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92)
193화 수확
롤랑 사의 신제품 발표회.
그간 많은 제품을 발명했고, 또 직접 발표했던 토들러 박사지만 이번엔 정말 떨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이군요.”
“네, 혁명적인 날이죠.”
매니저의 말대로 정말 혁명적인 제품이다.
던전 공략에 대한 리스크를 확 낮춰 줄 정도의 보물.
“박사님이 이토록 긴장하시는 것은 처음 보는군요.”
매니저의 말에 토들러는 웃었다.
“그럴 수밖에요.”
이건 엄청난 업적이다.
아마 차원산업 시대를 여는 과학자 중에 자신의 이름이 결코 빠지지 않을것이다.
차원에너지 측정기 같은 것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아이템이다.
“이건 역사에 획을 긋는 물건이지 않습니까?”
던전 공략의 패러다임을 바꿀 물건이다.
“시간이 되었네요.”
“오, 이런. 모시겠습니다.”
매니저를 따라 발표회장으로 향했다.
거대한 뮤지컬 공연장 같은 그곳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500명 정도 수용 가능한 작은 홀은 초청받은 사람들로 절반 정도가 좌석의 주인을 찾았다.
‘세 달 전만 해도 이 작은 홀로는 부족했을 텐데.’
지금은 사정이 그렇다.
하늘과 바다의 지배권을 잃었다.
운송수단이 끊기며 물류가 멈췄고, 인적 교류도 사라졌다.
프랑스나 독일 등 유럽 각지의 도시들의 관계자들과 유럽 전역의 대길드 관련자들이 초대장에 응해 영국까지 찾은 것은 별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귀환석의 공개와 공개 입찰 진행.’
경매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의 80%는 참석하지 않았을 것이다.
토들러 박사는 집중된 시선을 받으며 짐짓 태연하게 자리에 앉았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롤랑 사의 대표가 무대에 올라, 대격변 이후 회사에서 내놓은 발명품과 그것들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지위, 시장의 변화 등을 늘어놓았다.
혈석 엔진의 등장과 내연기관을 대체한 이후 시장 점유율 변화 등의 그래프가 나타났다.
“네, 가장 혁신적이며 충격적인 발명이었죠.”
내연기관의 종말을 고한 혈석엔진의 등장은 혁신의 시작이자, 롤랑이라는 회사를 세계적 기업으로 키운 아이템이었다.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시장 점유율은 어느 순간 정체했고, 최근엔 꾸준히 감소하고 있었다.
“네, 저도 압니다. 여기 계신 모두가 알죠. 이 망할 세상에 지적재산권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카피 제품이 넘쳐흐른다.
어려운 기술도 아니다.
가장 먼저 개발한 롤랑 사에 특허권이 있으니 세계 기업들이 처음엔 특허료를 당연하게 지급했으나, 곧 몇몇 기업들이 눈치를 보다가 지불하지 않았다.
세계협약 따위를 들먹일 수준의 세계정세가 아니다.
단절과 각자도생이 최근 분위기니까.
이런 세상에 아무런 이득도 없는 연구개발에 열정을 쏟을 수 있을까?
롤랑의 CEO는 이번 제품이 돈을 벌든 말든 상관없다고 여겼다.
카피를 하든 말든 마음대로 해라.
이건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돈을 벌 시장을 지키기 위해 공개하는 아이템이다.
“네, 여기 계신 모두가 기다린 제품입니다. 최고대표로 있으며 이번만큼 자부심을 느낀 적이 없습니다.”
화면에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진 둥근 구체가 떠올랐다.
“축구공이 아닙니다.”
쇠로 만든 축구공 같기도 했는데, 불규칙한 모양으로 파진 표면으로 인해 안쪽의 내용물이 보였다.
“이건 인류 영웅들의 생명줄이자, 여러 도시를 구제할 아이템입니다.”
노란색의 광물이 중력을 무시하고 구체 중앙에 떠 있었다.
“우린 이것을 귀환석이라 이름 붙였습니다.”
사람들이 다음 설명을 기다렸다.
“다들 유추하셨다시피, 던전 공략 중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는 포탈을 생성하는 아이템입니다.”
“와아!”
이미 소식이야 알음알음 들었다.
그랬으니 경매를 위해 이리 모여들었지.
이건 선발대의 목숨줄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보다 난이도 높은 던전에 도전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아이템이기도 했다.
“환호하긴 이릅니다.”
롤랑 CEO는 사람들의 이목을 즐기다가 선언했다.
“귀환석의 사용법과 작동원리, 그리고 모든 연구소스를 개봉할 생각입니다.”
“와아아아아!”
