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191)
192화 구원자 (2)
무림맹 본단이 무너지고 마몬족들의 영역으로 흡수되었다.
속절없이 영토를 내어준 무림인들은 후퇴를 거듭하다가 최후의 전선을 꾸렸는데, 그곳이 공교롭게도 해무파 영역이었다.
첫 혈겁이 시작된 곳.
해무파 마을 앞에 모인 500인의 무림맹 고수들이 단 일검에 유명을 달리한 그곳이다.
임시 맹주전에서 소식을 전해들은 중언개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무어라?”
“지, 지금 당장 가시지 않으면 분타 무인들이 위험합니다요.”
급히 달려온 전령은 숨 돌릴 시간도 아깝다는 듯 보고를 이어나갔다.
“맹주님께서 서둘러 가 보셔야겠습니다.”
“으음.”
기별도 없이 이리 불쑥 찾아올지 어찌 알았겠나. 남궁세가 영역 포탈에 분타를 설치하고 감시케 한 것이 아니었다면, 온 줄도 몰랐을 것이다.
“일행은 어떻더냐?”
“전과 대동소이했습니다.”
혈겁을 일으켰던 주요 인물들이 이번에 그대로 넘어왔다.
박수호와 당진철.
천검야장과 꼬마 하나.
“거기에 여아 하나와 노파 하나가 더해졌습니다. 여아는 천검야장의 여식임을 확인했습니다.”
아피파의 제자였다고 하더니, 아비를 따라 아예 혈교 무리와 함께 어울리는 모양이다.
“노파는?”
“모르겠습니다. 처음 보는 인물입니다.”
“처음 보는 노고수라…….”
“혈교에서도 중요 인물 같습니다. 혈마마저 노파를 예우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으음.”
중언개는 생각했다.
혈마 하나만 와도 무림맹이 못당했다.
그 혼자만 와도 마몬족 족장급 열의 수급 정도는 충분히 취할 수 있을 터인데, 고수를 데려왔다.
“혈교의 노괴라…….”
중언개는 혈마의 심증을 읽었다.
‘혈교는 강하다. 감히 넘보지 마라.’
아마 혈마가 전하고 싶은 내용은 그것이리라.
“맹주님. 어서 가셔야 합니다.”
“알았다. 결사대를 모집해라.”
“존명!”
중언개는 고수들의 소집령을 내리고 서둘러 나설 채비를 했다.
마몬족 족장이 죽으면 순식간에 들이쳐 영지를 수복할 것이다. 그 전쟁 와중에 투쟁으로 강해질 고수들은 무림맹의 주축으로 성장하리라.
잃어버린 상위 고수들의 공백을 메울 차례이자 기회다.
중언개가 서둘러 혈마가 기다리는 분타로 향했다.
*
남궁세가 영역 무림맹 분타.
객잔을 비우고 임시로 만들어 놓은 그곳의 주방을 보고 이숙자가 감탄했다.
“하이고 이거, 부뚜막 오랜만이구마잉.”
“엄마. 이거 구식. 화로 최신.”
“여긴 가스렌지도 없다냐?”
“가쉬랜주?”
“되따. 여 장작이나 좀 넣어봐라.”
이숙자의 부탁에 당진철은 밖에 대기 중이던 무림맹 무사들에게 떠넘겼다.
“장작.”
“…….”
짧은 말만 남기고 사라진 당진철을 보며 무사들이 투덜거렸다.
“혈교가 득세하니 졸개들까지 우릴 무시하는군.”
“별수 있나. 어서 구해오세.”
무사 둘이 서둘러 장작을 들고와 주방에 불을 땠다.
“여 어디 닭 같은 것도 키우는감?”
이숙자의 말을 알아들은 당진철이 무사들에게 통역해 주었다.
“닭을 원하신다.”
“…….”
이젠 사냥까지 시킬 셈인가?
자존심이 상한 무인이 인상을 쓰자 당진철이 피식 웃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닌가? 잡아오면 같이 먹음세. 인상 풀게나. 여기 이분이 실력 좋은 요리사야.”
“뭐, 좋소.”
무인들 몇이 다시 나가 야생 닭을 잡아와 털을 뽑고 씻었다.
“아따 오랜만에 가마솥 보니까 정겹네그려.”
이숙자가 젊은 날 시집 와서 한 고생들이 이제는 추억이 되어 미소 짓게 했다.
그땐 그리도 불편한 주방이었는데, 이제와 생각하니 이만큼 정겨운 것도 없다.
부글부글.
닭이 삶아지면서 주거나 받거니 말을 나누다 보니 처음의 경계는 꽤 누그러졌다.
“아니, 그럼 당형이 그 사천당가의 유일한 후예란 말이오?”
