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32)
133화 심검 (3)
“허억, 허윽.”
남궁장천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힘을 짜내 달렸다.
이 상태로 놈과 마주치면 낭패다.
“컥, 크흡.”
내상 입은 몸으로 무리하게 신법을 발휘하다 보니 또 피를 한 움큼 게워냈다.
무림맹 본단이 가까워지자 그를 알아본 고수들이 마중 나왔다.
“맹주님!”
“크흡.”
그들을 보자 서둘러 말했다.
“나를 역사 앞에…….”
“예, 모시겠습니다.”
이미 내상이 깊어 운기조식 따위로 다스릴 수준이 아니다.
남궁장천은 이름 모를 무림맹 무사의 등에 업혀 무림맹 본단 중심부로 이동했다.
“맹주님이시다! 길을 열어라!”
“어서 이쪽으로!”
무림맹 본단은 그 자체로 요세화되어있었다.
건물 하나, 담벼락 하나까지도 진법을 생각해 만들어졌다. 긴 관문을 지나 최고 중심부까지 오는 데만 해도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무사의 등에 업힌 남궁장천은 말을 아끼며 최대한 내력 운용에 집중하고 있었다. 자칫하다간 주화입마에 빠져 손써 볼 틈도 없을 위기상황.
끼이익.
“맹주님. 다 왔습니다.”
그 어디보다 커다란 증명의 비석.
행성에 단 두 개뿐인 비석. 역사의 눈이다.
돌이 아닌 옥으로 만들어진 듯 투명하며 은은한 푸른빛이 감도는, 살아 숨 쉬는 역사 그 자체.
남궁장천은 지체할 시간 없이 역사의 눈에 손을 댔다.
파파팟.
모든 행동이 공적으로 정산되어 역사에 기록된다.
그리고 그만큼의 축복을 내린다.
사지가 잘린 부상 따위는 단번에 낫게 해주는, 기적과 같은 역사의 축복.
‘공적이 적겠지만…….’
남궁장천이 역사 앞에 증명한 시간은 겨우 보름 전.
그때 행성 최강자로 인정받아 현경의 경지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후 쌓은 공적이 얼마나 있겠냐만은, 내상을 조금 다스릴 정도의 축복이면 충분하다 여겼다.
일단 급한 불만 끄면 이후는 운기요상으로 충분히 잠재울 수 있다 여겼다.
하지만 기대가 무색하게 엄청난 축복이 쏟아졌다.
파파팟!
“허읍.”
너무 놀라 헛바람이 새어나왔다.
내상의 회복 정도 수준이 아니라 온몸에 자연의 기운이 가득 찬 기분이다.
탈태환골을 한 듯 몸 전체가 개운하고 힘이 넘치는 기분이다. 마치 다시 태어난 느낌.
“아아아.”
회복은 소모되고 파괴된 내력을 돋우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선천지기마저 강화시켰다.
내력이 끝없이 오르며 더 이상 늘리는게 가능할까 싶었던 단전이 더욱 확대되었다.
‘10갑자? 그 이상일지도…….’
폭풍 같은 정산이 지나고 남궁장천은 의문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겨우 보름치의 공적.
그간 한 일이라곤 마몬족 몇 사냥한게 전부다.
절대 이만한 축복을 받을 만한 족적을 남긴 사건도, 행위도 없다.
가장 강력한 기억이라면 하나뿐.
“설마…….”
남궁장천이 어렸을 때.
그러니까 후기지수 정도로 불리기 이전에, 남궁세가에서 그저 수련에 열중할 때였다.
어느 정도 무공 수련에 자신감이 붙었던 소년은 전장에 나서 실전을 경험하길 원했고, 적손인 그의 출정은 당연히 반대되었다.
남궁장천은 당시 가주였던 할아버지에게 떼를 썼고, 할아버지는 허허롭게 웃으며 비무를 제안했다.
검제라 불린 할아버지와 출사표도 못 던진 조무래기의 비무가 성립되었고, 옷깃이라도 스치면 승리하게 해준다는 후한 조건까지 걸렸다.
당연하게도 남궁장천은 할아버지인 검제의 옷깃 하나 스치지 못했고, 흠씬 두들겨 맞았다.
그리고 그날 비석 앞에 증명한 날 처음으로 역사의 축복을 받았다.
그의 공적은 그저 도전.
자신보다 훨씬 경지가 높은 검제에게 도전했다는 것만으로도 공적으로 인정 받은 것.
“그럴 리가……. 놈이, 놈은……?”
남궁장천은 애써 부정하려 했지만 이미 머리로는 수긍하고 있었다.