아까보다 더 큰 환호가 홀을 울렸다.
“이것은 인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아이템이며, 모든 인류가 공유해야 할 자산입니다.”
롤랑의 대표이사가 관람석 맨 앞줄에 앉은 토들러 박사에게 시선을 주었다.
“자세한 설명은 연구개발을 총괄한 토들러 박사께서 도와주시겠습니다.”
토들러는 강당에 올라 대표와 포옹 후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토들러입니다. 먼저 이번 연구에 귀한 재료를 준비해준 영국 정부에 감사의…….”
한참의 감사 인사가 지나고 난 뒤 귀환석의 구체적 스펙이 소개되었다.
“사용자의 마력에 반응해 작동하며, 약 1분 정도 지구로 돌아올 수 있는 포탈을 생성합니다.”
“1회성 아이템입니까?”
성격 급한 누군가의 물음에 토들러 박사가 웃으며 답했다.
“아닙니다.”
이것이야 말로 이 물건의 진가다.
“한 번 작동할 때마다 에너지를 소모하며, 던전마다 그 에너지 소모량이 다릅니다. 1성 던전과 2성 던전에서의 에너지 소모량은 대략 2배 정도이며, 6성 던전까지는 실험을 완료했습니다. 한 번에 대략 에너지의 25% 정도를 소모했습니다.”
6성 던전에서 4번 사용할 수 있는 소모성 아이템이다.
“아직 실험 전이지만 7성 던전에서는 대략 두 번 정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에너지 충전이 가능합니까?”
누군가의 물음은 이 자리에 모인 모두의 기대를 담고 있었다. 충전이 가능하다면 저 아이템은 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한 물건이니까.
“물론입니다.”
토들러 박사의 확답에 환호성이 울렸다.
“무엇으로 충전이 가능합니까?”
“전기를 에너지로 합니까?”
“혹시 혈석으로 충전합니까?”
성격 급한 그들을 보며 토들러 박사는 프레젠테이션 화면을 넘겼다.
노란색 광석 하나.
그것은 귀환석의 내부에 자리한 핵과 완전히 일치하는 모양새였다.
“차원석. 이것만이 귀환석의 에너지이자 충전 수단입니다.”
누군가는 차원석의 존재를 알았고, 누군가는 몰랐다.
“어디서 구할 수 있습니까?”
“군주급 몬스터를 사냥시 일정 확률로 얻을 수 있습니다.”
토들러 박사는 공표했다.
“차원석을 구해오시면 귀환석을 무료로 만들어 드립니다. 물론 제작법 또한 이 시간부로 롤랑사 홈페이지에 자세히 공개될 것입니다.”
인류 생존을 위해 귀환석의 제조법을 풀었다. 아무런 라이센스도 필요 없다.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이것은 인류애, 그보다 더 복잡한 상업성, 그리고 누군가를 위한 선전포고이자 압박이다.
*
LA 리처드 박사의 연구실.
“빌어먹을.”
리처드 박사는 티브이 방송을 보며 욕을 뱉었다.
“개자식.”
어떤 욕도 아깝지 않은 놈이다.
이동 포탈을 개발한 지 불과 일주일이 흘렀다.
신나서 논문을 공개했다가 LA시장 하워드의 압박에 내렸다.
관련 자료 모두를 은폐하고 이 ‘업적’을 숨겼다.
자신이 속한 기업의 이익과 하워드 시장의 권력에 대한 야욕에 의해 말이다.
“젠장!”
이래서야 너무 비교되지 않는가?
언제나 차원산업 시대를 이끄는 과학자를 손꼽을 때 수위를 다투는 게 토들러와 리처드다.
저 돈 귀신이 무슨 변덕인지 저 귀한 아이템을 독점하지 않고 세계에 무료로 풀어버렸다.
벌써부터 토들러 박사와 롤랑 사를 칭송하는 여론이 들끓고 있었다.
그에 반해 자신은…….
“모두 다 개자식들뿐이야.”
어째서 자신의 주위엔 제 이익밖에 모르는 욕심쟁이들이 많은가?
이래서야 어떻게 토들러 박사를 따라잡을 수 있겠나?
역사에 자신은 어떤 과학자로 기록될 것인가?
아마 토들러가 인류애를 위한 훌륭한 과학자로 남는다면, 자신은 그의 비교대상이 되어 내내 회자될 것이다.
이익을 포기하고 인류 번영을 택한 과학자.
이익을 위해 인류를 버린 과학자.
“빌어먹을.”
리처드 박사가 위스키를 병째 들이마셨다.
이미 시제품이 나왔음에도 제대로 된 실험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 50킬로미터를 오갈 수 있는 양방향 포탈을 생성한 게 전부.