“이를 말인가. 그러고 보니 아직 자네 사문도 모르고 있었군.”
“소제는 하남에 작게 무관을 하고 있는 손씨세가 출신입니다. 가주님께서 제 아버지 되시지요.”
“어허, 하남손씨세가면 명문이 아닌가. 내 여기서 손가의 소가주를 보다니.”
“어휴, 아닙니다. 제 위로 형님이 세 분이나 계십니다. 제가 무림맹에 적을 두는 이유기도 하지요.”
넷째 아들이면 특출하지 않은 이상 후계 구도에서 멀다. 차라리 무림맹에서 실적을 쌓고 승진하는 게 낫다.
권력을 탐하기보다 실력을 탐하는 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빠르게 권력을 누리는 길이다.
그런 의미에서 손영무는 운이 좋다.
“이번 암행에 무림맹 무사들도 함께 가는가?”
“암요. 대대적 반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투쟁의 성과가 좀 있겠군.”
“그렇지요.”
손영무의 눈빛이 기대로 반짝였다.
당진철도 수호를 따라 온 이유다.
지구에서 그는 투쟁이 불가능하니 성장이 멈춘 것이나 진배없다. 이번 기회에 못해도 초절정 이상은 달성하고 싶었다.
전에는 절정고수도 꿈만 같았는데, 수호와 함께 다니며 그들의 부하들이 성장하는 모양새를 보니 그리 어려워 보이지도 않았다.
“자, 다 됐다. 이거 퍼 가드라고.”
“예 엄마.”
당진철이 닭이 삶아지는 동안 호형호제한 무림맹 무사들과 닭을 퍼 날랐다.
“오, 삼계탕!”
1층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던 수호가 반갑게 그릇을 받았다.
“어여들 먹어.”
무림맹 무사들 일곱 명도 각자 그릇을 받았는데, 당진철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동도들. 영광으로 아시오.”
당진철은 능글맞게 웃으며 이숙자의 어깨를 주물렀다.
“이분이 밀양박씨세가의 제일 숙수요.”
“뭐라 꼬부랑거리는겨. 닭이나 먹어.”
“예, 엄마.”
당진철이 냅다 앉아서 그릇에 담긴 닭다리 하나를 들고 뜯었다.
노린내도 없고, 잘 삶아져 야들야들하다.
뭘 함께 넣었는지 향도 좋다.
“이야, 이렇게 맛있는 고기 맛은 처음입니다.”
무사들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당진철이 히죽 웃었다.
“허허, 자네들 놀라는 모습을 보니 지구의 치킨 맛을 보여주고 싶군.”
“치킨이 무엇입니까?”
“닭을 튀긴 요리인데, 상상을 초월하는 맛이라네. 언제 한번 지구로 놀러오게나.”
“형님이 초대해 주시면 기꺼이 갑지요.”
“근데 숙수께서는 왜 안 드십니까?”
당진철은 이숙자가 흐뭇하게 쳐다보고만 있자 물었다.
“엄마 왜 안 먹?”
“이눔시끼 말을 배우다 말아처먹었어. 말이 짧어.”
“왜 안 먹?”
“난 별 생각 없응게. 많이 먹어.”
당진철은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고 먹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독?”
“응? 당형, 그건 무슨 말이오?”
“아, 아냐. 우리 제일 숙수가 독공의 고수거든.”
“……?”
“……?”
무사들의 젓가락이 일시에 멈췄다.
‘독살?’
의심하기에는 혈마랑 그의 일행들이 너무 잘 먹고 있는데?
“어음, 속이 어쩐지 화끈거리는데.”
“맞아. 기분이 좀.”
미적거리는 그들의 반응과는 별개로 수호는 아주 만족하고 있었다.
전장을 나서기 전의 전사들을 대접하기 위한 음식. 용기와 힘이 난다.
이 음식은 그저 빈말로 힘이 나는 음식이 아니다.
무려 두 시간이나 지속되는 버프를 얻었다.
“이모, 요리는 언제 배운 거야?”
“뭘 이런 걸 배워. 다 손맛이여.”
본래 요리를 잘하던 이숙자다.
오죽했으면 ‘요리’가 각성 스킬일까.
기억의 돌이 정의하는 그녀의 직업도 ‘요리사’다.
또 다른 각성 스킬인 독극물 제조는, 아마 각성 원인을 제공한 대규모 벌레 독살 때문일 것이다.
“밥도 다 먹었는데 길잡이는 왜 안 와?”
마몬족 족장 열의 목숨을 약속했다.
거기에 보너스로 다섯쯤은 더 베어 줄 수 있고.
수호는 열다섯을 처치할 작정이었지만, 도움받는 무림맹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대대적 반격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맹주께서 도착했습니다.”