그저 인정하기 싫은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역사의 축복이 인정한 공적이 ‘불가능에 향한 도전’ 따위가 될 것을 염려해서다.
남궁장천은 그때까지 대기하고 있던 무사에게 명했다.
“검을 가져오라.”
“넵.”
무림맹주의 애병이 뺏겼지만 그와 같이 운철로 만든 명검이 몇자루 더 있다.
무려 천검야장을 배출한 남궁세가 가주였으니까.
“놈을 베어 나를 증명하겠다.”
도전 그 자체만으로 이 정도의 축복을 내려준 상대다. 만약 그를 넘어선다면 이후 받게 될 공적 정산은…….
시작도 전에 잿밥에 관심을 두는 것은 위험한지라,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부동심을 찾으려 애썼다.
‘놈을 죽인다.’
오직 한 가지 명제만을 머릿속에 집어 넣었다.
집중하고 또 집중하며 마음을 가다듬는 그때였다.
휘이익.
전보다 배는 더 예민해진 감각에 남궁장천이 고개를 들었다.
슈우우우.
매 한 마리가 유유히 내려오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남궁장천의 곁에 내려서려 하고 있었다.
“설마?”
하도 크게 당하다 보니 짐승만 봐도 예민해진 신경이 날카롭게 섰다.
혹 혈마가 부리는 맹수인가 싶었는데, 결과는 더 최악이었다.
휘리릭.
매가 연기로 변하더니 혈마가 바닥에 착지해 히죽 웃었다.
“와, 저건 뭔데 다르게 생겼냐?”
“…….”
남궁장천은 수호를 보며 이를 갈았다.
“지구에서 왔다지?”
“응.”
“네놈을 죽인 후…….”
각오를 다졌다.
“모든 지구인을 죽여 버리겠다.”
수호가 눈을 깜박였다.
“굳이 왜?”
“…….”
도발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자신 외의 목숨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녀석인가?
“네놈의 가족을 모조리 찢어 죽여주겠다.”
“그래?”
“…….”
조금도 평정심이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에 남궁장천이 입을 다물었다.
비정하다면 구천 행성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울 그이지만, 수호만큼은 아니었다.
“짖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수호는 히죽 웃었다.
뭐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개들이 짖는다고 모조리 잡을 수는 없다.
“하지만 발톱을 보였으면 책임을 져야지.”
짖기만 하는 것과 덤벼든 것은 다른 일이다.
용기가 가상하다만, 도전의 대가를 알게 해줘야 한다.
“맹주님!”
무림맹 무사가 맹주전에 있던 그의 보검 한 자루를 급히 가져오다가 심상찮은 분위기에 전력을 다해 던졌다.
슈아악.
남궁장천은 날아오는 장검을 잡아 쥐자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단 한 번의 공적으로 아까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는 자신을 느꼈다.
어쩌면 이것은 공적의 정산이 아니라, 저 지구인을 죽이기 위해 역사가 자신에게 내린 사명일지도 몰랐다.
“그것도 순필이가 만든 거지?”
“긴말 필요없다. 오너라.”
수호는 달려와 남궁장천이 찌르는 검을 다시 잡았다.
“이것도 압수야.”
“흐읍!”
남궁장천이 내력을 일으켰다.
전보다 배는 더 커진 단전.
거기서 뿜어져나오는 옹후한 내공.
파앙!
기의 폭발과 함께 수호가 손을 떼고 물러났다.
“와, 그새 뭔 짓을 한 거야?”
수호는 깜짝 놀랐다.
그 짧은 시간이 이만큼 파워업한 비결이 궁금했다.
“후후후. 하하하하!”
남궁장천은 확신했다.
‘이 힘은…….’
이것은 도전에 대한 정산이 아니다.
반드시 저놈을 해치우라는 역사의 계시이자 임무.
“역사의 주인공은 나다.”
역사가 자신을 택했다.
저 지구인 놈을 죽여 사라지게 만들리라.
“됐고, 빨리 하고 가자.”
수호는 얼얼한 손바닥을 털고는 다시 천천히 걸어갔다.
파워업은 무림인들만 가능한 게 아니다.
휘리리릭.
수호의 몸에서 아지랑이 같은 흰 연기가 피어났다. 연기는 그대로 털이 되었고, 반인반수가 무림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보니 요괴였구나.”
“아니, 이건 개다.”
“…….”
수호는 정정했다.
“개인간이다.”
어감이 이상하군.
오랜만에 늑대와 변신할걸 그랬나.
슈아악!
남궁장천이 넘치는 자신감으로 검을 뻗어 왔으나, 백구와 합체한 수호의 앞발이 너무 쉽게 그것을 막아냈다.