이것이 대륙간 이동 수단이 될 수 있을지 빨리 실험을 거듭해야 하거늘.
벌컥, 벌컥.
조급함과 열등감…….
그리고 주변의 억압과 스트레스에, 그는 끊없이 술만 마셨다.
*
대한민국 이천.
대규모 농업지구로 지정된 이곳은 국방부의 비호를 받고 있다.
어지간한 필드 몬스터들이나 야생동물들의 출입을 불허하는 이곳은 서울 시민들의 곡물소비 4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한 곳이다.
이곳이 피해를 입으면 전량 아루카 행성에서 수입해 와야 하는 처지.
최악의 상황에서 식량 자급을 위해 꼭 사수해야 하는 지역이기에, 주둔하는 군부대 규모도 상당했다.
하지만…….
“시발, 얼른 태워!”
“옙!”
화르르르륵.
군인들이 저마다 화염방사기를 들고 허공에 뿌리고 있었다.
웨에에에엥.
메뚜기 떼들이 불타 후드득 떨어졌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웨에에에엥.
수백 마리가 죽어나가지만 수만 마리의 메뚜기 떼들이 여전히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사삭, 사삭.
놈들이 농업지구의 모든 작물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안 돼!”
농부들도, 그들을 지키는 군인들도 절규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재해.
위이이잉.
하늘을 가득 메운 저주받은 메뚜기 날갯짓 소리들 사이에, 조금 색다른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왔다.
위이이잉.
북쪽에서부터 날아온 드론 스무 대가 접근 중이다.
“저건 또 뭐야?”
“얼른 보고해!”
부관들이 서둘러 농업지구 주둔 사령관 강석호 중장을 찾았지만, 그는 집무실에서 태연한 얼굴로 부관을 맞이했다.
“미확인 비행체 스무 기가 접근중입니다.”
“어, 알아.”
“예?”
“냅둬. 수호시티에서 지원 온 거야.”
강석호 중장은 이미 연락을 받은 뒤였다.
“아.”
“어디까지 접근했디?”
“5킬로 남짓입니다. 곧 도착합니다.”
“애들 다 철수시켜.”
“예?”
“살충제 뿌릴 거야. 맞기 싫으면 다들 어디 들어가 있어.”
“넵.”
“빨리 전파해. 괜히 맞으면 대머리 된다.”
“헙, 넵!”
부관이 서둘러 나가고, 강석호 중장은 사령관실 창 너머의 곡창지대를 보고 있었다.
병사들이 서둘러 곡창지대에서 멀어지고 도착한 드론이 살충제를 살포하기 시작했다.
농약 따위가 얼마나 효과를 보겠냐만은.
“응?”
살충제가 살포되자마자 우수수 떨어지는 메뚜기 떼를 보며 강석호 중장은 눈을 비볐다.
“이잉?”
살충제가 얼마나 독한지, 얼마 뿌리지도 않았는데 메뚜기 떼가 우수수 죽어나가고 있었다.
뭐, 거의 향만 맡아도 죽는 수준의 농약이라니.
“허허, 신통방통하네그려.”
얼마나 독한 약이면 저럴까. 농작물에 영향은 없을지 걱정이 될 정도다.
또한, 저 살충제가 벌레만 죽이고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입은 피해가 심각하다.
“쯧, 올해 농사 텄구만.”
벌레들이 파먹은 농작물은 어찌 복구 하겠는가. 이건 사람의 인력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농사의 신이라도 있지 않은 다음에야…….
*
어느 창고 안.
“와, 이거 엄청 맛있네.”
“그러게요.”
수호는 복숭아를 베어물며 연신 감탄을 흘렸다.
지구의 어떤 복숭아보다도 뛰어난 맛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거 집에 가면 좀 심을까?”
“좋지요.”
당진철이 맞장구 쳤고, 수호는 복숭아씨를 심을까, 아예 나무를 찾아 뽑아 갈까 고민했다.
그 와중에 창고 문을 열고 들어온 중언개가 보고했다.
“대인, 정리를 마쳤습니다.”
“그래?”
수호가 창고 밖으로 나왔다.
끼익.
창고는 다름 아닌 마몬족 식량 창고.
그것도 대족장의 가옥에 딸린 것이다.
밖으로 나오니 불어오는 바람에 혈향이 가득하다.
바닥엔 죽은 마몬족 시체들이 즐비하고, 장대 높은 곳엔 수호가 베어버린 마몬족 대족장의 머리가 달려있다.
“다음 마을로 가자.”
“예, 대인.”
중언개가 충실한 부하라도 되는 듯 수호를 모셨다.
이제 수급 14개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