수호 일행이 밖으로 나와 보니 500명의 고수들을 이끌고 온 중년 거지가 선두에 있었다.
저벅 걸어온 그가 포권을 했다.
“임시 무림맹주 중언개가 대인을 뵙습니다.”
“음. 길잡이가 좀 많은데?”
“간청하온데, 가시는 길에 이들이 조무래기들이나마 처치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
수호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냥 날아다니면서 매가 먹이를 낚아채듯 속속 수급만 따고 오면 하루면 끝날 일이다.
이들 다 끌고 가면 그만큼 시간이 지체될 터인데.
“좋아. 대신 낙오하는 놈 안 기다린다.”
“이를 말입니까.”
“그럼 가자. 안내해.”
“예에.”
중언개가 향하는 곳은 다름 아닌, 빼앗긴 무림맹 본단이 있던 곳.
세계에 둘 뿐인 증명의 비석.
‘역사의 눈’이 있는 곳이다.
못해도 그 지역은 되찾아야 전 무림의 인정을 받고 정식 무림맹주로 추대될 터였다.
“가자.”
수호가 의기양양하게 나섰고, 그 뒤로 일행과 무림맹 인사들이 뒤따랐다.
*
수호 길드 부사장실.
자리에 없는 사장을 대신해서 호텔 개업식을 마친 김미소는 부사장실에서 비서실장 이소진과 독대했다.
“신입들은 좀 어때?”
“다들 무늬만 신입이죠 뭐. 알아서들 잘하던데요.”
경력자 위주로 스카웃했다.
수호 길드는 지금 누구나 들어오고 싶어 하는 꿈의 직장이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직원과 그의 가족에게만 수호시티 시민권을 주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수호시티에 거주하는 방법은 두 가지.
수호 길드의 일원이 되든가, 수호호텔에 투숙하든가뿐이다.
“뭐 특별히 사고치는 놈들 없지?”
“기자들한테 소스 주는 몇이 있긴 한데요.”
“그냥 냅둬. 그중에 기밀 건드리는 놈은 없잖아?”
“못 건드리는 거죠.”
“영 아닌 애들은 일단 킵 해놔. 나중에 본보기로 쓰자.”
“네, 요주의 인물들 체크해 놓겠습니다.”
인재를 소중히 여기는 김미소다.
배신자는 용납하지 않으리라.
본보기로 몇 놈만 수호시티에서 내쫓아도 기존의 스텝들이 정신을 번쩍 차릴 거다.
미국 시민권보다 더 따기 어렵다는 수호시티 시민권이다.
“그래도 인력 좀 충원되니 살 것 같네요.”
“그러게.”
김미소도 오랜만의 여유에 미소 지었다.
1부터 100까지 일일이 그녀가 손보다가, 이제는 적재적소에 경력 많은 인재들을 스카웃해 넣어뒀다.
이제는 그녀의 실무능력보다는 인재를 관리하는 용병술에 초점을 맞춰야 할 때다.
수호시티를 굴러가게 하는 시스템의 기초는 얼추 잡았으니, 이제 관리만 잘하면 알아서 거대하게 변모할 것이다.
각 부서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읽고, 결제하거나 개선 방안만 지시하면 된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일이 넘치도록 많지만 그전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었다.
“아, 그리고 타이베이 일부 통신망이 연결됐대요.”
“벌써?”
“인터넷부터 복구된 모양인데, 한번 보실래요?”
“줘봐.”
태블릿을 건네받은 김미소는 타이베이 실황이라고 올라온 여러 자료와 사진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 덕에 성공적으로 리치 왕과 뱀파이어 귀족을 사냥하고 도시의 평화를 찾았지만, 잠깐이었다.
죽음의 존재 덕에 접근하지 않던 외부 몬스터들이 그들의 공백을 느끼고 도시로 흘러 들어와서다.
“음? 이 사진은.”
김미소는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을 보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오크 부대와 시가전을 펼치고 있는 사람들 무리의 선두에 창을 든 승려가 있어서다.
“우리 명진 이사님 열심이시네.”
“벌써 별명도 붙었던데요.”
“뭐라 부르던데?”
“코리아 관운장이요.”
“운장 관우라…….”
김미소는 슬쩍 웃었다.
나의 운장이여, 어서 대만을 정리하고 돌아오시게나.
명진의 무사귀환을 빌며 태블릿을 덮으려다가, 속보 메시지에 눈살을 찌푸렸다.
“메뚜기?”
“네?”
“이거 봐.”
김미소가 기사를 태블릿에 띄웠다.
국방부의 비호를 받는 한국 최고의 식량재배단지가 몬스터도 아니고 메뚜기 떼의 피해를 입었다.
“황충이라니…….”
사라진 재해의 출현에 삼국지 마니아 김미소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건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이것은 하늘의 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