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oul Station Druid RAW - Chapter (208)
208화 곤붕 (2)
시발.
이건 용병인가? 도축장 알바인가?
“쿠에엑!”
스컥.
도끼를 처음 잡았다.
그런데 나흘 동안 도끼질만 하다 보니, 도끼 숙련도를 맥스로 찍어버린 기분이다.
“크와!”
“뒈져라 좀.”
팍, 퍽, 팍!
“크우에에에!”
처음부터 기계적으로 목을 친 건 아니다.
그냥 이게 제일 빠르게 놈을 영면에 들게 하고, 이 지긋지긋한 반복노동을 끝내는 길이라 그렇다.
쿵.
거대한 머리다.
이 7성 던전은 고블린과 그것을 주식으로 삼는 오우거가 기본으로 나온다.
뭘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게 던전에서 태풍이 불더니, 고블린들은 죄다 날아올라 저들끼리 죽었고 오우거만 살아남았다.
아니, 이걸 살아남았다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김 씨, 빨리 빨리 해.”
“……넵.”
“저기 또 온다.”
“크와와.”
나무 넝쿨로 칭칭 묶어 옴짝달싹 못하게 포장된 오우거 네 마리가 언덕 아래로 굴러온다.
언덕 위엔 그것을 배달한 코끼리가 코를 치켜들고서 소리치고 있다.
“뿌우우웅!”
저 세리머니가 마치 군 생활 시절에 일거리 던지고 도망치던 선임의 목소리 같다.
‘뺑이 쳐라.’
“뿌우우우우.”
뿌우우 소리가 멀어진다.
또 어딘가에서 포장되고 있을 오우거를 실으러 갔겠지.
“그래, 너도 뿌우.”
김동완은 멀어지는 코끼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는 계속해서 재촉하는 얄미운 소리를 들었다.
“김 씨, 빨리 해.”
“빨리 하고 있습니다.”
“김 씨가 얼른 커야 우리 엄마 차례가 오지.”
김동완의 뒤에는 뭔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의 당진철이 3박 4일 동안 쉬지 않고 잔소리를 해대고 있었다.
‘저 새끼 대가리를 찧어버리고 싶다.’
아니, 아니다.
이건 강제노역이 아니다.
일본 개새끼.
이건 단지 경험치를 몰아주기 위한 수호의 배려다.
‘오우거는 모두 김동완이 처리한다.’
그 말만 남기고 던전을 공략하기 시작했고, 코끼리들이 오가며 오우거공을 굴려서 이 협곡으로 밀어넣는다.
협곡엔 목 없는 오우거 사체가 수백이다.
“아니, 아직도 초절정 못 찍으면 어쩌자는 거야. 이 행성도 참 답답하군.”
당진철의 잔소리는 쉴 새 없이 이어졌고, 김동완은 그토록 고대하던 S급의 벽을 깨고 SS급에 올랐다.
그것이 사흘 전의 일이다.
던전 진입한 지 하루 만에 이룬 쾌거.
그 뒤로 꼬박 사흘간 오우거를 잡고 있었는데, 아직도 U등급은 요원한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렙일수록 레벨업이 빠르고, 몬스터와 차이가 나지 않을수록 레벨업이 느리다.
7성 던전의 몬스터 평균 레벨은 던전의 크기와 비슷하다.
이번 던전은 7성. 그중에서도 하 난이도의 에너지로 측정되었다.
그 말은 보스 몬스터가 70레벨 초반이라는 의미.
던전의 주 종족인 오우거의 레벨이 70에서 71 사이이고, 그들의 먹이이자 던전의 하위 생태계를 유지하는 고블린들의 레벨이 30에서 50 사이로 형성되어 있다.
지금 그 고블린들이 수호의 조화마법에 속절없이 죽어나가고 있었다.
“쿠우우.”
수호가 다루는 조화마법의 이름은 어쩌면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나무정령 소환’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스킬부터 그것을 시작으로 ‘고속성장’이라는 식물계 스킬. 그리고…….
회오리바람.
소용돌이.
대지분노.
자연발화.
낙뢰.
스킬 이름 따위는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바람, 물, 땅, 불, 번개.
수호의 등급이 오를 때마다 하나씩 다룰 수 있는 자연계 정령의 범위가 많아졌다.
정확히는 나무정령의 변환이다.
수호가 회색도시에서 조화마법을 일으키기 힘든 이유다.
나무정령이 없으면 그들을 자연계 원소로 변환할 수 없고, 그때는 오직 수호의 몸에 축적된 조화력으로만 스킬을 사용해야한다.
자신의 그릇에 담긴 조화력만 쓸 때와 광활한 숲의 힘을 빌릴 때의 위력은 천지차이다.
그리고 지금 수호는 또 하나의 등급업 앞에 놓여 있었다.
“69네.”
이제 곧 70레벨.
SS급에 오른다.
고블린만 잡아서 이 정도다.
이번 던전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고블린이지만, 대량 경험치를 가진 것은 오우거다.
