 한 마디라도 뻥끗하면 곧바로 네 큰아버지 계략에 걸려드는 거야. 처음에 그쪽에서는 우리한테 돈을 내라고 하지도 않았어. 내가 스스로 내놓겠다고 말을 하게끔 만들었지. 그래 놓고 나중에 그것 때문에 너희 할머니께 찾아가서 말을 한다면 그것들이 틀림없이 우리가 아까워서 이리저리 말을 바꾸며 계산을 해대는 거라고 욕을 할 거다. 그럼 네 할머니께서도 분명 기분 나빠하실 거야. 고작 그 정도 돈 때문에 화풀이 좀 하겠다고 명성을 잃는 건 수지타산이 안 맞는 짓이야.”
그가 이런 일로 따지고 들기 시작하면 그거야말로 육건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꼴이 아니겠는가!
육소와 육경은 전부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육소가 말했다.
“하지만 아버지, 매보청 쪽에서 재촉하고 있어요. 평소였으면 그 정도 돈을 마련하는 건 일도 아니었을 텐데, 지금은 좀 힘드네요. 또 요즘 땅값이 전이랑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이 올라서 10경의 양전을 사려면 적게 잡아도 천관은 줘야 해요. 아니면 일부만 중등전(中等田)으로 사는 건 어떨까요?”
육건중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너 바보냐? 그런 얄팍한 수에 그것들이 넘어갈 것 같아? 돈 쓰고 욕까지 먹고 싶은 게로구나? 멍청한 놈!”
그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
“어쨌든 일단은 참아야만 한다. 다른 곳에서 아껴서라도 그 돈은 만들어내야 해. 이제 곧 연말이니 가게에서 다들 결산을 하러 올 게 아니냐? 넌 내일부터 가게들을 돌며 빨리 결산을 하라고 재촉을 해라. 돈을 모아서 의전을 살 생각이라고 해!”
육소는 잠시 생각해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요.”
돈을 모아 의전을 사겠다는 건 정말 좋은 핑곗거리이지 않은가. 그러면 차남가의 명성도 널리 떨칠 수 있을 것이다.
송씨가 한마디 끼어들었다.
“근데 범포는 언제 처리할 거예요? 괜히 오래 시간을 끌다가 일이 틀어질까 봐 걱정돼서 그래요. 감시할 사람을 붙여 두긴 했지만, 잠깐 한눈파는 사이에 그것들하고 벌써 접촉했을지 누가 알아요.”
육건중이 미소를 지었다.
“뭘 그리 걱정하는 거요? 난 지금 큰형님이 손을 뻗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소! 이제 얼마 안 남았소. 큰형님은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 이제 제전의 일에 대해 입을 열었으니 며칠 안에 재산을 각자 명의로 나눠달라고 요구할 거요. 그날이 바로 범포가 죽는 날이 될 거고!”
찬바람이 창문 틈으로 불어 들어와 등불을 두어 번 흔들었다. 그 바람에 육건중의 얼굴이 밝았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고, 그의 얼굴에 보이는 미소는 유난히 우둔하고 어리석어 보였다.
차남가 일가는 또 한참 동안 이런저런 일들에 대해 상의했다. 육건중이 이내 두 아들을 놓아주며 말했다.
“시간이 늦었구나, 내일 아침부터 또 너희 큰아버지 옆에서 한바탕 실랑이를 해야 하니 너희도 그만 가서 쉬어라.”
육소와 육경이 인사를 하고 물러갔다. 육건중은 한동안 말없이 가만히 있다가 냉소를 참지 못했다.
“어머니도 어쩜 이리 편애를 하는지 모르겠소! 어머니가 제일 아끼는 건 큰형님이고, 제일 무서워하는 일은 셋째가 돈을 쓰는 거라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를 않으시는군!”
송씨도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오랫동안 육 노태야와 노부인을 모신 건 차남가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두 어르신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육건중이나 두 아들들이야 이런 상황에 대해 불평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며느리인 그녀는 그럴 수도 없었다. 송씨는 말없이 감정을 눌러 참으며 육건중에게 말했다.
“어머님께서도 이제 나이가 많으시니 정신이 흐려지실 만도 하지 않겠어요.”
육건중은 화가 나서 속이 다 쓰렸다.
“어찌나 어깨에 힘을 주는지, 큰 형님도 너무 심하지 않소!”
송씨가 만류했다.
“됐어요, 잠이나 자요.”
그녀는 육건중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조용히 밖으로 나와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송씨가 자신의 측근 시녀를 불러 물었다.
“오공자는 돌아왔느냐?”
시녀가 말했다.
“아까까진 안 오셨었는데 노비가 다시 가서 확인해 볼게요.”
송씨는 화장대 앞에 앉아 천천히 머리를 빗다가 육륜이 떠오르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녀는 아이도 이제 나이가 꽤 찼으니 장가를 보낼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중이라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그냥 내버려 둘 수도 없지 않은가?
시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지만 온종일 시달린 송씨는 너무 피곤해서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그녀가 하품을 하며 침상에 올라가 누워 막 잠에 빠져들려는데 밖에서 문득 강씨가 조용히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님, 어머님.”
강씨는 려씨와는 달리 여태껏 이유 없이 부산을 떨거나 쓸데없는 짓을 한 적이 없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그녀를 찾아온 걸 보면 무슨 큰일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졸음이 싹 달아난 송씨는 황급히 더듬어 외투를 찾아 입고 말했다.