까앙!
암살자의 검처럼 길어진 앞발톱에 은은한 내력의 강기가 흐르고 있었다.
변신으로 인한 파워업에, 무림인들의 내가기공이 더해져 더욱 강해졌다.
인간을 초월한 종이 그 한계마저 넘어버렸다.
“크르!”
카앙, 캉!
수호의 공격에 남궁장천이 연신 뒤로 밀려났다.
‘어째서…….’
아까와 달라진 게 없다.
넘치는 힘을 얻었건만, 상대는 여전히 높이 있는 것 같았다. 무엇을 해도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패배를 생각한 순간 남궁장천의 검이 꺾였다.
까앙!
“으르르.”
“요괴 따위가!”
콰직!
수호의 이빨이 남궁장천의 어깨를 물었다.
우득!
“크흡.”
어깨째로 뭉텅이 뜯어버릴 듯 높이 치켜 들었다가 바닥에 패대기쳐버렸다.
쾅!
수호의 두꺼운 발이 남궁장천을 밟았다.
콰직!
날카롭게 튀어나온 발톱이 갈고리처럼 녀석의 몸을 단단히 잡았다.
“이건 곡성이다.”
수호는 금이 간 운철검을 꺼냈다.
콰직!
곡성이 남궁장천의 심장에 꽂혔다.
“커흑!”
“아프냐?”
수호는 곡성을 빼들었다 다시 찔렀다.
콰직!
“순필이도 아파했다.”
이것은 자식 잃은 아비의 마음이다.
울고 울어라.
콰직!
눈물은 이 피로 씻어내고 그만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라.
콰직!
남궁장천의 숨이 완전히 끊어졌을 때, 곡성은 놈의 피로 흠뻑 적셔져 있었다.
“내려와.”
슈아아아.
하늘 위에 떠 있던 비룡이 천천히 하강했다. 마차에 타고 있던 장순필이 내려 천천히 걸어왔다.
“아…….”
기쁨인지 슬픔인지 모를 표정이다.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남궁장천에게 다가온 장순필이 무너져 내렸다.
“아아!”
8년을 노예로 살았다.
감히 얼굴도 쳐다볼 수 없었던 주인어른이 무참히 죽어 있다. 자신이 만든 검에 의해서.
“으아아아아!”
후련할 줄 알았건만 더 없이 그립다.
먼저 간 아내가, 제삿날도 알지 못하는 어린 딸이 그립다.
“흐으으.”
수호는 오열하는 장순필을 그저 지켜주었다.
마차에서 내린 당진철도 건우와 왕일도 그저 안타까운 얼굴로 서 있었다.
한참 만에 오열을 끝낸 장순필이 머리를 단정히 정리하곤 수호의 앞에 서 천천히 절했다.
“앞으로 이 장노의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성심껏 보필하겠습니다.”
장순필이 마음을 다해 읍했다.
수호는 히죽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란에 모여든 무림맹 무사들이 빼곡하다.
“덤빌 거야?”
“…….”
무림 맹주가 죽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덤벼들지 못하자, 수호는 금이 가고 피를 흠뻑 먹은 곡성을 장순필에게 돌려주곤 지난번 뺏은 무림맹주의 검을 인벤토리에서 꺼냈다.
“이건 이름이 뭐지?”
“제왕검이옵니다.”
수호는 씩 웃었다.
이름 한번 유치하고 좋네.
그사이 더 몰려든 무림맹 무사들이 물경 천을 넘었다.
무림맹 본단에서 무림맹주가 살해당했다.
“마인을 처단하자!”
“혈마를 죽여 맹주님의 복수를 하자!”
누군가의 외침이 촉매가 되어, 머뭇거리던 무사들에게 용기를 주었다
집단의 분노가 개개인의 용기가 되어 만용을 가능케 했다.
새까맣게 몰려드는 놈들을 보며 수호가 검에 기를 집중했다.
“이것은 내 수하의 한이자, 나의 자비로운 경고다.”
복수행은 끝나지 않았다.
전 무림이 알아야 한다.
나의 수하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구우우우.
제왕검이 떨었다.
이것은 일종의 영역 표시.
복수를 알리고 힘을 과시해 놈들이 조금이라도 마음먹지 못하게 해야 한다. 지구로 향하는 포탈에 발을 디디는 것조차 경기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횡소천군.’
능히 천 명의 적도 베리라.
오늘 흘린 피로 인해 감히 복수 따위 품지 못하리라.
수호의 제왕검이 휘둘러지자 무림맹 무사들이 우수수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