오우거를 김동완에게 다 양보하고도 수호가 곧 등급업을 앞둘 정도로 고블린의 개체수가 많았다.
“저기도 있네.”
던전은 기본적인 숲과 산 지형의 협곡이 어우러진 맵.
숲마다 고블린들이 대규모 부락이 들어서 있었고, 협곡마다 오우거가 없는 곳이 없다.
“회오리.”
굳이 스킬명을 욀 필요는 없다.
그저 수호의 의지에 따라 숲에서 불어온 바람이 회오리바람을 키우며 협곡을 훑었다.
“쿠오오오!”
나무마저 뽑히는 위력에 오우거들이 숨어있을 곳이 없었다.
딸려 올라온 오우거 다섯 마리를 뒤로 패대기쳤다.
쿠웅!
“뿌우우우.”
코끼리들이 벌써 배송을 마치고 돌아왔다.
“애들 신났네.”
이번 던전만 김동완에게 몰아주고 다음부터 키워준다고 했더니 아주 신이 났다.
촤르르륵.
숲에서 자란 넝쿨들이 오우거들을 단단히 포박했다.
“쿠어!”
괴력하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오우거지만, 질긴 넝쿨이 휘감아버리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목만 빼고 죄다 넝쿨이 둘러싸니 오뚝이처럼 보이기도 했고, 볼링 핀처럼 보이기도 했다.
“뿌우우우.”
코끼리들이 오우거들을 코로 휘감아 짊어지고는 부리나케 또 달려갔다.
로켓처럼 배송하는 그들을 보며, 수호가 다시 고블린들을 해치울 때였다.
“쿠어어!”
이번 공략에서 레벨업을 할 듯싶었는데, 조급한 던전 보스가 기다려 주질 않았다.
“새끼, 성질 급하네.”
가만 기다리면 어련히 알아서 목을 따 줄 텐데 저리도 성급히 쫓아올 것은 뭐란 말인가.
오우거들의 대장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는 진즉 알고 있었다. 일부러 그곳과 멀찌감치 떨어진 곳부터 사냥하며 효율을 극대화했다.
던전에 진입한 지 4일째.
몬스터 90% 가량을 모두 사냥했다.
“얼추 끝내자.”
“쿠어어어!”
쿵, 쿠웅.
괴성과 함께 달려오는 오우거 보스는 머리통이 두 개나 되었다.
“저거 두 개 다 따야 죽나?”
수호는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트윈헤드 오우거를 대면했다.
“쿠와아아아!”
“와, 너 엄청 크네.”
오우거도 키가 크다.
작은 놈도 3미터는 넘고, 큰 놈은 5미터 가까이도 자란다.
그런데 눈앞의 놈은 키가 7미터는 되어보였다.
사람 셋이 일렬로 서야 할 정도의 크기.
키만 큰 것도 아니고, 거대한 근육을 가진 떡대라 더 덩치가 크게 느껴졌다.
“이거 잡을 수 있나 모르겠네.”
수호가 아닌 김동완의 이야기다.
그가 이걸 1:1로 이길 정도는 되어야 안심하고 새싹반을 졸업시킬 터였다.
외부인인 그를 언제까지 먹여주고 키워줄 수는 없다. 사냥터를 뺏는 것에 대한 미안함과 성장의 배려는 딱 한 번이다.
“일단 한 대.”
퍽.
수호는 가볍게 달려 트윈헤드 오워거의 싸대기를 때렸다.
“너도.”
괜히 멀뚱히 눈 마주친 옆의 머리도 싸대기를 때려 주곤, 달리기 편하게 백구의 모습으로 변신했다.
“따라와라.”
개 모습의 수호 입에서 유창한 한국어가 튀어나왔고, 뒤늦게 자신의 양 싸다구를 움켜쥔 트윈헤드 오우거는 분노했다.
“쿠어어어!”
쿵, 쾅, 쿵, 쾅!
개로 변한 수호는 숲 사잇길을 요리조리 잘 피해 달렸고, 분기탱천한 오우거는 숲을 파괴하며 그 뒤를 쫓았다.
*
“참 먹고 하입시다!”
이숙자의 음성엔 이제 은은한 내력이 실려 사자후나 다름없었다.
그녀가 마음먹고 욕이라도 뱉는 날엔 아무리 무감각한 오우거도 고막이 터지리라.
“참이다. 참!”
이숙자의 말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피 냄새를 맡으며 연신 도끼질로 오우거 멱을 따던 김동완이 제일 먼저 달려나왔고, 그 옆에서 잔소리하고 있던 당진철도 따라왔다.
“쳇, 네놈이 느리니까 우리 엄마가 밥이나 하는 거다.”
“쳇, 이숙자 님 원래 복지부장님이시잖아요.”
“건방진 놈.”
김동완의 항변은 당진철에게 전혀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잔소리에 면역된 김동완도 그의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식탁에 차려진 그릇을 보고 군침을 흘렸다.
“와, 국수네.”
“이잉, 다들 입맛 없어 뵈길래 함 말아 봐써.”