“무슨 일이냐?”
그녀가 일어나 앉자마자 강씨가 한기를 몰고 안으로 들어왔다. 강씨는 아주 곤란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입을 열기 전에 잊어버리지 않고 일단 시녀들부터 다 내보낸 뒤 가까이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공자가 돌아오셨는데, 어찌된 일인지 온몸에서 술 냄새가 진동을 하고 지금 인사불성이세요.”
“어! 그게 대체 무슨 일이냐! 혹시 누가 보지는 않았지?”
송씨는 깜짝 놀라 식은땀을 흘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육륜이 상중에 또 사고를 친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육건신에게만은 이 일을 숨겨야 했다. 그에게 또 꼬투리를 잡을 만한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이런 일이라면 육 노부인도 쉽게 용서해 주려 하지 않을 것이고, 육륜은 결국 호되게 두드려 맞는 걸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
강씨가 그녀를 급히 부축하며 속삭였다.
“어머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 일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친척 형제분들 중 한 분이 데려오셨는데 이름이 뭐랬더라, 육적인가 그랬던 것 같아요. 눈치가 있으신 분이라 먼저 사람을 들여보내서 삼소야를 찾았어요. 그래서 삼소야가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서 뒷문으로 조용히 오공자를 데리고 들어왔다고 하더라고요. 들어오는 길에는 아무도 안 마주쳤다고 했어요. 지금은 집에 잘 데려다 놓고 해장국도 먹였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혹시라도 누가 봐서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했어요. 구체적인 건 삼소야가 돌아와야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송씨가 이마를 짚으며 길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밖에다가는 오공자가 병이 나서 이틀 정도 쉬어야 할 것 같다고 말해라. 일을 조심히 처리하고 절대 밖에 누설되지 않게 해. 셋째한테도 네 시아버지한테는 절대 이 일을 말하지 말라고 일러라.”
강씨는 대답하고 해야 할 일들을 하러 갔다. 송씨는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다시 옷을 챙겨 입고 육륜에게로 갔다. 육륜은 역시나 술에 취해 엉망진창이었다. 이미 한 번 수습을 한 것 같았지만, 방 안에는 여전히 시큼한 술 냄새가 진동을 했다. 시중을 들고 있던 시녀가 웃으며 말했다.
“한 대야나 토를 하셨어요.”
이런 철부지에 버르장머리 없는 놈 같으니라고! 송씨는 성질이 나고 너무 미워서 그의 얼굴을 두 번이나 세게 꼬집었다. 하지만 육륜은 하나도 느끼지 못한 듯 계속 코를 골며 잠을 잤다. 강씨가 이를 보고 황급히 만류하며 말했다.
“어머님, 오공자는 취해서 지금은 아무것도 모를 거예요. 어머님, 고정하세요. 오공자가 깨고 난 후에 혼내셔도 늦지 않아요.”
송 씨가 손을 거두고 통풍이 잘 되는 곳에 앉으며 말했다.
“셋째는 왜 아직도 안 오는 게냐?”
그녀가 이 말을 하자마자 육경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침상에 누워있는 육륜을 힐끗 쳐다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 오늘 육적 형님한테 크게 신세를 졌어요. 그 형님 아니었으면 엄청 망신당했을 거예요.”
송씨가 말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제대로 말해 봐.”
육경이 손을 비비며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다섯째가 깨면 다시 이야기해요.”
송씨는 말하기 곤란해 하는 그를 보고 하인들에게 위엄 어린 목소리로 지시했다.
“잘 모시고 있다가 오공자가 깨어나면 나한테 알려라. 누구든 입을 함부로 놀리는 자가 있으면 앞으로 더는 말을 못 하게 만들어 주마.”
이 집에서 일하는 사람은 나이든 시녀 하나와 어린 시동 한 명밖에 없었다. 이 말을 듣자마자 그들은 모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송씨가 그제야 육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넌 날 따라오너라.”
육경은 송씨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육적 형님이 낮에 길에서 다섯째를 봤는데 찻집으로 들어가길래 인사를 하려고 따라 들어갔나 봐요. 다섯째가 안에서 낯선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걸 봤는데 그 사람들이 좀 심상치 않아 보였대요. 얼마 안 있다가 그 사람들 중 하나와 다섯째가 크게 싸우며 상을 다 뒤집어엎었다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다른 두 사람이 말려서 더 이상 싸우지는 않고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해요. 저녁때쯤에 다섯째가 또 길거리에서 그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는 걸 봤는데 그들과 같이 음……. 음…….”
송씨는 그가 우물쭈물하며 말을 하지 않자 짜증을 냈다.
“뭔데 그래?”
육경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행화루 뒷골목에 있는 어느 집으로 들어갔대요…….”
행화루는 평주에서 가장 유명한 주루였는데 거기에 있는 기녀들은 전부 미모와 기예가 뛰어났다. 하지만 그 뒷골목은 사창가가 모여 있는 곳이었다. 송씨는 비록 양갓집 부인이었지만 육씨 부자가 평소 장사 때문에 잡다한 사람들에게 접대하느라 그런 곳에 가기도 한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송씨는 살짝 얼굴을 붉히며 이 말은 그냥 넘겨 버리고 굳은 얼굴로 말했다.
“천지분간 못하는 짐승 같은 놈! 그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