이숙자의 말에 김동완이 얼른 젓가락을 들고 국수를 집어들었다.
따악!
그리고 당진철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싸가지. 어른 먼저.”
“아오.”
틀린 말도 아니기에, 김동완은 항변하지 못하고 그저 억울한 얼굴로 뒤통수를 문지를 뿐이다.
‘이 새낀 진짜…….’
예의로 따지면 전혀 다른 소속 길드 사람에게 손찌검하는 이놈이 더한 것 아닌가?
버럭 화라도 내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니, 사실 던전 진입 첫째 날 화를 냈다가 비무 요청을 받고 무참히 박살났다.
당진철은 저 가벼운 입과는 다르게 진짜 실력 있는 고수였고, 김동완을 단 스무 합에 제압했다.
‘나쁜 새끼, 일부러 때렸어.’
실력 차이야 직접 싸워본 김동완이 제일 잘 안다.
마음먹었으면 단 한 방에 제압할 수도 있으면서, 일부러 더 많이 때리려고 승부를 질질 끈 것이 틀림없다.
“이잉, 난 신경 쓰덜 말고 먼저 잡숴. 일꾼들이 배불리 먹어야제.”
“일꾼…….”
이숙자의 따뜻한 말에 김동완은 울컥했다.
그의 배려심에 감동한 게 아니라, 지금 이 상황에 적응한 자신의 처지가 안타까워서다.
협곡 옆에 파놓은 구덩이엔 목 없는 오우거 시체가 가득이고, 나흘 밤낮없이 그 목을 딴 건 자신이다.
거기에 불과 50미터 떨어진 이곳은 텐트도 지어지고, 캠핑 테이블에, 화롯대에…….
꼭 소풍을 나온 것 같은 풍경이다.
오우거의 피 냄새도 더 이상 역겹지 않을 정도로 국수 맛이 좋다.
후루루룹.
“할머니 다녀왔습니다.”
“아이쿠, 국수네요.”
장순필과 박건우 장취아가 자리 하나를 차지하고 국수그릇을 받았다.
“이잉, 운동 좀 혔어?”
“네. 산책하기 좋아요.”
“저쪽에 폭포가 있는데 엄청 예뻐요.”
그들의 일상적인 대화를 들으며 김동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론, 속으로만.
‘이 길드는 정상이 아니야.’
어디 7성 던전에 소풍을 왔다.
전투원도 아니고, 짐꾼도 아니고, 그저 소풍을 위해 따라왔다. 고작 7살 아이 둘과 연구소장이라는 남자가.
헥, 헥.
“응?”
국수를 잘 먹던 김동완은 어느새 자신의 곁에 서있는 하얀 개를 보곤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했다.
“다 먹었냐?”
“푸웁!”
개에서 사람 말이 튀어 나오자 국수를 뱉었다.
“아니, 말하는 개라니!”
휘리리릭.
“나야.”
“우와, 깜짝 놀랐잖아요.”
수호는 피식 웃었다.
“너 곧 U급이네.”
“음, 본인도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소.”
SS급에 오른 지도 꽤 됐으니까.
그 뒤로도 오우거를 수백 마리 잡았다.
물론 수호에게는 좀 더 수치상으로 더 잘 보이지만.
레벨 78 – SS
화공
스킬 – 곤붕
고작 2레벨이 남았다.
물론 그 두 레벨을 올리기 위해 앞으로도 수백 마리는 더 잡아야 할 터였다.
“근데 곤붕이 뭐야?”
김동완이 흠칫 놀랐다.
그는 단언코 이번 던전에 와서 한 번도 스킬을 쓴 적이 없다. 했던 것이라면 오직 도끼질뿐.
“내 스킬을 알고 있소?”
“그냥 보여.”
“이것은 무슨 스킬이냐면…….”
“저놈 상대로 해봐.”
수호는 저 멀리 미친 듯이 뛰어오는 트윈헤드 오우거를 가리켰다.
“저놈 잡으면 이제 졸업.”
김동완이 국수 국물을 한 모금 더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구경들 하시오.”
김동완이 던전 입장 후 한 번도 쓸 일이 없었던 자신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나는 그림 그리는 화공.”
그의 손에는 어느새 빼어든 붓이 들려 있었다.
철썩, 철썩.
붓으로 국수 그릇에 담가 듬뿍 적셨다.
“무엇으로든 그림을 그리지.”
슈아악.
그가 바닥에 국수 국물로 그림을 그렸다.
파파팟.
빠르게 움직이는 두 다리는 메시를 보는 듯했다.
빨빨 움직이며 초원에 그려진 거대한 그림은 물고기.
“이것이 곤.”
거대한 물고기 그림이 들썩이더니 일어섰다.
그림이 실체화되어 거대한 물고기로 화해 트윈헤드 오우거를 향해 돌진했다.
“구엉, 구엉.”
그 사이 메시의 드리블 같이 요리조리 움직인 김동완이 하나의 그림을 더 완성했다.
“이것이 붕.”
거대한 새가 바닥에서 쑥 튀어나와 날았다.